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괴물 때문에 다 무너진 균열 안쪽 도시 한쪽에 임시로 차려진 캠프에는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안정기에 돌입하면서 헌터부터 일반인 각성자까지 전부 균열에 뛰어들었다. 그들이 모인 이유인 이지호 헌터는 치료기로 들어간 상태였지만, 아무튼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는 주요 화제였다.
이런저런 작업을 하다 다쳐서, 혹은 피곤해서, 혹은 잠깐 쉬며 정보를 얻을 겸 해서 모여든 이들은 치료기 부근에서 휴식을 취하며 의견을 나누었다.
“구조 작업은 거의 다 끝났어요. 코드 레드 원 출몰 지역만 빼고요. 전처럼 균열 경계 쪽으로 유인할 수도 없어요. 오히려 우리가 유인당하고 있는 꼴이라.”
오솔잎 헌터의 선언에 그의 팀원들은 질린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나마 구조 작업이 끝나면 신경 쓸 것이 적어진다는 것만이 유일한 희소식이었다.
“머리가 너무 좋은 놈이라 더 문제네요.”
“작전 짜고 유인하려고 해도 일정 구역 밖으로 나오질 않더라고요. 우리가 들어가기도 힘든데, 그쪽에 남은 사람이 몇백 명은 넘는 게 문제예요.”
그나마 검단 공단 부근이 경계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피해가 적은 것이다. 이게 급성 균열이었다면 말도 못 할 재앙이 벌어졌겠지. 외곽에 있던 이들은 대부분 대피했으나 안쪽, 혹은 교통 혼잡 구역에서 오도 가도 못하던 이들이 남의 공장으로, 모르는 건물로 숨어들어 구조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사흘이 지났으니 배터리도 방전되어 들어오는 신호보다 더 많은 이들이 헌터들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다른 지역에 모여 있던 괴물 무리는 상당수 소탕됐다. 이번 균열이 규모가 너무 커 다들 잊고 있었는데, 안정기가 다가오면서 기상 현상도 함께 시작됐다. 흰 연기 담긴 구슬 비가 내리는 듣도 보도 못한 일기. 정신계 능력자가 아닌 자들은 거기에 닿으면 환각을 보는 골치 아픈 현상이었다.
“이지호 헌터를 데려갔던 괴물들은 거기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어요. 아마 이지호 헌터는 달랐겠죠. 거기서 신체를 잃었을 테고요.”
“그리고 괴물이 되었을까요?”
누군가 짧게 신음했다. 헌터들은 침묵했고 빨간 명찰 단 각성자들은 눈치를 살피다 질문했다.
“이지호 헌터가 괴물이 되었다는 찌라시가 진짜였어요?”
“괴물이라고 부르기는 좀 그렇죠. 균열에서 싸우다 상처 입고 폭주하는 치유계 능력자들이 드물게 그런 현상을 겪는데요.”
오솔잎 헌터는 점잖게 팀원의 실수를 덮으려 했다. 애석하게도 그들 뒷자리에서 공격적인 음성이 들렸다. 팀원들끼리 조용히 수군거리기엔 지나치게 서로 간의 자리가 좁았다.
“그래요. 괴물이라뇨. 아무튼, 자기 일 하다가 다친 거잖아요. 다들 자기가 사고에 휘말렸다가 다쳤는데 다른 사람들이 외면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김서영 헌터는 비아냥거리는 어조를 숨기지 않으며 다른 이들을 노려보았다. 마주친 시선에 불이 튀었다. 서영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헌터는 코웃음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뭐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요? 어떤 헌터가 괴물이 사람이란 헛소리하면서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트리려고 해요? 진짜 자기 일 하다가 그 상태 된 거면 안타깝게나 여기겠네. 딴 짓거리 하다 그런 게 분명하잖아요.”
“딴 짓거린 동료를 괴물 주둥이 앞에 버리고 튄 새끼들이 한 거 아닌가?”
몇몇의 얼굴이 붉어졌다. 서영은 그쪽으로 눈도 돌리지 않았으나 헌터들 사이에 지호를 홀로 버리고 돌아온 손예린 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서영과 부딪친 헌터는 명찰 부분 전투복이 찢겨 이름이 보이지 않았고, 서영은 그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쭉 부딪칠 것이 뻔한 자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왜, 괴물도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헌터인 데다 도플갱어도 같이 있었다는데 어떻게 해야 했겠어요? 그 괴물도 설득해서 왜, 사람이라고 하든가 했어야지.”
“이지호 헌터가 모든 괴물이 사람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은 거 아닌가?”
“결국 궤변이죠. 어떤 괴물이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데요? 언제 본색을 드러낼지는 또 어떻게 알고?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서 옆 사람이라도 공격하며 난리가 나면 그건 누가 책임져요?”
“누가 정체도 모를 괴물 데려다가 강남역 한복판에 풀어놓자고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과민 반응이신지? 분명히 실종자 가족인 것이 분명한 자들을 데려오자는 의견이었던 걸로 아는데요.”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보는 두 헌터를 사방에서 말렸다. 건물을 부수고 괴물을 찢어발기는 헌터들 간의 다툼이다. 사소한 말싸움만으로 끝난다면 좋겠지만, 이 흉흉한 분위기로 보아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서로 멱살이라도 잡으려던 바로 그 순간, 오솔잎 헌터가 끼어들어 양쪽을 밀쳤다. 서영은 휘청거렸고 상대 헌터는 켁 소리와 함께 밀려났다. 정도는 좀 다르지만, 멀쩡한 척해도 여기 치료받으러 온 이상 다 환자였다.
“결정이 나지도 않은 사안 때문에 애꿎은 헌터들끼리 싸울 필요 있나? 명령하면 따른다. 그게 우리 할 일이야. 안 그래?”
구경꾼들마저 머쓱해졌다. 말리지는 않고 오히려 재미있는 것 보는 양 몰려 있던 헌터들은 남은 괴물 군집을 마저 사냥하겠다며 떠나갔다.
멀찍이서 헌터들 간에 싸움이 났나 보다 하고 기웃대던 일반인 각성자들도 미처 나오지 못한 사람들을 구조하거나 물자를 나르고 벽을 세우는 등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흩어졌다.
전투로 팔이 너덜거려 아직은 치료기 신세를 져야 하는 서영은 그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채로도 한쪽 다리를 덜덜 떨었다. 그의 치료 담당 헌터인 지윤은 피로한 얼굴을 쓸어내리며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다행히 서영은 어느 정도는 지호 편인 것 같았다.
“다들 입만 살았네요. 필요할 때는 도와주러 간 사람도 없었으면서.”
“밖에서 기록 검토하느라 동선 추적하는 거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구조 요청을 무시했을까요?”
“좋은 핑계가 있죠. 미등록 각성자 보호와 전투 가능 상태가 아니므로 후퇴. 애 혼자 두고 갔다는 게 문제지만요.”
김서영 헌터는 치료받는 와중에도 올라오는 소식들을 확인했다. 신체 계열 헌터라 필요한 곳에 백업을 가야 할 필요가 있다. 당장 움직이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회복되면 바로 현장으로 갈 생각이었다.
서영 외에도 당장의 상처만 대충 때려 막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려는 헌터들이 더러 있었다. 대체 인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다른 지역에서 헌터들이 파견 오고 있다지만, 괴물들 틈에서 인간은 몇 시간만 더 있어도 죽을 수 있다. 구해야 할 사람은 구한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많았으니.
검단 캠프가 산업 단지에 있던 것도 피해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할 이유 중 하나다. 차라리 일반 주택 지구나 평범한 도심지였다면 어느 정도는 숨어 버틸 수도 있으리라 짐작했을 것이다.
“퀸 패러사이트의 부하 놈들이 너무 세서, 어지간하면 부딪치지 않는 편이 좋대요. 놈에게 한 번 당하고 나면 균열 밖으로 이송하지도 못해요. 조심하세요, 김서영 헌터님.”
“균열 밖으로 못 나간다고요? 왜죠? 거기서 당하면 이지호 헌터처럼 괴물이라도 된답니까?”
“다른 이유가 아니고, 혹시 침식이 일어나서 외부로 나가 변이할까 봐 그렇대요.”
“그런 예시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퀸 패러사이트가 두 마리 있는 개체도 아니니까요.”
보통 때라면 괴물에게 당했다고 하면 바로 외부 병원으로 이송할 상처도 현장 치료로 돌아간다. 덕분에 지윤을 비롯한 의료 교육 수료자들 중 수도권 소속 헌터들은 전원 균열에 모여 있었다. 병원으로 이송할 수는 없어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방금 온 공지가 그 비슷한 내용이에요. 퀸 패러사이트와 교전한 헌터에게서 이상 징후 발생으로 격리. 균열에서 나가지 않는 조건으로 치료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놈의 그 촉수만 좀 조심하면 된다고 하던데.”
“그게 다가오는 동안 환각이 보인다고도 하던데요? 다른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팔 들어 봐요.”
“저는 퀸 패러사이트랑 교전하진 않았는데요.”
“누가 뭐래요. 찔리세요?”
서영은 순순히 팔을 들었다. 움직일 때마다 근육을 타고 뜨끔뜨끔 통증이 오르지만 견딜 만하다. 지치고 피로한 헌터들이 치료받는 모습이 무슨 기삿거리가 된다고 한쪽에서 플래시를 터뜨려 대는 기자가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윤은 한숨 쉬며 서영의 팔 동작을 점검하곤 경고했다.
“몇 시간 정도는 쉬세요. 바로 임무 나가면 다음에는 이 팔을 못 쓰게 될지도 몰라요.”
“그렇게 심각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
“신체 계열 헌터니까 붙어 있는 거지, 다른 헌터님이었으면 떨어지고도 남을 상처였어요. 어떻게 신경이 복구되었다곤 해도 뇌에는 충격이 남아 있죠. 그런 피로가 누적되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와요.”
서영은 싱긋 웃었으나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지윤은 도통 말 들어 먹는 일 없는 헌터들을 보며 한숨 쉬었다. 본인 능력이 전투계였다면 지윤도 이러고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는 여전히 괴물이나 균열이 조금은 두려운 사람이었다.
“헌터님도 그렇고, 제 친구들도 그렇고. 다들 자기 몸 소중한 줄 몰라요.”
“쉬라는 이야기도 그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셨겠죠?”
“다 쉬어야 해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두 휴식이 필요하다고요.”
“그럴 수 없다는 걸 제일 잘 아시잖습니까.”
서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막 신경이 연결된 팔이다. 저릿한 느낌이 어깨까지 올라오는 것을 무시한 채 스트레칭한 서영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치료 고맙습니다. 현장으로 가 봐야 해서.”
“벌써요? 한 시간만 더 있어요!”
“아닙니다. 경계 쪽이 심상치 않아서요. 자칫 괴물들이 외부로 나가는 수가 있습니다. 일전 다른 균열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는데, 그때는 강제로 어떻게든 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안 돼요. 너무 많은 헌터가 휘말립니다.”
지윤은 서영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호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였으니까. 판교 균열을 강제로 닫아 버렸던 바로 그 이야기다.
뒤에서 일하는 보조계 헌터들에게까지 들려온 이야기는 아니었던지라 그는 단단히 긴장했다.
“균열을 빠져나가는 괴물들이 이번 균열에도 있다는 말씀이시죠?”
군부대가 균열 경계에 일정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기는 했으나 전부를 커버하기에는 균열이 지나치게 컸다. 팔이 의지대로 동작하는 것을 확인한 서영은 다른 헌터에게 합류 의사를 전했다.
“본격적으로 사냥 팀에 가는 게 아니니 염려 마세요. 되도록 퀸 패러사이트 말고 다른 놈한테 당할 테니까요.”
지윤은 서영의 농담에 눈을 가늘게 뜨며 상처가 남은 어깨 부근에 약을 도포하고 드레싱을 마무리했다.
“그냥 안 다치겠다고 하셔야죠. 그나저나 지금이야 놈이 검단에 있다 쳐도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데요.”
“그땐 필사적으로 피해 보겠습니다. 치료 고마워요.”
서영은 몇 번 발을 구르더니 뒤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곤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깊이 팬 발자국만 남았다.
손부채질로 먼지를 떨쳐 내며 인상 쓴 지윤은 벌써 까마득히 멀어져선 부서진 도시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서영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가 두고 간 고민거리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판교 균열 때도 거기에 헌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빠져나오는 괴물들을 모두 막을 여력 있는 자 역시 없었다. 협회는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그때와 같은 선택의 때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많은 헌터들을 아무렇지 않게 저버리지야 않겠지만, 묘하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설령 일선에서 바로 뛰는 헌터는 아니더라도 지윤 역시 헌터는 헌터다. 헌터의 감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찜찜하게 그를 괴롭혔다. 결국, 지윤은 핸드폰을 꺼냈다.
[장지윤 : 다들 멀쩡해여?]
[강하나 : 나 풍무동에 대기 중. 왜?]
[장지윤 : 아니, 좀 이상한 소리 들어서. 혹시 경계에서 괴물들 못 넘어가게 잡고 있음?]
[강하나 : ㅎㅎ]
대답이 이상하다. 지호야 치료받고 있을 터라 조용하겠고, 소민은 이동 능력자가 적어 혹사당하고 있을 테니 하나만 대답하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한데.
다음 사람이 쓸 수 있게 치료기를 점검하고 일회용 부속물들을 갈아 끼운 뒤, 지윤은 재차 상황을 언급했다.
[장지윤 : 괴물들이 진짜로 균열을 나가려고 해여? 그럼 이번 대형 균열 어떻게 되는 것임?]
읽는 사람 수가 줄지 않는다. 하나 역시 바빠진 모양이다. 지윤은 초조하게 화면을 들여다보다 멀리서 꾸물거리는 비구름 쪽으로 눈을 돌렸다. 흰 구슬 쏟아지는 것이 보인다. 소리도 요란했다.
경계면과 가까운 위치. 괴물들까지 휘말리는 이상 현상이다. 차라리 저 비가 내리는 동안은 안전하겠지. 하지만, 언제까지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지윤은 몸을 떨었다. 오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른 부상자가 상처를 보이며 이쪽으로 다가왔으니.
다른 친구들이 그러하듯 지윤은 다시 자기 일에 열중했다. 그러는 편이 불안감을 떨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