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19. 괴물들
아스라이 멀어지던 감이 예리하게 살아났다. 까무러칠 뻔한 지호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먹먹한 감각 너머로 느껴지는 통증. 그르르, 하고 우는 낮은 울음소리와 급한 숨소리. 천둥 같은 심장 소리 같은 것들이 귀를 울렸다. 마지막 것은 지호 소리다. 몸이 빠르게 식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오른팔에 감각이 없다. 몸을 짓누르는 것 무게가 낯설었다.
가슴팍을 밟고 지나가는 짐승의 발.
뭔가 냄새를 맡는다. 아까부터 지호 주변을 배회하던 놈이다. 전투로 지친 몸에서 괴물을 느끼는 감각만이 유일하게 날카롭다.
부근에 아무도 없다. 누구의 감각도 잡히지 않는다. 지호 위를 배회하는 놈조차 잡히질 않았다. 지호는 감각에 혼란을 느꼈다. 어딘가 고장 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눈을 뜨고 싶었으나 눈꺼풀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라도 된 양 들려 올라가질 않는다. 다시금 들리는 괴물의 울음소리.
산 채로 팔이 씹힌다. 감각 무딘 몸이 들썩이며 피가 튀었다. 오른팔이 타는 것 같다. 움직여 팔만 휘두르면 쳐 낼 수 있는 약한 괴물인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니.
뜯어 먹힌다. 팔을 문 채 몇 번이고 물어뜯더니 우둑, 하고 불길한 소리가 나며 격통이 밀려왔다. 이대로 죽나. 이렇게 죽는구나.
김 반장과 이주원 각성자는 살아남았을까.
쩝쩝거리는 소리가 지나치게 가까이서 들렸다. 뼈를 갉는, 혹은 살점 뜯는 소리까지도. 그나마 다행인 건 한 번 특정 부위를 떼어 낸 뒤에는 그걸 먹느라 지호에게 도로 달려들거나 하지 않고 있단 점이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도 될까.
죽음이 잠시 유예되었을 뿐. 지호의 운명은 결국 여기서 이름도 생김새도 모르는 괴물의 먹이가 되어 죽는 것뿐인 모양이다. 한 번은 죽어 보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특수반 사람들이 김 반장님처럼 전투계에 적합하지 않아 뒷일을 담당하게 된 거라면 전투 지원은 불가능해…….’
몸이 식어 가며 추위가 느껴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모양이다. 이대로 죽어 저 괴물에게 먹히고 나면 준우처럼 돌아올 수 있게 될까? 아니면 이게 끝일까.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걸까.
죽었다 되살아나 두 번째 삶을 사는 줄 알았더니 사실은 괴물이었는데. 세 번째 삶이 있다 한들 기쁠까? 어차피 괴물로 살 텐데.
퐁.
뭔가가 이마를 툭 때린다. 비눗방울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였다. 무딘 감각이라 상황 파악이 느렸다. 이마뿐 아니라 몸 곳곳, 아니 사방 천지로 뭔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 비가 내리는 것보다는 묵직한 소리였다. 몸에 닿아 터지는 것들도 많았으나 그러지 않는 것이 훨씬 많다. 몸을 짓누르는 크고 작은 구슬들. 연기가 콧속으로 들어오자 가뜩이나 몽롱하던 감각이 더더욱 멀어진다. 현실과 환상이 동시에 지호를 향해 해일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동시에 머리를 쪼개는 듯한 두통이 밀려와 정신을 차리고 있을 수 있었다. 멀미처럼 속이 울렁거리면서 머리 사방이 깨질 것처럼 아프다.
지호의 팔을 뜯어 먹던 괴물은 진작 쓰러진 모양이었다. 그의 감각에 감지되지도, 지호가 가진 힘을 파악할 만큼 강한 놈도 아니었으니 당연할 터.
몸 위로 구슬들이 쌓이다 굴러떨어지고 또 쌓이기를 반복한다. 아는 현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일반 균열이라 특정 현상이 일어나는 건 이미 예측 범위였는데, 진짜 비가 아니라 정신계 능력 없는 괴물들을 마비시키는 구슬 비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어떨지 모르겠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눈앞으로 환상이 뛰어든다. 뭔가 보일 리 없으니 그것이 환상이란 걸 알면서도 기겁하며 놀래기를 수차례.
여전히 몸이 움직이지 않는 와중에 누군가 구슬들을 옆으로 쓸어 내며 지호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특수반 사람들 정도나 이 속에서 움직일 수 있을 텐데.
뭔가가 지호를 들어 올렸다. 이족 보행하는 종류의 괴물이거나 헌터. 둘 중 하나일 터. 후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 까닭은 단순했다.
그를 소중한 것처럼 얌전히 안아 든 채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괴물이 안전한 장소로 그를 데려가 마저 먹겠다는 생각을 할 거라면 굳이 이렇게 들고 나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품에 달랑 들려 가면서 지호는 생각했다. 특수반 사람일 확률이 제일 높을 것 같은데.
괴물이 지호 바로 옆에 있었으니 주원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김 반장일까? 여전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기에, 만일 그의 임시 파트너가 맞다면 머릿속을 뒤지는 중이라고 해도 알아채지 못할 상황이니 뭔가 알아내고 싶다면 지금이 기회일지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지호에게 숨기는 것이 있듯, 지호 역시 그들에게 숨기는 것이 있으니.
그런데 머리 위에서 들린 음성은 전혀 생경한 자의 것이었다.
“준우 형이 알려 줬다. 너 여기 있다고.”
구슬 비가 내릴 때부터 짐작했어야 했을까.
지호를 안은 품이 서늘하다. 살갗보다는 뻣뻣한 가죽. 짐승 같은 냄새가 났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몸을 재차 고쳐 안은 그는 혀를 찼다.
“열심히 왔어. 근데 늦었네. 그래도 손 하나라 다행이다. 머리가 없었으면 슬펐을 텐데.”
끔찍한 발언을 명랑하게 하는 걸 보니 다른 사람일 수 없었다. 여전히 몸이 차다. 마취제를 맞은 것처럼 몽롱한 정신 저편으로 손목 아래 감각이 뜨끔뜨끔 지호를 찔렀다. 전신이 마비된 것과 다름없는 상태인데도 이런데, 멀쩡히 뜯기진 않았을 것이다.
균열에서 다친 상처는 잘 낫지 않는데.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혓바닥이 뻣뻣하다. 턱도 벌어지지 않고 나오는 것은 미약한 신음뿐. 그 소리를 들은 환은 중얼거리며 지호를 달랬다.
“괜찮아. 운 좋다. 피 계속 나게 하는 괴물도 있어. 저놈은 먹이를 살려 두고 조금씩 먹는 놈이라 피 안 나.”
과연 괜찮은 거로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손이 떨어지긴 한 것 같다. 하필 오른손이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아니,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상태이기는 할까.
감각이 손에만 집중되어 다른 곳도 마찬가지로 너덜너덜한데 모르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이 발치를 적신다. 환의 품에 들려 어딘가로 옮겨지면서도 내리는 구슬 비가 자꾸만 몸에 부딪혀 깨지는 덕분에 모르핀이라도 맞은 것처럼 몽롱하고 붕 뜬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을까. 건물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특수반 사람들 외에는 이 비 맞으면 큰일 날 텐데.
꼬리를 물던 생각이 끊겼다. 주변 건물 안으로 들어왔는지 갑자기 빗소리가 잦아들고 고요가 밀려왔다. 참을 수 없는 고요다. 오로지 발소리만 들렸다.
차박, 차박. 신발 소리가 아니라 살이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는 듯한 소리. 모든 감각이 사라져 청각에만 집중된 신경이 점점 예민해진다. 일정한 환의 심장 소리와 길지 않은 호흡.
그리고 저편에서 길게 내쉬는 한숨까지.
“고맙다. 오래는 아니어도 잠시 정도는 쉴 수 있겠어.”
당장에라도 눈을 떠 놈에게 삿대질하고 싶은 마음과 움직이지 않는 몸이 충돌했다. 지호는 자기를 바닥에 내려놓는 환의 행동을 민감하게 느끼며 다시 청각에 온 신경을 쏟았다. 아는 목소리다. 여기 있는 것이 이상하면서도 이상치 않은 목소리이기도 했다. 여기 오기 전 놈의 이름을 언급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뱀들이 여기 온 건 이걸 먹기 위해서일까?”
“우리야 알 수 없지. 하지만 놈들이 뜻대로 활보하게 두고 싶지도 않아. 흠, 놈들과 충돌했나?”
“다른 괴물하고 싸웠어. 쓰러진 거 먹으려고 한 거 쫓아냈지.”
“잘했다. 정신이 들 때까지만 좀 부탁해.”
꼬리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경쾌한 소리다. 묘하게 친근감 있는 사이 같았다. 앳된 목소리가 노래 부르는 것처럼 흥얼거리며 답했다.
“다시 온다고 했었어. 작은 헌터가.”
“균열에 들어온다고 했다고?”
“나 보러 온다고.”
“너를 만난 뒤 그들의 세계로 다시 돌아갔었지. 근처에 열린 균열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룸피가 감시하던 그 특이한 문 같은 것이 또 생긴 건가? 인간들의 기술이 그렇게까지 발전했고?”
흥미롭다는 어조가 지호를 바짝 긴장시켰다.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지호는 더 이상 도준우에게 인간성을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되면 반대가 되었지.
보현에게 균열 넘어 다니는 법을 배우지 않아 정말로 다행이다. 마지막까지 가르쳐 주려고 했었던 걸 생각하니 눈물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그걸 배웠으면 정말로 큰일이 날 뻔했다. 재앙의 시발점이 되어 인류 멸망의 단초를 제공할 뻔하지 않았나.
퀸 패러사이트의 호위대는 무덤덤하게 지호의 오른팔을 잡았다. 이제 시작인가. 세뇌당하는 건가. 온갖 불길한 추측으로 떨고 있는데 팔 잡힌 부분부터 천천히 온기가 돌아왔다.
지호는 그것이 어떤 힘인지 알고 있다. 치유 능력이었다.
“시간이 얼마 없어. 천천히 회복하는 쪽이 무리 가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지.”
몸에 천천히 감각이 돌아온다. 동시에 오른팔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지호는 비명부터 냅다 지르며 몸을 웅크렸다. 눈앞이 허옇게 변했다. 도준우가 잡은 손은 무정물처럼 단단히 지호의 오른팔을 잡은 상태다. 그것만으로 고통스러웠다. 건드리는 것만으로 이 지경일 줄은.
“정신이 좀 드나?”
대답할 수 있게 되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다. 눈물 콧물 다 빼고 목이 쉬도록 소리친 후의 일이었다. 신체 계열 헌터라 튼튼해 다행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쇳소리가 댓 번은 났을 것이다. 지호는 신음하며 준우가 잡은 팔로 눈을 돌렸다. 짐작은 했으나 끔찍한 꼴이었다.
“왜, 어떻게, 아니 왜…….”
“묻고 싶은 게 많은 건 안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아서.”
몸에 감각이 돌아오는 걸 환영하지 않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지호는 고통으로 몸을 떨면서도 그를 올려다보았다. 멀쩡한 몰골은 아니었다.
“왜 다쳤어요?”
“명령에 불복해서.”
“퀸 패러사이트의?”
“여왕 때문에 내가 곁을 떠나지 않기를 바랐어. 우리 계획을 위한 일이라고 설득했지만, 화풀이하더군.”
팔을 타고 흐른 피가 바닥에 고여 있었다. 그는 지호를 약간 회복시킨 다음 곧 자가 회복으로 힘을 돌렸다. 어디서 주웠는지 페트병에 든 물을 건넨 환은 기분이 좋아 보인다. 꼬리가 좌우로 붕붕 흔들리고 있었다. 지호는 물병을 받으려고 손을 뻗었다가 멈칫했다. 오른쪽 손목 아래는 너덜거려 손이라 부를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쪽은 마비시켜 놨다. 그러지 않으면 대화할 수가 없을 테니. 돌아가거든 치료부터 받아.”
“돌아갈 수나 있어요?”
“아직도 균열 넘어가는 법을 익히지 못했나? 임보현에게 배웠을 줄 알았는데.”
“일부러 안 배웠어요. 괴물들한테 정신을 지배당하면 어떻게 해요. 그것들이 제 머릴 뒤지면 저는 반항할 수도 없는데.”
이미 다른 것에게 지배당하는 개체가 이쪽을 빤히 쳐다보았다. 지호는 말실수했나 싶어 말을 멈추긴 했으나 뱉은 말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뜻밖에도, 도준우는 순순히 동의를 표했다.
“맞는 말이야. 인류의 관점에서 볼 때는 정말 훌륭한 행동이군. 양 솔 박사가 늘 하던 말이 생각나는데. 이게 그 숭고한 희생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그런 그럴싸한 거 아니에요. 그냥 조심하는 건 나쁘지 않으니까.”
숨이 가빴다. 길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지호는 왼손으로 물병을 받아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미지근한 물이지만 가뭄 날 논바닥 같던 목에는 단비 같았다.
“왜 저를 도와줬어요?”
“너를 이용하려고.”
“그렇게 솔직하게 말한다고 순순히 이용당할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을걸. 우리는 어떤 한 사람에게 약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니까.”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화가 날 정도의 솔직함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언니를 이용할 생각을 하죠?”
“말했잖아. 걜 이용하는 게 아니야. 너를 이용하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