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돌아보니 복잡한 표정이다. 그가 재차 ‘나들’이라는 미묘한 용어로 자신을 지칭했던 걸 생각하면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사람으로 생각할까. 그래서 균열을 나오고 싶어 할까. 인간으로의 그와 괴물로서의 그 중에서 무엇이 좀 더 본질적인 도훈에 가까울까. 괴물이기에 균열을 나오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본색을 드러내기엔 최적의 조건인 곳이니까.
어떤 대답을 듣더라도 나머지를 의심할 것 같았다. 지호는 그를 재촉해 대답을 듣는 대신 부드럽게 말을 돌렸다.
“박순자 헌터님 덕분에 정신계 능력자란 사실을 알게 된 건 좀 이득이네요. 이형 에너지에 염동력, 그리고 정신계 세 갠가요?”
“어, 뭐. 인간들 분류로 따지자면 그렇지.”
도훈은 건성으로 답했다. 준영이 가까스로 풀려나 그들에게 몇 번씩 인사하곤 지호 쪽으로 달려온다. 이쪽을 보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 지호는 싱긋 웃어 준다. 준영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왜 그렇게 자꾸 웃어 줘? 오해할라.”
“화내고 찡그리고 면박 줄 이유는 없지 않아요?”
“위험한 순간에 짜잔 나타나서 목숨도 구해 줬고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 사랑에 빠지기 딱 좋지.”
지호는 그 단어처럼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 또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 한때 가족과 함께 있으며 느껴 왔던 그 따스한 감정은 아스라이 멀어졌다. 지금은 그저 머리로만 알 뿐이다.
“이왕이면 좀 안심시키고 믿게 해야 데리고 다니기 편하죠. 동물도 호의적인 반응과 그렇지 않은 걸 구분하잖아요.”
“동물 취급이야? 차라리 내 쪽이 낫겠네.”
“뭘 기대해요. 그쪽은 아직 사람 취급도 못 받잖아요.”
“다른 사람들 의견은 필요 없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게 저들은 아니잖아. 내가 나갈 방법을 찾아낼 때까지 죽으면 안 돼. 우리 지호.”
도훈은 그 호칭에 재미를 붙인 듯 몇 번이고 우리 지호, 하고 중얼거리더니 활짝 웃었다. 어울리지 않는 미소다. 아마 원래의 민도훈 헌터에겐 잘 어울렸겠지.
“두 분 무슨 이야기 해요?”
“별 얘기 아녜요.”
“네 이야길 좀 했다.”
도훈의 말에 준영은 어쩔 줄 모르며 지호의 눈치를 살폈다. 방금 알파 팀에서 미등록 각성자는 챙기기 귀찮다거나, 다른 팀에 넘길 수도 있다거나 뭐 그런 이야기를 옆에서 들은 다음이다. 아무리 각성했어도 지금은 짐일 뿐이라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불안해하는 얼굴을 본 지호는 눈치 빠르게 말을 바꿨다.
“본래라면 이형 에너지 능력자의 방벽 안에 있으면 다른 괴물의 추적을 받지 않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방금 그 새들이나 거인은 대놓고 이쪽을 목표로 두고 쫓아왔잖아요?”
“그, 모르는 게 정상인가요?”
“우리 지호의 이형 에너지 다루는 능력보다 훨씬 능숙하게 힘을 다루는 감지계 괴물이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지거든.”
준영은 눈만 끔벅였다. 지호 역시 도훈이 자연스럽게 늘어놓는 지식에 관심이 있어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의 시선을 동시에 받은 도훈은 싱긋 웃었다.
“자, 간단한 설명을 해 주지. 지금 너는 갓 구운 빵이야.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고 있지.”
졸지에 빵이 된 준영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은 주먹을 손으로 덮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걸 이 옆 헌터님의 뚜껑으로 덮어 놓은 거야. 빵 냄새가 뚜껑 안에 가득 차면 밖으로 새어 나가지. 힘을 다 소진하지 않는 한 이걸 막을 방법은 없어. 그래서 보통은 자주 이동해야 하지. 아니면 불이라도 붙여서 모인 빵 냄새를 날려 버리든가……. 하지만 그건 특별한 능력 있는 사람한테나 가능하거든.”
“이형 에너지의 흔적이 빵 냄새랑 비슷하단 말이에요?”
“모든 에너지엔 각기 다른 느낌이 나. 개중에 어떤 건 멀리서도 잘 느껴지지. 존재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강하단 말이야. 그래서 추적해 오기도 쉽지.”
준영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닌지라 말을 일부 삼켰으나 지호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여왕의 호위대 역시 비슷하다면 지호도 놈들의 에너지를 알아차릴 수 있을 터. 물론 상대의 감지 파장을 알아채는 훈련이 좀 더 되어야겠지만.
“훈련하지 않은 헌터가 맛있어 보인다는 건 알겠는데, 일반적인 능력자들도 그렇다는 건 몰랐네요.”
“괴물들은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세기를 가늠해. 개중에 덤비지 않고 몸 사리는 놈들 본 적 있지 않아? 그것조차 못 하고 뛰어드는 건 수준 차이도 모를 만큼 멍청한 것들이란 의미지.”
갓 구운 빵은 자기가 괴물들의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라는 사실 외에 다른 건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저 설명으로 이해하는 것도 곤란한 일이다.
“빵이 되지 않은 밀가루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종종 있긴 하지. 이형 에너지가 좋아하는 부류 말이야.”
“뭘 알고 좋아해요?”
“내가 이형 에너지야? 어떻게 알아?”
이런 데서 맞는 말을 하다니 비겁한 일이다. 지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도훈은 실실 웃었으나 자기가 말한 분류에 지호도 포함될 거라고 생각하는지 작게 덧붙였다.
“각성했던 나, 아니 그들의 기억을 종합해 보면, 의지 문제가 아닐까 싶어.”
“웬 의지요?”
“살리고자 하는 의지 있잖아. 내 새끼만은, 이 사람만은, 뭐 그런 간절함 같은 것들. 다들 그렇게 생각하며 죽었고, 각성했더라고.”
지호의 입이 벌어졌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어 중요해 보이지 않지만, 도훈은 각성의 순간을 다양하게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존재일 것이다. 준영이 수업 내용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해당 과목 선생님이 좋아 눈 뜨고 있는 학생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지호와 도훈은 우선 대화를 대충 마무리했다.
알파 팀이 괴물 시신 토막 내는 것을 보자 속이 썩 좋진 않았다. 준영은 아예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도살 장면을 낯설어하지 않으려면 두 사람 모두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알파 팀이 떠나기 전, 알파 팀 리더가 지호를 찾았다. 순자와 비슷한 또래의 중년 여성들로 채워진 사냥 팀이다. 지호가 알기로는 비슷한 시기에 각성한 헌터들이 효율적인 복수를 위해 뭉쳤다가 생겨난 집단이다. 목적이란 단순하다. 가족의 복수.
그들이 지호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가슴에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남는 법이니.
“이지호 헌터. 귀하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아마 반발하는 자들이 훨씬 많을 겁니다. 코드 레드 투 역시 최근에 나타난 개체가 아니라면 곧장 찢어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겠죠. 나타난 시기가 그에겐 행운이군요.”
“그에게 얻을 정보가 아직 많아요. 효율을 위해 개체를 보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건의해 보죠. 하지만 기대하진 마십시오.”
알파 팀이 떠났다. 계측기에 잡히는 신호 중 제일 강한 쪽으로 목표를 잡는 사냥 팀의 모습은 준영이 꿈꾸는 헌터 그대로였을 것이다.
자리에 남은 것들은 안정기 후에 후속 팀이 들어와 챙겨 갈 터. 이형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커다란 고깃덩이가 흉물스러웠다. 단면을 보니 왜 창날이 안 박혔는지 이해가 갔다. 표피가 지호 머리보다 더 두꺼웠다.
“우린 어떻게 하죠?”
준영의 질문이 지호를 정신 차리게 했다. 어떻게 해야 괴물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었을까 하는 고민은 나중에 해도 된다. 부근 지도를 띄우자 멀지 않은 곳에 다른 헌터 팀 신호가 잡혔다. 밸런스가 좋다. 다양한 계열로 골고루 다섯 명.
“우선 이동해요. 빵 냄새를 쌓아 두면 안 되죠.”
지호는 도훈의 표현을 주워다 쓰며 팔을 벌렸다. 새삼스럽게 준영의 얼굴이 붉어진다. 여태 잘 안겼으면서, 그는 뒤편의 도훈 쪽을 눈짓했다.
“저기, 이 헌터님이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너도 내 얼굴이 취향이냐? 죄 많은 얼굴이군.”
“그런 거였어요? 어쩔 수 없죠. 양보할게요.”
두 사람이 약속한 것처럼 준영을 놀리자 그는 어물어물하다 어깨만 축 늘어뜨렸다. 놀리는 재미가 있는 반응이었다. 도훈은 킥킥 웃으며 준영을 어깨에 짐처럼 둘러멨다.
“아닌 게 아니라, 또 전투 상황 있으면 우리 지호 혼자 싸우게 빠져 있긴 해야 하니까 이게 맞지.”
“그렇게 들면 머리에 피 쏠려요.”
“멀리 갈 건 아니잖아? 조금씩만 이동해도 돼. 빵 없는 곳에 빵 냄새가 길게 남아 있진 않을 거야.”
서두르자는 재촉에 지호는 마지못해 움직였다. 지호의 핸드폰에 찍힌 다섯 개의 점 부근에 도착하자 우뚝 솟은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이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주변은 폐허였다.
“안에서 쉬고 있는 거 아닐까요?”
“신호 보낼 방법 같은 거 없어? 너희들끼리 하는 그런 거.”
하늘이 소란스럽다. 날아다니는 것들이 지면에서 먼 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안전한 곳을 찾아 숨지 않으면 곧 발견될지도 모르겠다. 지호는 폭삭 주저앉은 건물들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대형종이 온 쪽은 완전 폐허네요. 저 건물이 어떻게 멀쩡한지 모르겠어요.”
“방벽 치고 버티거나 했겠지. 운이 좋아서 너한테 신경이 쏠렸을 수도 있고.”
균열 어플 헌터 버전으로 보낼 수 있는 신호는 구조 신호만 있는 게 아니다. 지호는 화면을 조작해 해당 헌터 팀으로 접촉 여부를 물었다.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다.
“날아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준영 씨 괜찮아요?”
준영의 손이 힘없이 올라왔다. 승차감 좋은 탈 것이 아닌 도훈이 준영을 추슬러 반대편 어깨로 옮기며 투덜거렸다.
“내가 일반적 신체 계열이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일반적인 건 뭐예요?”
“너희가 보통 그렇잖아. 몸을 이루고 있는 구조가 단단해지고 튼튼해지면서 무거워지는 것 말이야. 나도 몸이 변하는 체질이니 신체 계열이 아니라곤 말할 수가 없긴 한데, 아무래도 변이체라서.”
홀로 남은 건물은 공장이었다. 천장이 높고 창문이 많지만 멀쩡한 유리는 하나도 없는 을씨년스러운 모양새. 쉴 수 있는 곳이기만 하다면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외눈 괴물과 싸우며 다친 몸이 욱신거렸다.
건물에 처져 있던 방벽은 지호가 신호를 보내자 빠르게 사라진다.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광역으로 펼쳐지는 걸 보니 담당이 하나가 아닌 모양. 각성자 중에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게 이형 에너지 능력자니 특이한 일은 아니다.
바닥에 내려선 준영은 피가 몰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그가 두통으로 고생하는 동안 지호는 공장을 살폈다. 균열이 열리기 전까지 가동되는 곳이었던 모양인지 먼지 쌓인 곳이 많지 않다.
사방에 사람만 한 종이가 많았다. 집채만 한 기계들도 더러 있다. 아마 제지 공장인 모양. 그 한가운데, 자리 깔고 앉은 헌터들이 있었다.
“발신자명 보고 혹시나 했네. 이지호 헌터잖아?”
“안녕하세요. 미등록 각성자를 보호하고 있어서 잠깐 신세 좀 지겠습니다.”
새 각성자란 말에 리더를 제외한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헌터복 입은 도훈을 쳐다볼 리 없으니 모두의 집중을 받은 건 준영이다.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멀어진 도훈은 슬쩍 옆으로 빠져서 지호 곁에 붙었다. 지호는 그를 신경도 쓰지 않으며 자리에 털푸덕 앉았다. 엉덩이에서부터 타고 오르는 통증이 척추를 저릿하게 울렸다.
“다쳤나?”
“약간요. 대형종하고 부딪쳐야 했거든요. 알파 팀의 도움이 있어서 살았어요.”
“그놈 잡혔어?”
“깨끗하게요. 다음 사냥들 하러 가셨고요.”
모두 본 적 없는 얼굴들이다. 일부가 도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알파 팀과 마주했을 때처럼 단박에 그의 정체를 눈치채진 못했다. 경험의 차이 때문일까. 과연 알파 팀이라고 중얼거린 리더는 뒤늦게 자기를 소개했다.
“서울 동지부 소속 손예린이에요. 일찍 각성해서 이래 봬도 꽤 구른 몸이죠. 근데 저도 대형종 사냥은 못 하겠던데 능력 있네요. 이지호 헌터도 얼굴 보니 나중에 많이들 귀찮게 하겠어요.”
“왜요?”
“어려 보이잖아요. 겉보기에 만만하거든.”
예린은 잘 봐 줘야 대학생 정도는 될까 싶은 보송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짓는 표정과 눈썰미는 예사롭지 않다. 치유계 헌터를 불러 지호를 봐 달라고 말한 그는 혀를 차며 자리를 넓혔다.
“한 놈하고 싸울 때마다 너덜너덜해지면 안 돼요. 장기전으로 봐야 한다고요. 지구력이 중요하고.”
“그런 놈이 튀어나오는데 어떻게 해요. 튀어도 금방 잡힐 것 같던데.”
“대형종이 목표 삼은 게 이지호 헌터였어요? 흠. 일단 그런 놈들을 만나면 무조건 하늘로 튀어요. 날 줄 아는 놈이 별로 없거든요. 그런 것들은 질량으로 승부를 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