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61화 (162/260)

161화

[이지호 : 그걸 어떻게 말해요. 아까 언니한테 했던 이야기인데, 저라고 괴물들을 다 믿는 게 아니라고요. 특히 도플갱어는 자기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겠다는데, 인간에게 적대적인 인격이라도 나타나면 재앙이잖아요.]

[조태양 : 그럼 그냥 이용하는 건가? 우리랑 별반 다를 게 없군. 특수반 들어올래?]

지호는 진저리 치며 태양을 노려보았다. 그사이 대화가 끝났는지 도훈이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 빼고 무슨 대화를 그렇게 흥미롭게 해?”

“협회에서 공지 내려와서 확인한 거다. 퀸 패러사이트가 뭐라고 하던가?”

“우리 지호한테만 알려 줄 건데.”

지호는 치근대는 도훈의 얼굴을 밀어 내며 단호히 말했다.

“농담할 시간도 여유도 없어요. 퀸 패러사이트가 꼬리를 말고 도망갔다는 건 진짜 여왕의 호위대가 근처에 있단 뜻 아녜요? 이쪽이야말로 심각한 거 아닌가? 그리고 퀸이 절 알고 있다는 건 뭐죠?”

“그쪽 호위대가 이상한 제안을 했다더라.”

단박에 누구를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준우 이야기겠지. 그는 퀸 패러사이트를 주인이라고 불렀었다. 세뇌당했다는 사람들의 인식으로 볼 때는 좀 이상한 장면이다. 자유 의지로 움직이고 있었고, 지호와 만난 사실을 숨기려고 하기도 했었으니.

“그 호위대가 뭐라고 했대요?”

“누구를 죽이지 않고 데려올 수 있다고? 다른 호위대 숙주들은 못 하는데 그놈만 할 수 있다나 봐.”

지호의 안색이 싹 변했다. 안 죽는다는 사실을 좋아할 일이 아니다. 태양은 혀를 찼다.

“예전에 이지호 헌터를 경계 너머로 데려갔던 놈이 있었지. 그것도 퀸 패러사이트의 호위대였나?”

“네, 뭐.”

그게 도준우였다는 사실까지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처음 협조를 바랐을 때와 달리 태양을 비롯한 그들 집단과는 생각도 행동 원칙도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놈들이 노리고 있는 대상이 누구일까. 도준우가 사람들 편이라고 믿었던 때에는 그냥 사냥꾼들을 살리려는 선택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보현을 퀸 패러사이트의 손아귀에 떨어뜨리려는 것만 같아 불안했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대신 지호는 다른 쪽으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저도 괴물들 방식으로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긴 해요. 돌아올 방법이 없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놈들이 그 방식으로 사람들을 데려가고 있으면, 넘어가서 데려오더라도 저와 마찬가지로 경계를 원래처럼 넘어 다니지 못하게 될 거예요. 저쪽에 속하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뭐야?”

“무슨 원리인지까진 모르겠어요. 알고 따라 하는 게 아니고 겉모습만 흉내 내는 거라. 대신 그 힘을 쓰고 있으면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제가 괴물인 것 같고, 좀.”

“놈들의 능력이라 그런가?”

쿠웅, 쿵.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린다. 높은 곳에서 먼지가 차르르 쏟아지며 기침이 났다. 도훈이 흠칫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가 둘을 채근했다.

“퀸 패러사이트가 균열에서 먼 곳으로 튀었어. 이유가 뭐게?”

대형종의 발소리다. 태양은 황급히 균열 안정기까지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몇 시간 안 남긴 했지만, 대형종이나 위험해 보이는 괴물을 처음으로 상대하며 버틸 만한 시간으론 터무니없이 길었다.

“대형종이랑 싸워 봤어요?”

“미쳤어? 내 메인은 정신계고 신체 계열 자리는 서포트라고!”

“저도 얼마 전에 한 번 부딪친 게 다예요. 그마저 한 마리였고, 사냥 팀 도움을 받았는데요.”

이 팀으로 부딪칠 만한 건 퀸 패러사이트지 대형종 무리가 아니다. 발소리도 하나가 아닌 탓에 도훈의 얼굴마저 창백해졌다. 그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신음했다.

“우리 때문인 것 같은데.”

“우리?”

“나랑 퀸 패러사이트가 육안으로 보일 거리에 함께 있었잖아. 놈들은 만약에 닥칠 수 있을 위험 때문에 가시거리 안으로 접근하진 않지만, 우릴 동시에 치워 버릴 기회는 놓치고 싶지 않아 할걸.”

콰르르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이미 반파되어 있던 건물 하나가 무너진다. 다행히 처음 싸웠던 놈처럼 집채만 한 대형종은 아니었다. 중형종과 대형종 사이 어디쯤. 그러나 인간으로 보이는 크기는 아닌 괴물이다.

“눈알이 하나네요.”

“키클롭스잖아. 이 근방에서 발견된 적 없는 놈인데.”

태양은 신음하면서도 영상을 촬영했다. 아마 다른 지역에서도 속속 놈의 정보를 올리고 있을 것이다. 이름이 붙은 괴물은 오랜만이었다.

“눈이 하나라는 거 외에 특이점이 또 있을까요?”

“무식하게 호전적이지만 다른 능력이 발견된 적은 없어. 튼튼하긴 하다더군.”

그래 봐야 지호가 상대했던 대형종만큼 단단하진 않을 것이다. 지호는 창백해진 도훈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으려고 애썼다.

“우린 균열을 나갈 수 없으니 이쪽으로 오면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해요. 하지만 도훈 씨는 아니죠. 퀸 패러사이트가 그런 것처럼, 도망칠 수 있어요.”

“그럼 어떻게 다시 만나?”

도훈은 심각한 얼굴로 되묻는다. 이번 균열에서 만난 것조차 우연이었다. 그는 처음 주웠던, 그리고 내내 가지고 다녔던 핸드폰을 내밀었다. 배터리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거 충전할 방법이 없어. 이게 꺼지면 다시 널 찾아오기가 힘들단 말이야. 나갈 방법을 찾아 주기로 약속했잖아. 그러니 네 옆에 있어야 해.”

“하지만 싸울 줄 모르잖아요.”

“같이 넘어가자.”

“간신히 동아줄 잡아 놓고 위를 잘라 버리면 같이 추락하는 것밖에 더 돼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요.”

“이미 한 번 여기서 나간 적 있잖아.”

“그건 진짜 요행이 겹친 거였어요.”

도훈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태양은 그가 다른 꿍꿍이를 가진 것은 아닌지 의심했으나 오래 생각할 틈이 없었다. 작은 놈은 오 미터가량, 큰 놈은 십여 미터도 넘는 크기의 거인들이다. 붙인 이름답게 거신 같은 모양새였다. 지호는 놈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쪽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이네요. 머리 좀 쓸 줄 아는 놈들인가 봐요. 몰이 사냥 중이네.”

“날 수는 없는 것들이야. 위로 도망가면 그만이지.”

“허공은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서 좀 위험한 것 같은데. 여기가 일반 균열 내부면 몰라도, 경계 근접 구역이잖아요.”

“방향을 안쪽으로 잡아서 최대 속도로 날아가지. 가운데를 가로지르면 놈들도 알기 어려울 거다.”

“전에 다른 헌터가 대형종은 질량으로 승부한다고 했었어요. 확실히 무게로 짓누르거나 리치 차이로 공격해 오기 쉽겠네요.”

손예린 헌터가 줬던 정보였다. 당시를 떠올리자 기분이 가라앉는다.

괴물들의 속도는 일정했다. 날 수 없는 태양을 어깨에 짊어진 지호는 그 부피감을 어찌하지 못하고 당황했다. 사람 한두 번 옮겨 본 건 아니지만 유독 몸이 큰 사람이었다. 허공으로 떠서 약간 움직여 본 뒤 조금 자신 없는 표정으로 도훈을 돌아본 지호는 손을 뻗었다.

“와요.”

“잊었나 본데, 나 날 수 있어. 네 품에 안기는 건 환영할 일이긴 한데, 저놈이랑 같이는 좀.”

“날 줄 아는 거 알아요. 날 줄만 알잖아요. 공중으로 들이닥치는 공격까지 막아 내진 못하겠죠. 저한테 붙어만 있어요. 제가 둘 다 들고 날면 만약의 사태에 대응하기 어려워서 어차피 안 돼요.”

경계 저편으로 넘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건 도훈이 아니다. 지호와 태양이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자세로 지호 어깨에 올라앉아 있던 태양은 자기 품을 뒤져 손바닥만 한 판을 꺼냈다.

“다시 만나는 게 문제였으면 이걸 써라. 균열에서 태양 빛이 약하긴 해도 없는 건 아니야. 종일 충전하면 핸드폰 켜서 몇 분 정도 쓸 전력은 만들 수 있어.”

“휴대용 집광판이네.”

“전자기기와 연결되는 단자가 달린 모델이다. 이제 고민 그만하고 저쪽으로 꺼져. 포위되면 진짜 위험하단 말이야!”

태양의 거친 손짓에 지호의 몸이 약간 기우뚱했다. 다행히 균형을 못 잡을 정돈 아니다. 도훈은 멀지 않은 곳에서 다가오는 괴물들과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꼭 다시 만나. 우리 약속한 거 잊으면 안 돼.”

쿵. 쿵.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지호는 대답 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경계면 분간이 어려운 허공으로 수직으로 상승하는 건 불가능하다. 안쪽으로 방향을 틀기 무섭게 아래쪽에서 일 톤 트럭이 날아왔다. 으헉! 태양의 비명과 지호의 숨 참는 소리.

“하나씩 잡을 수 있을까요?”

“알파 팀 호출했어. 우리끼리 안 되잖아!”

“왜 날 줄 모르는 거예요!”

“아니 이제 별소릴 다 하는, 앞에 봐!”

신호등 달린 길쭉한 철봉이 날아온다. 지호는 방향을 틀어 아래로 훅 내려왔다가 놈들의 괴성에 인상을 찡그렸다. 몸이 찌잉 울렸다.

“총 다섯 놈이야. 생각보다 많진 않은데 둘이 잡을 순 없어.”

집어 던질 것을 찾느라 셋은 바닥을 더듬고 있었고 하나는 키가 커 손을 휘적거리며 두 사람을 잡으려 들고 있었다. 나머지 한 놈은 경계 저쪽을 한창 쳐다보고 있었는데, 도훈을 쫓아가려는 것 같아 불안했다.

“머리 조심해요!”

“뭐? 으아악!”

태양은 자기를 집어 던지는 지호의 행동에 놀라 몸을 웅크렸다. 어지간한 돌덩이보다 더 단단한 신체 계열 헌터의 팔꿈치가 괴물의 정수리를 찍는다. 괴로움 가득한 비명이 울리며 놈이 태양을 붙잡아 아래로 던졌다. 쏟아지는 욕설. 지호는 빠르게 아래로 내려가 태양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쪽으로 넘어가면 우리가 데려올 방법이 없어서요! 미안!”

“너, 이, 말을 하고!”

전신주가 날아와 그림자가 졌다. 두 사람은 각기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골목으로 들어온 덕에 덩치 큰 괴물 여러 마리가 한 번에 들어올 순 없어 다행이었다. 아까 머리 맞은 놈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온다. 목표가 태양이었다.

“피하기만 해요!”

“너 가만 안 둬!”

태양은 비명과 함께 몸을 날렸다. 목표에서 살짝 벗어난 위치. 지호는 근처 전신주에 균형을 잡고 앉은 채 팔을 뒤로 당겼다. 손아귀에 이형 에너지와 전기로 이루어진 창이 만들어진다. 몸이 저릿저릿했다. 손아귀가 뜨겁게 달아올랐으나 던지지 않는다. 키클롭스가 재차 괴성을 지르며 태양에게 달려들었다. 태양은 온 힘을 다해 놈의 발아래로 몸을 던졌다. 간발의 차이로 짓밟히지 않고 피한다.

그 뒤통수로 드디어, 전격이 내리꽂혔다.

알파 팀이 대형종을 잡았던 때처럼, 놈의 뒤통수에서 입 쪽으로 뚫고 나온 창을 타고 피 같은 액체가 흘러내린다. 그어억, 그륵, 놈은 이상한 소릴 내며 허우적거리다 움직임을 멈췄다.

멈춰서 감상하고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지호는 급하게 넘어져 있는 태양의 팔을 움켜쥐고 날아올랐다. 나머지 네 마리 중 크기 작은 놈이 골목에 몸을 욱여넣으며 낡은 빌라가 부서지고 있었다.

“미끼를 소중히 다뤄, 이 새끼야!”

“완전 신체 계열 괴물들하곤 방벽 싸움할 것도 아닌데 조태양 헌터님이 뭘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차라리 방벽 담당 서포트가 낫겠네!”

“이것도 서포트라면 서포트…….”

지호와 태양은 동시에 추락해 바닥에 처박혔다. 아래에서 높이 던져 위에서 떨어져 내린 SUV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온갖 차들을 던져 대며 날파리 두 마리 잡으려고 펄쩍펄쩍 뛰던 거인들이 승리의 함성을 내지른다.

매타작을 흠씬 당한 것처럼 아팠으나 엄살 피울 새가 아니었다. 지호는 제 몸의 모든 에너지를 일시에 회복 에너지로 전환하며 몸을 일으켰다. 전신을 타고 녹색 빛이 흐른다.

반면 태양은 기절한 것 같았다. 차 아래에 깔린 상태라 언뜻 위험해 보이지만, 차라리 괴물들의 시선에서 가려진 상태라 나을지도 모르겠다.

대로변에서 싸우면 네 놈을 한 번에 상대해야 한다. 건물이 좀 부서져도 좁은 골목이 낫지.

상태가 약간 회복되자마자 지호는 곧바로 날아올랐다. 놈들이 바닥에 얌전히 놓여 있지 않은 차들을 짓밟기 시작한 탓이다.

“눈깔 하나 없는 새끼들아, 여길 봐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