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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60화 (161/260)

160화

충격을 숨기지 못한 지호는 둘을 번갈아 보다가 설마 하며 물었다.

“진짜예요?”

“궁금하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는데.”

“아니, 도훈 씨는 가만 좀 있어 봐요. 이거 진짜예요? 그래서 박 팀장님이 그렇게 정신계 능력자들을 질색하는 거였어요? 혹시 특수반 일에 그런 것들도 포함돼요? 제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조 헌터님을 믿어야 해요? 그쪽 팀은요?”

태양은 이를 악물고 도훈을 노려보았다가 씹어 뱉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남발되는 건 아니었어. 꼭 필요한 곳에만 쓰였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 필요한 여부를 누가 판단하는데요!”

“최근 몇 달은 우르르 열려 댄 균열들 때문에 국가가 마비 상태야. 본래라면 그런 일을 도맡아 했을 책임자들이 제일 과로 상태에 있고. 그러니 새 기준이 필요하겠지. 그에 앞서 헌터들에게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 줄 필요가 있어. 너나 나나 지금 싸우는 모든 사람들에겐 다 휴식이 필요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쉴 새가 있어야 말이지. 그러니 우리 일은 불가피한 거야. 사회를 균열 이전 시대처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필요악…….”

“입 다물어요.”

눈에 핏발이 서는 것 같다. 지호는 태양에게 준우 이야기를 꺼낸 걸 후회했다. 누굴 믿고 누구를 믿지 말아야 할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한때 지호의 절대적 기준에 가까웠던 보현은 이제 곁에 없는데.

아니다. 지호는 생각을 바꿨다. 이제 그의 기준은 더 이상 타인이 아니었다.

“저는 조태양 헌터님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기대했었어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의 정신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걸 신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봐야 하는지는 지금부터 고민해야겠지만. 아무리 잘 봐도 별로 좋아 보이진 않네요.”

“헌터들은 이 지옥에 가까운 삶에서 사람들이 바라보며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야. 그들마저 좌절하고 절망한 채 죽어 가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억지로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야 해. 안 그러면 너라고 해도 얼마나 버틸 것 같으냐?”

“언니한테도 그랬나요?”

“기본적으로 정신 계열 능력자들에겐 손대기 힘들어. 만나 본 정신계 능력자마다 우울증이며 신경증에 갖가지 날카로운 점은 다 갖고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쪽엔 그럴 수 없었지. 그러지 않아도 괜찮았어. 임보현이 괜히 영웅이라고 칭송받는 게 아니거든. 그 사람은 진짜 희망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도준우의 생존을 알리면 그 전설이 우리 편이 될 거야. 역시 그쪽에 정보를 넘겨야겠어.”

“그럴 수 없어요.”

“그렇게 해야 해.”

지호는 도훈의 어깨너머로 팔 뻗어 오는 태양을 보며 이제는 유일한 임시 파트너인 도플갱어를 뒤로 잡아챘다. 태양은 신체 계열이다. 저 악력을 버티다 도훈이 다칠 수도 있었다. 도훈의 어깨를 쥐려던 손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지호는 앞으로 쑥 나서며 인상 썼다.

“남들을 맘대로 조종하더니 말 안 들으면 강제로 움직이게 하는 게 몸에 아주 뱄나 봐요?”

“순순히 말 들으면 그럴 일 없어.”

“처음엔 도플갱어가 넘겨주는 정보를 제공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신변 보호도 괜찮은 선택이야.”

“어느 세상 괜찮은 선택이 자유 박탈이죠? 공산주의인가?”

지호 머리 부근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도훈이 휘파람을 분다. 정신계 공격이 한 차례 있었는지 두통이 일었다. 당황한 얼굴. 그러고 보니 아까 감정이 격해지면 능력이 나온다고 했었다. 지호는 그를 주의 깊게 살피며 천천히 물러났다.

“인제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불안정하시네. 그래서 다른 파트너 없이 현장 나와서 저 같은 사람하고 임시 파트너 맺으시는구나?”

“닥쳐.”

“왜요? 정곡이에요?”

주변이 일렁였다. 도훈이 등을 콕콕 찌른다. 곧장 속삭임이 들렸다.

“차라리 대놓고 힘을 쓰는 거면 어떻게 쳐 내거나 막겠는데, 저건 본인도 컨트롤 못 하는 거라 저 사람 공격하는 식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상대하기 어려워. 죽여도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요.”

자꾸 잊어버리지만, 도훈은 사람 기준으로 생각하는 이가 아니다. 두 사람이 모두 함께여도 상대하기 어려울 텐데, 이렇게 된 이상 태양과는 함께할 수 없다. 지호는 준우 이야기를 꺼냈던 몇 분 전의 자기 행동을 후회했으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곱씹는 미련한 행동 대신 옛 임시 파트너에게 단호히 선언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언니한테 그 이름자 하나 안 꺼내실 거 알아요. 그렇게 영웅이라고 추대하는 임보현 헌터가 죽은 줄 알았던 옛 파트너 때문에 균열로 돌아와 스러지게 하는 게 그쪽 집단이 추구하는 이상이에요? 특수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온갖 더러운 일 도맡아 하는 건 알고 있어요. 세뇌니 뭐니 하는 짓거리는 선을 넘었지만, 공과 과는 구분해야 한다고 배웠거든요. 잘한 일 하나가 못한 일 하나 삭감, 이런 것도 아니고.”

스파크가 줄어든다. 태양이 감정적 동요를 억누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통하나? 지호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주변에서 부딪히는 힘의 흐름 때문에 얼굴 주변에 잔머리가 산개했다.

“우린 옳은 일을 하는 거야.”

“아직 살아 있는 영웅을 제 발로 무덤에 기어들어 가게 하지 말고 그 정보는 무덤까지 안고 가 줘요. 굳이 만나야 할 상황이란 건 언니가 균열에 들어오기 전까진 생기지 않을 거고, 퀸 패러사이트와 제대로 마주치기 전에는 당연히 안 생길 테니까, 저는 놈들을 만나야 해요.”

“말이 통한다는 게 대화를 들어 주겠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진 않아. 놈들은 사람에서 괴물이 된 것들도 아니잖아. 처음부터 괴물이었다고.”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도훈 씨처럼, 사람을 많이 먹어서 사람에게 우호적이게 되었을 수도 있고…….”

얌전히 듣고 있던 도훈이 슬쩍 끼어들었다.

“나 같은 놈이 더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마. 그런 놈들이 많았으면 굳이 귀찮게 날 쫓아다니지는 않을 거야.”

“퀸 패러사이트도 다른 것들과 다르잖아요. 다른 괴물들처럼 산 것을 먹어 자기 양분 삼는 게 아니고 조종하고 움직이고요. 제가 보니 그것들의 의식이 날아가거나 하진 않는 것 같은데, 어. 한 사람만 그런 거라면 아쉬운 일이지만요.”

“그건 또 그러네. 합리적인 의심이야.”

당장은 준우와 보현이 마주치는 걸 막는 것 외의 목표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태양과의 대립이 드디어 합의점에 도달한 것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임보현 헌터를 끌어들이며 그 주변 헌터들 세력까지 데려오고 싶다 한들, 그를 진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선택은 하지 못할 것이다.

특수반 사람들을 포함해 태양은 여태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 더러운 일을 감수해 온 이들이다. 헌터들의 구심점 하나가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을 턱도 없었고, 제 발로 나서서 그런 불행을 자아낼 일도 없을 터.

지호가 믿는 건 지금 눈앞에서 자기 힘 하나 컨트롤하지 못하고 불안정하게 휘청이는 반푼이가 아니었다. 그들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 가며 이루어 놓은 것들이지.

반쯤 도박이었으나 둘의 대화를 듣던 태양은 괴로운 얼굴로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가 길게 한숨 쉬었다. 더 이상의 충돌은 없었다.

“네가 먹음직스러워 덤벼들면 어떻게 할 거냐?”

“뭘 어째요. 튀어야지. 균열 안정기 아슬아슬할 때 만날 거예요. 저라고 목숨이 여러 개도 아닌데 그런 무모한 일을 할 리가.”

“이놈은? 두고 가나?”

“전에 만났을 때도 퀸 패러사이트와 도플갱어가 전투 없이 지나갔다는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던가요? 우리끼리 있을 때면 모를까, 퀸이 도훈 씨를 공격할 이유가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어떨 것 같아요?”

“나만 있으면 내버려 두겠지? 전투 중에 너희가 튀는 상황이면 좀 다르겠지만.”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도망가야겠어요. 우리한테 잡힌 척하는 건 어때요?”

“속을지 모르겠는데, 계획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다 싸웠어? 이게 끝이야?”

도훈이 의문을 표했다. 지호는 태양의 눈치를 흘깃 살핀 뒤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요. 갑자기 박 팀장님이 막 보고 싶네요. 이런 일 하는 걸 어느 정도 알고 계셨던 것 같았거든요.”

“왜 여기서 끝나?”

“우리 감정 정리나 상황 정리가 급한 게 아니니까.”

태양은 말을 마치자마자 코드 레드 경보가 울렸던 지역들을 확인했다. 퀸 패러사이트에게 당했단 소식보다는 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만 올라오는 것을 보니 헌터들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아직 안정기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외부 캠프가 있는 곳은 짐작하지 못한 채 안쪽 임시 캠프 주변에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헌터들의 피해는 경미한데, 사냥꾼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 같다. 아까 영상에서 본 것처럼 일부 괴물들이 사냥꾼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어. 헌터들과 마주치면 대부분 뒤로 빠지거나 경계 너머로 나가 버린다는군. 어떻게 생각하냐?”

“약한 괴물이나 멍청한 괴물들이 다 죽고, 빌어먹을 난이도의 균열이 되어 버렸네요. 그것도 어마어마한 크기로.”

“전에 언급했던 호위대인지 뭔지 하는 새끼들 보고는 더 없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놈들과 마주치면 어떻게 하지?”

도훈이 손사래 치며 말을 얹었다.

“그놈들은 걱정 마. 정신계 공격에 취약한 놈들뿐이라서 너희의 코드 레드 괴물들 앞에 나타날 일은 없거든.”

“어떻게 알고 그런 말을 하나?”

“내가 놈들한테서 우리 지호 보호하려고 붙어 있다고 말했을 텐데.”

사냥꾼들로부터 구조 신호. 검암 캠프와 멀지 않았다. 저쪽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 저길 노리고 있나 보다. 둘은 그렇게 의견을 교환하기 무섭게 곧바로 방향을 잡았다. 도훈은 투덜거리면서도 둘의 계획에 반발 없이 바로 따라붙었다.

전투가 몇 차례 있었던 모양인지 인위적 구조물이 눈에 띄었다. 차로 만든 바리케이트에 흉악한 자국이 나 있는 것이, 이쪽으로 중형종에 가까운 괴물이 들어온 모양이다. 총알 박힌 건물이 더러 있는 것을 보니 군대 역시 들어온 것 같았다.

“일반인이 많으면 보호하면서 싸우기 힘들어요. 어떻게 하죠?”

“그럼 더더욱 이상하지. 우리랑 달리 사냥꾼들이나 군인들은 지금도 균열을 나갈 수 있잖아. 안정기가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신체 계열 헌터들이 지원 들어오고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추가로 올라온 소식이 없어요.”

태양과 지호가 캠프 주변 전투 흔적을 살피는 동안 도훈은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감지 파장을 넓게 펼친 상태였다면 지호도 느낄 수 있었을 테지만, 그게 역으로 무엇을 불러올지 몰라 지금은 힘을 거둔 상태. 덕분에 도훈 혼자 그쪽을 응시했다.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저쪽에 눈이 없으니까.

물리적 거리를 초월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정신계 능력자들에게만 가능한 이야기다. 입 한 번 뻥긋하지 않고 이야기를 마친 도훈은 뜻밖의 소식을 전해 왔다.

“모여 봐. 내가 지금 퀸 패러사이트랑 이야길 좀 했는데.”

“뭐요? 누구랑요? 지금요?”

지호의 눈이 튀어나와도 이상치 않을 정도로 동그래졌다. 태양 역시 기겁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반인의 감각으론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는 것이 당연했고, 감지계 능력 없는 태양은 더더욱 불안감을 느꼈다. 퀸 패러사이트의 호위대였던 헌터들 중 호락호락한 자가 한 사람도 없었으니 마땅한 경계심이다.

“너희한테 안 보인다면 저쪽은 경계 너머겠지. 퀸 패러사이트가 그의 호위대 다섯을 거느리고 대기하고 있어. 이쪽 캠프 인간들을 노리고 있었다네.”

“과거형이네요?”

“너를 보고 아는 체를 하길래 여왕의 호위대가 쫓아다니는 놈이라고 말해 줬어. 질색하면서 가더라.”

“갔어요? 진짜?”

“나와 다르게 저쪽은 숙주를 세뇌하고 조종하는 것 외에는 별로 능력이랄 게 없어. 싸움은 피하고 봐야지.”

이렇게 쉽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단 말인가? 어쩐지 맥이 탁 풀렸다. 퀸 패러사이트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나 싶어 머리가 복잡해졌던 지호에겐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이게 정말 좋은 일인가? 지호는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고작 대화 한 번으로 풀릴 일을 이 난리 쳐 가면서…….”

“말을 들어 줄 거라고 아무도 생각 못 했잖아.”

“멀리 갔어요? 다시 말 걸어 봐요. 여길 나가고 싶다면서요. 그거 도훈 씨처럼 경계를 넘어가고 싶어 하던 놈이잖아요. 뭐 단서라도 얻었다든가 그런 이야긴…….”

“그건 네가 알아봐 줄 거잖아. 굳이 쟤한테 물어볼 필요 있어?”

“어디까지 단서를 찾았는지 궁금해서 그래요. 괴물 입장에서 알아내는 정본데, 도훈 씨한테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도훈은 그 말이 진짜 자신에게 도움되는 정보인지가 의심스러웠는지 지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호가 흔들리지 않고 마주 바라보자 몇 초 후에야 불만스러운 얼굴로 먼 곳을 응시한다. 아직 퀸 패러사이트가 대화 가능한 위치에 있는 모양이다. 그러는 사이 태양이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도도독 메시지를 보냈다.

[조태양 : 너 임보현 헌터가 균열 경계 넘어갈 수 있다는 말 안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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