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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54화 (155/260)

154화

태양의 추측에 지호는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저랑 싸울 생각마저 하고 왔다고요? 헌터들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할 테니까. 전직 헌터 임보현이 균열 출입 신청을 했다고 들었다. 아마 너를 만나러 오려는 거겠지. 너와 의견이 갈렸을 것 같은데, 임보현마저 말리지 못했다면 너를 막을 이가 또 누가 있겠나? 그다음이 물리적 충돌일까 두려운 헌터들이 서로를 방패막이 삼아 오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야.”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오긴 어디를 온다는 말인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식이었다. 지호는 쌓인 연락 중에 보현의 연락이 수차례 찍혀 있는 것을 확인하곤 불안을 호소했다.

“언니는 균열에 더 들어오면 안 돼요. 더는 몸이 버티질 못할 거예요.”

“너를 직접 설득하겠다고 오는 것 같으니 대화나 잘 해 봐. 협회 측에서도 임보현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을 거다. 만 하루가 지나면 곧 안정기야. 그 전까지 해결된다면 좋겠군. 협회 입장이 먼저 나올지도 모르겠어.”

바람의 방향이 다시 바뀐다. 지호는 그들 사이를 가르고 있던 방벽을 허물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설령 협회 입장과 제 입장이 대립하게 된다 하더라도 제가 헌터들을 직접 공격하는 일은 없을 텐데요.”

“모를 일이지. 헌터 간 충돌이 없었던 것도 아니야.”

태양의 핸드폰이 전화라도 온 듯이 길게 울렸다. 그는 말하다 말고 화면을 확인하더니 인상 썼다.

“퀸 패러사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는군. 원래도 혼자 다니면 안 되지만, 더더욱 개인행동을 삼가라. 넌 전적도 있잖아.”

“누가 들으면 일부러 당하려고 한 줄 알겠어요.”

“왜곡되면 또 그런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보현이 균열에 들어온다는 소식에 퀸 패러사이트의 등장까지 겹치자 지호는 속에서 무언가 꼬이고 꼬여 폭발할 것 같단 느낌을 받았다. 우선은 보현을 막아야 한다. 후자는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으니.

“퀸 패러사이트랑 대화한 적 있다고 했죠? 도훈 씨 혼자 가도 놈이 만나 줘요?”

“난 늘 혼잔데?”

“잘됐다, 그럼 가서 퀸 패러사이트 좀 나가라고 하면 안 돼요?”

“퍽이나 들어주겠네.”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고 던진 말은 아니었다. 구출한 생존자의 몸이 미세하게 떨린다. 감각이 돌아오는 중이면 좋을 텐데. 태양 역시 그 움직임을 느낀 듯 생존자를 한 번 더 추슬러 올렸다. 어깨동무를 한 모양새로 태양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몸이 가냘프게 흔들린다. 그리 체격이 작은 사람이 아닌데도 비교되어 보이니 약한 것 같다.

“내 임무는 너를 퀸 패러사이트에게서 보호하는 일이야. 캠프에서 이 실종자를 당장 받아 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우리 역시 이 사람을 지킬 수 없다. 내가 보호해야 하는 건 이 사람이 아니라 너야.”

“제 몸은 제가 지켜요.”

“정신계 능력 앞에서는 아니잖아.”

“도훈 씨가 도와줄 거고…….”

도와줄 거죠? 하는 간절함 담긴 시선을 받은 도훈은 헛기침했다.

“아까 군부대와 충돌한 여왕의 호위대 수가 많다면 그것도 위협이야. 놈들은 자기들과 비슷한 존재로 느껴지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놈들이 여기 들어온 이유가 너를 포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제가 뭐라고…….”

“균열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갔잖아. 놈들에겐 그것만으로 포획의 이유가 될 거야.”

도훈의 말은 지호를 긴장시켰다. 아직 시흥 연구소의 게이트는 모든 헌터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일부 헌터만이 알고 있고, 그중 대부분은 연구 팀이라 균열에 들어올 일이 없다.

혹시, 정말로 만약, 지호가 어떻게 잘못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준우의 경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혹여나 괴물에게 먹히고, 그리하여 그의 본질을 사람 아닌 괴물로 바꾸게 되는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지호가 알고 있는 그 모든 비밀과 진실들을 괴물들에게 고스란히 가져다 바치는 꼴이 된다면?

“표정이 안 좋군. 놈들이 너를 노릴 이유가 충분하다는 사실이 그렇게 충격이야?”

“아니, 그렇죠. 누구나 충격이겠지.”

지호는 가까스로 말을 돌렸다. 도훈 역시 게이트의 존재를 모른다. 그걸 숨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 후에도 지호에게 호의적일까? 조건 없이 그의 편을 들어 주며 보호하려고 애쓸까?

그럴 리 없다.

“이 생존자를 보호하면서 균열을 벗어나지 않는, 그리고 언니와 퀸 패러사이트가 만나지 않게 하는 법 같은 건 없어요. 조태양 헌터님이 여기서 이분을 보호해 줄 순 없나요?”

“너는 빠지고? 나 혼자 뭐 어쩌라고? 난 이게 사람인지 괴물인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정신계 능력자들은 다 똑같이 생각할 거야. 이 대화가 들리는지 모르겠는데, 인지 자체를 못 할 확률이 더 높아.”

“수희 언니는 회복했었어요.”

“그쪽 괴물은 건물 전체를 차지하고 모든 개체를 감염시킬 만큼 활동력이 좋지 않았나 보지.”

도훈이 한마디 거들었다. 무너지려는 결심을 추스르려 애쓰던 지호의 노력은 그의 말 때문에 바닥도 없이 추락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생물에 기생해서 포자를 뿌리면서 다른 걸 감염시키는 놈이잖아요.”

“아마 저 건물을 충분히 차지한 다음에는 옆 건물로 옮겨 가려고 그런 수작을 부릴 수는 있겠어. 이것들은 눈엔 안 보여도 군체야. 하나하나가 생물을 공격하는 셈이지. 그것들의 수가 적었다면 평범한 인간도 어떻게든 떨쳐 내 볼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미 늦었다는 말인가요?”

“메뚜기를 생각해 봐. 조그마한 메뚜기 한 마리는 별로 위협이 되질 않지. 식물도 풀 정도나 갉아 먹을 뿐이야. 하지만 굶주린 황충 떼가 쓸고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 법이잖아? 식물뿐 아니라 사람이나 가축도 해칠 수 있다고.”

도훈은 능숙하게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신의 지식을 인용하며 상황을 설명했다. 태양은 텅 빈 버스 정류장 의자에 생존자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 새끼 설명대로라면 이 사람은 이미 가망이 없겠군.”

지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죽은 듯이 누운 생존자의 눈은 꿈을 꾸는 것처럼 초점이 잡히지 않는다. 흘러나왔던 눈물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신체의 반사적인 작용? 움직이지 않는 몸 속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는 생존자의 필사적인 반응?

“이 사람과 임보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네 선택이 무엇인지는 듣지 않아도 알겠다. 경계 쪽으로 이동하자. 내 생각에도 그 전직 헌터가 함부로 몸을 쓰게 두는 건 좋지 않은 일 같아.”

“퀸 패러사이트가 나타났다는 거 정식 공지인가요, 일부 커뮤니티 소문인가요?”

“아쉽겠지만 정식 공지다. 임보현도 볼 수 있겠지.”

지호는 누운 생존자를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칠 리 없으나 그렇게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속에서 그는 동상처럼 서 있었다. 부디 움직이지 않아 주기를. 아니, 사실은 살아 움직이며 자신의 존재를 주장해 주기를.

상반되는 감정이 충돌해 스스로 괴로웠다. 어떤 선택을 해도 마음이 쓰릴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하책이었다. 지호는 정류장 의자 부근을 손으로 가만히 짚으며 속삭였다.

“미안해요. 구해 주고 싶었는데, 제 능력으론 안 됐어요. 괴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 드릴게요. 일반 균열이니까 시간만 지나면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괴물화라는 말이 신경 쓰였으나 오래 지체하기 어려웠다. 그들을 배척한 헌터들의 말대로 이 사람이 괴물이 되어 가는 중이라면 균열이 사라져도 그쪽 세상으로 넘어가게 되겠지. 지호는 이름 모를 생존자가 그런 끝을 맞이하길 원하지 않았다.

손을 움직여 지호를 불러 세웠던 무명의 생존자는 이제 없다. 껍데기만 남은 채 가만히 누워 있던 그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려 눈을 감겨 준 지호는 곧바로 도훈에게 붙들렸다.

왜 그러냐는 물음 전에 행동이 먼저 튀어나왔다. 이형 에너지 발현과는 조금 다른, 환상 트랩을 만들 때를 상기시키는 희뿌연 막이 지호의 손을 훑어 내린다.

“아까 한 설명 못 들었어?”

“어, 아니 고작 눈 좀 감게 해 준 거로…….”

“너는 그 쪼끄만 것도 혼자 못 막잖아. 약간 버티고 나면, 그러고 나면 어쩌게? 저 꼴이 되게?”

“그런 말 하지 마요. 듣고 있을 수도…….”

“네가 잘못되면 나는 어떻게 해? 너 하나만 보고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

지호는 머쓱한 얼굴을 숨기며 도훈이 잡은 손을 꼬물거렸다. 누가 들으면 절절한 사랑 고백인 줄 알겠다. 태양 역시 움직이려다 만 어정쩡한 모양새였다가 팔을 거두었다. 둘이 동시에 움직인 걸 보니 뭔가가 지호의 팔로 옮겨 온 모양이었다.

“저 위험할 뻔했나요?”

“말도 마.”

보이지 않는 위협이란 골칫거리였다. 퀸 패러사이트의 숙주가 될 뻔했을 때도 비슷했다. 도대체 어떻게 당했던 건지 다시 생각해도 모르겠다. 지호는 잠시 잡혀 주었던 손을 슬그머니 뺐다.

“조심할게요.”

“동주 형이 왜 부탁한 건지 알겠다. 이렇게 조심성이 없으면 어떻게 해? 균열 안정기 들어서는 대로 형이랑 교대할 건데, 그 전까지 사냥은 글렀네. 누구 덕분이야.”

“그 역할 내가 해도 충분한데. 그냥 가지그래? 우리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고 있는데.”

“네가 제일 위험한 새낀데 뭐라고 입을 털어 대냐.”

태양과 도훈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으나 지호는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와 있던 연락 중에 보현의 것을 확인하느라 바쁜 까닭이었다. 의사 허락받고 퇴원하겠다는 이야기 뒤로 헌터 협회에 지원 넣었다고 하는 메시지가 일 분도 안 되어 와 있다니, 이건 그냥 균열에 들어오려고 억지로 퇴원한 거랑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지호의 손이 다급히 움직였다. 보현의 연락은 [곧 봐요]로 끝났다. 통화 버튼을 눌렀더니 신호가 얼마 가지 않고 곧 연결된다. 지호는 빽 소리쳤다.

“언니, 무슨 미친 소리예요! 균열에 들어오면 안 돼요!”

-악, 귀 아파. 갑자기 뭐예요?

“언니가 보낸 메시지 지금 봤어요. 협회에 균열 출입 신청 넣으셨다면서요. 균열엔 다시 안 들어오기로 하셨잖아요. 언니가 제일 잘 알면서!”

-누가 사고 치고 자기 할 말만 한 다음 전화를 끊어 버려서요. 내가 그래도 보호잔데 괴물 옆에 내 새끼 내버려 둘 순 없잖아요?

“균열 안정기 되자마자 나갈게요. 절대 들어오지 말아요.”

-오,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경계 근처에서 만나요. 절대 들어오시면 안 돼요.”

마음이 급해 말까지 빨라졌다. 보현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요. 경계에서 보죠. 그 도플갱어놈 낯짝도 궁금하고요. 보고 보니까 민도훈 헌터의 모습을 하고 있다던데, 그 사람 좀 잘생기긴 했죠? 한창때 헌터들 중에 연예인 할 만한 사람이 있다느니 하는 소문이 돌 정도로 꽤 유명했던 사람이거든요. 아마 얼굴에 넘어갔나 보다.

“얼굴은 무슨 얼굴이에요! 아무튼, 제가 나갈 테니까 들어오시면 안 돼요. 아셨죠?”

-있다 봐요.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했으나 보현이 대답한 적은 없다. 전화가 끊긴 후에 지호는 불안한 얼굴로 꺼진 화면을 노려보았다. 제 얼굴만 보일 뿐이었다.

“여왕의 호위대 놈들이 경계 주변에 있다고 했었죠? 조태양 헌터님. 만약의 사태를 위해 경계에서 외부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나가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군부대와 교전 중인 게 그 괴물들이 맞으면 양촌 쪽으로는 발도 들이면 안 돼. 아예 균열 중심을 지나 남하해서 청라로 나가는 건 어떤가? 좀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빨리 가려면 공중으로 가는 게 낫겠죠.”

“짐도 없으니 싸우며 갈 수 있겠지. 마정석도 챙길 겸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조 헌터님 날 수 있어요?”

“헌터들의 기준을 본인으로 잡으면 곤란한데. 나는 신체 계열에 정신계 하이브리드지 모 헌터처럼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는 맥가이버 칼 같은 게 아니라고.”

맥가이버 칼이 된 지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냥 물어본 거라고 말을 돌렸다. 도훈은 날 수 있었으나 태양을 데리고 가는 한 사람이 전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우니 하늘로 가는 건 우선 보류해야 했다.

“보호해야 할 미등록 각성자나 구조한 생존자가 없으니 빨리 이동할 수 있겠지. 그것만은 장점이겠군.”

옛날의 지호였다면 생존자도 구하고 보현도 만날 거라고 떼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 능력의 한계를 안다. 어디까지만 해야 하는지도. 눈가를 적시는 뜨거움은 죄책감일 것이다. 그 알량한 약간의 눈물마저 닦은 후, 지호는 생존자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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