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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56화 (157/260)

156화

“경계 위치를 가늠하며 이동 중인가 봐요. 전에도 한 번 그런 적 있어요. 경계 저쪽 편에서 나타나서 사람들을 공격하려고 했었죠.”

도훈은 휘파람을 불었다. 태양은 언짢아했으나 그가 덧붙인 말이 충돌을 멈췄다.

“그거 엄청 어려운데. 경계란 거 우리 눈엔 안 보인다고. 실제로는 지금 이 거리처럼 보인단 말이야. 너희 눈을 속일 정도로 능숙하게 경계 너머로 모습을 감춘다? 어지간히 머리 좋은 놈들도 시도하려고 하진 않을걸. 그렇게 튀어나왔다가 등 뒤로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고.”

“하지만 퀸은 그렇게 하잖아요?”

“너희한테 위협이 되니까 우리를 되게 강한 놈인 것처럼 부르고 있는 것 같은데, 보다시피 나는 전투에는 그리 소질이 없고 그건 퀸 역시 마찬가지야. 놈이 신체적으로도 강한 놈이었으면 여왕이 내버려 뒀겠어?”

태양이 시비를 걸 것 같지 않자 도훈은 그에게 싱긋 웃어 주며 자기 생각을 설명했다.

“다른 개체를 잠식해서 조종할 수 있다는 건 꽤 유용하겠지. 하지만 자기가 강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놈과 마주쳤을 때 별로 위험하단 느낌은 못 받았어. 오히려 위험해 보이는 건 그놈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괴물들이었거든.”

“퀸 패러사이트가 그렇게까지 위협적인 괴물은 아니라고 말하는 거예요?”

“내가 보기엔 그렇던데. 하지만 너희에겐 놈의 힘을 막을 능력이 없으니 위협적이라고 안 하긴 어렵지. 특히 너 같은 것들 말이야. 지금 당장도 휙 흔들면 쏙 넘어올 것 같은 매력적인 먹이들은. 아무래도 노리고 싶겠지.”

태양의 이가 우득 갈리는 소리가 났다. 다시금 퀸 패러사이트의 신호가 사라진다. 여태 나타났던 세 곳의 위치를 추적하면 남쪽으로 기운다. 그들의 목적지와 겹치는 곳이기도 했다.

“어떻게 할래? 다시 연락해서 다른 곳으로 오라고 해?”

“언니가 들어줄 것 같진 않네요. 귀찮으니까 그냥 들어와서 보자고 할 거예요.”

퀸 패러사이트가 왜 남쪽으로 움직이는지 알 방법은 없다. 지호는 초조한 심경을 숨기지 못하고 지도를 빤히 노려보았다.

정식 헌터가 되면서 접근할 수 있게 된 정보들은 오히려 지호를 불안하게 했다. 퀸의 움직임은 노골적이다. 어쩌면 청라 부근에서 임시 캠프를 차려 둔 헌터들을 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퀸 패러사이트의 옆에 있을 얼굴을 떠올리자 속이 울렁거렸다.

보현이 보이는 괴물을 향한 적대감 상당수는 퀸 패러사이트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그가 잃은 소중한 사람 때문에. 보현은 그가 사랑했던 이가 돌아와도 괴물이라느니 하는 이야길 했지만, 그건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정말로 준우를 만나게 되었을 때의 보현이 염려됐다.

“언니가 퀸 패러사이트와 접촉하게 두면 안 돼요.”

“임보현의 상태가 전투에 적절하지 않은 건 알아. 그건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거다.”

“알고도 들어올 사람인 게 문제죠. 언니를 움직이는 동력은 복수심이에요. 퀸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움직이기 시작했을지도 몰라요. 저는 핑계일 거고.”

지호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보현은 현실적인 사람이다. 지호가 괴물에게 넘어가니 마니 하는 걱정도 물론 고려 대상이긴 하겠지. 그러나 그 상태의 본인이 직접 움직이는 까닭?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었다.

“도훈 씨, 혹시 퀸이 저를 어떻게 하려고 하면 막아 줄 수는 있어요?”

“당연히. 하지만 말했듯이 내가 그 옆에 있는 놈들까지 상대하기는 어려워.”

“상관없어요. 퀸이 저를 그놈들과 똑같이 만드는 것만 막아 줘요. 놈들 상대는 어떻게든 해 볼게요. 갑자기 도훈 씨로 목표를 돌리거나 그러진 않겠죠?”

알 수 없는 일이다. 확실한 것이 없어 의견을 정하기도 어려웠다. 모르는 괴물에게선 마정석을 추출하고, 신체가 여러 가공에 쓰이는 괴물은 놔둔 채 수거 팀에 연락을 보냈다. 확인 표식이 돌아온 뒤 태양은 혀를 찼다.

“원래 번개처럼 가져가겠다고 뜨는 게 정상이야. 여기서 사냥한 헌터에게 절반 수수료 내고 가져갈 수 있거든. 당연히 남는 장산데, 이쪽 사람들도 헌터들 눈치를 보고 있나 보군. 나랑 네가 같이 있다는 게 알려졌으니.”

“무슨 상관이에요.”

“상관있겠지. 헌터들 간의 알력 다툼에 끼면 피곤해져. 미움 사는 놈들은 시신 수거 허락을 못 받는다고.”

그나마 아직은 태양이 지호와의 관계를 어정쩡하게 유지하고 있어 이거라도 가능한 거라며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보통 헌터들이 누구를 이렇게까지 배척하는 일은 없다고. 전에 동료들 먹이로 두고 튄 새끼도 이렇게까지 미움받진 않았을걸.”

지호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누구도 해치지 않았고,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았는데. 그저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사람은 타인을 배척한다.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방관하기도 하고.

손예린 헌터와 그 팀의 얼굴들이 떠올라 괴로워졌다. 지호는 서둘러 이동하자며 신호했다. 괴물 시체를 근처 건물 옥상에 올려놓고 마커를 찍은 태양은 마무리 뒤 수거 팀과의 메시지 교환을 마쳤다.

“괴물이 와서 먹지만 않으면 대충 수거되겠지만, 위치가 균열 중심 근처라 한동안은 어렵겠지. 수거 팀 사람하고 좀 아는 사이라 내 의뢰를 받았다고 했는데, 너를 설득하면 좋겠다는데.”

“부질없는 희망이네요.”

태양은 쓴웃음을 지었다. 피차 의견 변할 일 없음을 잘 아는 둘은 별다른 이야기 없이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조금 거리를 둔 채 도훈이 따라붙는다. 처음에는 지호와 바싹 붙어 있더니 퀸 패러사이트의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일부러라도 거리를 유지했다. 태양이 아니꼬워한 까닭도 있었지만, 지호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편이 낫다고 했다.

“음흉한 놈이야.”

“정신 계열 능력자들은 다 그렇다면서요?”

“어떤 새끼가 그래?”

“우리 팀장님이 정신계 능력자들 별로 안 좋아해요.”

“뭐? 아, 부천 센터장 박찬민.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다고요?”

“지금 활동하는 정신계 계열 헌터들 보면 대부분 2세대거든. 그때 수도권 등지에 나타났던 균열들 성질이 좀 그랬어. 아마 우리도 영향을 받았겠지. 그때 나타난 괴물들 때문에 피아 식별이 안 됐었어. 자기 손으로 타인을 해치는 사람까지 있었거든.”

“말도 안 돼요.”

“이번 균열 성격은 아직 모르겠는데, 잘 생각해 봐라. 일반 균열의 대표적인 특징은 뭐냐?”

몇 번 만나지 않았던 일반 균열이다. 그러나 특징 정도는 당연히 알았다. 지호는 뭐 그런 걸 물어보냐는 얼굴로 답했다.

“환경적 변화가 생기는 거죠. 내내 비가 오는 곳도 있고 벼락 치는 곳도 있고 전파가 안 통하기도 하고…….”

“맞아. 그때 열렸던 균열에선 그런 정신적 작용이 있었어. 괴물에게 죽은 사람은 다른 균열에 비해 적었는데, 희생자는 훨씬 많았지. 그리고 거기서 헌터가 된 사람 절반 이상이 정신계 능력자였어.”

“각성하는 데 환경적인 요소도 작용하나 보군요.”

“알 수 없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균열에서 살아남으면서 인간 불신이 심해졌다고들 하더군. 박 팀장도 2세대였으니까. 그때 일로 인해 특히 특수반 소속들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일걸. 덕분에 우리 일에 딱히 간섭하지 않는 윗분 중 하나긴 하지. 그냥 엮이는 것 자체가 싫은 모양이야.”

바닥을 밟는 소리가 경쾌했다. 내려서자마자 지반이 무너졌으나 감지 능력으로 이미 덫을 파악해 아래에서 아가리 벌린 괴물의 입으로 이형 에너지 화살이 연달아 꽂힌다. 목구멍을 찢긴 괴물이 절명하자 지호는 빠르게 마정석을 추출했다. 한나절 걸리던 태양의 솜씨와 상반됐다. 그는 떨리는 눈으로 지호와 괴물을 번갈아 보았다.

“다른 놈들 말대로 안정기 되자마자 다른 팀으로 빠져나갈지 그냥 모른 척 이 고성능 마정석 추출기랑 다녀야 할지 고민되잖아.”

“내키지 않으면 가셔도 돼요.”

“동주 형 오면 안 그래도 갈 거야. 더 유혹하지 마라. 안 그래도 손 떨려. 그게 다 얼마야?”

지호의 손안에 든 엄지손톱만 한 마정석은 뒤가 다 비칠 정도로 투명했다. 전에 각성자 연합에 처음 갔을 때 보현이 마정석 추출 작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건 보현 기준의 아무나가 아니었을까. 효율 떨어지는 방식의 작업으로도 돈깨나 만진다며 이 위험한 현장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심경이 복잡했다.

사냥꾼과 충돌했다며 지원 요청 신호가 뜬다. 북쪽이라 지호 이동 지점과는 반대였다.

“다른 놈들이 갈 거야. 어차피 가 봤자 삼파전밖에 더 되겠냐.”

신호가 뜬 뒤 지도를 한참 노려보는 지호에게 조언한 태양은 아쉬워하는 얼굴에 대고 한 소리 했다.

“이미 마음 정했잖아. 임보현을 위해 생존자를 포기하기까지 했고.”

“조태양 헌터님은 생전의 민도훈 헌터님하고 친했었다고 했죠. 애석하게도 도플갱어에게 당한 거라 저렇게 보면 껍데기만 같지 속은 다를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녜요. 좀 다르거든요.”

“뭐가 어떻게 다르겠어. 아무튼, 괴물인 건 똑같잖아.”

“그걸 설명하려면 제가 괴물이어야 할 것 같은데, 얼추 듣기로는 여전히 자기를 사람처럼 느끼는 것 같았어요. 그때의 기억도 갖고 있고.”

“균열 넘어가서 실종자들 만났을 때 들은 거냐?”

실종자들은 지호를 다짜고짜 공격했었다. 함정에 빠트리려고 했었고. 지호는 준우에게 들었던 사실들을 교묘하게 그쪽 공으로 돌리며 담담히 답했다.

“도훈 씨는 자기가 특이해서 다른 괴물들이 노리는 거라고 했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를 거예요. 하지만 그걸 이해시키려면 괴물이 된 사람들과 만날 만한 다른 헌터가 필요하겠죠.”

“이해는 무슨 이해. 네가 공개 브리핑에서 말했던 거 다들 들었어. 그래. 괴물의 몸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겠지. 하지만 너 스스로 네가 한 말을 돌이켜 봐. 실종자들은 괴물이 되었어. 사람의 의식이 있으면 뭘 해. 그놈들은 괴물이잖아.”

“그건…….”

“아니라고 못 하겠지? 사람은 보이는 것에 영향을 많이 받아. 나조차 내가 괴물에게 먹혔다가 그걸 이겨 내고 정신을 차린다고 해도, 겉모습이 괴물인 상태면 나를 인간이라고 주장하진 못할 것 같은데.”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괴물이 된 실종자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건 아니지만, 그들은 자신을 당연히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멀리는 퀸의 제물 농장 무리부터 흰 구슬 비 내리는 망가진 빌라의 환이에게까지 생각이 닿는다.

고민하는 사이 지원 요청을 수락한 헌터 팀이 여럿. 다행스러운 일이다. 태양 팀은 청라 쪽으로 이동했다. 괴물을 잡고 혹시 모를 습격을 방지하기 위해 주변을 수색하며 느리게 움직이느라 본래보다 이동 시간이 길었다. 지호야 튼튼하니 괜찮았으나 태양은 꽤 지쳤고, 도훈 역시 내내 떠들던 입을 다문 지 오래다.

균열 경계가 가까워지자 불안감은 배가 됐다. 아직 균열 안정기가 안 됐다. 밤이 깊다 못해 해가 떠오를 시간이라 주변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구어어. 멀리서 들리는 괴물 울음소리가 가깝다. 또 교전을 치러야 할까? 바짝 긴장하는 와중에 도훈이 지호를 불러 세웠다. 시선 닿는 곳이 멀다. 지호는 저도 모르게 그쪽을 향해 감지 파장을 뻗었다.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부근에 다가온 위협적인 개체가 없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벌인 반사적인 움직임.

지호는 넘어갈 수 없는 저편으로 빠져나간 지호의 힘이 뭔가에 닿는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서늘한 감각. 도훈이 사나운 웃음을 터뜨렸다.

“망할. 진짜 왔잖아.”

감지 능력 없는 태양은 바짝 얼어붙은 채 둘 옆에 붙었다. 지호의 힘이 정면에서 좌우로 갈라지며 주변을 넓게 훑었다. 고작 몇백 미터쯤 떨어진 위치에 뭔가 잡힌다.

“뭐가 와?”

“내 눈에 지금 여기 오면 안 될 놈이 보이거든.”

“내 눈엔 헌터들 모여 있을 캠프만 보이는데.”

“경계니까 당연히 우리 눈에 다른 게 보이지 않겠어? 나는 어디까지가 경계인지도 잘 모른다고.”

감지 파장에 닿은 것을 인지하기 무섭게 지호는 펄쩍 뛰었다. 그의 감각이 말해 주는 모양새 때문이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와 있었다.

“퀸 패러사이트는 다른 곳에서 목격된 거 아니었어요?”

“목격되었다고만 했지 어디서 발견되었다고는 안 했었잖아. 하필 발견 지점이 근처였나 보군. 밖에 퀸이 있냐? 경계 너머에?”

태양의 답변에 고개 끄덕이는 지호의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캠프가 멀지 않다. 유독 발달한 시각 때문에 경계 저편의 모습이 또렷이 보인다. 안정기가 되자마자 진입하기 위해 후발 주자들이 대기 중이었고, 헌터들 사이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보현이 익숙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시에 지호에게 잡힌 감각 너머에서 준우의 힘이 섬뜩할 정도로 날카롭게 그의 파장을 흩어 버린다.

지호는 헌터들 사이에 선 보현을 보며 동시에 시체들 사이에 선 준우를 느꼈다.

욕지거리가 날 정도로 선명한 대조.

두 사람이 동시에 경계 쪽으로 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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