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68화 (169/260)

168화

준우는 사람처럼 웃었다. 사람은 다면적이라지만, 이자의 경우 정도가 심했다. 어쩌면 보현이 가진 옛사랑의 기억 같은 것도 잘 연기한 모습일지 모르겠다. 아무튼, 지호에겐 짜증 나기만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

“준우 형. 좀 있으면 비 그쳐.”

옆에서 흔들리는 꼬리가 정신 사납다. 지호는 자신이 날 선 상태라는 사실을 그제야 인지했다. 전에는 이렇게 공격적인 상태로 둘을 마주하지 않았다. 도준우는 그의 발치에서 기분 좋은 듯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괴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릉그릉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났다.

“알려 줘서 고맙다. 우린 괜찮지만, 이 녀석한텐 안전하지 않으니 완전히 그치면 그때 움직이자.”

“제가 왜 협조할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러지 않으면 퀸 패러사이트의 숙주들이 녀석을 나누어 먹을 예정이야. 주인이 내 기억을 읽었고, 그 녀석이 균열을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

“자기 손으로 언니를 위험에 빠트려 놓고 지금!”

“내게 화를 내는 건 분풀이 이상은 안 될 텐데. 임보현이 위험해져도 상관없나?”

지호의 눈에 이글대던 분노는 오래 타오르지 못했다. 지호는 더 이상 도준우를 괴물이니 뭐니 하며 배척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자기부터 사람이 아닌 몸이니 당연했다.

“그 전에 하나 물어볼게요. 헌터들이 쓰는 힘이 괴물과 다르지 않다는 거 알아요?”

“왜 모르겠나.”

“그럼 헌터들이 결국 괴물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은요? 당신이 지키려고 하는 언니 역시도 마찬가지로요.”

살랑살랑 흔들리던 승환의 꼬리가 뚝 멈추었다. 지호는 녀석이 지나치게 호기심 넘치는 얼굴로 도준우를 응시하는 것을 보았다. 둘의 시선을 받은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다를 바 없다니? 너희는 인간이고 우리는 괴물이지. 그 명확한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다니 과연 햇병아리구나.”

“죽었다 살아나는 것부터 이상한데, 그 방식이 그렇잖아요. 저도 괴물에게 먹혀 놈의 몸을 차지한 거면 당신과 다를 바가 없는데.”

뜻밖의 물음이었는지 도준우의 고개가 기우뚱 움직였다. 여전히 쓰고 있는 선글라스 때문에 시선의 이동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지호는 어쩐지 그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너 자신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의외로 바로 대답이 튀어 나가지 않았다.

지호는 여전히 자신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랬다. 사람답게 살려는 노력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든다는 걸 지호는 진작 알고 있었다.

설령 그의 근본이 괴물에 있다 해도 지호는 여전히 자신을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려고 발버둥 쳐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겠지.

머릿속에서 기묘한 결론이 내려졌다. 준우는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어깨만 으쓱이며 그의 친구인지 애완동물인지 모를 옆자리 괴물에게 지시했다.

“근방에 먹을 만한 것이 있으면 좀 챙겨 와라. 아까 주운 물병 같은 거 있으면 더 좋고. 안 보이면 돌아와. 위험한 싸움 하지 말고.”

“준우 형 잔소리 많다.”

“안 가면 더 할 수도 있어.”

승환은 툴툴거리며 구슬 비 너머로 사라졌다. 빗발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았다. 가진 소지품이 없는 걸 보니 싸우다 잃어버린 모양이다. 왼손으로 주머니를 뒤지다 포기한 지호는 밀려오는 통증을 억누르려고 치유 에너지에 힘을 집중했다. 물론 집중할 것도 얼마 남지 않았었지만.

“쟨 왜 데려왔어요? 얘가 없으면 다른 실종자들이 위험할 거라고 하더니.”

“잊었나 본데, 나는 사실상 장님이란 말이야. 운신의 제한이 있다고. 승환이 도움 없이 모르는 길을 멀리 다니는 건 좀 어렵거든. 지금 호위대 놈들이 여길 노리고 있으니 농장 쪽은 좀 내버려 둬도 돼.”

“퀸 패러사이트가 이토록 제멋대로인 숙주를 먹지도 않고 놔둘 만큼 자비로운 줄 몰랐네요.”

“아무렴. 보다시피 말대답이 특긴데 옆에 두면 심심하진 않겠지.”

준우는 시큰둥하게 답하며 승환이 달려간 방향을 응시하듯 고개를 돌렸다. 자조적인 대답이었다. 퀸 패러사이트가 공격한 부위에선 벌써 피가 멎어 상처가 아무는 것이 보였다.

다른 이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지호는 가진 모든 힘을 치유 에너지로 변환해 손에 쏟아부었다. 다행히 견딜 만한 정도로 통증이 줄었다. 손목 아래가 허전했다. 이상하게도 손가락이 움직이는 듯한 감각은 느껴진다. 분명 손이 없는데도 그랬다.

“졸도하지 않고 버티는 거 보니 신체 계열 같은데, 손을 복구할 수는 있을 거다. 균열에서 하면 멀쩡한 꼴은 아니겠지만.”

“밖이랑 뭐가 다른데요?”

“저 꼬마가 괴물에게 먹혔다 뚫고 나올 만큼 뚜렷한 의지를 가진 애처럼 보이냐? 여기는 멀쩡한 사람도 괴물로 만드는 곳이야. 하물며 괴물인가 아닌가 헷갈리는 놈은 더 위험하지. 재생은 밖에서 시도해라. 그러는 편이 미관상 좋으니까.”

“재생이라니.”

“새삼스럽게 놀라나. 머리만 아니면 어떻게든 살릴 수는 있어. 그만한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준우가 입을 다물자 구슬 비 내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지호는 착잡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제가 균열을 통과할 방법을 알았다면 언니를 노릴 필요가 없었겠죠? 그러니까, 당신이 저를 잡아 온 이유는 언니를 보호하기 위해서인 거고. 제가 그걸 알고 있다면 언니가 아니라 저만 죽으면 되니까. 그래서 그것부터 확인했죠?”

도준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호는 침묵을 제멋대로 해석했다. 지호에게 준우는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 만한 냉혈한이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 외에 다른 이들은 하찮게 여기는 것.

최근에도 겪은 일이다. 사실 너무 많은 이들이 그런 행동을 했다.

“비가 그치면 여왕의 호위대가 움직일 거다. 놈들은 정신계 공격에 취약해. 그래야만 여왕이 놈들의 몸을 통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인데, 덕분에 모두가 잘 아는 약점이 하나 생긴 셈이지.”

지호는 경악을 숨기지 못했다.

“여왕이 모습을 드러낸다고요?”

“그래. 본래의 여왕은 너무 거대한 존재라 이쪽으로는 발 한 번 내딛지 못하는 꼴이지만, 아무튼 다른 방식으로 간섭할 수는 있다. 여왕의 호위대가 까다로운 건 놈들 자체가 강해서가 아니야. 그 뒤에 여왕이 있어서지. 보아하니 아직 포식자로 분류되는 것들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을 테지? 여왕이 깃들어 포식자들과 대등하거나 그것들을 제압할 만한 힘을 쓸 수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드리운 존재 때문에 미치거나 죽어 버리지 않을 괴물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아.”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이상한 추측이 들었다. 여왕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도훈이 그에게 보여 주었던 환상이 떠올랐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그 압박감까지도.

“당신을 비롯한 여러 괴물 말로는 내가 여왕의 호위대를 이겨 내고 사람 모양을 갖춘 거 같은데, 그럼 여왕이 저를 이용할 수도 있나요? 저를 통해 우리 사는 쪽으로 드러난다든가 뭐 그런 식으로.”

“여태 그런 일이 있었나?”

“있었을 리가요.”

준우는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침묵했다. 구슬 비 쏟아지는 소리가 요란하여 다른 소리를 듣기 어려웠다. 더더욱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주변 파악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 지호를 빤히 보던 준우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 경우 없을 거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 내 주인과 여왕의 힘이 드러나는 방식은 또 다를 테니까. 내가 알려 줄 수 있는 선이 아니란 뜻이야. 호위대 놈들을 먹는다고 해도 그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당신을 통해서도 퀸 패러사이트가 드러날 수 있어요?”

“그걸 원한다면 그렇지. 하지만 내 주인은 그런 식으로는 움직이지 않아. 싸우는 것은 그분의 몫이 아니지.”

매번 준우는 지호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한다. 지호는 기묘한 기분이 되어 그를 노려보았다. 호의라고 하기도 어렵고 친절하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도준우는 나름대로 지호를 배려하는 것 같았다. 더는 들리는 물음이 없자 그제야 그의 고개가 이쪽으로 돌아왔다.

“이제 궁금한 건 다 물어봤나?”

“아뇨. 질문은 산더미보다 더 많은데요.”

“일단 묻어 둬라. 비가 거의 그쳤어. 움직여야지.”

“어디로 가서 뭘 하려는 거죠?”

지호의 불만 가득한 질문에 도준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깔고 앉고 있던 건 머리 없는 괴물 시신이었다.

“여왕의 호위대를 사냥할 거다.”

너무 터무니없는 대답이 돌아와 말문이 막혔다. 지호는 눈만 깜빡이다 되물었다.

“뭘 해요?”

“네가 놈들이 타고 다니는 것들을 몇 마리 치웠더군. 아주 잘했다. 순간 속도는 빨라도 지구력이 부족한 놈들이라 체력 좋고 머리 나쁜 놈들을 한둘씩 달고 다니는데, 무식하게 힘만 세고 가죽도 두꺼운 놈들이라 상대하기 까다로웠거든.”

“잠깐. 잠깐만요. 여왕이 나타나고 그럼 어쩌라고요. 아니 그것보다 그놈들 엄청 세잖아요.”

“이 기상 현상을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이 흔치 않아. 놈들의 움직임이 둔해졌을 때 잡아야지. 천재일우의 기회다.”

준우가 깔고 있던 놈의 몸이 익숙했다. 지호가 잡았던 키클롭스들과 흡사했으니 당연히 알아볼 수밖에. 지호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이 외눈박이 거인들을 타고 다닌다고요? 이동 수단이었어요?”

“팔이나 다리, 가끔 목 같은 곳에 꼬리를 휘감고 돌아다니지. 놈들이 데리고 다니는 괴물 중에 진짜 커다란 대형종이 하나 있었는데 그놈이 어디서 당했는지 보이지 않더군. 잘된 일이지.”

지호가 부딪쳤고 알파 팀이 사냥한 놈일 것이다. 알고서 하는 말일까? 지호는 동요를 들키지 않으려고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에 말했다.

“지구력이 좋지 않고 순간 속도가 빠르다고요. 그 밖에 놈들에 관해 아는 건요?”

“꾸준히 사냥을 지속해 온 놈들이 아니라면 너와 조건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사실 말이냐?”

지호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처음부터 여왕의 호위대니 뭐니 하는 소릴 지껄였던 자다. 여전히 그들과 지호를 비슷하게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 보현 대신 지호를 찢어 삼키는 일에 동의하고 그를 데려왔었겠지.

내리던 비가 천천히 그쳤다. 시야를 가리던 구슬 비도 멈추고 주변에 고요가 찾아온다. 구슬들을 헤치고 이쪽으로 돌아오는 승환의 모습도 보였다. 뭔가를 끌고 오는 모양인지 그가 지나온 뒤편 구슬들이 비눗방울처럼 터져 나갔다.

“일부러 이런 이상한 비가 내린 곳을 골랐어요?”

“적의 약점을 노리는 건 상식이니까.”

“아니, 잠깐만요. 저도 호위대랑 기본 능력 차이가 별로 없잖아요. 저 비 맞으면 움직일 수 없는 건 똑같아요. 제가 놈들을 잡는 데 합류하는 게 과연 합리적인 선택일까요?”

준우는 무슨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놈들을 사냥할 거라곤 했지만, 같이 하자곤 하지 않았어. 너는 미끼니까 특별히 뭘 하거나 할 필요도 없고.”

“뭐라고요?”

“너를 이용할 거라고 했다. 그걸 협조 얻어 가며 도와달라 요구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때맞춰 도착한 승환이 끌고 온 괴물 시신을 입구에 내려놓으며 머리를 털었다. 작은 구슬 몇 개가 툭툭 바닥에 떨어진다. 준우의 설명 때문에 그것이 기생충을 담고 있는 구슬이란 인식이 박히자 소름이 오소소 돋아 저도 모르게 물러서게 됐다. 그러면서도 지호는 힘 있게 응수했다.

“제가 그딴 일에 협조할 것 같아요?”

“얌전히 말로 구슬릴 때 따라오는 게 좋아. 신체 항상성이 무너진 각성자가 균열에서 힘을 쓸 때 어떻게 되는지 모르나 보지?”

모를 턱이 없었다. 보현이 무너지던 때가 생각난다.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완벽해 보였던 보호자가 약해 보이던 첫 번째 순간이었다.

“치료까지 해 줄 필요도 없었을 텐데 쓸데없는 짓을 하셨네요. 제가 손을 재생하면 당신 요구대로 움직일 필요 없어요.”

“할 수 있으면 해보든가.”

둘 사이에 불꽃이 튀자 가져온 괴물을 나눠 먹을 생각에 신나 있던 승환의 꼬리가 축 처졌다. 치유력을 계속 불어 넣으면 손이 재생되나? 방법을 몰라 시도를 하기 어렵다. 괴물들의 공간으로 넘어간 게 아니라면 전파가 통할 테니 어떻게든 전자기기를 손에 넣어 지윤에게 연락을 우선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치유계 능력 위주로 훈련한 헌터의 지식은 지호에 비할 수 없을 테니.

말은 호기롭게 뱉었으나 지호가 그 손을 치료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자 준우는 코웃음 치며 승환이 던지는 살점을 받았다.

“관둬. 내가 너를 죽이겠다고 말한 것도 아니잖냐. 얌전히 이용당하고 네 보호자에게 돌아가. 그편이 너희에게 이로우니까.”

“누가 정하는 이로움이죠?”

“삶과 죽음 중에는 삶이 이로울 텐데?”

“닥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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