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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52화 (153/260)

152화

태양은 욕설을 중얼거리며 위치를 확인했다. 가까운 곳에 남아 있던 신호는 다른 헌터들이 접촉하여 금방 꺼졌다. 인적 드문 곳으로 넘어온 탓에 괴물의 수는 많지만 남은 이는 적었으므로 당연한 결과다. 태양은 마산역 부근을 짚으며 단호히 말했다.

“미등록 각성자를 보호하며 이동하느라, 혹은 괴물과 사투를 벌이느라 대원은 결과적으로 처음 지점에서 많이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 먼 곳으로 빠져 있었으면 내가 찾으러 오기도 어려웠겠지. 김동주 반장의 전언이 있다. 솔직히 전하고 싶진 않았어. 동주 형은 네가 도플갱어와 신뢰 관계가 형성된 것으로 보일 때 이야기를 전하라고 했었고, 지금 상태로 보니 다른 헌터들을 등지고서라도 이 새끼를 고른 것 같아 전제 조건이 충분히 만족하였다고 판단해 전한다. 이지호 헌터. 특수반 일에 협조하는 동안 마주쳤던 부조리한 상황들을 상기하도록.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해 보이는 헌터들이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아. 정보를 빼돌리는 이들 중에는 민간 협력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헌터들이 그러하고, 나 또한 마찬가지지.”

“잠깐. 지금 김 반장님 말 전달하는 거죠? 그럼 김 반장님이 그렇단 뜻이에요, 아니면 조태양 헌터님이 그렇단 거예요?”

“둘에 별 차이는 없을 거다. 동주 형을 포함한 특수반은 헌터 협회에서 없애려는 정보를 취합해 별개의 기관에 해당 정보를 제공해 왔다.”

허. 지호는 자기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튀어 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태양은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사람은 적고 할 수 있는 일은 더 적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정보를 통제한다. 필요한 집단에 필요한 정보를 주고, 그럴 재력 있는 자와 능력 있는 자를 이어 주는 교두보 역할을 해 왔지. 실종자 가족이 주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왔다. 사실 반쯤 도박이었고, 나머지 반은 부질없는 희망이었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 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어. 그들이 죽었다고 믿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네가 그 소식을 가지고 왔지.”

실종자들이 괴물로 변했으나 살아 있을 수는 있다는 말.

태양은 지호가 가져왔던 그 소식을 읊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선이 굵고 남자답던 얼굴에 지금은 위태로움과 불안만 가득했다. 떨리는 눈이 자꾸 도훈에게 가려는 것을 억지로 지호에게 고정하며 태양은 말을 이었다.

“괴물이어도 살아만 있어 준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괴물로 변한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그 존재가 촛불처럼 꺼져 버리는 게 아니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도훈이는 영영 사라진 것이로구나. 내가 알던 존재는 그때 죽은 거야. 그렇지?”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고, 도훈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두 사람에게 대답을 바라며 던진 물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태양은 거칠어졌던 호흡을 가다듬느라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알고 있던 걸 확인하러 온 거다. 직접 올 필요가 없었을 거야. 누군가가 확인하고 보고한 걸 듣기만 해도 충분했겠지. 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걸 아는데 보러 오지 않을 수가 없었어. 녀석을 집어삼킨 원수라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무슨 심정인지 알겠냐?”

“어, 아뇨.”

“안다고 했으면 한 대 때려 줬을 거다. 나는 차라리 운이 좋은 편이지. 기약 없이 잃어버린 이를 그리워하기만 하는 동료들에 비하면 차라리 나아. 이렇게 완벽히 옛 기억의 끝을 고하고 등을 돌릴 수 있게 되었잖나. 미안하다. 넋두리가 길었군. 진짜로 동주 형 전언이다. 협회 내외부로 네게 협조하마. 대신 도플갱어가 제공하는 정보를 우리에게만 넘겨줘.”

“우리가 누구죠?”

“그러겠다고 말할 때나 알려 줄 수 있어.”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거래였다. 심지어 옆에서 함께 이야기 들으며 입 다물고 있는 도훈에게는 의사 한 번 묻지 않았다. 지호가 그러겠다고 하면 당연히 넘어올 것처럼.

지호는 어두운 실내를 한 번 둘러보며 흐으음, 하고 길게 말을 늘였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각성한 후의 삶은 언제나 그러했고, 그 때문에 지호는 옛날처럼 중심을 잡지 못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럼 할 수 없네요. 협조자는 다른 곳에서 알아보죠.”

“뭐, 너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저는 아쉬울 거 하나 없어요. 도플갱어가 내놓는 정보라고, 괴물이 제공하는 정보라고 신뢰하지 않는 자들이야 당연히 많겠죠. 하지만 이미 이 정보로 많은 이들이 급성 균열에서 살아남았어요. 정보가 목숨 줄과 직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자들이 긴밀하게 접근해 오겠죠. 조태양 헌터님이 그러하듯이.”

태양은 씨근거리느라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지호는 한 걸음 물러나 있던 도훈에게 손짓했다.

“사실 제가 도훈 씨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에요. 어쩌면 이 도플갱어가 원하는 걸 다른 헌터가 들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러니 도훈 씨가 제공할 정보를 원한다면 타협 대상은 제가 아니라 이쪽 분 아닌가요? 아까부터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으시는데, 대화 상대가 틀렸어요.”

아까보다는 많이 먼 곳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혹은 총소리 같은 것이거나.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도훈은 지호가 자신을 지목하자 싱긋 웃으며 창가 저편을 가리켰다. 이형 에너지가 충돌하며 번쩍, 어둠 가르는 빛줄기가 튄다.

“좋아. 수상한 집단이 나를 원하고 있다는 건 파악했어. 근데 우선 여기서 벗어나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 아까 말했잖아. 여기 위험한 위치야. 싸움이 번지면 이쪽으로 금방 넘어올 거고. 지금처럼 다른 건물이 우리랑 전장 위치를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을 때 아니면 못 움직여.”

“도훈 씨가 있어서 못 올 거라고 했잖아요?”

“그건 놈들의 수가 적을 때 이야기지. 부딪치는 에너지 양을 봐. 한두 놈이 아니야.”

전신주가 무너지며 전깃줄이 쭈욱 당겨졌다. 전선들이 불꽃을 튀기며 끊어지더니 순식간에 주변이 어두워졌다. 간헐적으로 켜져 있던 가로등 불마저 사라지자 진짜로 눈앞이 캄캄했다. 태양은 혀를 찼다.

“그래. 이야기는 나중에 마저 하지.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고.”

둘은 다시 위치를 태깅하고 방향을 설정했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날아가는 것은 삼간다. 대신 건물 옥상을 디디며 최대한 지상으로의 접근을 삼갔다. 어둠 속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으니.

둘은 확실한 신체 계열 능력자이고 하나는 미심쩍은 능력자지만 아무튼 뒤처지는 일은 없다. 빠른 속도로 정전 지역을 벗어나면서 시야는 달빛에만 의존한다. 눈에 능력을 집중해 넘어지는 일은 없었으나 지호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라 나머지 둘은 몇 번 넘어지고 부딪히고 기물을 파손했다. 괴물이 나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동하며 보고한 이상 흔적은 옥상에 깔린 흙먼지와 돌가루 틈에 발굽이 갈린 발자국이었다. 옥상이 엉망이 된 건 옆 건물의 파괴된 잔해들이 이쪽으로 튀어 와서겠지만, 이런 파괴 흔적 후 찍힌 자국이 괴물 발자국이 아니면 또 무엇이겠는가.

주변을 주의 깊게 살폈으나 지호에게 접근할 만한 배짱 좋은 괴물은 없다. 부근에 감지되는 것들조차 몸을 숨기며 뿔뿔이 흩어지는 통에 태양에게는 미안하게 됐다. 함께 조를 이루어 사냥하게 된다면 지호와 자기 힘을 가늠하지 못하고 달려드는 잔챙이나 함부로 상대하기 어려울 만한 실력 있는 놈이라 목이 날아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느 쪽도 사냥 팀에게 반가운 소식은 아니겠지.

생각 외로 첫 은신처를 빠져나온 뒤의 태양은 입 여는 일 없이 조용했다. 도훈과 지호만 이따금 주변 동태를 파악하고 수신호 하며 이야기를 나눌 뿐이라 가끔 둘만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파괴된 흔적이 줄었다. 전기 끊긴 지역도 벗어나자 간신히 마음이 좀 놓였다. 물러나는 괴물들 중에 왁왁거리는 소리 내는 것들이 있었으나 그 외에는 고요하다. 균열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구조 신호가 멀지 않은 곳에서 잡혀요. 생존자 표식 보이면 바로 들어갈게요. 조태양 헌터님은 같이 움직이시나요, 아니면 따로?”

“이제 와서 무슨 딴소리야. 여기까지 안전하게 오겠다고 꽁무니에 붙어 있었던 건 줄 알아?”

아니면 아니라고만 하면 될 걸 꼭 말이 길어진다. 연신 도훈을 흘깃대는 걸 보니 아까 기다리던 사람을 완전히 잃은 셈 쳐서 마음이 편해졌네 마네 하는 것들은 다 위장이요, 헛소리였나 보다. 아니면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한 것이거나.

“그럼 실내로 들어갈까요? 아니면 바깥에서?”

“건물 안에 괴물이 있을 수도 있으니 천천히 하든가, 아니면 속전속결로 생존자만 빼든가. 이것도 경험이니 직접 골라 보지그래.”

5분 간격으로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되는 화면에서 구조 신호 하나가 꺼진다. 이런. 오래 고민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호는 후자를 택하며 둘에게 지시했다.

“아래에서 대기해요.”

“위에 뭐가 있을 줄 알고?”

“우선 감지 파장에 반응하는 놈 없음.”

지호는 두 번 말하지 않고 위로 날아올랐다. 약 8층 높이의 건물 창에 묶인 흰 셔츠. 일부러 밖에서 큰 소리를 냈다.

“구조 신호를 수신했습니다. 창문으로 빠져나오십시오. 생존자에게 알립니다. 창문 쪽으로 빠져나오세요.”

혹시나 싶어 가정집 한 곳을 훑었다. 이형 에너지 반응은 없다. 실내가 어두워 움직이는 것이 사람인지 괴물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지호는 목소리를 좀 더 높였다.

“혹시 집안에 괴물이나 위험한 뭔가가 있습니까? 구조 신호를 받고 왔는데요.”

실내는 조용했다.

작은 소리 하나까지 예리하게 잡아낼 수 있는 신체 능력자인 지호에게도 별다른 것이 들리지 않는다. 창틀에 발을 댄 채 잠시 기다리던 지호는 바닥에 늘어진 하얀 손을 발견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꿈틀거린다. 손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전기 자극이라도 받는 것처럼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이상했다. 지호는 도로 아래로 내려섰다. 흉흉한 분위기였던 둘이 동시에 그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어?”

“아뇨.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요. 정신계 관련 트랩이 있으면 제가 발견 못 하기도 하고. 누가 같이 가실래요?”

둘 다 손을 들었다. 지호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생존자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데 다 올라가는 건 좀 그런데요.”

“난 날아갈 수 있어.”

도훈이 공중으로 슬쩍 떠오르며 자신만만하게 능력을 어필했다. 태양은 또 그걸 복잡한 얼굴로 노려보더니 콧김을 훅 내뿜으며 외면한다. 본래의 민도훈 헌터 역시 염동력을 쓸 줄 알았던 모양이다. 공교로운 우연. 지호는 그나마 소강상태가 된 둘 상태를 구태여 들쑤시지 않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위에서 정신계 능력을 쓰는 괴물에 대한 단서가 있으면 곧바로 알려 줘요. 혹시 나한테 그걸 막을 만한 뭔가 작업 같은 걸 해 줄 수 있나?”

“내 품에 있으면 막을 수 있는데.”

“얘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멀리 떨어지지 않으면 가능해.”

도훈은 날름 말을 바꾸며 장난을 그만두었다. 거리를 대강 가늠해 보니 이삼 미터가량이다. 짧지는 않지만 멀다고도 할 수 없는 위치.

다시금 8층 창문가로 날아오르자 다시 손이 보였다. 도훈은 안을 둘러보곤 눈을 가늘게 떴다.

“안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특히 너는.”

“왜요?”

“저건 귀찮은 종류야. 피아 식별 없이 무조건 생물에게 기생하거든. 건물 하나를 통째로 잠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신 건물 밖으로는 잘 나오질 않아. 들어갔으면 큰일 날 뻔했군.”

“저 안에 있는 사람만 빼 올 수는 없을까요? 제가 안 되면 도훈 씨라도요.”

“구해 오면 뭐 해 줄래?”

“감사를 표하죠.”

“흠. 밑지는 장산데.”

“도훈 씨가 구해 준 사람도 감사할 거예요. 사실 그쪽이 좀 더 메리트가 크죠. 헌터도 아닌 당신이 선의로 사람을 구할 만큼 인간에게 온정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줄 테니까요.”

“한 번은 넘어가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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