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지호가 저도 모르게 바짝 힘을 줬는지 승환이 왼팔을 탁탁 쳤다. 숨 막혀, 하는 작은 소리에 지호는 황급히 힘을 풀었다. 창 쪽에서 들어온 놈이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둘은 동시에 욕설을 토해 냈다. 불가항력이었다.
“드디어, 찾았다. 이 괘씸한, 탈주병.”
한마디 한마디가 머리를 꽝꽝 울린다. 한 마디씩 뚝뚝 끊어 말하는 탓에 위협이 극심했다. 저릿하게 두통이 느껴졌다. 괴물이 입을 열 때마다 정신 언어가 겹쳐져 들린 탓에 두 번씩 말이 울리는 것 같았다. 승환 역시 휘청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은 착각이 아니었다.
붉은 눈 흉흉한 뱀은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존재감을 자랑하며 자기 앞의 셋을 훑어보았다. 눈이 붉지 않은 쪽 뱀이 움츠러들며 눈치를 살핀다.
눈이 마주치자 몸이 덜덜 떨려 온다. 죽음의 공포가 되살아나서? 이제 와서 그게 두려워서 싸우지 못할 리는 없었다. 다른 붉은 눈 괴물들을 마주할 때도 그랬다. 물론 처음에는 죽음의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영향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제 와서는 저 붉은 눈이 몸을 옴짝달싹 못 하게 옭아매는 느낌 때문에 전신이 떨렸다. 승환은 지호의 왼팔을 꾹 붙잡으며 자세를 낮췄다.
“이건 안 줘.”
“너는, 그 비구름 아래, 거슬리는 수호자……. 왜 여기까지, 나와 있지?”
목소리가 천둥처럼 크다. 몇 마디 하지도 못하고 붉은 눈 뱀이 기침을 토했다. 눈알만 붉은 것이 아니라 핏발 선 흰자위와 푸들거리는 몸. 떨리는 턱 같은 것들이 이상 징후를 알려 왔다.
왜 저러지? 지호는 놈의 상태를 인지하고 냉정하게 살피려고 애썼으나 제 몸 가누기조차 뜻대로 되지 않아 어려웠다. 붉은 뱀은 쉬이익하고 위협적인 소릴 내더니 바닥에 납작 달라붙었다.
“쓸모없는 비를, 몰고 다니는군. 곧 회수하러, 오겠다.”
놈이 눈을 꾸욱 감았다가 뜨니 붉은 눈은 사라지고 없었다. 동시에 몸을 압착하는 것처럼 짓누르는 것 같던 감각도 사라진다.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할 지경이었다.
앞에 엎어진 뱀은 샤악, 하고 겁에 질린 소리를 내더니 처음보다 느리게 바닥을 기며 둘을 노려보았다. 여왕과 연결되는 것이 몸에 무리가 가는 모양이었다.
“여태 붉은 눈을 여럿 봤는데 저런 놈은 처음이야.”
“말하는 눈 빨간 뱀은 나도 처음이야.”
뒤에 있던 놈은 황급히 도망치고 없다. 지호나 승환 때문에 도망간 게 아니라 여왕 때문에 도망간 것 같았다. 호위대라며? 이름을 누가 이렇게 지었나? 지호는 이상하게 치밀어 오르는 반발심을 눌렀다. 저딴 이름이 붙은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지호가 모를 뿐이지.
두 마리였다면 버거웠겠으나 도로 하나다. 구슬 비 맞던 때처럼 행동이 느려졌다. 승환은 침착하게 날카롭게 선 비늘을 손톱으로 긁어 치며 소리쳤다.
“위로!”
그가 말한 대로 지호는 위로 던져졌다. 몸이 한 바퀴 붕 돈다. 다리로 환풍구 철판을 걷어차 급히 틈을 만들어 매달린 지호의 등 아래로 뱀의 꼬리가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일순간 자유로워진 승환은 벽 쪽으로 돌진했다. 벽을 도움닫기 삼아 꽝 짓밟으며 속도를 내자 눈 깜짝할 사이에 뱀 괴물의 머리 뒤였다. 예리하게 날 선 손톱이 놈의 척추를 갈라 버린다. 천장의 돌출된 환풍구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지호는 황당해 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뱀이 고통스러워하며 승환의 목을 꼬리로 움켜잡았으나 이쪽 악력이 더 셌다. 등으로 파고든 손이 안쪽을 휘저으며 갈퀴처럼 뼈를 긁어내자 괴물은 모골이 송연하도록 비명을 질러 대며 온 사방으로 꼬리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지호가 있는 높이까지 닿지는 않는다. 승환도 몇 차례 피부를 긁히지만, 치명상은 아니다. 갈라진 등에서 근육 사이로 손을 파 넣어 뼈를 우두둑 들어 올리자 뱀의 숨이 뚝 멎는다. 끝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괴물 간의 싸움에 지호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보통 상황이었다면 이 다음 차례는 지호의 등이었겠지만, 다행히 아이는 곧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뻗었다.
“받아 줄게, 작은 헌터!”
지호는 순순히 환풍구에서 다리를 뺐다. 몸이 낙엽처럼 떨어졌다.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운 나쁘게도 쉴 새가 없었다. 복도 쪽에서 다른 괴물 소리가 들렸다. 아까 달아난 놈일 확률이 높다. 다른 놈을 더 데려오지 않아야 하는데.
승환은 다시 지호를 업었다. 다리를 잡아 주겠다는 말을 극구 거부한 지호는 괴물 등짝을 뚫느라 피투성이가 된 승환의 팔에서 눈을 떼려고 애쓰며 그의 등에 찰싹 들러붙었다. 벽에 쩍 금이 간다. 지호의 왼팔에 도로 힘이 들어갔다. 승환이 바닥을 박차기 무섭게 그들이 있던 자리로 육중한 일격이 내리꽂혔다. 바닥이 뚫려 아래층이 훤해진다.
뱀 괴물이 총알처럼 달려들면 승환이 놈을 쳐 내거나 차 내고, 가끔은 역으로 급소를 공격해 가며 부딪쳤다. 그 과정에서 지호는 승환의 두 번째 꼬리처럼 나부꼈다. 그를 고려할 상황이 아니겠지만, 방향이 턱 턱 전환될 때마다 같이 숨이 막혔다. 오른팔에 느껴지는 통증은 덤이었다.
일격마다 건물을 파괴한다. 효율적인 철거범들이 부닥치며 서로를 공격할 때마다 지호는 필사적으로 붙어 있기 위해 애썼다. 간신히 버티는 모습이 아슬아슬할 정도다. 승환이 몸을 뒤집어 꼬리로 뱀 목을 휘감아 바닥에 내리꽂을 때 지호 역시 같이 패대기쳐지는 기분이었다.
바닥에 처박힌 괴물 머리를 짓밟아 수박처럼 깨트린 뒤에야 전투가 끝났다. 승환의 몸에서 열이 오른다. 숨이 거칠었다.
아이는 털푸덕 주저앉아 지호의 다리를 휙 풀어냈다. 엉겁결에 그의 꼬리 위로 주르륵 미끄러진 지호는 아이의 목이 시뻘건 것을 보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일어났다.
“아니, 그, 고의는 아니야.”
“알아. 준우 형은 어떻게 됐을까?”
이쪽 싸우기 바빠 다른 쪽 소리까지 들을 여력이 없었다. 감지 파장이 뻗어 오지 않는 걸 보니 힘 돌릴 상황이 아니거나 정리됐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도준우의 힘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승환이 마주했던 뱀 괴물들은 어느 정도 물리력 위주의 싸움을 하면서 양념으로 이형 에너지를 섞어 쓰는 것 같았는데, 헌터들이 선보이는 고난도의 에너지 응용은 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방법을 몰라 못 하는 것이지 안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밖에서 구슬을 많이 밟았었나 봐.”
“여왕으로 나타났던 뱀 말이지?”
“구슬을 잔뜩 밟고 나면 항상 오래 안 있어. 아마 그 연기가 싫은 거 같아. 나도 사람일 때 담배 연기 싫어했는데.”
승환은 아무렇지 않게 옛날이야기를 하며 깨진 창밖을 살폈다. 고요하다. 근처에서 싸우지 않고 건물을 벗어났을 수도 있었다.
괴물이 아니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는 승환을 보며 위로 뻗은 지호는 오른손의 부재를 안타깝게 여겼다. 준우가 무슨 짓을 해 놨는지 몰라도 통증은 본래 느껴져야 할 것에 비하면 없는 수준인데, 문득문득 거기에 손이 있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진 탓이었다. 이런 걸 두고 환상통이라고 하나. 헌터들에게는 흔한 증상이라고 들었다. 직접 겪게 될 줄은 몰랐지만.
“사람일 때는 어땠어?”
지호는 대화를 이어 가려고 승환이 던져둔 단서를 덥석 물었다. 꼬리가 느릿하게 흔들리다 멈추는 것이 보였다. 반가운 화제가 아니었을까.
“형이 있었어. 우리 형아가 제일 멋있었는데. 솔직히 준우 형보다 더 멋있었어.”
지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마냥 해맑게 옛 기억을 떠올리는 승환에게 할 질문은 아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물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형 이름은 승찬이지?”
승환의 꼬리가 우뚝 멈추었다.
아이의 얼굴에 서리가 내려앉는다. 서늘해지는 얼굴. 화가 났다기보다는 차분해진 모양새다. 승환은 지호의 빈 오른손을 물끄러미 응시하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잊어버렸어.”
차라리 부정했다면 아닌가 싶었을 것이다.
승찬에겐 뭐라고 해야 할까. 동생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괴물이 된 실종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승찬이 뭐라고 이야기했었지? 균열에 들어온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그의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너무 많은 일이 있기는 했다.
균열 안정기는 지났을까.
김 반장을 비롯해 특수반 사람들은? 이주원 그 새끼는 무사할까. 잡는 대로 이주리 헌터에게 넘겨 버릴 것이다. 두 번은 제멋대로 이동해 다니지 못하게 족쇄라도 달아 놔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놈이 지호에게 수작을 부려 약물 과다 투여만 하지 않았어도 금속 먹는 괴물과 싸우다 탈진하지는 않았을 테고, 웬 이상한 괴물에게 오른손을 뜯어 먹힐 일도 없었을 텐데.
이미 일어난 일을 곱씹어 봐야 돌아오는 건 분노뿐이다. 지호가 멍하니 한쪽을 내려다보는 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승환이 재주 없는 말재간으로 어떻게든 자기 이야기를 꺼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음, 내가 여기로 넘어왔을 때 형이 죽었어. 천장이 무너졌는걸. 형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그쪽에 많았어. 나는 작아서 숨어 있을 수 있었어. 배가 좀 고팠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괜찮아졌어.”
“어디서 그런 일이 일어났어?”
“형이랑 영화 보러. 작은 헌터랑 말하니까 조금 기억난다. 말 많이 안 하면 잊어버려. 혼자 있으면 잊어버리게 돼.”
지호와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어눌한 발음에 서툰 단어들로 말을 이었던 승환이다. 대화란 할 상대가 있어야만 할 수 있다. 준우가 그의 주인을 두고 승환을 자주 찾아갔을 리도 없고, 간혹 길 잃어 균열로 넘어갔던 이들 중에서도 소수가 승환과 접촉했을 것이다.
승찬이 동생을 잃은 것이 언제라고 했더라. 어떤 균열은 시간 왜곡을 일으키지만, 어떤 균열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시간 왜곡을 일으켰던 균열은 여태 나타났던 전례가 없던 곳이라고도 하지 않았던가.
지호는 승환이 구슬 비 속에서 홀로 앉아 어둠을 응시하고 있던 시간이 길지 않기를 바랐다. 승찬의 생각처럼, 차라리 동생이 죽었기를 바라는 쪽이 덜 불행한 형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관이 무너졌었어?”
“내가 지키던 사람들 봤어? 거기 다 같이 있었어. 준우 형이 오기까지 쭉.”
실종자들이 모여 있던 영화관 건물이 생각났다. 승찬의 집은 거기서 걸어올 수 있는 거리였다. 아이 걸음으로도 충분히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방해하는 것들이 좀 많기는 하지만.
“백 밤 자고 나니까 튼튼해졌어. 거기 있던 아저씨 아줌마들 다 환이가 지켜 줄 수 있었어. 그러다가 뱀이 한 마리 왔었는데, 남아 있던 사람 중에 절반이 죽었어. 그 이후로 준우 형이 와서, 사람들 집 찾아 줬어. 다들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승환은 더듬거리며 기억을 되짚었다. 옛 이야기를 타인에게 할 일이 없었는지 이야기가 중구난방이다. 어쩌면 아이 시각에서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기억에서 지워 냈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편이 나을 수도 있고.
지호의 착잡한 표정을 본 승환의 꼬리가 다시 흔들렸다. 기분이 좀 나아진 모양이다. 동물 취급해서 좀 미안하지만, 감정을 읽기 쉽다는 건 옆에 있는 사람으로선 고마운 일이다.
“내가 뱀 잡을 수 있다고 했어. 나만 가능한 방법이 있는데, 대신 혼자 있어야 한다고도 했어. 무서웠는데, 사람들 죽어서 다들 우는 것보다는 안 무서웠어. 그리고 형 죽은 데 계속 있는 게 더 무서웠으니까.”
“형이 죽었어? 무너진 쪽 반대편에 있었다고 했잖아.”
“아무 소리도 안 났는걸. 사람들 소리 나야 하잖아. 우리 쪽에서는 계속 구조 요청하고 그랬는데 저쪽은 아니었어.”
지호는 상황을 유추했다. 영화관 시설이 무너져 갇힌 건 승환을 비롯한 실종자들 쪽이었을 것이다. 승찬이 있던 쪽은 외부와 통하는 길이 열려 있었겠지. 실내에 괴물이 나타났을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갇힌 사람들은 뒷전이고 나 살자고 뛰어나가는 사람들의 심경이 이해될 수밖에 없으니.
지호는 그가 추론한 것들을 입 밖에 내어놓는 대신 습관적으로 오른팔을 들었다. 손목 아래는 뭉툭하게 비었다. 쓴웃음을 지은 그는 자연스럽게 왼손을 들어 아이의 어깨를 토닥였다.
“형도 살아 있을 수도 있잖아. 환이가 이렇게 튼튼해진 것처럼.”
“형이 살아 있었으면 구하러 왔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