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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53화 (154/260)

153화

도훈은 지호를 아예 위층으로 물러나게 한 뒤 창을 열었다. 눈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자 미세한 가루 같은 것이 보였다. 어쩐지 낯익다. 본 적은 없어도 알 것 같았다.

수희가 이야기했던 기생하는 무엇이 저게 아닐까?

문득 불안감이 엄습했다. 만약 수희의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었다면, 그가 데리고 나오는 잠식된 인간은 시한폭탄 같은 거 아닌가? 남들에게 괴물의 포자를 퍼트리며 죽어 가는 죽음의 군체.

남동구 균열에서 만났던 수희 역시 트라우마 반응을 보이며 심하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어땠더라. 입이 붉은 이상한 사람과 마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것 같았는데.

도훈이 창 근처까지 사람을 끌고 왔다. 천장을 보고 누운 채인데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다. 올려다보던 그대로 지호와 눈이 마주쳤다. 복잡한 기분이었다.

저 사람을 이 건물에서 빼내는 것은 옳은 선택일까?

“이 사람, 아직 사람이에요?”

지호의 질문은 도훈을 웃게 했다. 그는 묘한 얼굴로 지호를 올려다보다가 두 손으로 자기를 가리켰다.

“나는 사람인가? 우리 지호 씨는?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지?”

“말장난하지 마요.”

“실종자들이 괴물로 변했지만, 그들을 사람으로 여긴다고 했었잖아. 이 사람 역시 비슷하지 않아? 괴물의 숙주가 되어 변이해 가는 과정에 있다 한들, 그런 사람들을 사람으로 여기기로 한 거 아니었어?”

바로 대답하기 어려웠다.

도훈은 생존자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그를 번쩍 들어 올렸다. 거실 한쪽 소파에 앉혀 두자 멀쩡하게 잠들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괴물에게 침식되는 중이겠지. 수희가 묘사했던 감각이 자꾸만 생각났다. 지금 이 대화를 다 듣고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저걸 어떻게 해결할 방법은 없나요?”

“바람 잘 부는 곳에서 말려. 저게 너무 깊이 침투하지 않았으면 어느 정도는 소생 가능성이 있지. 하지만 상태를 보니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긴 어렵겠어.”

탄식이 깊어졌다. 도훈은 실내를 한 번 둘러본 뒤 다른 생존자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바깥 복도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가 피투성이인 것을 보고 곧장 도로 닫는 민첩함도 보여 주었다. 내부엔 생존자가 더 없을 것이다. 있더라도 같은 꼴이 되었겠지.

“이게 퍼지기 전에 생존자 표식을 묶어 뒀겠죠. 구조 신호도 보냈을 거고요.”

“그렇겠지.”

“어떻게 알아요, 이런 괴물에 대해서? 그쪽에서 본 적 있어요?”

“나 같은 정신 계통 능력자들은 침식이 더디거든. 적은 노력으로 다수의 적들을 상대할 때 알아 두면 유용한 놈이야. 유인해서 데려가면 먹이를 나눠 먹는 셈이니 적당히 공존하는 사이이기도 하고”

“그럼 그런 상태를 많이 봤겠네요. 얼마나 노출되면 상태가 나빠져요?”

“그건 숙주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 건강한 놈일수록 오래 저항하고 약해진 놈은 금방 당해. 자연의 이치라고.”

바람이 향하는 방향은 지호의 등 뒤쪽이다. 그는 용기 내어 8층으로 내려왔다. 실내로 들어가진 않았으나 소파에 늘어진 생존자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볼 수는 있었다. 달빛 어스름하게 기운 실내라 정말 잠든 것처럼 보였다.

다시 그의 손가락이 꿈틀거린다.

지호는 그걸 포착하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다. 고민할 필요 없는 일이었다.

“그 사람 데리고 나와 줘요.”

“괜찮겠어?”

“어떻게 될 것 같으면 보호해 줘요. 그럴 능력 있잖아요.”

“날 너무 신뢰하는걸.”

“필요한 걸 얻을 때까진 내가 살아 있는 쪽이 도움되지 않겠어요? 저기 아래에서 기다리는 조태양 헌터 같은 수상한 사람보다는 민도훈 씨에게도 내 쪽이 좀 더 믿음직했으면 좋겠는데요.”

도훈은 기대하지 않은 말을 들었는지 약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금방 사라진 얼굴이지만 지호는 도훈에게서 그런 인간적인 면을 볼 때마다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괴물로 살아온 경험을 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

“좋아. 그럼 믿음에 보답해야지. 갑시다, 생존자 양반. 살아남은 거 축하하고.”

도훈은 그의 팔을 어깨에 두르며 지호에게 물러나라고 신호했다. 바람은 여전히 뒤에서 불었으나 세기는 약해졌다. 위태로운 기분이다. 지호는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도훈과 함께 아래로 내려왔다. 태양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손가락질했다.

“어, 너, 이거, 이거 뭔 줄 알고 데려온 거야?”

“자세히는 몰라요. 하지만 연구할 가치 있는 숙주라는 사실만은 알죠.”

“뭐? 이걸 사람들 있는 곳에 데려갈 수는…….”

“말조심해요. 다 듣고 있으실 테니까.”

태양은 번개처럼 입을 다문 뒤 불안한 얼굴로 생존자를 훑어보았다. 정신계 능력자들에게는 이 사람에게 퍼진 모종의 능력이 보이거나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지호 보기에는 그저 잠들거나 쓰러진 사람처럼 보일 뿐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수희가 설명하던 것처럼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등의 능동적인 움직임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혹은 그 단계를 이미 지나 몸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수도 있긴 하지만.

“제가 각성한 뒤 처음 만났던 것 중에 이거랑 같은 게 있었어요. 그때 거기서 도망쳐 나온 사람이 저랑 같이 생존해 있던 사람이에요. 마지막엔 결과가 안 좋았지만……. 아무튼, 그 전까지는 살아 있었어요. 분명히요. 그때 그 피해자는 적어도 이틀 이상을 포자에 노출되었다고 했어요. 이 사람은 그보다는 덜하겠죠. 실내에서 홀로 여러 조치를 한 다음에야 이렇게 변한 것 같으니까. 아직 돌아올 가능성이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변한 숙주에 관한 연구가 연구 팀에겐 꼭 필요할 거예요. 다른 세뇌하는 개체에 당한 사람들을 되돌리고 싶은 이들을 위해서라도요.”

가치 있는 전리품이었다.

살아남은 생존자로서도 그렇지만, 만일 살아남지 못한다고 해도 그 몸에 남은 기생 포자의 흔적은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 태양 역시 비슷한 사실을 깨달았으나 마음에 드는 눈치를 보이진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누군가에게 보고를 올리는 모양이었다.

“조 헌터님 친구들한테 미리 알리는 건가요?”

“상부에서 어떻게 보고가 날지 몰라. 최악의 경우엔 사살 명령이 내려올 거다.”

“최선의 경우는요?”

“네 바람대로 되겠지. 연구재가 된다면 회복에도 전념할 수 있을 테고, 운이 좋다면 사람의 기능을 회복하게 될지도. 하지만 내 눈엔 영 좋아 보이지 않아서.”

지호 역시 좋은 말로 생존자를 안심시키기 어려웠다. 거짓말을 하는 대신 입을 꾹 다물었던 지호는, 조금 늦게 덧붙였다.

“최선의 결과가 나오도록 박사님들을 잘 설득해 볼게요. 양 박사는 저한테 빚이 있는 몸이니까 협박이라도 하면 들을지도 모르죠.”

“양 솔 박사 말하는 거냐? 흠, 그런 의미로서가 아니라 연구 재료로 반가워할 것 같긴 한데.”

지호는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기며 둘을 재촉했다.

“혹시 모르니 저는 접촉하지 않을게요. 두 분이 좀 맡아 줘요. 군부대 쪽으로 이동하면 최악의 경우가 더 엄청나질 수도 있으니까 다른 쪽으로 가죠. 보고부터 올리면 지시가 내려올 테니까…….”

보고 올리기 무섭게 이동 능력자의 강렬한 에너지가 포착되었다. 해당 능력자 세 사람 이상 대규모 이동. 열다섯 명의 헌터가 동시에 나타났다. 모두 전투태세를 갖춘 상태다. 도훈이 한마디 거들며 지호 쪽으로 물러났다.

“바라는 대로 모든 게 이루어지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태양은 헌터들과 지호 사이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지호를 돌아보았다. 비난하는 것도, 옹호하는 것도 아닌 눈빛. 그는 괴물의 숙주인 생존자를 추슬러 올리며 질문했다.

“여태 네가 앞장서서 행동했으니 마저 대화해야 하는 거 아니냐?”

옳은 말이다. 말은 조태양 헌터 팀이지만, 이 생존자를 구조한 것도 그를 헌터들에게 데려가기로 정한 것도 지호다.

장비로 볼 때 사냥 팀으로 보이는 무리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지호 역시 태양을 지나쳐 상대 헌터 앞으로 다가갔다. 지호 쪽에서만 일방적으로 아는 얼굴이었다. 오디세이 팀 유튜버 헌터 중 하나다.

“최세진입니다. 접근 불허가 떨어졌습니다. 이 이상 일반인 무리로 다가오지 마십시오.”

“저희 전원인가요, 아니면 구조한 생존자 말인가요?”

“도플갱어와 괴물화 중인 개체 둘에게 내려진 명령입니다. 이지호 헌터와 조태양 헌터는 필요하다면 내부 캠프로 들어오셔도 좋습니다.”

유튜브 영상 속 최세진 헌터는 잘 웃는 인상이었으나 균열 속 최세진 헌터는 그렇지 않았다.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도플갱어를 거부하는 것까진 이해하겠어요. 하지만 우리가 데려온 사람은 왜 안 되는 거죠? 빠른 처치가 필요해요.”

“우리에게 포자를 뿌려 주변인을 감염시키고 숙주로 이용하는 괴물에 대한 정보를 처음으로 제공한 장본인이 하는 말로는 적절하지 않군요.”

“수희 언니는 놈의 범위에서 벗어나서 멀쩡히 돌아다녔었어요. 이 사람도 곧 회복할 거예요.”

“굳이 캠프로 가지 않아도 회복에는 지장이 없겠죠. 해당 개체의 변이가 보고될 경우 촬영 바랍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다 듣고 있어요.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요!”

바람이 향하는 방향이 바뀌었다. 태양과 도훈이 동시에 생존자를 두 사람 뒤로 돌려세웠다. 지호는 자기 뒤편으로 이형 에너지 방벽을 세우며 이를 악물었다.

저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다. 당장 지호조차 자기 자신을 제대로 지켜 낼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스스로 보인 모순적인 행동에 환멸을 느낀 지호는 최세진 헌터를 더 이상 비난하지 못했다.

전투태세를 갖추었던 헌터들은 이제 편안히 서 있다. 지호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방벽을 쳤다는 사실을 인지한 까닭이다. 마음이 혼란스러워 방벽을 투명하게 만들지도 못했다. 우유처럼 뿌연 방벽 안에 세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누가 괴물이고, 누가 헌터이며, 누가 생존자인가.

문득 셋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태양이 앞으로 한 걸음 걸어와 방벽에 손을 짚기 전까지는.

둘의 눈이 마주치자 세진의 냉정한 얼굴이 누그러졌다.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협회 측에서는 변이한 생존자를 괴물 취급하기로 했습니까?”

“미정입니다. 논의 중이고요. 정해지자마자 긴급 공지로 나갈 겁니다. 조태양 헌터를 비롯해 실종자 귀환을 기다리는 연합 소속 헌터들을 위해 최대한 범위를 넓게 잡을 겁니다. 그러나 반감이 심하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방벽에 드러났던 손바닥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지호는 집중하여 방벽 투명도를 올렸다. 드러난 태양은 슬퍼 보였다. 세진은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돌아온 이가 진짜 괴물로 변한 건지, 아니면 모습이나 기억만 흉내 내는 건지 알 수 없으니 위험하죠. 반대자들의 생각에도 동의합니다. 조속히 결정이 나면 좋겠군요.”

“캠프 위치는 어딥니까? 반대 방향으로 가야겠는데.”

“검암역 부근입니다. 경계와 가까워서 대피한 사람이 많아 거점으로 쓰기 좋았거든요. 각자의 선택에 이유가 있는 법이니, 두 헌터분의 행운을 빕니다.”

이동해 온 헌터들은 그대로 돌아갔다. 생존자의 심정이 궁금해진다. 방금 대화 전까지는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희망에 찼을 텐데.

“우릴 사냥하러 오기라도 한 줄 알았어. 기세가 흉흉하더라.”

“수틀리면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었을 거다. 도플갱어에 생물의 몸을 마비시키는 개체까지 상대하려면 어지간한 팀 한둘 가지고는 어렵겠지. 심지어 그 이지호 헌터가 가세할 가능성까지 따지면 더더욱 사람 수가 많아야 했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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