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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55화 (156/260)

155화

태양은 버스 정류장 의자에 눕혀 놓았던 생존자를 짐짝처럼 어깨에 얹었다. 주변 건물을 둘러보니 침구류를 판매하는 가게가 부서진 곳 없이 멀쩡하다. 안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위치에 해당 생존자를 내려놓은 그는 위치 정보를 곧바로 송신하며 매장을 봉쇄했다.

“균열이 사라지기 전에 누가 여기 들어오면 곤란하니 헌터들에게 연락은 취했다. 와서 이 사람 목숨 줄 끊을 쓰레기까진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사냥꾼 보기에도 건드릴 부류는 아니야. 마정석도 없고.”

“사냥꾼이요?”

“어. 일반 균열이라 그런 놈들도 마주치긴 할 거다. 이 사람보단 이 새끼가 문제겠지.”

입만 열면 싸움이 시작되는 탓에 태양과 지호가 대화를 나눌 동안 정도는 입을 다무는 미덕을 보이던 도훈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쩌라고, 하는 태도라 태양은 금세 욱했다. 사냥꾼들의 이야기는 잘 들은 적이 없어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헌터 아닌 일반 각성자들이 어디 기업 같은 데 속해서 마정석을 얻으러 들어오는 거죠?”

“아니. 각성자들은 아니야. 뒷구멍으로 빠져나간 정보나 헌터들이 쓰지 않게 된 구형 장비들 사 가지고 약한 괴물들 위주로 잡으러 다니는 새끼들이 있거든. 일반 중화기나 특수한 장비들도 사냥하는 데 동원해서 괴물보다 위험할 수도 있어.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갑자기 전기 충격기로 너를 지지면 아무리 튼튼해도 충격받을걸.”

“헌터를 공격해요?”

“마정석을 뺏으려고 그러는 경우가 종종 있어. 혼자서 사냥꾼과 마주치게 되면 꼭 지원을 요청하라고 배우지 않았나? 너희 교육 팀은 대체 뭘 가르치는 거야?”

임시 헌터 교육이 속성으로 바뀌어 예전처럼 자잘한 것까지 알기는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는 태양은 교육관들을 욕하기 바빴다. 지호는 가물가물하게 남아 있는 사냥꾼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려 애썼다. 물론 남은 게 있을 턱이 없다. 배운 게 없었으니.

“일반인이 균열에 들어오는 건 너무 위험하잖아요. 군대처럼 저지력 충분한 장비로 무장하는 것도 아니고, 헌터들의 보호를 받는 것도 아닌데.”

“맞아. 목숨 걸고 들어오는 거지. 그래도 그렇게 빼돌리는 마정석이 적지 않다고 알고 있다. 헌터들 통해서 나가는 게 아니라서 외부로 나가는 수량도 정확히 알기 어렵고, 이쪽 정보 협조에 응하질 않아서 균열이 닫히는 사고도 한 번 있었어. 한 번뿐이었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잖아요.”

“맞아. 그래서 조심하라는 거야. 놈들을 발견한 헌터가 있다면 보고했을 텐데, 여태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아직 만난 헌터가 없거나 놈들이 괴물 먹이가 되었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들어오지 않았을 리는 없어.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것들이거든.”

각성자도 아닌데 마정석은 어떻게 추출하나. 지호의 의문에 태양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이형 에너지끼린 뭉치기 마련이거든. 순도 낮은 마정석을 죽은 괴물 시체에 두면 스며 나온 마정석이 거기에 들러붙어 크기가 커지지. 각성자들이 직접 작업하면 더 많은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지만, 힘없는 사람들에겐 나름의 방식이 있어서.”

새로운 괴물 보고가 줄기차게 올라온다. 일반 균열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그나마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들이 아직도 많아, 헌터들은 멀찍이서 새로운 개체를 관찰하고 자료를 남길 수 있었다. 태양은 사냥 지역들을 훑더니 지도에 선을 그었다.

“이 루트로 내려갈 거다. 중간에 산 넘을 때만 날아서 가고 나머지는 도심을 가로지를 거야.”

“사냥 보고 올라온 곳들 위주네요.”

“바로 출발하자. 지금 안 가면 다른 것들이 구역을 차지할 거야.”

도훈은 당연한 것처럼 지호 곁에 섰다. 구아악! 괴물 소리 같은 것이 들리며 동시에 세 사람의 시선이 한 곳을 향한다. 농구공만 한 크기의 생물. 몸 곳곳에 틈이 벌어져 있다. 입이 전신에 난 것 같은 모양새다. 네 다리로 기어 오는 속도가 상당하다. 파바박! 지호가 만든 화살이 생기는 동시에 놈들의 몸을 바늘꽂이로 만들었다.

“사냥꾼들은 강한 헌터를 좋아해. 근처를 따라다니다 보면 상대의 강함도 측정 못 하는 대놓고 약한 거 아니면 강한 것들만 나타나니까. 후자는 헌터가 처리해 주겠지. 전자는 그들의 것이고.”

“사냥꾼에게 협조하는 사람들도 있겠네요.”

“귀찮은 처리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겠지. 움직이자. 잡담은 나중에 해.”

세 사람은 지도 표기를 따라 신속히 움직였다. 달리는 동안 괴물과 몇 번 마주쳤고 크고 작은 전투를 거쳤으나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은 없었다. 전부 잔챙이들뿐이었다는 의미다.

지호는 그가 괴물들이 상대하러 달려오기엔 지나치게 강해진 걸까 생각했고, 동시에 너무 자신을 과대평가하다 갑자기 나타난 괴물에게 죽으면 어쩌지 하고 염려했다.

괴물의 머리를 이형 에너지 화살로 꿰뚫어 놈이 절명하는 것을 보는 지호는 자기를 툭툭 치는 도훈 때문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걱정하는 표정. 도훈은 또 바짝 다가와 지호를 응시하다 밀려났다.

“왜요. 정신계 뭐 있었어요?”

“네 표정이 안 좋아서.”

“뭐 괴물 잡으면서 웃어 대면 그거야말로 이상하지 않아요?”

“그건 아닌데, 뭐라고 할까. 이건 감이야. 헌터의 감은 잘 맞는다는 너희 격언도 있잖아. 이상한 생각 하고 있었지?”

지호는 피식 웃었다. 도훈은 아는 것이 많아 종종 사람 같은 소릴 내뱉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진짜 사람인 건 아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지호가 도훈을 점점 사람처럼 여기게 한다.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던 기분이 조금 부상했다.

“아뇨,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없단 생각이 들어서요.”

“네 덕분에 쏠쏠히 마정석 챙기는 저 헌터는 그렇게 생각 안 할걸.”

태양은 지호가 잡는 것들을 시신으로 내버려 두지 않고 일일이 정제했다. 두고 가면 아깝다는 게 첫째 이유요, 놔둬 봤자 다른 괴물이 먹을 텐데 괴물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없다는 게 둘째 이유다. 괴물에게 꽂았던 이형 에너지 화살을 없애며 지호는 고개를 으쓱였다.

“이거라도 쓸모 있다니 다행이긴 한데.”

“신경 쓰여?”

“뭐가요?”

“지금 신경 쓸 건 놓고 온 생존자겠지. 네가 선택해서 구하기로 한 거고, 또 네가 정해서 두고 온 거니까.”

지호는 도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 말이 맞지? 하고 으스대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차라리 그걸 고민 중이었다면 인간적이었을 것이다. 두고 온 사람에게서 눈을 돌린 이후, 지호는 그를 떠올린 적이 없었다. 지갑이며 핸드폰이며 신원 확인할 물건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탓에 이름조차 알기 어려웠던 생존자. 도훈의 말 덕분에 그를 상기한 지호는 씁쓸히 입꼬리를 올렸다.

“저보다 낫네요.”

“본인에게 없는 면이 보이면서 마음이 좀 동했어?”

“그놈의 입 좀 다물면 훨씬 좋을 텐데요.”

태양이 쓰러진 괴물들에게서 마정석을 다 추출한 뒤 허리를 폈다. 본래라면 앓는 소리깨나 냈을 법한 작업 시간이었지만, 신체 능력자 특유의 튼튼함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태양은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마정석 한 개를 지호에게 건넸다.

“챙겨 둬. 헌터는 이렇게 돈을 벌어야 한다고. 나중에 눈 감으면 생각나서 잠 못 이룰걸. 그때 그거 다 챙길걸, 하고.”

“이게 비싸요? 사방에서 펑펑 쓰잖아요.”

“정제된 걸 쓰는 거니까 필터 통해서 쓰면 하나를 꽤 오래 쓴다고. 순도 거르는 작업 없이 직거래로 팔아도 이게 몇십만 원 해. 클수록 돈이 되고, 투명할수록 뭉친 이형 에너지가 많으니 선호되는 경향이 있지. 정제하며 떨어져 나오는 것들조차 긁어모아 가루 형태로 필터에 넣어 알뜰하게 쓰는데 대놓고 펑펑 쓰긴 어렵지. 네가 본 게 임보현의 씀씀이라 그런 거 아니냐?”

지호가 사는 보현의 아파트엔 대놓고 마정석 펑펑 들어가는 치료기가 갖추어져 있다. 사는 데도, 유지하는 데도 돈이 상당히 들어갔을 터였다. 손바닥에 들어온 마정석은 불순물이 많고 거뭇하며 색이 고르지 않아 마정석이라고 부르기엔 무리 있는 물건 같았다.

“이런 것도 마정석이라고 불러요?”

“놀리는 거냐?”

태양의 인상이 확 찡그려졌다. 도훈은 지호의 손에서 서툴게 정제된 마정석을 휙 빼앗아 주먹을 쥐었다. 희미한 빛. 크기는 작아졌으나 투명도는 월등하고, 돌멩이에서 유리 구슬처럼 매끈해진 마정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양은 입을 쩍 벌린 채 도훈과 그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이렇게 하는 거지? 쉽네.”

“네가 어떻게 이형 에너지로……. 아니, 아니지. 그래. 도플갱어라서 가능한 거군.”

“원래 민도훈은 이형 에너지 계열이 아니긴 했어.”

도훈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지호에게 마정석을 돌려주었다. 방금 들고 있던 것이 십여만 원에서 백여만 원으로 가치가 뛴 물건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지호는 그냥 예쁘네, 하고 그걸 눈가에 가까이 댔다. 유리처럼 뒤가 비추어 보일 정도였다.

“이게 어려운 작업인가요?”

“이형 에너지 특성 없이는 아예 시도도 못 해. 다른 계열 능력자들은 팀으로 괴물을 사냥하고 기여도만큼 배분받는 편이지. 내가 하는 것보다 네가 하는 게 더 돈이 되긴 할 거다. 이것도 빈익빈 부익부야.”

태양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지호의 손을 따라 눈을 굴렸다. 몇 번 더 태양의 고개를 돌려 대던 지호는 주머니에 구슬을 쏙 집어넣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맞아. 그랬었죠. 헌터는 돈 많이 버는 직업이었지. 한때 그걸 위해서 헌터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잊었어요. 더 중요한 게 있는 것 같아서.”

“물론 사람 목숨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 근데 다 돈 없으면 못 할 짓이야. 사람 구하고 사글셋방에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무상 급식소 가고 싶진 않잖아.”

“헌터인데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마정석이 가치를 인정받기 전까지는 없지 않았지. 다 옛날 일이지만. 다른 것도 작업해 줄 수 있냐?”

“그럼요. 얼마든지.”

태양이 정제한 불투명하고 울퉁불퉁하던 마정석들은 순도 높은 마정석으로 하나씩 변신했다. 지호가 하는 것보다 도훈 쪽이 훨씬 능숙하고 좋은 마정석을 만들었지만, 그는 한 번 보여 준 뒤엔 더 손을 보태 주지 않았다.

정제한 마정석 수와 부피는 줄었으나 가치는 훌쩍 뛰었다. 태양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행복이 드러나는 걸 보고 지호는 진작 도와줄 걸 그랬나 생각하며 지도를 확인했다. 아까 떴던 코드 레드 경보가 사라지고 없었다.

“퀸 패러사이트가 지도에 안 떠요.”

“계속 쫓아다니며 감지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없어졌다 사라졌다 할 수는 있어. 한 번 확인하고 나서 근처 계측기에 잡히면 또 보일 거야.”

“하지만 기록된 신호가 처음 등장 이후엔 없는데.”

지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적색 신호가 다시 뜬다. 헌터들이 식별하는 개체 중에서도 존재를 빼앗길 수 있어 주의해야 하는 최악의 괴물. 놈의 위치는 처음 보고된 곳보다 훨씬 남쪽으로 내려와 있었다.

“어떻게 벌써 여기까지 왔지?”

태양은 이상하단 얼굴로 적색 신호의 이동 루트를 확인했다. 신호는 중간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렇게 두 번. 지호는 이미 놈의 행동 패턴을 겪은 적이 있는 헌터다. 그의 얼굴이 빠르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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