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그래서 사냥보다는 팀 단위 경계 임무들을 나갔나 보네요. 어쩐지 사냥 보고가 잘 안 올라온다 했어요.”
“그래도 그렇게까지 위험한 상황은 아냐. 말이 통하는 놈들은 소수고, 대화할 만큼의 지능을 가진 놈들은 더 소수야. 거기다 이 상황을 파악할 만큼 똑똑한 것들을 찾는다면 정말 손에 꼽지. 괴물들 의사소통 특성상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야기할 수 있어서 그렇지, 보통은 이런 소문이 나기도 어려웠을 거고.”
“하지만 났잖아요.”
“들어 봐. 저 정도로 똑똑한 새끼들은 다 어느 정도 인간을 많이 집어 먹은 것들이지. 괴물도 마찬가지고. 그 정도로 몸집과 힘을 불린 것들이 쉽사리 자신을 쪼개 가며 존재를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선택을 하는 놈들은 진짜 소수 중에도 극소수야.”
지호는 불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은 여전히 퀸 패러사이트가 머무르는 캠프 쪽에서 눈을 돌리지 않은 채 차분히 설명했다.
“놈들이 자기를 쪼개어 약해지기를 선택한다고 해도 문제가 있어. 갈라지고 약해지며 다수가 되는 순간 그것들 전부는 각기 다른 괴물 주체가 되지. 한 놈에 의해 전부가 통제당하는 게 아니란 말이야. 처음 가졌던 의지 그대로 균열을 나가려고 시도만 한다면 다행이게. 자신이었던 옆의 괴물을 공격해 뼈를 씹고 살을 취하려고 든다고.”
약한 괴물들은 피아를 식별할 능력도 없다. 옆에 있는 개체가 자신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맛있어 보이는 먹이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의미다. 지호는 균열 밖으로 빠져나왔던 괴물의 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 군대가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한 놈들은 나올 수 없고, 멍청해진 후에는 멍청해서 나올 수 없는 거죠. 어쩌다 운이 좋아 밀려 나올 가능성 정도는요?”
“그것까지야 어쩔 도리가 없지.”
도훈이 설명한 대로라면 괴물들이 균열을 넘어오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피해가 생각보다 크고, 넘어온다 해도 일반인 선에서 제압할 수 있을 만큼 약해진 상태일 수 있다. 그러나 지호는 언제나 만약을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빠져나간 것 중에 한 놈이라도 놓치면 대균열보다 더한 재앙이 도래할 수 있었다.
언제나 지호보다 똑똑한 이들은 더 많은 것을 준비할 것이다. 지호는 흐린 눈으로 비 내리는 균열 안쪽을 넘겨보았다.
“여길 오래 열어 두지 않을 것 같네요.”
“뭐? 괜찮을 거라니까?”
“한 놈이라도 나가면 문제가 돼요. 이쪽에서야 다들 당연히 괴물이 있을 거란 가정하에 움직이고 숨고 피하죠. 하지만 바깥에선 그렇지 않아요. 어디서 괴물이 나타날 거란 생각 자체가 망상으로 취급받을 테니까. 그러니 괴물이 나타났단 말이 돌아도 다들 헛소리 취급하느라 피해가 늘어날 거예요.”
하나라도 놓치는 순간 협회에선 균열을 닫을 것이다. 여기가 대형 균열이란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겠지. 여기에 남은 사람들과 바깥에 남은 이들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책임자는 누구일까. 만약 지호가 밖에서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면 무엇을 최우선으로 고려할까.
헌터들의 동선이 유독 경계 부근에 몰려 있는 것이 신경 쓰였다. 아마 지호에게 알리지 않은 모종의 신호가 있거나, 이미 많은 헌터들 사이에 균열을 닫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거나. 균열 중심부에 아무도 접근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괴물이 있거나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지호는 그가 추측할 수 없는 다른 이유에 관해 떠올리느라 머리를 싸매는 대신 도훈에게 속삭였다.
“다른 헌터들이 도훈 씨를 배척하는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이미 저도 정보에서 소외되고 있어요. 도움될 만한 뭔가를 가져올 순 없을 것 같고요. 오히려 균열이 닫히는 순간 저도 여기 남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거든요.”
“그럴 리가. 우리 지호 다른 사람들한테도 중요한 위치 아니었나?”
지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한때는 그랬을 수도 있다. 임보현 헌터의 피보호자로, 어떤 여러 사건으로 유명해진 임시 헌터로, 또 실종자들의 귀한 소식을 들고 돌아온 헌터로도.
그러나 지호는 너무 멀리 갔다. 그는 괴물 중 일부를 사람으로 여기고 싶어 하는 자신과 다른 헌터들과 같은 의견을 고수하고자 하는 자신이 충돌하고 있음을 알았다. 지호는 자기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젠 아니죠.”
비가 그치고 있었다.
오래 내린 비는 아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아니면 관측된 적 없는 현상이 있었는지 지호 귀에 연결된 인이어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연결 불가 상태. 지호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혹시 전파 방해 같은 걸 할 줄 아는 괴물도 있어요?”
“잘 모르겠는데. 없진 않을걸?”
전파 방해 현상 자체는 일전에 다른 일반 균열에서 나타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 균열에선 아니었다. 한 균열에서 하나의 기상 이변 아니었던가. 지호는 재차 귀 부근을 두드려 신호를 보냈다. 여전히 지지직거리는 소리뿐이다.
“신호가 끊겼어요.”
지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균열이 고요해졌다.
균열에서의 고요는 불길한 신호와 같다. 괴물들의 싸움이 그치고, 놈들이 살기 위해 달아나고 숨기에 소리가 사라진다. 적막 속에서 무언가가 후두둑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흰 연기 담긴 구슬보다 훨씬 큰 물건들이었다.
농구공만 한 크기의 스티로폼 박스. 구호품이 담긴 것들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지호는 이걸 본 적이 있다. 다른 균열에서 생존자를 위해 무작위로 살포하던 물건이었다. 지호는 급하게 도훈을 붙잡았다.
“균열을 닫으려나 봐요!”
“뭐?”
“최후의 양심을 뿌리고 있어요. 저거라도 남겨 줬으니 어떻게든 살아남으라고 움직이는 거라고요. 균열을 닫으려는 거예요. 아직 사람들이 남아 있을 텐데!”
괴물들이 어디로 빠져나갔다는 신호가 올라온 곳은 없다. 교전 중이라는 일람만 간간이 올라왔을 뿐.
우르릉. 불길한 소리가 난다. 전파가 끊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연결을 끊은 것이라면 이 현상이 설명 가능했다. 눈에 힘을 집중하자 원래 거기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서포터가 없었다. 진작 떠났을까, 아니면 단순히 위치를 옮긴 것일까.
“가요. 가야 해요. 균열이 닫힌다고요!”
“어디로 가야 하는데?”
말문이 턱 막혔다. 도훈은 습관처럼 오른손을 뻗어 자신을 붙잡은 지호의 손등을 쓸었다. 타인의 온기가 피부 너머로 너무 멀게 느껴졌다.
“너는 떠날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못 해. 이번 균열이 닫히면 또 언제 너를 볼 수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기는 할까?”
“도훈 씨…….”
“가. 너는 나갈 수 있잖아.”
그가 힘주어 지호의 손을 떼어 놓았다. 그대로 버틸 수도 있었으나 지호는 순순히 밀려 주었다. 지호 부근으로 이형 에너지가 밀도 있게 모여들었다. 도훈은 웃음을 터뜨렸다.
“허튼 생각 말고 어서 가. 예전 같은 행운은 또 없을 거야. 여기 남으면 너도 곧 우리처럼 되고 말겠지. 그때는 다른 놈들의 중간 다리 역할도 할 수 없다고. 나를 위해 좀 더 이용하기 좋은 헌터로 남아 주겠어?”
“약속했는데.”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도훈과 함께하는 내내 마음에 뾰족한 돌부리처럼 남아 있던 약속이기도 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손짓했다.
“다른 놈들이 이미 자리를 떠났으면 얼마 안 남았겠네. 네 친구가 줬던 충전기가 효율이 별로라 며칠을 충전해야 좀 켜지더라. 쓸 만한 다른 게 있으면 좋겠어.”
“또 볼 수 있을까요?”
도훈은 대답 대신 지호의 등을 떠밀었다. 내리던 비가 완전히 그치자 먼 곳까지 시야가 트였다. 헌터들이 캠프를 정리하고 있었다. 지호에게는 왜 아무 소식도 들어오지 않았을까.
“가, 어서.”
몸을 돌린 지호는 땅을 박찼다. 바닥이 순식간에 멀어지며 시야가 트였다. 일부 지역은 금속 먹는 괴물 때문에 끊긴 전력이 복구되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이형 에너지가 소용돌이친다. 일대의 공기가 숨 막힐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지호는 몰랐지만, 그가 각성할 때도 그랬다. 준영이 각성할 때에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어 그 현상을 떠올린 지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와서 누가 새로이 각성할 턱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별일 없이 친구와 대화나 나누고 있던 지호가 재차 각성할 까닭이 무엇이 있을까.
주안 공단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지호 주변에 밀집한 이형 에너지는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무섭게 흔들렸다. 하늘을 날아다니던 괴물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앞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균열 중심에서 낯선 흔들림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려는 의지를 드러낸 순간, 주변 풍경이 카메라 줌 당긴 것처럼 확장되며 펼쳐졌다. 지호는 당황했으나 힘을 가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균열 내부 이형 에너지가 그의 뜻대로 움직여 주는 것이 이상했으나 의심하기보다는 사용할 때였다.
하늘이 갈라진다.
여왕이 그의 호위대 몸을 쓸 때와 비슷했다. 이형 에너지의 흐름을 명백히 보게 되자 지호는 균열을 닫는 원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쉽게 말하자면 삼투압 현상 같은 걸 일으키는 셈이다. 저쪽에 이형 에너지 공백을 만들어 이쪽의 에너지가 쑥 빨려 나가게 되는, 그러면서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들까지 함께 쓸려 나가는 현상.
한없이 가까운 듯 보이게 된 균열 중심부에서, 방호복 입은 자들이 익숙한 기기를 조작하는 것이 보였다. 전에도 본 적 있는 모습이다. 진짜로 균열을 닫는 시도를 하고 있다니. 균열 중심부로 블랙홀 같은 특이점이 나타났다. 중심을 향해 쇄도하는 에너지들.
그제야 핸드폰이 울렸다. 막혔던 신호가 뒤늦게 범람하며 하나하나 검토할 새도 없이 알림 창이 우르르 떠올랐다.
[최소민 : 지호 씨, 지호 씨 균열 나오는 방법 잊지 않았죠. 균열 사라질 때 그 방법.]
[임보현 : 지호 씨 어디예요? 왜 신호가 안 잡히죠?]
[강하나 : 외부 전투조에 있는데, 솔직히 분위기 너무 안 좋고 퇴각 예정이라는 말이 불길해요. 균열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요.]
[최소민 : 지호 씨가 도플갱어한테 배워 온 그 방법이요. 침착해요. 내부 의견이 좀 갈렸지만, 모두가 지호 씨에게 등을 돌린 건 아니에요.]
[김동주 : 대원, 몸은 좀 회복했나? 균열에서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다. 내가 전투계가 아니라서 바로 구할 수 없었던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주원과 전양련이 무슨 짓거릴 하고 있는지 빌미를 잡았다. 박 팀장이 곧 소식 전할 거다.]
[최소민 : 지호 씨가 좀 다쳤다고 해도 내가, 우리가 지호 씨를 외면할 리 없잖아요.]
[이주리 : 제 동생이 균열에서 목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현재 헌경에서 불법 실험 주체인 전양련을 추적 중에 있으니 협조 요청이 올 겁니다. 괜찮다면 녀석이 무슨 짓거릴 하는지 저도 알 수 있겠습니까?]
[최소민 : 일단 나와요. 이형 에너지를 잘 살펴요. 금방이에요.]
[강준영 : 안녕하세요, 헌터님. 다른 분들께서 저를 구해 주신 분 연락처를 알려 주셔서 이렇게 문자 드립니다. 구해 주신 덕분에 병원에서 여러 검사도 받고 치료도 받고 있어요. 비록 위험한 상황에서 헤어지게 되긴 했지만, 괜찮으신 거죠? 이지호 헌터님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다른 분들이 그러셨지만, 이상하게 걱정이 되어서요. 쓸데없는 염려인 건 알지만…….]
[최소민 : 알죠. 실외에 나와 있는 편이 유리한 거! 지호 씨는 감지계라 이형 에너지의 흐름을 볼 수 있으니까 서둘러요.]
[장지윤 : 손! 사진! 미쳤다, 이제 봤네! 어케 된 일이래여! 당장 튀어 와여. 바로 정밀 검사 해야 하니까!]
[차나연 : 지호 씨. 메시지 읽고 바로 지워요. 협회가 반으로 갈렸어요. 급진적 행동파가 움직일 겁니다. 마주치는 사람은 일단 의심해요. 아무도 믿지 말아요.]
온갖 메시지가 마구 뒤엉킨다. 이름 아는 자들의 것만 훑는 것만도 벅찼다. 소민의 메시지가 유독 간절하다. 몇 차례나 연달아 오는 언급들.
누군가 수작질하는 것을 보거나 그 계획을 알게 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더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형 에너지가 몰려들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들을 막기엔 시간이 모자랐다. 한번 속도를 붙이기 시작하자 균열 중심부 특이점은 다른 공간의 에너지를 빠른 속도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온 공간이 무서운 속도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이형 에너지가 휘몰아쳤다. 지호는 이를 악문 채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밀도 높은 에너지들 때문에 다른 것들의 흐름이 느리게나마 눈에 들어왔다. 본 적이 있는, 혹은 이름 모를 온갖 괴물들이 후미진 곳에 숨은 채 공간째로 끌려 나간다.
온갖 것들이 밀려들어 숨이 막혔다. 그러나 그 흐름을 거스를수록 천천히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무수한 이형 에너지들이 천천히 지호를 놓아주었다.
퀸 패러사이트와 그의 숙주들 역시 빠르게 지호를 스쳐 지나간다. 아는 얼굴들이 지나가는 와중에 승환은 보이지 않았다. 균열을 넘어갔거나 어딘가에 숨은 채였을까. 얼어붙은 채 균열 소멸에 휘말리는 사람들이 더러 보이기도 해 안타까웠으나 그들을 붙잡을 힘이 없다. 주변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으나 폭발적인 속도로 사라지는 균열이다. 그 압도적인 에너지 흐름에 지호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이질적인 존재들이 매섭게 할퀴고 간 자리는 폐허가 되었다. 가까스로 저쪽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자리에 남은 지호는 자기가 거의 균열 중심에 가까워졌었다는 사실을 알고 몸을 떨었다.
머리끝에서 단백질 타는 냄새와 함께 연기가 올랐다. 전투복 역시 심하게 혹사당한 것처럼 긁히고 찢기고 망가져 있었다. 이형 에너지들을 두르고 있지 않았다면 몸이 산산이 찢겼을 것이다. 지호는 덕팔이 만들어 준 방어구들이 쓸모를 잃고 떨어지는 것을 보며 침묵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로가 극에 달했으나, 그는 한숨 한 번 쉰 뒤에 자리를 벗어났다. 손이 드러난 상태로는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