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사나운 웃음이 사냥 팀들 사이에 퍼졌다. 익숙하고 날 선 농담이다. 금세 표정을 수습한 순자는 여전히 울리는 지호 이름의 신호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구조 요청자가 헌터가 아닌가? 왜 이지호 헌터는 여기 있는데 또 이지호 헌터의 구조 요청이 오고 있죠?”
“그 친구가 제 배지를 갖고 있어요. 주인 없는 기계를 주우면 헌터로 인식하게 하는 시스템이 있는 것 같은데, 다른 방식의 인증을 고안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아 그거. 하긴 고치긴 해야 해. 급한 게 아니라서 당장 수정하려고 하는 것 같진 않더라고요.”
최전선에서 싸우는 헌터들답게 현장에서 부딪힐 수 있는 흔치 않은 문제들까지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순자는 금세 신호 있는 곳까지 이동해 가 두 사람을 데려왔다. 차림새 때문에 영락없는 헌터인 민도훈은 모두의 시선을 받았다. 또 얼굴이 문제였다.
그런데 지호가 주목했던 것과는 좀 다른 쪽으로 문제였다.
“지금부터 묻는 바에 솔직하게 대답해 주면 좋겠는데, 혹시 이거 코드 레드 투인가?”
순식간에 부드럽게 풀어져 있던 분위기가 경직된다. 사냥 팀 사람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숨겨 봐야 금방 들킬 문제였다. 순자는 재차 질문했다.
“그럼 아까 그 괴물 놈은 저걸 쫓아온 거고?”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전에 목격되었을 때도 비슷했어요. 꽤 많은 괴물의 맛있어 보이는 먹잇감인 모양이던데.”
“말하기로는 본인이 아니라 저를 따라왔을 거래요. 자세한 이야기는 할 상황이 아니어서요.”
사냥 팀 리더로 보이는 자가 순자를 불렀다. 짧은 대화. 지호는 불안을 숨기려고 애쓰며 도훈 쪽을 쳐다보았다. 일찌감치 준영을 내려놓은 그는 지호와 눈이 마주치자 윙크했다.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사람이라 힘이 빠졌다.
알파 팀원들이 괴물의 몸에서 마정석 추출을 마치고 철수한다. 지호 옆에 남은 건 순자 하나였다. 그는 뒤의 두 사람에게 눈짓하며 물었다.
“잠시 대화 좀 할 수 있겠어요?”
“미등록 각성자가 동행해도 괜찮은 건가요?”
당연히 괜찮을 리 없다. 그가 헌터가 될 거란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사냥 팀의 치료 담당이 준영을 데려갔다. 명목은 신체 기능 스캔 및 상태 점검이지만, 지호와 도훈에게서 떼어 내기 위해 데려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준영조차 그랬다.
“저 이대로 두고 가시는 건 아니죠?”
“앞으로 이틀은 지겹게 봐야 해요.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요.”
인구 밀도가 확 줄어들자 도훈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한 걸음 뒤에 물러난 채 뒤를 따라오자 팀원들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움직이던 박순자 헌터는 혀를 찼다.
“아는 놈 얼굴로 저러고 있으니 속이 뒤틀리는군요.”
“아는 사람이에요?”
“2세대 각성자였던 민도훈 헌터 말이죠.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요. 각성하고 헌터 생활을 오래 하지도 못했고요. 예전 균열 안정기 개념이 없던 시절에 막 생긴 균열에 들어갔다가 괴물에게 희생된 거로 알고 있었는데.”
도플갱어인 도훈과 그때의 도훈은 전혀 다른 사람일 것이다. 코드 레드 개체들의 기록을 꼼꼼히 봐 둔 탓에 도훈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순자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이기지 못하고 도로 고개를 돌렸다.
“오래 머물 순 없겠어요. 각별히 자기 힘을 갈무리하지 못하는 각성자는 한 장소에 오래 있으면 안 돼요. 방벽으로 막는 건 임시방편일 뿐이거든요.”
“이형 에너지 계열 미등록 각성자를 만나면 방벽을 치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틀렸나요?”
“일반적으로는 그게 맞겠죠. 그렇지만 방금 만났던 외눈 거인과 같이 일반적인 능력을 웃도는 종류의 괴물들은 방벽으로 덮어 놓은 에너지까지 추적하더군요. 현장에서나 관찰되는 경우지만 드물지는 않았어요. 이론으로 수립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죠.”
“어, 그럼 어떻게 보호해요? 앞으로 이틀은 더 데리고 있어야 나갈 수 있는데.”
“무리하지 말고 다른 팀에 인계하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지호 씨 정도 되는 헌터를 어린애 보모로 두는 건 전투력 낭비이기도 하고요.”
순자의 말엔 아무 감정이 실려 있지 않다. 교육관으로서 지호에게 많은 것을 가르칠 때와 지금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사람. 그 항상성에 지호는 조금이나마 편안함을 느꼈다.
“미등록 각성자야 그렇다 쳐도, 왜 도플갱어와 함께 있는 거예요? 심지어 저 괴물이 지호 씨를 쫓아갔다고요? 발화자를 신뢰하기 어려운데요.”
도훈이 빤히 듣는 곳에서 하는 말이다. 그에게 말 걸지는 않는 순자의 태도는 도훈을 의식적으로 무시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도훈은 그걸 신경 쓰지 않고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다른 것들이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아. 내가 안 왔으면 그게 아니라 다른 게 왔을 테니까.”
“다른 거?”
“뱀 머리가 같이 있지 않았어?”
순자가 지호에게 했던 말이다. 그러나 도훈이 없을 때 나눈 이야기였다.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다물자 도훈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 종류의 놈들은 정신 방벽이 없거든. 내 앞에 나타날 리가 없지.”
박순자 헌터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플갱어에 관해서 알려진 거라곤 생긴 걸 흉내 낸다는 것밖에 없었으니 당연했다.
“네가 정신계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제대로 들었네. 우리 지호와 달리 머리가 좀 돌아가는 헌터로군.”
“이지호 헌터를 노리고 있나?”
“어떤 방향으로 말이야?”
도훈은 능글맞게 웃었으나 순자에겐 농담으로 들리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지호를 자기 뒤로 당기며 빠르게 경계 태세를 갖췄다. 긴 도검. 괴물 사냥에 적합한가 의심되는 물건이 튀어나왔다.
“역시 내버려 둘 수 없어. 상황을 보고 판단하란 지침이 있었다. 내 결정은 네 모가질 따 버리는 거고.”
“재밌네. 누구 목이 떨어지나 볼까?”
“두 분만 재밌는 것 같은데요.”
지호는 서늘하다 못해 남극과 같이 차가운 둘 사이에 마지못해 끼어들었다. 여기서 칼부림이라도 나면 곤란했다. 도훈에겐 얻을 정보가 많았으니 그가 죽는 걸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순자는 칼을 늘어뜨린 채 지호를 응시했다.
“저게 무슨 수작을 부릴 줄 알고 그러는 거예요? 사람처럼 대하고 있잖아요.”
“이쪽이 제공한 정보가 얼마 전 생겼던 급성 균열들에서 많은 사람을 구했어요.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 다짜고짜 칼을 들이대는 건 현명하지 못한 것 같아요.”
“이걸 믿을 수 있다고 보나요?”
“말했던 게 다 사실이라면 일단은요. 도움되는 정보도 줬고, 제가 위험하다고 뛰어오기도 했고. 지금 말한 거에 따르자면 더 위험한 놈이 옆에 오지 못하게 여기 와 준 것 같거든요.”
“저 대형종보다 위험한 괴물이 이 균열에서 발견되진 않았어요. 계측된 것도 없고요.”
“균열이잖아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어요. 우리도 모르게 힘을 감출 수 있는 괴물이 없으리란 법도 없고요.”
순자는 못 미더운 얼굴로 도훈을 노려보더니 칼을 거두었다.
의외로 도훈은 그 상황을 조롱하거나 비아냥거리며 순자를 자극하지 않았다. 대신 지호 쪽을 보며 자기 편을 들어 줬다는 사실 자체를 재미있어하는 표정만 지을 뿐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세 사람을 지켜보는 눈들이 많았다. 특히 사냥 팀에는 도훈의 정체를 아는 자들 중에 공격적인 태도를 감추지 않는 헌터들이 절반이기까지 했다. 순자는 미련 떨어지는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저는 반대예요. 이지호 헌터. 처음보다 많이 노련해졌고, 괜찮은 헌터가 되었다는 건 알아요. 정말 많이 늘었네요. 하지만 늘어난 실력이 마음까지 지켜 주지는 못해요. 저런 걸 믿었다 배신당하면 임보현 헌터보다 더한 불신자가 될걸요.”
“언니는 좋아하겠네요.”
“본부에선 아직도 의견을 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 알파 팀의 의견은 확실해요. 괴물이 된 자들을 인간으로 볼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들은 우리 가족이었던 자를 뜯어 먹은 원수일 뿐이에요. 실종자 수색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대외적으로 밝히는 헌터는 더 늘어나고만 있고요.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죠?”
어쩌면 헌터 협회는 가장 지키고 싶었던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모임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편파적인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지호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할 여지 있는 사람들조차 다른 이들의 분노에 경도될 확률이 높았다. 지호는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저도 아직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여기 민도훈 씨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보고 온 다음이라 더 그래요. 그 사람들과 대화를 좀 해 보면 다들 생각이 달라질지도…….”
“지호 씨. 중간에 말 끊어서 미안한데, 저건 민도훈이 아니에요.”
“박순자 헌터님이 알던 민도훈 헌터는 아니겠죠. 하지만 저에게는 그냥, 다른 사람들하고 크게 다를 바 없이 느껴져요.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나요? 만약 괴물이 된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을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면,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사냥하고 무기를 들이대야 할까요? 그 험한 곳에서 필사적으로 생존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된 외형일지도 몰라요. 고대하던 가족을 만났는데 그들이 자신을 원수로 여기면 정말…….”
“타협은 없습니다. 괴물들이 어떻게 인간으로의 이지를 갖게 되었는지까진 알 수가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것들이 괴물이 되었다는 점에서 같은 사람이라고 인식할 이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지호 씨도 알잖아요.”
지호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괴물이 된 사람들. 사람이었던 괴물들.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괴물에 먹혔다가 그걸 이기고 자기를 되찾고, 어떤 이들은 먹히지 않았는데도 각성한다. 이형 에너지가 균열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자세히 알게 될 그날에는 모든 것이 명명백백해질까.
“아무튼 간에 도훈, 아니 도플갱어를 죽이는 데 찬성할 순 없어요. 괴물 중에 우리한테 이만치 협조적인 개체가 더 있지도 않고요.”
지호는 순자를 배려해 지칭어를 바꾸었다. 그 배려에 별다른 반응 없이, 박순자 헌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옳군요. 협회에서 실종자 취급에 관한 사항을 합의하기 전까지는 좀 놔두죠. 사냥에는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말을 마친 순자는 미련 없이 떠났다. 물론 그가 떠났다고 해서 사냥 팀이 곧장 이동하는 일은 없다. 마정석을 추출해 진짜 시신만 남은 몸은 토막 나 외부로 옮겨진다. 이쪽 작업은 지호가 정확히 아는 바가 없어 대충 그런가 보다 하고 쳐다만 볼 뿐이었다.
순자가 알파 팀으로 돌아가 심각한 얼굴로 상황을 논의하는 사이, 도훈이 다가와 지호의 어깨를 팔로 툭 쳤다.
“내 쓸모가 다하지 않도록 정보 수집에 힘써야겠네.”
“부지런히 움직여요. 그나저나 여왕의 호위대가 당신 때문에 나한테 안 왔다고요? 그런 건 어떻게 알아요?”
맞은편에서 준영이 엄마뻘 헌터들에게 둘러싸인 채 땀을 뻘뻘 흘리며 한마디씩 듣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도훈은 팔짱을 끼며 담담히 말했다.
“포식자들을 피해서 들어온 것도 있지만, 여왕의 끄나풀을 봐서 뒤를 밟은 것도 있어서야. 너를 쫓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어떻게든 인간들 쪽에 접촉하려고 애썼지. 내가 헌터 복장이니 널 찾는 게 어렵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 보니 내가 네 이름을 이제야 알게 되긴 했군.”
대책 없는 사람이다.
지호는 불현듯 자신이 도훈을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괴물들과 달리 온전한 사람 모습을 하고 있어서일까?
아니다. 준우에겐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었다. 그는 한때 보현의 파트너였으나 이제는 살아남은 이들을 여왕의 먹이로 바치는 퀸 패러사이트의 충실한 수족일 뿐이다. 가진 것이라곤 얄팍하고 알량한 동정심뿐. 오히려 괴물 된 실종자들만 못하다.
겉모습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는 건 아니었다. 보현이 아는 준우와 지호가 아는 준우는 다른 사람일 것이다. 남들이 아는 도훈과 지호가 아는 도훈이 다르듯이.
“민도훈 씨. 당신은 자신을 사람으로 느껴요?”
도훈은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