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도훈은 투덜거렸으나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퀸 패러사이트와 만났을 때 보현은 그가 공격이 아니라 방어에 집중했다면 팀원들을 구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했었다.
그러니 모든 신경을 방어에만 쓰는 팀원이 있다면 놈을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린 고작 셋이야. 심지어 하나는 전투 담당도 아니지. 하지만 퀸 패러사이트의 정신 오염을 막아 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는 놈이로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당연히 다행이지.”
퀸 패러사이트의 것인지 그 숙주의 것인지 모를 메시지가 아직도 생생하다. 사람 같은 지능에 그렇지 못한 태도. 머리에 울리는 말 직후에 공격이 이어졌다. 괴물들을 태양 팀으로 보낸 것이 누구인지 의심할 여지 없이 명백하다.
“아까 놈이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들었어요?”
“뇌로 바로 전달되는 거라 옆에서 엿듣거나 할 수는 없어. 기억을 뒤지면 몰라도.”
“인간성의 오묘함에 관해 이야기하던데.”
도훈과 태양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지호 역시 그 정체 모를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도훈 씨만 특별 체질이고 나머지 괴물들은 먹거나 먹히거나 하면서 한 개체만 살아남는 거 아니에요? 완전 사람처럼 말하네요.”
“자아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것들이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냐. 인간을 많이 먹을수록 똑똑해지고, 지능이 올라가고 그러긴 하거든. 대신 기억이 남거나 뭐 그런 일은 없지. 내 체질이 아무것도 없던 데서 뿅 생겨난 건 아니니까, 나는 그 망각을 담당하는 부분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셈이야. 아무튼 퀸 패러사이트 정도면 먹이 사냥이 손쉬울 거고, 당연히 다른 놈들보다 지능도 높겠지. 게다가 정신계잖아. 퀸 패러사이트는 다른 능력 없이 정신 계열만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전에 봤을 땐 그랬어.”
“어떻게 도훈 씨를 내버려 뒀는지 궁금하네요.”
“여왕에게 반기 드는 놈들이 흔한 줄 알아? 우리끼리라도 친하게 지내야지. 안 그러면 놈들 이빨에 꿰여 질질 끌려가기 일쑤라니까.”
“그래서 이지호 헌터. 놈을 만나러 가려는 진짜 이유는 뭐야?”
퀸 패러사이트를 만나러 가려는 것이 아니다. 한때 도준우 헌터였던 자와 보현 언니를 마주치게 하고 싶지 않아 이러는 것이지.
지호는 꽤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한 채 태양을 바라보다 눈을 내리깔았다. 홀로 버거웠다. 태양이 말하는 어딘지 모르는 집단과 연대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지호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조태양 헌터님네 그 비밀 결사 같은 사람들, 수가 많아요?”
“적진 않아.”
“그중에 1세대 헌터를 알 만한 사람은?”
태양의 눈이 가늘어졌다. 질문의 진의를 가늠하는 눈치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질문이 잘못됐어. 임보현 같은 1세대 헌터는 모르는 사람 찾는 게 빠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1세대여도 유명도가 다르지.”
“그럼, 언니의 파트너였던 사람은요?”
“도준우 헌터도 꽤…….”
여기서 나올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호와 도훈을 번갈아 보던 태양의 눈이 커졌다.
“이 새끼 설마 도준우 헌터까지?”
“켁, 생괴물 잡네!”
도훈은 그가 말했던 것처럼 사람들 기준의 신체 계열은 아니었던 탓에 태양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속절없이 흔들렸다. 지호는 황급히 그를 붙잡아 도훈을 내려놓게 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쪽이 아니고요. 다른 쪽 코드 레드요.”
“말도 안 돼. 진짜냐?”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임보현이 알아? 아니지. 모르는구나. 모르니까 저렇게 나오는 거야. 도준우가 살아 있다는 걸 당장 말해. 그럼 곧장 네 편으로 돌아설 거라고. 뭐 때문에 입씨름했던 거야?”
“아, 누군지 알겠다. 퀸의 호위대 중에 인간 형태 유지하고 있는 놈 말이지?”
도훈이 덧붙인 말에 태양은 심란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둘뿐인 코드 레드 중 하나는 킥킥 웃으며 지호의 어깨에서 머리를 떼었다.
“난 알 것 같은데. 아까 싸우는 소리는 반만 들었지만, 우리 지호 보호자란 헌터가 강경하잖아. 그 많은 헌터들 앞에서도 그랬는데, 자기한테 소중한 사람 하나 살아 있다고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겠어? 너희처럼 체면이니 뭐니 남의 시선 중시하는 족속들이?”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살아 있는 게 확실한 거잖아. 희망을 전해 주는 거라고.”
“그럴까요? 언니가 계속해서 해 온 이야기들을 생각해 봐요. 언니는 오히려 다시 만나게 된 옛 파트너를 미워하고 원망할 거예요. 그분을 죽인 상대로 생각할 거고. 하지만 그러면서 완전히 미워할 수는 없겠죠. 어떻게 그렇겠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동시에 사랑할 수도 있어. 사람이란 다면적이잖아.”
“언니가 예전의 그 임보현 헌터였다면 저도 별로 망설이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의 언니는 많이 약해졌어요. 지쳤고요. 그분은 너무 늦게 돌아왔어요.”
“그래도 임보현에게 정보를…….”
“제가 막더라도 언젠가 부딪히게 될 문제예요. 사실은 그 전에, 퀸 패러사이트가 어떤 생각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알아야겠어요. 우릴 공격할 수도 있는데 물러났죠. 심지어 말까지 걸었어요. 도훈 씨는 퀸 패러사이트가 여왕에게 반기 드는 괴물이라고 했었잖아요. 만약 우리가 뜻이 맞아서, 그래서 협조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태양은 입을 다물었다. 찡그려진 인상이 펴질 생각을 않았다.
“차라리 임보현한테 도준우가 살아 돌아왔다고 말하고 협조를 구해.”
“그래서 언니가 본인 손으로 사랑하던 사람을 죽이게 해요? 아니면 다른 헌터들이 도준우 사냥하는 꼴을 언니가 다시 보게 하나? 조태양 헌터님은 그랬으면 좋겠나 봐요? 헌터님이 기다리는 아내분이 괴물이 되어 돌아왔을 때, 그렇게 하실 거예요?”
대답 대신 뭔가 돌아왔다. 머리가 핑 돌며 눈앞이 아찔해진다. 구역질 나는 느낌. 지호는 비틀거리다 도훈의 팔을 잡았다. 옆에서 귀찮게 치대더니 어느새 앞에 가 있었다. 낯선 구도. 그리고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필요할 땐 도와달라고 하더니 사람을 공격해? 이거 파트너인 척하더니 속이 새까만 새끼네.”
“미안, 미안하다. 나는 감정이 격해지면 능력이 표출돼서 그래. 고의가 아니었어. 네가 말한 것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서 도움을 요청하는 거야. 차라리 그 수가 적지 않아 사람들이 그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자.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이 다 같이 돌아오는데 어쩔 거야. 다른 사람들 눈도 있는데, 그걸 다 없던 일 취급하게 할 수 있겠느냐고.”
울렁거리던 속이 간신히 가라앉는다. 지호는 그에게 정신계 공격을 직접 가한 태양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진짜 고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공격당한 입장에선 좋게 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당황 가득한 얼굴이 화를 누그러뜨린다. 지호는 노기를 눌러 참으려 애쓰며 날 선 말을 내뱉었다.
“당연히 그럴 수 있겠죠. 사람 흉내 내는 괴물이랍시고 도플갱어의 정보가 헌터 웹에 뿌려져 있어요. 저들은 돌아온 그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균열로 끌어들이기 위한 악랄한 괴물일 뿐입니다, 하고 선동하며 모두를 죽이는 결말 같은 건 상상이 안 가시나 봐요? 어른이 왜 그렇게 대책이 없어요?”
“정부에도 우리 쪽 사람이 있어. 언론에도 마찬가지고. 오히려 고립된 건 헌터들 쪽이지. 힘은 있지만 다른 사람들 의견을 모을 줄은 모르는 자들의 집단이 헌터 협회야.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소중한 사람들을 영영 찾지 못하게 되는 일뿐이고.”
한동안 보이지 않던 괴물들의 모습이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진짜 위협적인 포식자 위치의 괴물들이 부근을 완전히 떠났다는 의미다. 그래도 지호 부근에 다가오지는 않았는데, 도훈 쪽으로는 슬쩍 다가오기도 했다. 놈들이 보기에 도훈은 그렇게 위협적인 괴물처럼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헌터들을 등지고 실종자들을 구하겠다는 거군요.”
“그래.”
“그럼 여태까지 사람들을 지켜 왔던 헌터들은 어떻게 되는데요? 그 사람들의 희생을 무가치한 거로 만들고 있잖아요. 그러겠다고 말하는 거잖아요, 지금.”
코드 레드 경보가 다시 뜬다. 퀸 패러사이트의 출현 장소가 이곳과 멀지 않았다. 날아가면 몇십 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태양은 지호의 말에 솔직히 대답해 그를 끔찍한 기분에 빠트리는 대신 딴소리로 말 돌리는 걸 택했다.
“지금 헌터 협회는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 있어. 하던 놈들이 잘하는 거지, 어쩌다 우연히 힘 얻은 호구들이 하면 뭘 얼마나 할 수 있겠나. 그들의 헌신과 희생은 언제나 칭송받을 거야. 그리고 그런 이들이 열심히 현장을 뛸수록 다른 재주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일해야 하는 법이라고. 원래 뒤에서 보는 이들 시야가 더 넓잖아.”
“갑자기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헌터들은 착한 멍청이들이지만 바보들은 아니야. 알면서도 당해 주는 거고. 우린 사람들을 구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구제하고 지원하고 챙기며 살 수는 없어. 임보현이 너를 거둔 건 특이 케이스였지. 하지만 나머지는? 무얼 붙들고 살 것 같으냐? 나라가 자기 역할을 하는 것만도 기적이야. 그래서 속아 주는 거야. 하지만 그건 일선에서 뛰는 헌터들 이야기지. 협회가 하는 건 정보 통제와 헌터 보호, 언론 통제 정도밖에 없군. 그마저도 효과적이지 않아. 특수반처럼 뒤에서 더러운 일 처리하며 정보의 통제가 이루어지는 방식을 알게 된 사람들이 딴생각하게 된 건 당연하지.”
특수반 소리가 또 나오자 김 반장의 험악한 얼굴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가 다른 헌터들 모르게 처리하던 일들을 약간 엿보았던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특수반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선동하겠다는 거군요.”
“선동이 아니야.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것들을 알려 주면 협조는 자연히 따라오는 법이니까. 그리고 너도 바라는 일 아닌가? 네게 비판적이던 헌터들도 협조하게 될 텐데.”
“어떤 식으로든 정보를 왜곡할 셈이잖아요. 결국, 사실이 밝혀지면 사람들은 다시 등을 돌릴 거예요.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죠.”
“아니면 세뇌를 시키거나.”
도훈이 끼어들어 던진 무시무시한 말에 대화의 맥이 툭 끊겼다. 물론 사람 하나 망부석처럼 세워 두고 둘만 티격태격했으니 언제건 대화를 비집고 들어올 타이밍이 있었을 터. 도훈은 웃지 않을 때면 서늘한 인상을 백번 활용했다.
“정신계 능력자들이 일부 요직 인사들만 세뇌해도 충분할 텐데, 왜 싸우고 있어?”
“그게 무슨…….”
“일반적으로는 꿈을 심는 게 편하지. 대놓고는 기억 조작을 시도할 수도 있고. 정신 계열 능력 있는 사람이 흔치 않으니 해 놓고도 안 걸려. 당한 사람도 자기가 무슨 일 당했는지도 모른 채 심층 기억 속에 타인이 심어 둔 이미지를 쫓아 달리게 되지. 이만큼 효과적인 방식이 또 있어?”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고 말할 수 있어?”
태양이 말없이 서 있는 게 신경이 쓰였다. 문득 옛 기억을 떠올린 지호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임시 헌터 시절, 깨어나지 않았던 보현이 꿈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
홀로 위험한 곳에 뛰어들던 지호를 걱정하던 꿈이었다. 그때는 보현 생각을 너무 한 나머지 꿈에까지 나왔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