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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62화 (163/260)

162화

놈들처럼 소리치며 시선을 모으기는 어렵다. 대신 지호는 커다란 간판 하나를 떨어뜨려 요란한 소리를 냈다. 속이 비어 있었는지 철판 특유의 울림이 주변에 퍼지며 키클롭스들이 하나뿐인 눈알을 부라렸다. 의미를 이해해서 분노하는 걸까? 죽인 줄 알았던 놈이 살아 있어서 화가 난 걸까?

괴성과 함께 놈들이 마구잡이로 달려왔다. 신장 차이 때문에 가까워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놈들의 시선을 끌기 무섭게 아래로 내려섰다. 그들이 잡으려 하던 날파리가 골목 중 하나로 모습을 감춘 것이 분명하자 놈들은 사방의 건물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알파 팀으로부터 신호가 온다. 지이잉,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진동.

[본부 알파 팀 구조 신호 수신. 코드 레드 투가 경계 너머로 넘어간 것이 확인되었음.]

[검암 캠프 지원이 필요하여 해당 지역 지원 불가. 전투 지역 이탈하십시오.]

두 차례에 걸쳐 메시지가 온다. 도훈이 없다는 걸 신호를 확인해 알고 있으면서도 오지 않는구나. 진짜 그쪽 지역이 위험해서인지, 아니면 지호가 미움을 산 탓에 죽어도 된다고 내버려 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후자라면 태양에게 더더욱 미안한 일이다. 지호와 함께 있다는 이유로 위험에 처한 것이니.

놈들이 흩어졌다. 소리로 얼추 알 수 있었다. 제법 울창하게 자란 가로수에 딱 붙어 몸을 숨겼다. 한때 이런 가로수들을 시기에 따라 가지치기하던 시절도 있었다던데, 그런 사소한 업무를 위해 지금 남은 인력들의 시간과 노력을 쓰기엔 그들의 수가 너무 적고 일이 많다고 했다. 지호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꽤 높은 위치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놈들을 관찰할 수 있었으니.

키클롭스 두 마리가 지나가고, 키 큰 놈은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한 놈만이 두리번거리며 건물을 들여다본다. 감지 파장을 넓게 펴자 놈들의 위치가 좀 더 뚜렷하게 확인됐다. 두 놈이 조금 더 멀어지기를 기다리며 지호는 다시 에너지를 모았다.

놈들은 완전 신체 계열 능력만 있는 건지, 감지 파장에 닿아도 아무 반응이 없고 옆에서 상당한 농도의 이형 에너지가 뭉쳐져도 가만히 있었다. 덕분에 두꺼운 창을 움켜쥔 지호는 마지막 놈이 근처를 지나가길 기다리다가 휙, 도약했다.

극도로 집중한 탓에 주변이 약간 느릿하게 보인다. 뻗은 창이 괴물의 목을 꿰뚫었다. 그대로 팔에 힘을 주어 당기자 시퍼런 피가 쏟아지며 괴물이 무릎을 꿇었다. 전신의 근육이 푸들거린다.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일부러 목을 공격한 까닭이다.

사라지지 않은 창을 뒤로 당겨 이번에야말로 투창 자세를 취했다. 보현이 그랬던 것처럼, 괴물의 급소를 노린다. 인간처럼 이족 보행하는 놈이라면 방금처럼 목과 머리 부근을 노린다.

흡, 숨을 참아 흔들림을 줄이며 에너지를 쏘았다. 이형 에너지가 만들어 내는 충격파에 던진 지호 본인이 낙엽처럼 바닥을 나뒹굴었다. 과도할 정도로 힘을 집중해 날린 창에 실린 에너지가 어마어마했는지, 적중한 키클롭스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졌다.

자기가 날리고도 어안이 벙벙했던 지호는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아직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주변을 때려 부수며 소리 지르는 것을 알아챘다.

‘한 번 더 쏠 수는 없는데…….’

한 발 한 발에 온 힘을 쏟아붓다 보니 재장전에 시간이 걸렸다. 차라리 일반 총포들처럼 총알만 다시 넣어 주면 쓸 수 있는 무기면 좋을 텐데, 쓰는 힘 자체가 지호 본인의 에너지였으니.

남은 키클롭스는 이제 두 마리. 하나는 키도 덩치도 너무 커 골목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한 놈은 죽은 것들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러나 옆에서 다른 놈이 죽는 걸 본 탓인지 사방에 잡히는 걸 전부 때려 부수고 있어 다가가기 어려웠다. 지호의 창은 근접 거리가 아니면 명중률이 낮다. 워낙 밀도 높은 에너지라 다루는 것 자체가 어려운 탓이었다.

어떤 힘을 어디에 얼마나 써야 괴물이 죽는지 파악되질 않아, 매번 온 힘을 쏟다 보니 벌써 체력이 한계였다. 어지럼증으로 눈앞이 핑 돈다. 지호는 근처 화단 옆에 몸을 웅크린 채 숨을 골랐다.

키 큰 키클롭스는 다른 쪽으로 꽤 멀리 갔는지 조용했다. 홀로 남은 놈은 난리 피우는 것도 지쳤는지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 살피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키클롭스의 피에선 고약한 냄새가 났다. 놈들이 냄새에 신경 쓰지 않아 다행스러울 정도였다.

그르르. 키클롭스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난다. 지호는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오 미터짜리 대형종이 어느새 건물을 넘어 지호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당황해 뒷걸음질 치다 넘어졌다. 드리워지는 그늘.

수희가 죽던 순간이 떠올랐다.

무력하던 그때를 떠올리며 지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익숙하면서도 낯선 에너지가 몸을 감싼다. 지호는 눈을 번쩍 떴다. 이동 능력자의 힘이다. 괴물이 바닥을 부숴 콘크리트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놈은 지호를 짜부라뜨렸을 거라고 확신하는지 바닥을 쾅쾅 두드려 부수며 기이한 소리를 냈다.

“즐거워하는 거 같죠? 이제 저 삶을 즐거운 채로 끝나게 해 주세요. 놈들의 약점은 눈입니다. 앞에 하나, 뒤에 하나 있거든요. 뒤쪽 눈은 잘 안 떠서 안 보이지만, 아무튼 뒤통수를 후려치면 된다는 뜻이죠.”

“이주원 각성자님……. 어떻게?”

“만나서 반가운 건 이해하는데 급한 것부터 처리하는 게 어때요? 조태양 헌터님 쪽으로 가는 것 같은데.”

위치를 아는 게 아니라 그 근처로 쿵쾅거리며 이동하는 거였지만 저대로 두면 위험한 건 매한가지다. 지호는 황급히 허공에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주원이 마정석을 건넸다.

“여왕도 잡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창을 개미 잡는 데 써 버리실 줄은 몰랐어요. 큰 놈한테 쓰지 그랬어요?”

“이건 왜 줘요?”

“충전하라고요. 에너지 다 썼잖아요.”

“이건 괴물의…….”

주원은 손바닥 위의 마정석을 재차 내밀었다. 설명하지 않는다. 다 알고 있지 않으냐는 얼굴을 하고서 그저 에너지원을 건넬 뿐이다.

괴물과 헌터는 같은 에너지를 쓴다.

지호는 그 사실이 가리키는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마정석을 받았다. 힘이 쪽 빨려 나갔던 몸은 에너지원이 될 것과 접촉하기 무섭게 이형 에너지를 흡수했다. 기운이 돌아오며 기분은 가라앉았다.

“놈을 죽입시다.”

주원의 속삭임. 나란히 공중에 뜬 채 괴물의 뒤통수를 응시한다. 주원의 에너지가 점점 불안정해진다. 가빠지는 숨. 어딜 다치기라도 했나?

오래 생각할 겨를이 없다. 지호의 손아귀에 이형 에너지로 만들어진 화살이 천천히 모양을 갖추었다. 회전하기 시작하는 화살. 이번에는 적은 에너지로 효율적인 일격을 박아 넣는다.

작은 키클롭스의 목 뒤를 꿰뚫어 눈알을 뚫고 나온 화살은 힘을 잃지 않고 회전해 하나 남은 놈의 머리로 달려들었다.

괴물이 괴성과 함께 화살을 후려치기 무섭게 이주원 각성자가 머리 뒤에서 나타나 이형 에너지가 코팅된 칼로 놈의 목을 쑤셨다. 일전에 보현이 사용하던 시제품의 완성형이다. 목을 찢고 비틀었다가 검이 빠지지 않아 당황하는 얼굴.

키클롭스는 목을 찢기고도 팔을 휘둘렀다. 주원이 그 돌 같은 팔에 얻어맞아 바닥으로 추락하는 걸 본 지호는 손아귀에 다시 에너지 창을 생성하며 허공에서 바닥으로 곧장 몸을 날렸다. 유성 같은 창날. 놈의 정수리를 뚫고 들어간 창이 아래턱을 지나서야 멈춘다. 덜걱거리던 몸이 우뚝 멈추었다.

전신이 땀에 젖어 축축하다. 바닥에 처박힌 주원은 앓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돌조각이 덜그럭거리며 굴러떨어졌다. 주원의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제 힘으로는 한 방에 숨통을 끊을 수가 없네요.”

“아니 공격한 사람이 더 다친 것 같으면 어떻게 해요?”

“저한테 지호 씨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데요. 몸이라도 던져서 구해야지.”

기세 좋게 나타나 마정석을 줄 때는 멀쩡했으면서 지금은 꼴이 말이 아니다. 놈에게 공격받아 다쳐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온몸이 떨리며 억지로 숨을 고르는 모양새가 익숙했다. 트라우마 반응이다. 그제야 그가 헌터가 아닌 일반 각성자일 뿐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지호는 주원의 등을 두드려 주며 치유 능력을 흘려 넣었다.

“왜 여기서 나와요? 이주원 각성자님 지금 헌경에 쫓기고 있잖아요. 균열에 있으면 더 눈에 띌 텐데.”

“이동 능력자 잡자고 생존자며 괴물 내버려 두고 따라오는 정신 나간 헌터가 균열 안정기 전부터 돌아다닐 리가요. 저한테 뭐 현상금이 붙은 것도 아니니까 사냥꾼들도 나설 리가 없고.”

“저한테 잡힐 거란 생각은?”

“제가 구해 줬잖아요. 못 본 셈 쳐 줄 거죠?”

지호는 복잡한 표정으로 주원을 응시했다. 주원의 떨림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전양련이라는 의문의 집단 소속 이동 능력자. 일전에 균열을 넘어갔던 집단 중 일부는 잡혔으나 고리가 느슨해 소속된 사람들끼리도 누가 누군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은 이상한 모임이었다.

“여기서 또 무슨 짓거리 하고 있었던 거예요?”

“짓거리라니 말이 심하네. 제가 구해 줬잖아요.”

“저런 괴물들이 나타나는 부근에 위험하게 돌아다닌 이유가 있었을 것 같고요. 저는 얻어걸린 거 아닌가 싶은데.”

“괴물을 연구하려면 당연히 괴물 있는 곳에 들어와야 하지 않겠어요?”

전양련 소속 시흥 연구 팀이 전부 체포된 지금, 주원의 말을 뒷받침해 줄 증거나 증인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무슨 소리를 하건 다 믿음이 갈 것 같지 않았다.

일전에 납치된 경험이 있던 지호는 그에게 슬쩍 거리를 두며 태양의 위치를 가늠했다. 감지 파장을 펴 보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태인 것 같았다.

“아야야. 전투는 진짜 젬병인데.”

“그런 것치곤 이제 막 현장 헌터들이 받은 무기를 쓰고 있으신데요?”

“이거 유실물이에요. 검암 캠프가 난장판이 됐거든요.”

그러고 보니 청라 쪽으로 내려갔을 때 줄기차게 울려 대던 경보가 멈췄다. 지호는 긴장으로 움츠러들었던 몸을 천천히 폈다. 북상했던 퀸 패러사이트는 경계 저편으로 넘어가고 없는데 검암 캠프가 위험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 리 없어요. 지금 코드 레드 개체 둘 다 경계 저편으로 나가 있는 상태라고요.”

“지호 씨 정도면 들어 봤을 것 같은데. 우리가 임의로 퀸이라 부르는 그 개체 말고 진짜 여왕이 나타났잖습니까. 놈들의 호위대가 여길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거든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저한테 물어보려는 거 아니죠? 전 지켜보는 것밖에 못 했어요. 거기 있는 사람들 구하려다 저까지 죽을 순 없는 노릇이라, 목숨 붙어 있는 사람들 정도만 안전한 곳으로 빼내는 게 다였고요.”

주원이 조잘거리는 걸 내버려 둔 채 태양이 있는 쪽으로 훌쩍 이동해 온 지호는 임시 파트너의 위에 얹어진 차를 들어 치우며 조태양 헌터의 상태를 살폈다. 충격으로 기절했으나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놈들이 어떻게 생겼던가요?”

“자세히는 못 봤어요. 하체가 뱀이길래 바닥을 기어 다닐 줄 알았는데 펄쩍펄쩍 날아다니더군요. 온갖 능력을 다 써 대길래 마주치자마자 바로 탈주했어요. 제가 도망치기 전에도 이미 다 뒤집혔어요. 무슨 말인 줄 알죠?”

“온갖 능력을 다 썼다고요.”

“지호 씨처럼요.”

마주친 눈에 불꽃이 튀었다. 지호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잔해 속에 반쯤 박힌 조태양 헌터를 들어 올리며 치유 능력을 사용하자 손이 녹색으로 빛났다. 일부러 주원을 돌아보지 않은 채 지호의 말이 이어졌다.

“뭘 짐작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건 서로를 바보로 만드는 짓 같네요. 어떻게 알았죠?”

“들었어요. 제 정보망이 좀 유별나서.”

“전양련 사람들이 어디서 남들 모르는 정보를 얻어 왔나 했는데, 여왕의 자식인지 뭔지 하는 새끼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이주원 각성자님이었나 봐요. 주리 언니는 알아요?”

“누나는 마음 정리하는 데 오래 걸려요. 막내 살아 있다는 거 알면 진짜 심란해서 몇 날 며칠 잠도 못 잘 거라고요. 그리고 데리고 올 수 있을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는 거니까.”

“어디까지 아는데요?”

“알려 주면 협조할래요?”

“사방에 협조 구하는 척하면서 사람 등쳐 먹으려는 새끼들이 득실거리네.”

“못 보던 사이에 입이 험해졌네요. 김 반장님 때문이죠?”

상처가 낫지는 않아도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호는 본인의 주력 계열이 아닌 치유 능력도 어느 정도는 갈고닦아야 할 것 같단 필요성을 느끼며 태양의 팔을 어깨에 둘렀다.

“사람 간 보지 마요. 기분 더러우니까.”

“지호 씨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몰라서 그래요. 알다시피 이제 누나 정보망을 더 쓸 수가 없잖아요.”

“알긴 뭘 알아.”

“여왕의 자식 이야길 아는 걸 보니 다른 놈들하고 접촉했었죠? 퀸 패러사이트가 지호 씨를 멀쩡히 내버려 뒀을 리 없으니 도플갱어 쪽일 테고. 일전에도 대화를 나눈 적이 있으니까 그 이상의 정보를 나누기도 어렵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도플갱어를 우리 사는 쪽으로 빼내 주기로 합의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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