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42화 (143/260)

142화

망설일 시간 같은 건 없었다.

허옇게 질린 얼굴로 지호의 품에 뛰어든 준영은 도훈과 지호가 곧바로 같은 방향으로 몸을 날리는 것까지밖에 보지 못했다. 공포로 질끈 감은 눈 때문에 느껴지는 건 사방으로 뒤흔들리는 중력뿐이다. 지호가 허공을 발판 삼아 추진력을 냈기에 그 품에 안긴 준영 역시 아무렇게 휘둘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빠른 속도로 해당 지역을 벗어났다. 거의 동시에 반쯤 무너져 있던 다리가 완전히 무너지며 잔해가 주유소를 덮쳤다. 스파크가 튄다. 검은 연기.

지하의 유류 창고에서 가스 새는 소리가 삐이이익 사방을 흔들었다. 이윽고 전선 하나가 더 끊어지며 사방으로 불똥이 튄다.

요란한 폭발음.

다리를 무너뜨린 대형종은 검붉은 불꽃을 뚫고 느릿하게 걸어왔다. 속도가 빠르지 않아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한 보 한 보가 수십 미터는 될 정도였다. 도대체 건물 몇 층짜리 괴물인가? 품 안의 준영 때문에 제대로 교전할 수도 없었다.

“저게 호위대?”

“놈들의 귀염둥이지.”

포효하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하필 부근에 고층 건물 하나 없어 몸을 숨길 곳이 마땅치 않다. 지호와 마찬가지로 하늘을 날고 있던 도훈은 먼 곳을 보며 눈을 찡그렸다.

“나 전투에 별 도움 안 되는데, 나쁜 소식이 있어.”

“뭐가 오나요?”

“어. 꽤 많이.”

“전투에 도움이 안 된다니, 여태 어떻게 살아 있었어요?”

“속임수와 눈치로?”

날개를 펄럭이며 이쪽으로 날아오는 것들이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추적해 왔나? 지호는 이를 악물며 자기 목을 끌어안은 준영에게 소리쳤다.

“잠깐 민도훈 씨한테 가 있어요. 교전은 제가 합니다.”

“네? 아니, 헌터님. 여기서요?”

“손 놔요.”

지호는 단호히 말하며 준영을 몸에서 밀어 냈다. 붕 뜨는 느낌에 그는 기겁하며 지호 목을 붙잡았으나 재차 놓으라는 말을 듣자 눈물만 그렁그렁 흘려 댔다.

“이지호 헌터님, 살려 주세요…….”

“안 죽어요. 민도훈 씨가 전투는 몰라도 살아남는 데는 재능이 있으니 믿어 봐요.”

“이거 신뢰라고 봐야 하는 건가?”

“농담할 시간 없어요.”

도훈이 직접 다가와 지호 목에 감긴 준영의 손을 떼어 냈다. 눈알 괴물을 터뜨릴 때와 마찬가지로 손을 밀도 높은 이형 에너지로 감싼 지호는 굳은 얼굴로 준영을 부탁했다.

“내 신호기로 구조 요청 좀 보내요.”

“괜찮겠어?”

“당신에게 인터뷰 따 갔던 연구원들의 증언이 도움될 거예요. 방벽이나 좀 부탁해요. 우리 새 친구를 숨겨야 돼요.”

긴말할 시간이 없었다. 깨애액 울부짖는 괴물들. 날개가 달렸으나 발은 달리지 않았다. 꼬리가 넓적하고 배가 평평하니 내려앉는 데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뾰족한 부리로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데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놈들은 도훈이나 준영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목표는 지호뿐.

이형 에너지로 뽑아낸 화살이 놈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꽂힌다. 몇몇 놈 몸에 부딪치자 화살이 폭발했다. 같은 이형 에너지 계열이다. 에너지끼리의 충돌로 바늘쌈지처럼 공격받은 놈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추락했다.

그러나 한 놈 떨어진 게 다다. 쇄도하는 공격 때문에 몸을 비틀어 아래로 뚝 떨어졌다가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지호가 있던 자리를 꿰뚫었던 놈들이 선회 비행하며 요란하게 울부짖었다. 귀가 아프다. 공격의 일종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허공에서 엉키는 것이 익숙지 않은지 얽히고설키며 몇 놈의 날개가 꼬였다. 그것들은 자기들끼리 부딪치더니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일부가 빠져나가자 달려드는 것은 고작 넷.

처음보다 날아오는 속도가 빠르지 않다. 날아오며 가속도가 붙는 종류인 모양. 뒤로 날며 그것들을 하나하나 정조준했다. 이쪽에 제일 가까이 붙은 것이 주 표적이었다.

“캬아악!”

괴성을 질러 대는 목구멍으로 길게 뽑은 화살이 박힌다. 새에 가까운 모양이라 뇌가 작은 모양이었다. 옆의 놈이 당한 방식으로 똑같이 추락한다.

하나하나 사냥하자 마지막 놈은 오히려 더 분개하며 아가리를 쩍 벌렸다. 코앞까지 다가온 놈이라 침착하기 어려웠다.

목구멍에서 뒤통수까지 꿰뚫은 화살은 오래 유지되지 않고 사라진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놈들에겐 신경 쓰지 않았다. 머리 나쁜 놈들이라 지호의 존재를 일찌감치 잊은 것 같았으니.

문제는 대형종이다. 조금이나마 거리를 벌려 놓았던 놈이 벌써 코앞에 와 있었다. 집채보다 더 큰 것 같은 놈의 주먹이 위에서부터 내리꽂힌다. 가속해 피하지만 그 뒤로 불어온 후폭풍까지 피할 순 없었다.

후우웅! 무시무시한 소리 뒤로 지호의 몸이 종잇장처럼 밀려났다. 한 대 맞으면 골로 간다. 느린 몸짓이어도 지호에겐 충분한 위협이다. 놈이 내지르는 소리는 뱃고동처럼 온몸을 울려 댔다.

퍽, 퍼벅! 피부에 꽂히는 이형 에너지 화살들은 놈에게 타격 하나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눈앞이 막막하다. 어떻게 잡지?

녀석이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날파리같이 주변을 날아다니는 지호 때문에 짜증이 났는지 행동이 조금 더 빨라졌다. 재차 공격을 피하지만 여전히 뒤이어 불어오는 바람에 휘말렸다.

빌어먹을. 지호는 욕을 토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균형만 잡는 것도 힘든데 저걸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지호는 대형종과의 전투 경험이 없었다. 잡을 수 있었던 건 새들까지다.

세 번째 주먹이 휘둘러졌을 때 지호는 그 팔에 바짝 붙어 하강했다. 놈의 손 주변에 생긴 바람의 흐름이 움직임을 도왔다. 지호는 그것이 주먹질을 멈추는 순간에 놈의 팔에 들러붙었다. 온몸을 진동시키는 괴성이 울린다. 손 주변을 날아다니던 벌레가 몸에 붙는 거랑 비슷한 기분일까? 곧바로 지호를 후려쳐 떨어뜨리려는 다른 손이 날아든다.

살아생전 내 본 적 없는 속도로 단거리를 주파한 지호는 곧바로 놈의 팔을 타고 달렸다. 놈의 살은 두껍고 단단했지만 그렇다고 공격이 아예 안 들어가기만 하지는 않았다. 손에 휘감은 이형 에너지 칼날이 생채기를 낸다. 놈이 분노로 괴성을 지르며 발을 쾅쾅 굴렀다. 귀가 먹을 것 같다.

지호를 쳐 내려는 손을 피하며 달렸다. 거대한 손이 그를 후려치려는 것과 별개로 팔이 사방으로 흔들려 그대로 붙어 있기 어렵다. 떨어지고 나면 곧바로 외풍에 휩쓸려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두 번 붙기는 힘들겠지.

지호는 염동력으로 자기 몸을 괴물 팔에 끈질기게 눌러 놓으며 달렸다. 중력조차 무시하는 뜀박질이다.

퍽, 퍽 살을 내리치는 소리가 삼엄했다. 그 와중에 놈의 팔을 그어 대자 더 화가 나 광분한다. 떨어질 뻔한 몸을 괴물 쪽으로 밀어붙여 고정하며 지호는 황급히 균형을 잡았다.

“승차감 너무 안 좋은데, 귀염둥이 씨.”

아무도 듣지 못할 농담을 던지며 재차 손에 휘감은 이형 에너지를 정련했다. 칼날처럼 날카로워지는 손날검. 인간 형태를 닮은 놈이라 힘줄로 추측되는 부위를 찔러 대자 사방을 다 부술 기세로 날뛰었다.

이따위 놈을 귀염둥이랍시고 데리고 다니다니 호위대 놈들 취향도 알 만했다. 신체 계열인지 전신이 단단하다. 눈알은 하나인 놈이 지호의 기척은 기가 막히게 잘 쫓는 걸 보니 감지계 능력도 갖추고 있나 싶었다.

놈의 팔에 매달려 사방을 찍는다. 으르렁대는 소리와 함께 팔이 거칠게 흔들렸다. 지호를 그대로 떨쳐 내고 싶은 모양.

그러나 버틴다. 염동력 방향이 수시로 바뀌어야 하는 까닭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 와중에 드디어 어딘가에 파고든 검날이 뭔가를 끊는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놈이 괴성과 함께 바닥을 내리찍었다. 그대로 튕겨 나간 지호는 황급히 허공에 멈춰 서며 몸을 돌려세웠다. 실수였다. 계속 붙어 있었어야 했는데.

부근을 때려 부수며 발광하던 괴물은 자기를 찔러 대던 날파리가 드디어 시야에 들어오자 시뻘게진 눈으로 괴성을 질렀다. 온몸이 저릿저릿하다.

강도는 단단했지만 움직임이 제한적이고 굽히는 범위도 좁았다. 마구 내지르는 괴성에 뼈까지 저린 느낌이다. 지호는 놈이 바닥을 쾅쾅 내리찍으며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자기 머리통을 깨부수려 한다는 사실에 약간의 성취감마저 느꼈다. 조금이지만 드디어 공격이 통하고 있었다.

바닥을 내리찍는 충격에 먼지가 흩날려 눈에 힘을 집중하지 않으면 앞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혼란한 와중에도 지호는 침착하게 주먹을 피했다. 공격이 근처를 내리찍을 때마다 놈의 손에 칼날을 박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튀는 피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충격이 누적된다.

상체를 뒤로 젖혔다가 온 힘을 다해 내리찍는 일격. 지호마저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온 사방이 울린다. 부서진 채로 위태롭게 서 있던 건물 중 일부가 무너지는 소리도 들렸다.

그워어어어어!

여태 토하던 고통에 찬, 혹은 분노에 찬 울음과는 다른 소리다. 마치 뭔가를 부르는 신호처럼 들리는 소리였다. 뱃고동처럼 길게 이어지는 소리.

물론 지호는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놈이 하늘로 눈을 돌린 동안 빠르게 바닥을 박찼다. 허공을 그대로 날아오르는 것보다 바닥을 박차는 물리적 속도가 빠르다. 괴물을 타고 올라 놈의 목에 그대로 손날을 꽂았다.

케윽! 괴물이 소리를 멈췄다. 뿜어져 나오는 피가 얼굴로 튄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 틈을 타 우측에서 거대한 손이 지호를 내리쳤다. 가까스로 피했으나 후욱, 머리 위를 스치는 매서운 공격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까처럼 긴 소리는 지르지 못한다. 놈의 몸에서 열기가 흐르는 것 같다. 두꺼운 피부 위로 김이 솟았다. 다른 공격인가? 지호는 놈의 어깨에 올라서며 공격할 다음 약한 위치를 파악하려 애썼다. 애석하게도 망할 아가리 외엔 보이질 않았다.

인간이라면 귀가 있어야 할 위치에 섬유 같은 촉수가 무수히 돋아나 사방을 훑어 대고 있었다. 접근했다가 휩쓸리면 위험할 것이다. 눈알은 하나뿐이었고, 머리는 없다. 잡고 타고 오를 것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놈의 손이 어깨 부근을 털어 낸다. 지호는 가까스로 매달렸다. 그것이 눌러 훑어 낸 손바닥에 팔을 쓸렸다. 쓰라림은 잠깐이다. 상처는 회복하면 된다. 도훈과 준영은 멀리 갔을까?

걱정과 염려로 머리가 복잡했다. 상처는 입혀도 치명상은 아니다. 갈수록 날뛰는 것을 보니 무사히 제압할 수 있을 거란 상상조차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자기들끼리 공격해 대던 새들이 정신을 차리고 지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괴물의 어깻죽지를 넘어 등에 들러붙자 자기를 향해 이를 드러내는 줄 알고 괴물의 손이 새를 움켜쥐었다.

콰직, 끔찍한 소리와 함께 새가 으스러진다. 어마어마한 악력이었다.

외눈 거인이 자기 등에 붙은 것을 잡으려고 버둥거렸다. 놈의 팔이 두 개뿐이라 다행이었으나, 귀에 달린 촉수가 쭈우욱 길게 뽑혀 나오고 있는 건 전혀 다행이 아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