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57화 (158/260)

157화

18. 의견들

“잠깐만요!”

지호는 질겁하며 손부터 뻗었다. 보현은 균열 안정기가 아니기에 당연히 멈추었고, 준우는 지호의 행동 때문에 멈추었다. 둘은 비슷한 타이밍에 입을 열었다.

“당연히 아직 안 들어가요. 반나절은 더 남았다고요.”

-유언이라도 남기고 싶어졌나?

준우의 목소리까진 들리지 않는다. 경계 저편이라 당연했고, 지호가 감지 파장을 뻗은 상태라 입 모양으로 유추될 뿐이었다. 지호는 도훈에게 속삭였다.

“저쪽에서 하는 말 좀 전해 줄래요?”

“저쪽?”

“경계 밖에 의사소통 가능한 괴물이 있어서요. 저기서 말하면 저는 안 들려서요.”

도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호와 같은 방향을 응시했다. 태양은 도무지 진정되지 않는 눈으로 둘을 번갈아 보다가 욕설과 함께 청라 방면 임시 캠프를 노려보았다. 지호는 우선 눈으로 보이는 보현에게 고개를 저으며 그를 만류했다.

“이쪽 캠프 닫아요. 경계 너머에 괴물들이 있으니까.”

“경계 너머라고요?”

“경계를 오가며 사람들 습격하는 지능 높은 괴물들에 대한 기록 읽어 보셨잖아요. 저희가 지나온 검암역 근처에 임시 캠프가 있어서 그쪽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도 거길 노리지 않았어요. 안정기가 오면 넘어올 자들을 노리고 덫을 놓은 것처럼 움직인다고요.”

보현이라면 당연히 확인했을 것이다. 가장 주의해야 할 위협 중 하나로 부상했으니. 보현은 색이 변하기 시작하는 경계 부근에 멈추어 선 채 지호를 응시했다.

“균열이 안정되고 우리가 그쪽으로 넘어가며 습격당하는 일이나 지호 씨가 그 괴물과 함께 있으면서 겪게 될 위험이 다르지 않아요.”

“아뇨, 달라요. 완전 다르죠. 도훈 씨와 저는 명백한 목적을 갖고 협조하는 관계예요. 하지만 경계 뒤편 저 괴물들은 저뿐 아니라 여기로 넘어오는 이들을 먹을 생각이겠죠.”

준우는 지호가 다른 헌터에게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약간 다른 방향으로 얼굴을 돌렸다. 구형 헌터복에 선글라스. 여전히 헌터처럼 보이는 외형이다. 그가 뭐라고 이야기하자 도훈이 눈을 찡그리며 그 말을 그대로 읊었다.

“그쪽에 헌터들이 있나? 잘 찾아왔군, 이라는데.”

“절대 못 넘어오게 막을 거예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호 씨, 우릴 막겠다고요? 그 괴물이 아니라?”

“아니, 언니한테 한 말이 아니에요.”

“균열 밖에 그 헌터도 와 있나, 라니 저쪽 밖에 있는 헌터와 저자가 아는 사이인가?”

총체적 난국이었다. 태양은 지호가 양쪽에 대고 외치는 말을 들으며 얼굴을 뻣뻣하게 굳혔다. 도훈이 전해 주는 말이 그를 긴장시켰다.

“이 앞에 퀸이 있는 거냐?”

“아뇨, 그 호위대 중 하나가 말할 수 있어요. 전직 헌터였던 것들 중 하나요.”

지호의 감각이 준우에게 집중됐다. 이전에 봤을 때와는 좀 다르다. 그가 보현을 그 헌터라고 부르는 부분에 이질감을 느낀 지호는 도주 준비를 한 채 바짝 긴장했다. 헌터들이 보현 뒤로 머뭇거리며 다가온다. 지호는 눌린 용수철처럼 튀어 나갈 태세를 유지했다. 보현은 여느 때처럼 차분히 질문했다.

“균열 뒤 괴물에게조차 경계를 늦추지 못하면서 어떻게 괴물을 사람으로 보자는 말을 해요?”

“저는 모든 괴물을 호의적으로 보자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괴물 중에서도 인간일 적의 기억이 있고, 자신을 인간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해치지 말자고 하는 거고요. 누가 자기를 죽이려는 이에게 아낌없이 살을 내어 주려고 하겠어요. 저 역시 제게 이빨 드러내는 괴물 대다수를 경계하고 두려워해요. 하지만, 분명 대화만으로 서로에게 칼을 겨누지 않아도 되는 이들이 존재한다고요.”

“그 소수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기엔 헌터들의 수는 너무 적어요. 우린 다 지쳤고요. 지호 씨는 이제 각성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아직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우린 거기에 찬성해 줄 수 없어요. 다른 헌터들을 대신해 말하러 온 거예요. 은퇴한 헌터인 나조차 아는 사실을, 지호 씨는 모르고 있으니까.”

“아뇨. 어떻게 모르겠어요. 제가 괴물 모두를 친구로 받아들이자고 말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럼 어떤 괴물이 친구이고, 어떤 괴물이 사냥 대상인지는 누가 결정하죠? 기억이 남아 있는 척한다면 어떻게 알아보나요?”

“그건, 기다리는 사람들이…….”

“실종자 가족이 기다리는 괴물은 인간인 셈 쳐 주고 기다리는 이 없는 괴물은 괴물로 남겨 두나요?”

지호는 입만 꾹 다물었다. 보현을 설득하기 위해선 결국 균열 저편에서 그들의 반쪽짜리 대화를 듣고 있는 준우의 존재를 드러내야 한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도준우는 경계 쪽으로 넘어오진 않고 있다. 지호와 보현의 대화에 끼어들지도 않았다. 도훈이 제 말 옮기는 것을 응시하다 입을 다물어 버렸으니.

어쩌면 헌터들을 함정에 빠트리기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 좋으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호는 준우가 보현 앞에 나타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임보현의 존재가 괴물 측으로 넘어갈 때의 효용성 역시 가장 잘 아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떠올린다.

지호는 괴로운 얼굴로 방벽의 두께를 두껍게 했다.

“무엇이 사람을 사람으로 부르게 하죠? 아직 모르겠어요. 저는 괴물의 모습을 한 이들을 사람이 아니라고 무작정 배척할 수 없어요. 그건 그런 모습이 되어서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에요. 언젠가 그들을 구해 줄 이들이 돌아오리라 믿고 거기에서 어떻게든 생존했을 텐데.”

“그런 삶을 이어 가게 하는 게 더 잔인하지 않을까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람인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들이 그런 모습으로라도 살아남고 싶어 했다면 그 삶을 함부로 끝내는 거야말로 무자비한 폭력이겠죠. 그 사람들도 살고 싶어 해요.”

보현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는 대답 대신 안타까운 표정으로 소매를 걷었다. 예전에 선경이 지호에게 주었던 시제품과 비슷한 장식이다. 균열에서 몸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쓰는 물건.

“서로 의견이 통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제가 여기까지 오기 전에 일이 해결되었겠죠. 이걸 사용하고도 제가 균열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될 거예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불에 뛰어들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죠. 제게는 제 피보호자를 일깨울 책임이 있어요. 헌터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저를 따르던 지호 씨 같은 신출내기 각성자가 있었고, 그때는 어리석은 선택을 말리지 못해 그 친구를 잃었죠. 그런 상황을 반복하지 않겠어요. 제 몸을 던져서라도 지호 씨를 막을 거예요.”

끝끝내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보현 입에서 튀어나왔다. 지호는 울 것 같은 심정으로 간신히 미소를 만들었다.

“저한테 해 준 적 없는 이야기네요. 늘 그렇죠. 필요한 이야기만 해 주잖아요. 맞아요. 언니는 그렇게 하겠죠. 저를 아낀다는 핑계로 그렇게 하겠죠. 그것 역시도 저를 향해 휘두르는, 저의 동의가 없는 폭력이란 사실을 알면서 그렇게 하겠죠. 제게 남은 유일한 마음 붙일 대상이 언니라는 사실 때문에 그 자해와 같은 행동을 내버려 두지 못하고 멈추고 만다는 사실을 알면서 기꺼이 그렇게 하겠죠. 제 애정과 마음을 이용하겠죠.”

“다른 이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라며 하는 충고예요. 그렇게까지 거부할 일인가요? 다 지호 씨를 위한 거예요.”

“아녜요. 그건 언니를 위한 거죠. 파트너를 잃고 트라우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약한 전직 헌터나 할 법한 선택이라고요. 언니가 좀 더 명확히 현실을 본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언니가 아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지 마요.”

“지호 씨.”

보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 튀어 나가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제가 언니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약점으로 휘두르려 하지 마세요. 언니를 아끼고 좋아하기 때문에 다치지 않기를 원하지만, 자기를 해치겠다는 협박으로 저를 옭아매는 건 비겁한 일이에요. 제가 언니를 스쳐 지나갈 뿐인 평범한 헌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아무 의미 없는 협박이기도 하겠죠. 언니는 제가 그러기를 바라요?”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정면!” 하고 소리친 태양이 지호의 등 뒤로 돌아가 그를 지지하며 신호했다. 행동의 의미를 깨달은 지호는 균열 저편에서 눈을 떼며 감지 파장에 집중했다. 어느새 괴물들이 꽤 가까이 와 있었다. 도훈이 외친다.

“왼쪽 위!”

지나치게 무성의한 신호였으나 최소한 힘을 집중할 방향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좌측 방벽 두께를 높이자마자 바닥을 뚫고 뭔가가 솟구친다.

“위라면서요!”

“위에서도 와!”

비명 같은 도훈의 목소리와 함께 위에서도 뭔가가 지호를 내리찍었다. 방벽은 순식간에 깎여 나갔으나 뒤에서 받쳐 주는 힘이 있어 뒤로 밀리지는 않았다. 혼자 부딪쳤으면 몸까지 찢겨 나갔을 것이다.

듣고만 있으려니 영 재미없어서. 애정을 약점으로 이용하다니, 인간성이란 참으로 오묘하구나.

머리를 울리는 메시지.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지호는 당황하며 나머지 둘을 돌아보았다. 도훈이 지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간섭해서 침식할 레벨은 아니야. 나 있으니 걱정하지 마. 그리고 직접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말하는 걸 다 전달하질 않았더니 심술부리네.”

“머릿속에서 막 소리가 울리는데요?”

“어. 퀸 패러사이트는 발성 기관이 없거든. 사실상 다른 개체를 침식하고 조종하는 것에 모든 기능이 쏠려 있는 돌연변이라서.”

“몸이 약한가 보죠?”

“그래서 호위대를 두잖아. 다른 놈들과 달리.”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한 차례의 공격이 다른 방향에서부터 방벽을 때렸다. 깡, 깡깡! 금속 부딪치는 소리 요란한 것이 불길하다. 최근 만난 놈 중에 비슷한 재질 가진 놈이 있었으니.

“저게 어떻게 여기까지!”

“냄새 같은 걸 맡을 수 있나? 저놈을 먹은 적은 없어서 어떤 방식으로 사냥감을 쫓는 건지 잘 모르겠어.”

손예린 헌터가 지호를 공장에 버리고 갔을 때 만났던 놈이다. 금속 먹는 놈이라 그런지 몸을 이루고 있는 외피마저 단단했다. 거기에 모습은 안 드러내고 시간 차이를 두고 공격을 가하는 정체불명의 괴물이 또 하나.

균열 어플 알림이 울린다. 괴물 발견 알림이었다. 경계 바깥에서 이쪽 자료를 채증하고 있는 카메라들이 보인다. 보현의 얼굴이 굳어 있다. 그쪽을 오래 살필 겨를이 없었다. 거친 돌격에 울컥 치미는 욕지기. 충격에 속이 울렁이자 놈들을 피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지러워요. 공격을 막기만 했을 뿐인데…….”

“네 눈엔 안 보여도 여기가 지금 꽤 혼란스러워. 미안한데 움직이지 마라. 못 버티면 다들 좀 위험해.”

태양의 음성이 다급했다. 아까부터 말 없는 도훈 역시 신경 쓰인다. 방벽 위쪽을 내리찍어 찢을 것처럼 이쪽으로 달려든 놈이 방벽에 톱니 같은 이빨을 쑤셔 박은 순간 지호는 기지를 발휘했다. 일순간 방벽이 물러진다. 놈의 이가 방벽을 거의 뚫기 무섭게 도로 강화. 아가리를 벌린 채 위쪽에서 길쭉한 몸을 휘두르는 놈은 본 적 있는 종류의 괴물이었다.

아직 임시 헌터였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때는 막는 것조차 버거웠다. 지금도 혼자서는 상대하기 어렵겠지만, 다행히 든든한 일행들이 있었다.

“옛날엔 만만했지?”

지호는 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에 맺히는 에너지.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기 무섭게 금속 먹는 놈이 또 달려든다. 버티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면 한쪽은 최소한의 에너지로 막는다.

일전, 보현이 쓰러지던 균열에서 만났던 용 같은 괴물이 발톱으로 방벽을 할퀴고 긁어 대며 난리를 피웠다. 바깥이 흙먼지로 자욱해진다. 그러나 방벽에 박힌 이빨은 빠지지 않은 상태.

지호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놈의 아가리를 향해 모은 에너지를 쏜다.

힘이 쏘아지는 충격을 막느라 태양이 앓는 소리를 낸다. 무릎이 반쯤 꺾일 뻔한 것을 도훈이 발로 눌러 밟아 버틴다. 눈을 부라리지만 도움되는 행동이라 욕만 뱉고는 도로 다리에 힘을 주는 태양. 흙먼지 가득한 저편을 응시하는 도훈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해 있었다.

괴물의 머리 뒤를 뚫고 빠져나간 에너지체가 경계면에 닿기 전 힘을 풀어 없앤다. 화살에 집중되었던 힘을 없애자 거의 다 뚫린 방벽으로 남는 에너지를 돌릴 수 있었다. 한 차례의 충돌, 여러 차례 울리는 알림. 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우리가 싸우고 있는데 뭘 자꾸 새 괴물 알림을!”

“아니야, 코드 레드 경보다. 여기 말고 다른 쪽에서!”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코드 레드 원인 퀸 패러사이트는 이쪽 균열 너머에 있을 거고, 코드 레드 투 도플갱어는 지금 지호 옆에 있다. 도훈은 냉큼 선수 쳤다.

“미리 말해 두는데 다른 괴물들 하듯이 몸을 쪼개는 거 나는 못해. 이쪽 용어로는 분화한다고 하는 그거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내 체질이 좀.”

“그럼 뭐예요? 다른 곳에서 코드 레드 경보가 울릴 리가…….”

“왜? 이 앞에 본체가 있는 건 아니야. 놈의 위협적인 호위대가 와 있을 뿐인데. 충분히 다른 데서 울릴 수야 있겠지.”

“호위대를 두고 다른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말했듯이, 먹음직스러운 헌터들이 곳곳에 가득할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야. 너만큼 눈독 들일 법한 게 많지는 않겠지만, 강한 숙주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야. 그사이에 숙주를 더 늘렸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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