181화
이왕이면 가던 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단 생각에 지호는 일전에도 입원했던 적이 있는 대학 병원을 찾았다. 동네에 하나 있는 3차 병원이라 항상 사람이 득실거리는 곳이었는데, 지호의 차림을 보곤 흘깃거리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대놓고 볼 용감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복장도 복장이지만 선글라스 아래로 보이는 단단히 굳은 입매. 그리고 팔짱 낀 방어적인 자세가 더더욱 접근을 막고 있기도 했다.
본래 신분을 밝히고 대기 없이 검사를 받으러 올라가려던 지호의 걸음을 잡아챈 건 병원 앞에 깔린 천막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비슷한 목걸이를 걸고 있었는데, 그늘 없이 밝은 얼굴로 지나가는 이들에게 음료나 간식을 건네는 것이 평범한 종교 집단 같았다. 어떻게 병원 주차장 바로 앞에서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지호는 금세 답을 알았다. 앞에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자들 외에 뒤편에 물러나 있던 자들이 주시하고 있던 모니터 때문이다.
오가는 자들의 체온이 측정되고 있다. 뜬금없는 열 감지기였다. 여러 사람이 지나는 동안 아무 반응 없던 감시자는 갑자기 특정 사람 하나를 가리켰다. 방금 카메라 앞을 지난 사람이었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중년 남성으로 머리가 좀 벗겨지고 배가 나온, 지나가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인상의 남성. 우르르 몰려간 자들이 그를 붙잡았다. 무엇을 하려는 걸까? 지호는 목을 쭉 뺐다. 아무리 강해진다 한들 키가 더 크는 것은 아니었던지라, 지호의 시야는 언제나와 큰 차이가 없었다.
“왜 이래, 이거 놔!”
“선생님, 정제되지 않은 마정석 반출은 불법이에요. 아시는 분이 왜 이러십니까?”
“누, 누가 마정석을 갖고 있다고!”
“일반인이 오래 노출되면 부작용이 있다고요. 더더욱 맨살에 닿아 있다든가 몸에 들어간다면 그 효과가…….”
“없어, 없다니까!”
지호는 숨 쉬는 것처럼 감지 파장을 펼쳤다. 좌우 앞뒤뿐 아니라 위아래까지, 완벽한 구형으로 펼쳐진 범위 안에 들어온 남자의 몸에서 큼직한 마정석의 존재가 느껴졌다.
열 감지기인 줄 알았더니 마정석이라니. 지호는 호기심에 카메라 뒤쪽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에게 붙들려 끌려오는 자의 피부 한쪽이 유독 퍼런 빛이었다. 마정석이 차가웠던가? 특정한 온도가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 지호에겐 오히려 낯선 일이었다.
“뭐 하시는 건가요?”
지호의 접근에 천막 아래에 있던 몇몇이 놀라 펄쩍 뛰었다. 화면 바로 뒤에 앉아 있던 이가 느릿하게 몸을 돌려 지호를 응시했다. 낯선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쪽을 안다는 표정이다. 근래 들어서는 꽤 많은 사람이 저런 표정으로 지호를 바라보았다. 바라지 않게 유명인이 되어 버린 후의 일이었다.
“이지호 헌터? 맞아요?”
“네, 뭐. 마정석을 열 감지기로 잡아낼 수 있나 보죠?”
“예? 아, 그렇죠. 전부는 아니지만, 꽤 많이 잡을 수 있어요.”
“병원 앞에 이런 장비가 있는 건 처음 봐서.”
“전도하시는 분들 햇빛도 피할 겸, 우리 일도 할 겸 같이 쓰는 거예요. 그보다 이지호 헌터 이야길 자주 하던 꼬마가 있었는데. 혹시 샛별이 보러 오셨어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여기 샛별이가 있다면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가 병원 경비를 서던 헌터에게 붙잡혀 숨겨 나가려던 마정석을 빼앗기는 과정을 함께 지켜본 지호는 끌려 나가는 자를 보며 현장 관리인으로 추측되는 이에게 질문했다.
“병원에서 마정석을 훔친 건가요?”
“어디서 훔친 건지는 이제부터 CCTV를 돌려 확인해야죠. 여기가 특수 병동이다 보니까 여기저기서 마정석이 쓰이거든요.”
부근에 음료와 간식을 나누어 주러 떠났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일부 병원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같은 목걸이를 하고 있다. 아까 전도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신흥 종교가 퍼지고 있는 걸까? 몇몇은 지호도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돌아오던 자들 틈에 남들 키의 반절밖에 되지 않는 말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마주쳤을 때, 샛별이는 들고 있던 팸플릿을 옆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맡기고는 이쪽으로 달려왔다.
“지호 언니!”
아이가 펄쩍 뛰어 와락 안겼으나 지호는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고 가뿐하게 샛별이를 받아 냈다. 몇 바퀴 빙글빙글 돌려 아이를 웃게 한 뒤에 그를 내려놓은 지호는 오랜만에 기쁨으로 가슴이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잘 있었어?”
“완전 잘 있었어. 나 아픈 데도 없고 건강해. 언니 멋있어졌다! 힘도 되게 세다!”
각성을 깨닫지 못했을 때조차 샛별이를 업고 달렸던 것을 생각해 보면 지호가 샛별이를 만났을 때는 늘 힘이 셌을 것이다. 하지만 지호는 그런 것들을 지적하는 대신 하하 웃으며 샛별이를 들어 아기들에게 하듯이 위로 붕붕 던졌다 놓았다.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져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빠가 아가일 때만 해 줬던 건데!”
“아이쿠. 샛별이는 아가가 아니니까 그만해야겠다.”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지호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어, 언니는 헌터니까 괜찮아.”
지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함께 온 일행을 보니 샛별이 또래 어린아이들도 더러 보였다. 지호는 샛별의 아버지와 눈인사하며 아이를 내려 주었다. 샛별이는 아쉬워했으나 지호가 옷매무새 만져 주는 것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어쩐 일이야? 나 보러 왔어?”
“샛별이 이름 잘 쓰나 확인하러 왔지.”
“이제 잘 써. 언니 이름도 쓸 수 있어. 근데 언니 이름이 내 이름보다 쉽더라?”
지호는 샛별이의 투덜거림에 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샛별이 아빠의 표정이 좋지 못했으나 지호는 꼭 잡은 아이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무리에게 돌아갔다. 주변에서 흘깃거리며 지호를 엿보는 것이 다들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지호는 그들에게 별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에게 모르는 사람들은 무정물이나 배경보다도 무가치했다.
“여기 자주 나와? 이제 안 아프고?”
“저번에 봤을 때도 안 아팠는데!”
“그때는 검사도 많이 하고 그랬잖아.”
샛별이는 자기가 얼마나 튼튼한지 보여 주고 싶었는지 하얗고 작은 팔을 쑥 걷어붙였다. 알통 하나 없는 팔을 접어 보이는 것이 귀여웠다. 지호는 대단하다며 박수를 쳐 주면서 아이가 걸고 있는 목걸이로 시선을 내렸다.
“그건 뭐야? 다 같이 가지고 있던데.”
“응? 이거? 언니도 하나 줄까?”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 아니었는지 샛별이는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순순히 풀어 주었다. 둥근 원을 가로지르는 직선과 그 중심의 작은 원. 지호는 그걸 손바닥에 둔 채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다 쓰는 거야?”
“기도할 때 쓰지. 균열에 휘말리지 않고 건강하게 해 주세요, 하는 거야. 언니는 균열에 들어가니까 꼭 갖고 있어야겠다.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샛별이가 하는 말이 특별히 이상한 것이 아닌지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드럽다. 지호는 몇 사람 손에 들린 팸플릿을 빠르게 훑었다. 이상한 종교로 보이지는 않았다. 시대가 하도 수상하니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에 지호는 옆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이 간식과 함께 나누어 주던 종이를 받았다.
당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기도합시다. 뭐 이런 종교적인 색채의 문장 몇 개가 적혀 있고 오른쪽 위에 목걸이와 같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여기 기도하면 건강해지는 거니?”
“응! 지금 곁에 없는 가족 목소리도 들을 수 있어!”
지호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을 기울였다.
“뭘 들을 수 있어?”
“완전히 죽은 사람은 안 된대. 하지만 균열에 잃어버린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들을 수 있다고 했어. 길게는 안 되지만. 열심히 기도하고 집회에 나가야 하는 거래. 우리 엄마는 안 되지만……. 혹시 언니네 가족이 균열에서 돌아오지 못했으면, 언니도 같이 가 볼래? 목소리 들어 볼 수 있을 거야.”
“이 근처니?”
“응. 있다가 집회 있어서 다들 전단지 나눠 주고 있는걸. 언니처럼 헌터인 사람들도 가끔 온대. 그렇지만 언니만큼 유명한 사람은 또 없을 거야.”
유명한 친구를 둔 것이 뿌듯한지 샛별이의 눈이 반짝였다. 달리 그를 말리는 이가 없기에 지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척 듣기만 해도 수상쩍다. 이런 종교 집단이 있다면 협회나 언론에서 모르고 있었을 리는 없을 텐데.
집회장은 넓었다. 근처 사이비 종교 건물을 그대로 쓰는 것 같았는데, 다행히 해당 종교는 교주가 큰 집회에 생겨난 균열에서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이 생중계되는 바람에 와해된 지 오래라 맥이 끊긴 지 오래였다.
지호의 손을 꼭 붙잡고 집회장에 들어온 샛별이는 몇몇 아이들과 인사했다. 다들 지호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뜨는 것이 기분 좋고 뿌듯한 얼굴이라 지호는 샛별이가 기분 좋도록 얌전히 손을 잡힌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입구에 놓인 종이에 다들 이름을 적는 것이 보였다.
“저건 균열에 두고 온 사람이 있는 사람들만 쓸 수 있어.”
“나도 쓸 수 있고?”
“언니는 오늘 처음 와서 안 될 거야. 뭔가 하는 게 있다고 그랬었는데……. 나중에 아빠한테 물어봐 줄게!”
지호는 그 친절함에 미소로 화답했다. 샛별이 아빠가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고, 지호는 그의 굳은 얼굴에 대고 가볍게 눈인사한 뒤 자리에 착석했다.
실내엔 뜻밖에도 별의별 장비가 다 있었다. 지호는 이형 에너지 계측기에서부터 고가의 방송 장비나 마정석 쓰는 특수 기기들이 설치된 실내를 보고 수상함을 느꼈다. 일반적인 종교 시설에 있을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샛별아. 저 앞에서 사람들이 뭐 해?”
“그냥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인사하고, 건강해서 잘 됐다고 인사하고, 노래도 부르고 그러는데?”
집회장을 지키던 사람들은 정돈된 모양새였다.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가 수상쩍은 집단과 거리가 멀어 보이긴 하지만 기묘하게 찜찜하다. 지호는 자신의 감을 신뢰하는 헌터였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실내를 덮고도 남을 범위에 감지 파장을 뿌렸다.
그 순간 몇몇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일반 각성자 중 감지 계열이 몇 있다. 일부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으로 물드는 얼굴들. 지호는 일부러 고개를 가로저었고, 옆에 앉은 아이를 턱짓으로 가리켜 보이기까지 했다. 소란 피울 생각이 없다는 몸짓이었는데, 그게 통했는지 상대는 당황을 감추며 옆 사람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실내에 헌터로 보이는 자는 없으나 각성자는 더러 보였다. 심지어 보기 드문 감지계이기까지.
그게 무엇을 뜻할까.
본래는 예배당이었을 실내라 가장 앞쪽은 약간 높은 단상이 있었다. 지호가 수상하게 여기는 기기들은 거의 다 그 뒤편에 있다. 어떻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일까?
“그럼 여러분,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도하지요.”
마이크로 누군가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두통이 시작됐다. 이맛살이 지끈거릴 정도였다. 본능적으로 여기에 뭔가가 깔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도하기 위해 잡고 있던 손을 놓은 샛별이 덕분 관자놀이를 압박할 수 있게 된 지호는 손에 들고 있던 목걸이를 우그러뜨렸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정신계 능력을 쓰는 건 불법이다. 더욱이 이런 식으로 악용하는 일은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