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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43화 (144/260)

143화

‘눈이 하나면서 균형 기관의 몫 하는 게 없는 건가? 아니면 귀 말고 다른 부분이 균형을 잡나?’

꼬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알 턱이 없다. 촉수 다발은 느리게 흔들리며 어깻죽지로 내려왔다.

내려가 다리라도 공격할라치면 곧바로 손이 날아들어 아래로는 더 갈 수 없다. 놈은 사각지대에 있는 지호의 존재를 보지는 못하면서도 분명하게 느끼는지 꽤 위협적인 공격들을 해 왔다.

머리 위를 거칠게 쓸고 지나간 촉수들이 사방으로 분주히 움직였다. 공격용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잡혀서 좋을 건 없었다.

지호는 몸을 둘러싼 방벽을 두껍게 강화하며 납작 엎드렸다. 등은 다른 곳보다 훨씬 피부가 두꺼운지 손날검으로 아무리 내리찍어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질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지? 놈의 등에 매달린 채 고심하던 때였다.

뭔가 지호를 훑어 내렸다.

등을 스치는 촉수 다발. 섬뜩한 감각에 지호의 온 감각이 곤두섰다. 곧장 등에 들러붙는 살덩이들. 닿은 면적이 순식간에 넓어진다. 거칠어지는 호흡.

빠르게 지호를 움켜쥔 그것이 지호를 괴물 등에서 뜯어내 아래로 패대기쳤다. 방벽이 아무리 두꺼워도 소용없었다. 방벽 채로 붙잡혀 내동댕이쳐진다.

부지불각에 당한 공격이라 억 소리도 내지 못하고 추락했다. 다급히 다시 들러붙으려 했으나 괴물이 몸을 돌리는 게 빨랐다. 곧장 놈의 손이 날아온다.

일전에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 못 막는다.

깨닫자마자 몸을 둥글게 말며 있는 에너지를 전부 끌어모았다. 괴물의 손이 지호를 후려친다. 땅으로 처박혀 신음할 새도 없이 바닥을 밀치며 일어난다.

간발의 차이로 내리찍히는 발. 그 거체가 움직인 것치곤 잽싸다.

놈의 발뒤꿈치에 들러붙어 헉헉거리며 숨을 골랐다. 온몸이 다 욱신거린다. 크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혼자라서일까? 헌터는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었다. 보현을 비롯한 헌터들의 목소리가 이제야 피부에 와닿는다. 누구 하나 시선 끌어 줄 사람이라도 있으면 상황이 좀 나을 텐데.

몇 번을 내리쳐 보았으나 발은 상체보다 외피가 더 두껍다. 재질조차 살보다는 바위 같았다. 고작해야 붙어 있는 것이 전부.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놈이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보다 더 심하게 아팠다.

놈은 발을 마구 구르며 지호를 떼어 내려는 것처럼 쾅쾅쾅 땅을 내리찍었다. 가뜩이나 충격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이젠 토할 것 같은 승차감까지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필사적으로 거인의 발에 들러붙은 지호의 귓가에 여태 한 번도 들리지 않았던 소음이 울렸다.

치이이이익.

-구조 신호 확인. 교전에 합류합니다. 본부 알파 팀 투입.

환청인 줄 알았다.

바닥을 내리찍던 괴물의 머리 위로 쐐기가 내리꽂혔다. 아무 이형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는 공격이라 지호조차 몰랐다.

살을 꿰뚫는 소리보다 이후의 비명이 더 길다. 그러나 지호가 목에 입힌 상처 때문에 놈은 소리를 지르다 말고 요란하게 기침했다. 생긴 것이 인간과 비슷하니 호흡 구조 또한 그런 모양. 놈의 목에서 피 섞인 고름이 튄다.

발 구르는 것도 잊고서 괴로워하는 괴물에게서 가까스로 떨어져 나온 지호는 그를 엄호하는 복장을 보곤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일반 헌터들과 달리 헬멧까지 갖추어 쓴 완벽한 차림새.

알파 팀이라면 협회 본부 소속의 엘리트 사냥 팀이다. 존재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균열에서 먼저 사냥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도.

-대원. 상태는?

“전투 가능합니다.”

-오기 부리지 말고 뒤로.

지호의 상태를 가까이서 확인한 사냥 팀 중 하나가 지호를 뒤쪽 팀원에게 밀며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에 반항하려다 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통증에 눈물이 찔끔 났다. 실제로 어디가 부러졌을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의 일격이었으니.

“방어했는데…….”

-맨몸으로 그걸 막는다고 되겠나?

괴물의 머리엔 전봇대가 통째로 꽂혀 있다. 저걸 어디서부터 찍은 건가. 두꺼워 보이는 피부를 뚫은 걸 보니 상당한 높이에서 떨어졌을 터였다.

대인전 훈련만 받아 온 지호는 자기 부족함을 실감했다. 능력이 다양하니 마니 하는 정도에 우쭐할 게 아니었다. 본래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헌터가 이렇게 많았다.

다부진 체구의 팀원 하나가 지호의 어깨를 짚는다. 찌릿하게 퍼지는 통증. 그는 한숨을 쉬더니 지호와 함께 멀찍이 떨어진 위치로 이동했다. 이동 능력자인 모양이었다.

“이대로 두면 후유증으로 고생깨나 할 겁니다.”

물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사냥 팀은 능숙하게 사냥을 시작했다. 진짜 사냥이었다.

놈이 휘두르는 팔을 피하며 관절부로 휘두르는 거대한 무기는 생전 본 적도 없는 것들이었다. 일부가 충돌했지만, 지호만큼 튕겨 나오진 않는다. 멀리 튕겨 나갈 것 같은 팀원 뒤로 이동 능력자가 빠른 백업을 나갔다. 쇄도하는 공격들. 집요하게 관절을 노리며 날아든다.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락하면 즉시 피와 살점이 튀었다. 묵직한 일격들.

괴물이 휘두른 팔에 정면으로 부딪힌 줄 알았던 헌터는 오히려 일부러 막은 것처럼 힘을 옆으로 흘려 냈다. 팔에 오히려 힘이 가해져, 괴물은 엉겁결에 앞으로 고꾸라졌다.

괴물이 팔을 바닥에 처박자마자 빠른 형질 변환이 이어졌다. 주먹에 시멘트 바닥이 들러붙어 나온다. 처음에는 수갑처럼 팔을 감싸던 것들이 점점 무거워지더니 괴물의 움직임이 느려진다.

놈은 상한 목으로 괴성을 내질렀으나 열 명 남짓 되는 인원이 한 사람처럼 움직이며 능숙하게 행동을 봉쇄하는 걸 막지는 못했다. 결합한 금속이 가히 건물 하나에 버금갈 정도가 되자 놈은 팔을 더 들어 올리지 못했다.

버둥거리는 다리로는 알파 팀에게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먹이기 어렵다. 빈틈 많은 움직임. 알파 팀은 차례로 놈의 관절을 부쉈다.

극도로 거칠어진 호흡. 놈의 눈에서 공포까지 느껴진다. 사냥해 보기만 했지 사냥당하는 건 처음이겠지. 그것도 사냥감들의 반격이었다. 멀쩡히 지능이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추측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대형 트럭이 한 번 더 떨어진다. 머리에 파고든 전봇대 위로 떨어진 트럭은 머리를 뚫고 턱으로 튀어나왔다. 쩌렁쩌렁 사방을 울리는 괴성. 그 위로 벼락이 내리찍히자 괴물의 눈에서 끈적이는 누런 것이 흘러나왔다.

마무리는 신속하다. 두개골을 강타하는 세 번째 일격. 같은 방식으로 고도에서 가속이 붙은 전봇대가 괴물의 머리를 완전히 뚫어 버린다. 내리찍힌 전봇대는 놈의 발치에 박혔다. 놈은 쓰러지지도 못하고 절명했다. 시작보다 훨씬 조용한 끝이었다.

후방에서 지호를 붙잡고 있던 팀원이 그제야 손을 놓았다.

“빨리 끝나서 다행이네. 저런 거랑 혼자 부딪치면 우리도 죽어요. 내가 언제 그렇게 가르쳤죠? 아니지. 대형종이랑 싸우는 법은 실전에 들어가서야 배우긴 하겠어요. 저런 거랑 일대일로 맞설 수 있는 건 옛 전설들 정도라고요.”

“예? 무슨…….”

“아무리 그래도 헌터가 혼자 돌아다니다니. 우리 교육 방식이 엉망이라고 한 소리 듣겠다니까, 내가. 안 그래요? 대형종을 상대할 때는 우선 관절부터 노려야 해요. 움직임을 둔하게 하는 게 먼저고요. 지금처럼 기습할 수 있다면 급소를 노리는 게 제일 좋지만요. 그래도 부상을 꽤 입혔더군요. 덕분에 좀 더 수월하게 잡았어요.”

헬멧을 벗자 보이는 건 아는 얼굴이다. 애당초 헌터 재원 풀이 그렇게까지 넓지 않으니, 지호가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닐 터였다.

연수 센터의 교육 보조 헌터였던 박순자는 그의 교육생에게 인사를 건네는 대신 잔소리부터 시작했다. 익숙한 패턴이었다.

“어쩌자고 저런 거랑 대놓고 부딪쳤어요? 지호 씨가 대형종이 좋아하는 냄새라도 풍기는 건지, 본래 우리 팀 목표였는데 갑자기 방향을 바꾸더라. 무슨 짓이라도 했어요?”

“저도 잘 몰라요. 근데 박순자 헌터님, 교육 팀 아니셨어요?”

“원랜 알파 팀 소속이에요. 사냥하지 않을 때나 한가할 때 종종 맡죠. 인천보다 서울에 있을 때가 더 많은데, 그래도 전에 살던 집이 인천이라 그쪽 센터에도 적을 두고 있어요. 연수 센터에서야 좋아하죠. 알다시피 사람이 워낙 모자라잖아요. 이중 소속자가 드문 건 아니거든요. 아, 여기, 얘 좀 봐 줘.”

사냥 팀 사람들은 괴물에게서 마정석을 추출하느라 바빠 보였다. 순자의 지시에 그중 하나가 달려와 지호의 몸을 살핀다.

뼈가 몇 군데 부러지고 사방이 찰과상에 곳곳이 멍들어 엉망이다. 몰랐는데 목 부근에 가시 같은 것도 박혀 있었다. 괴물의 단단한 피부가 일부 떨어져 나온 것인데, 언제 다친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치료 담당은 부러진 부분만 좀 손봤다며 혀를 찼다.

“왜 이렇게 무리했어요. 아니다 싶으면 튀었어야지. 혼자 남은 헌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 줄행랑인 거 몰라요?”

“미등록 각성자를 보호하고 있어요. 제가 안 막으면 그쪽으로 불똥이 튈까 봐…….”

오, 이런. 순자는 짧게 안타까움을 표하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감지계가 아니라서 안 느껴지는 건가, 아니면 기가 막히게 잘 숨은 건가?”

“좀 멀리 빠졌을 거예요. 다른 친구한테 맡겨 놨거든요.”

“동료? 협공하지 그랬어요?”

“하필 미등록 각성자가 이형 에너지 계열이라서요. 이것만도 벅찬데 사방 천지 괴물 다 불러 모을 순 없잖아요. 도망가긴 늦었고 누군가는 저걸 상대해야 하는데 혼자 하는 전투는 제 쪽이 좀 더 익숙해서요. 근데 친구가 이형 에너지 계열이 아닌지라 다른 놈들이 이쪽으로 오긴 하겠어요. 너무 많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현명한 판단이다. 순자는 지호의 선택을 칭찬하면서도 그를 혼냈다. 홀로 상대하기에 군집과 대형종의 협공은 너무 버거운 일이었으니.

“구조 신호 보낸 게 나머지 친구였구나. 아무튼, 혼자 하는 전투 좋아하시네. 두 번은 하지 마요. 죽고 싶어서 환장한 줄 알았네. 본인이 소싯적 임보현 헌터인 줄 알아요? 대 괴수 훈련은 시킨 적이 없었는데. 우리도 어지간한 상황 아니면 대형종하고 일대일 안 해요. 심지어 이놈은 이 균열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라고요. 구조 신호 따라왔다가 이거 발견하곤 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

폭포처럼 쏟아지는 잔소리에 지호는 잘못했단 소리밖에 못 했다. 물론 그 상황이 온다면 또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준영과 도훈이 걱정이었다. 지호의 생각이 딴 데에 가 있는 것 같자 순자는 쏟아 내던 염려를 거두며 한숨 쉬었다.

“아무튼, 이상 개체를 하나 발견했는데 이거 때문에 놓쳤어요. 뱀같이 생긴 놈이었는데 어디로 갔나 모르겠어. 협력 관계 같더군요. 괴물들 사이에선 흔치 않은 일이라 주의해야 해요.”

“뱀 같은 놈이요? 혹시 머리는 뱀이고 팔 달려 있고 좀 이상하게 생긴 그런 놈 맞나요?”

“괴물이 다 이상하게 생겼지, 이상한 소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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