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48화 (149/260)

148화

17. 대립들

준영이 사라지자 오히려 지호와 도훈의 움직임은 좀 더 가벼워졌다. 방벽에 과도한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고, 괴물과 마주치면 보호할 대상 없이 곧장 전투에 임할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표정이 안 좋네. 언제까지 그러고 있으려고?”

“그럼 이 상황에 웃고 있어요? 실성한 사람도 그러진 않겠다.”

날 선 반응이 돌아오자 도훈은 어깨만 으쓱이곤 고개를 돌렸다. 크고 작은 교전이 몇 번 있었다. 상처를 악화시킬 만한 힘겨운 싸움이 있던 건 아니지만, 회복할 여력이 없도록 전투에만 힘을 쏟게 되었던 건 사실이다. 몸이 무거웠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가는 까닭에 또 쉴 곳을 찾아야 할 때가 돌아오기도 했다.

여전히 다른 헌터들로부터 신호가 없다. 지호 이름으로 구조 신호를 발하던 도훈의 핸드폰이 부서진 이후, 그의 흔적을 묻는 물음조차 올라오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가까스로 시설 멀쩡한 은신처를 찾아내자 밀려오는 피로로 눈을 뜨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챙겨 왔던 음식이며 물은 진작 떨어져 한 번 더 편의점을 털었다. 괴물들 돌아다니던 구역에 있던 건물이라 내부는 균열에 휘말리기 전과 차이 없이 멀쩡했다.

본디 괴물들은 산 것 없는 곳엔 그다지 관심이 없다. 편의점같이 탁 트인 곳은 숨기 썩 좋은 곳이 아니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입 꾹 다물고 험한 소리밖에 안 하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

“손 헌터가 당신을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했었죠. 제가 당신과 접촉했다는 사실 정도는 주간 보고 꼼꼼히 읽는 헌터들이라면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을 테고, 균열에 선발로 들어올 만큼 최전방에서 뛰는 인원들이라면 더더욱 당연히 숙지하고 있었을 거예요.”

낯선 괴물을 따돌리느라 시간이 꽤 들었다. 그 후에도 숨을 곳을 찾기 적절한 곳이 아닌지라 몇 차례나 숨 돌릴 틈도 없이 전투를 지속했고, 간신히 멀쩡한 모양새의 건물을 찾아냈으나 주변에 괴물이 많다. 도훈이 임시방편으로 주변에 환상 트랩이란 걸 깔아 두어, 가까이 온 놈들이 선 채로 꿈을 꾸며 몇 분을 멈추어 있도록 만들어 두니 그제야 숨이 트였다.

균열에 빠르게 내린 어둠 너머에 속속들이 고개 드는 검푸른 빛들이 있다.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괴물들. 빛 속을 돌아다니는 놈들보다 훨씬 위험하고 공격적이다. 대처가 어렵다는 단점도 있었다. 그 때문에 어둠이 내리깔리면 은신처를 찾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 전까지 숨을 곳을 찾지 못한다면 차라리 건물 어딜 부숴서 그 잔해 더미 아래라도 들어가라고 했다. 일반 균열이 아니라 급성 균열에서 한 이야기였지만, 지호는 흘려듣지 않았다.

“여기가 일반 균열이니까 급성 균열에서 봤던 놈들보다 더 다양한 괴물들이 나타나겠죠. 같이 들어온 선발대 헌터들도 꽤 고전하고 있을 거고요. 그치만 그렇다고 해서 위험에 빠진 동료를 외면하거나 하지는 않겠죠.”

“일반적으로라면 그렇겠지.”

“이건 일반 균열이잖아요. 급성 균열도 아니고, 괴물 안 잡으면 점점 넓어지는 망할 악성 균열은 더더욱 아니고요. 굳이 다른 놈 잡으려고 서두를 필요 없는 곳이니까. 그러니까.”

“나한테 설명하려고 할 필요 없어. 납득 안 가면 물어봐. 연락은 받을걸.”

“제 연락을요?”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전화가 오잖아. 나 같으면 받아 보겠어.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더 그러겠지.”

연락처를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연락할 수단이 없는 건 아니다. 균열 어플을 통해 서울지부에 손예린 헌터 이름을 검색하자 나오는 게 한 명이다. 하기야, 동명이인이 널릴 만큼 헌터 수가 많은 것도 아니었으니.

통화음은 오래 울렸으나 전화를 받는 일은 없다. 지호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해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다.

“기기를 분실했거나, 괴물과 싸우느라 전화 받을 상황이 아니거나.”

“거기까지 했으면 노력도 가상하지. 놈들을 이해하려고 들 필요가 있어?”

도훈의 지적은 타당하다. 지호는 슬픈 눈으로 그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들만을 이해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도플갱어인 당신과 함께 있는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헌터들의 태도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고민한다고 해야겠죠. 물론 태어나기를 괴물로 태어난 당신과 사람에서 괴물이 된 실종자들 입장은 다를 테지만, 적어도 어떤 사람들에겐 큰 차이 없게 느껴질 거란 말이에요.”

“사람들이 나를 받아들이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데. 넘어만 갈 수 있으면 돼.”

“나한테는 당신이나 실종자들이 변한 괴물들이나 크게 차이 나게 느껴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당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가 곧 괴물이 된 실종자들을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요.”

“그거랑은 다를 거다. 나는 남이잖아. 그들이 기다리던 가족은 그렇지 않겠지.”

“당신 중의 하나도 누군가의 가족일 텐데.”

막힘 없이 흘러나오던 도훈의 대답이 뚝 끊겼다. 벌써 미적지근해져 가는 생수 뚜껑을 똑 딴 그는 인간이나 지을 법한 복잡한 표정으로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혹은 아주 많은 사람의 원수겠지. 너, 나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에너지 바를 뜯은 지호는 도훈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저 소심하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당신조차 사람이 아니면, 더 많은 이들을 사람으로 볼 수 없을 거예요.”

신체 회복에 필요한 에너지가 상당하다. 치료기를 짊어질 필요가 없는 대신 음식은 많이 보충해야 해서 지호는 말하는 내내 다람쥐처럼 볼을 부풀렸다.

지호의 목소리에 너무 자신감이 없었기에 도훈은 거기 딴지를 걸거나 농담을 던지는 일은 삼갔다. 그는 나름 입을 다물어야 할 때를 아는 괴물이었다.

주린 배를 어느 정도 채웠을까. 에너지를 치료 쪽으로 상당 부분 돌릴 여유가 생겼을 때 진동이 울렸다. 보현이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매서운 잔소리가 쏟아졌다.

-지호 씨, 내가 지금 무슨 보고를 읽은 줄 짐작이나 해요? 그리고 생방 브리핑 뭐예요. 나한텐 도플갱어 이야기밖에 안 했었잖아요. 생존자들이 괴물이 돼? 자세하게 말해 주고 갔어야죠!

“어, 네. 언니 저는 무사해요.”

-그거 다행이긴 한데, 지금 헌터 커뮤니티 난리 난 거 알아요? 생존자 가족들 의견부터 구심점 없이 찢긴 상황이라 좀 낫긴 한데, 아무튼 다들 복잡해요. 그 와중에 코드 레드 투와 동행한다고요?

“지원은 안 오고 보고는 착실히 올렸나 봐요.”

지호는 손예린의 일을 입에 올리며 더더욱 어이없어했다. 그러니까 그에게서 미등록 각성자를 인계해 갔다는 사실도 보고했고, 그와 흩어져 각기 임무를 하러 움직인단 말로 바꾸어 보고했는데 지원 요청은 안 했다고.

화를 눌러 참는 지호의 대답을 들은 보현은 그의 기대와는 달리 어린 피보호자에게 공감해 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죠. 헌터들 입장 중에 제일 많은 게 손 헌터 같은 것일 텐데요. 대놓고 앞에서 공격 안 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지원을 안 보내니, 도와주네 마네 하는 거로 서운해할 상황이 아녜요. 이쪽은 좀 분위기가 이상하거든요.

“다들 그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요?”

-그걸 사람들이라고 칭하는 것 자체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더 많아요. 사실 저도 좀 그렇게 느끼거든요. 저 같았으면 대화도 안 했을 것 같긴 한데, 지호 씨니까 알아낸 것들이 많겠죠.

보현의 냉랭한 태도는 지호를 더더욱 위축시켰다. 그는 들고 있던 빵을 마저 입에 밀어 넣지도 못한 채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모르는 괴물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그치만 아는 사람이면…….”

-아는 얼굴이면? 그 사람을 잡아먹어 죽였었다는 사실만 확실해지는 거 아닌가요?

보현의 말에 가시가 가득했다. 지호는 언제나 그의 편이 되어 주던 든든한 전직 헌터가 이제는 같은 곳을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꼈다.

“언니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돌아와도 똑같을까요?”

-왜. 그놈이 지호 씨 엄마 얼굴이라도 달고 나타났던가요?

짧은 침묵. 보현은 오래 지나지 않아 사과했다. 호흡이 거칠었으나 여전히 말투만큼은 따뜻했다. 그러려고 애쓰고 있거나.

-미안해요. 못 할 말을 했네요. 아무튼, 저는 그 괴물과 동행하는 거 반대예요. 안정기 되자마자 바로 나와요. 놈은 못 나온댔죠.

“언니.”

-내 말 들어요. 그것들과 공존할 수는 없어요. 설령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건 내 사랑을 죽인 새끼지 진짜 그 사람이 아니에요.

이 말을 들으면 도준우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지호는 그가 살아 있다는 이야기가 보현의 귀에 들어가 봐야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거란 생각에 튀어나오려는 말을 참았다. 그래요. 언니가 사랑했던 사람이 살아 있어요, 하는 말 같은 것들. 이미 보현이 그러했듯 그 말을 토해 내서 상대를 상처 줄 수 있었지만, 지호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단호하게 답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할 거예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상대를 비난하고 배척하는 대신, 괴물에게라도 알아낼 수 있는 걸 알아내서 사람들을 구할 거라고요. 그걸 반대한다면 설령 언니라고 해도 함께할 수 없어요.”

-지호 씨. 그것들을 사람으로 인정한다고 해서 그들이 진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에요.

“알아요. 어쩌면 경계를 빠져나가자마자 돌변해서 저를 죽이고 사람들을 다 해치려고 할 수도 있겠죠.”

수화기 너머가 소란스럽다. 병원에 있는 게 아니거나, 혹은 보현을 보러 와 있던 사람들이 있거나.

저편이 시끄럽다 했더니 전화 받은 사람이 바뀌었다. 뜻밖의 목소리였다.

-도플갱어와 협조하여 정보를 얻어 낸 뒤 모든 헌터들에게 배척당하는 것이 대원의 계획인가?

“김 반장님이 왜 거기 계세요?”

-옛 전설의 초라한 꼬라지나 좀 구경하러.

“되게 안 어울리는 농담이네요. 그래서 왜 거기 계세요?”

수화기 너머에선 계속 보현의 전화기 이리 내놓으라는 목소리가 배경음처럼 들려왔다. 김 반장은 ‘가만히 좀 있어 봐, 이야기 좀 하자’며 보현과 다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사이가 좋았나. 한쪽은 꼰대 취급, 한쪽은 문제아 취급하고 있긴 했는데.

-잠깐 잡음이 좀 있었다. 임시 파트너이긴 해도 네가 굳이 나한테 연락하진 않을 것 같아서 부득이하게 네 보호자를 빌렸지.

“제 연락이 필요하실 리가?”

-말은 모든 헌터들이 너를 배척하니 마니 했지만, 분명 어딘가에는 나처럼 네 발언을 반가워하는 자들도 있을 거다. 설령 한 번 그것들의 먹이가 되었다가 돌아온 자들이라 해도,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면 나는 거기가 지옥이라 해도 갈 거라서.

-지호 씨, 이 자식 말 듣지 마요! 거기서 당장 나와요. 놈들에게 넘어가지 말아요!

-환자는 좀 가만히 있지그래. 나를 비롯해 소수의 헌터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내게 연락하도록. 네게 힘이 되어 줄 거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저편에서 싸우는 소리가 점점 커져 이제는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빽빽 소리치다 결국 전화를 되찾은 보현이 멀리서 그랬던 것처럼 소리쳤다.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들과 타협하지 말아요. 결국, 후회하게 될 거예요. 결국, 살해당한 자들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을 거라고요. 나는-

전화가 뚝 끊겼다. 아마 김 반장과 다투다 결국 끊어진 모양이다. 옆에서 통화를 다 듣고 있던 도훈은 지호의 눈치를 살폈다.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 같은 얼굴이다.

지호는 자기가 떠올린 표현을 받아들였다. 그에게 도훈은 사람이다. 그가 다른 이를 해치며 있는지 없는지 모를 본색이란 것을 드러내게 될 때까지는 아마 쭉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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