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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38화 (139/260)

138화

지호의 파장을 쫓아온 놈이 아파트 단지로 뛰어 들어왔다.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사방을 울린다. 부근의 괴물들이 모두 공격적으로 돌변해 소리쳐 댔다. 예감이 좋지 않다. 정신계가 아니어야 할 텐데.

대형종들 중 하나가 움직이지 않는지 내내 울리던 땅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덕분에 주변을 효과적으로 교란하던 흙먼지도 가라앉고 있었다. 지형지물 하나가 아쉬운 판국에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다니. 그르르, 하는 낮고 짧은 울음소리가 뚝 끊긴다. 승리의 포효. 뭔가가 죽고, 뭔가가 승리한 모양이다.

지호는 아파트 옥상에 도착해서야 준영을 내려 주었다. 그는 지호에게서 떨어지자마자 바닥에 요란하게 토악질을 했다. 아까 먹은 음식들이 도로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지호 혼자 날아다니기엔 큰 무리가 없었으나, 안겨 있던 쪽은 아닌 모양이다.

지호는 그가 토하는 소릴 들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길 건너편 무너진 교회 잔해에서 승리자가 패자를 포식하고 있었다.

“좀 괜찮아요?”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안 괜찮은 것 같았다. 애석한 일이지만 움직여야 한다. 여긴 위험했다. 하늘을 나는 놈들이 주변에 없어 다행이지만, 날 수 있는 것들이 멀지 않은 곳에 보인다. 옥상은 위험했다.

“자세가 많이 불편했나? 그렇지만 방금 그 자세가 보호하기 제일 괜찮아서요. 아니면 업힐래요?”

준영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입가를 대강 훔쳐 낸 그는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로 지호를 바라보았다.

“또, 또 해요?”

“헌터가 되고 싶다면서요. 이 정돈 기본이죠.”

기본까진 아니다. 지호만큼 빠른 속도로 허공을 밟아 가며 움직이는 헌터가 많지는 않았다. 바닥에서 뛰어다니는 것만 해도 압박이 심한데 위아래서 급발진 급출발을 연이어 해 대니 당연히 속이 버티지 못하긴 할 것이다.

생각할수록 준영이 신체 계열이 아닌 게 아쉬웠다. 좀 더 조심히 들고 움직여야겠단 생각을 하며 지호는 그를 재촉했다.

“빨리 와요. 강제로 데려가는 쪽이 마음에 들어요?”

조금만 상황이 여유로웠다면 새 각성자를 어르고 달래 가며 조심스럽게 교육할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괴물 아가리가 등 뒤에서 딱딱거리고 있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있을 턱이 없다. 준영은 떨며 지호에게 다가왔고, 지호는 그를 다시 안아 들며 주변을 훑었다.

대형종들만 싸우는 게 아니다. 아직 안정되지 않은 균열 내부는 아수라장에 가까웠다. 지호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눈에만 힘을 집중했다. 단순 신체 계열끼리 격돌하고 있는 곳에서 육교가 부서지는 게 보였다.

“저쪽이 낫겠네요.”

준영은 지호가 가리킨 쪽을 보며 경악했다. 물론 그는 의견을 낼 수 없었다. 지호가 옥상을 박차고 날아오르기 무섭게 반동으로 헌터의 품에 머리를 처박아야 했으니까.

혀를 깨물까 무서워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이 순간이 빨리 끝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애석하게도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었다.

***

두 시간을 넘게 뛰어다닌 지호는 가까스로 안전한 곳을 찾았다.

폭 좁은 하천을 뛰어넘어 아파트 단지 하나를 통과했다. 그대로 학교 두 개가 나란히 붙은 구역에 도착하자 생존자들 표식도 꽤 걸려 있다. 이쪽으로 다른 헌터들이 오길 기대할 수도 있을 터였다.

“준영 씨. 괜찮아요?”

준영은 해쓱했다. 지호 품에 안겨 있는 것도 이제는 힘겨웠는지 고개만 도리도리 젓는다. 무리해서 움직이지 않으려 해도 사방이 괴물 판이라 쉬이 안전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차라리 이대로 경계 쪽으로 빠져나갈까?

머리를 굴리던 지호는 우선 학교 건물 위에 내려앉았다. 땅에 발을 딛기 무섭게 허겁지겁 일어나겠다고 팔다리를 허우적댄 준영은 소리도 못 내고 울었다. 내내 울어 탈수가 올 것 같았다.

“학교 안에 괴물이 있는 게 아니면 안에서 좀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다 역 근처에 몰려 있는 것 같아서요.”

옥상에 준영을 내버려 둔 채 밑으로 머리를 쑥 내밀어 교실 내부를 확인한 지호는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 내부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큰 건물에 괴물 한두 마리 없을 리가 없다. 정신계 괴물이 언제 어디에 나타날지 모르니 항시 경계해야 옳을 터.

운동장조차 고요했기에 지호는 침착하게 외벽에서 창문들을 훑어 내렸다. 하나하나 확인하는 동안 보이는 게 하나도 없다. 전원 대피에 성공하기라도 했나? 회사 건물이었다면 차라리 각자 차 타고 도망갈 가능성이라도 짐작하지, 학교는 진짜 아니었다. 최후의 보루였을 전철이 멈춘 이상 고립되는 건 당연지사였다.

지호가 멈춘 건 체육관 앞에서였다.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피비린내였다. 설마설마하며 복도 창문에 손을 대고 형질을 변환해 창틀 채로 떼어 내자 피 냄새가 확연히 느껴졌다.

사방에 널린 신체 어딘가. 찢어진 옷가지와 파먹힌 머리. 움켜쥔 채로 잘려 나간 손과 신발 속에 발만 남고 위는 통째로 사라진 것도 있다.

토악질이 밀려 나오는 현장에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지호는 체육관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시체가 쌓여 있는 걸 확인했다. 다 여기 모여 있다가 죽은 것이다.

시기를 놓친 학생들이 여기로 대피했고, 여기에서 모종의 괴물을 만나 몰살당했다. 최소 한 놈. 최악의 경우 인간 맛을 본 괴물 군집이 있을 수 있었다.

서둘러 준영에게 돌아온 지호는 여전히 해쓱한 준영을 재촉했다.

“여기도 위험한 것 같아요.”

“여기도요? 여기까지?”

“끔찍한 꼴 봐야 움직일 거 아니죠? 빨리 와요.”

“조금만. 조금만 쉬어요. 좀만 더 눕고 싶어요.”

목소리가 하도 간절해 더 말하기 어려웠다. 곧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얼굴로 끈질기게 버틴 학생이다. 지호였어도 이렇게 버텼을까? 강단 있는 녀석 같았지만, 이 이상 재촉하기 어려웠다. 지호가 생각해도 무리하게 움직였다. 그 역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해야 했다.

“아래로 내려가진 않을 거예요. 난리가 났더군요.”

“살아 있는 사람……. 없나요?”

“생존자 표식이 있는 쪽은 체육관 하나였어요. 거기마저 아무도 없더군요. 있는 건 지옥뿐이었고.”

학교에서는 소방 훈련과 마찬가지로 균열 시 대피 훈련을 받는다. 경보가 울렸을 때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각기 안전한 장소로 흩어지는 쪽이 안전한 법. 모여 있으면 생존이고 뭐고 없다. 하나 뚫리면 전멸이니까.

좁은 곳에 숨어 있도록 인원을 나눈다고 생각하도록 짜인 대피 규율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른 사람이 희생되는 동안 나머지라도 생존하도록 짜인 것뿐이다. 그러니 이 모양새는 이상했다.

“원래 생존 훈련받으면서 좁은 곳에 숨으라고 배우지 않나요?”

“일반적으론 그렇긴 하죠…….”

“왜 체육관에 모여 있었을까요.”

습관이었다. 항상 곁에 지호보다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과 함께해 온 이의 버릇 같은 것들. 당연히 답이 돌아올 리 없단 사실을 깨달은 지호는 쓸데없는 이야길 했단 생각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을 얼버무렸으나, 잠시 생각하던 준영은 뜻밖의 답을 내어놓았다.

“각성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네?”

“그, 요즘 소문 있잖아요. 각성하는 방법에 대한 거…….”

지호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무슨 이야길 들은 거지. 누운 채 잿빛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던 준영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저도 각성한 거 보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던…….”

“무슨 말이에요. 제대로 말해 봐요.”

다시 눈 뜬 준영은 깜짝 놀랐다. 지호가 그를 내려다보며 얼굴을 불쑥 들이밀고 있었으니까. 여태 그 품에 안겨 있었으면서도 얼굴을 볼 일 없었던지라 자각을 못 했다. 준영은 괜히 부끄러워 눈을 돌리면서 헛기침했다.

“아니, 인터넷 같은 데 도는 헛소문 있잖아요. 각성하려면 뭐 해야 한다 그런 거. 얼마 전부터 꽤 신빙성 있단 정보가 여기저기 커뮤니티에 올라왔거든요. 착한 사람만 헌터가 될 수 있으니 자원봉사를 해야 하네 마네 하는 이야기였는데 주변에 각성자 된 지인 있는 사람들 의견 들어 보니까 나쁜 사람이 거의 없었더라고요?”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아는 건 산타클로스뿐일 텐데요.”

“뜬소문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저도 의도하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결과가 비슷해서 한 말이었다고요.”

“착한 사람이 각성한다?”

“좀 더 구체적이에요. 남을 도운 사람들이 각성한단 거죠. 수가 많을수록 확률이 더 올라간대요. 저기 모인 애들 중에 한 명이라도 각성자가 있었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잖아요. 그 소문에 기댄 게 아닐까요?”

최악의 사태가 좀 더 빨리 일어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각성자가 각성하자마자 자기 능력을 깨닫는 일은 1세대에서도 드물었다. 신체 계열 헌터들 정도나 즉각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 나머지는 훈련을 거쳐야 한다. 혹여 여기서 누군가 각성할 수 있었다 한들 체육관 한가득 밀집한 학생들 모두를 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헛소문에 저 아까운 목숨들이…….”

“어……. 가짠가요? 진짠 줄 알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한번 시도라도 해 보자고 뛰어드는 사람들도 없진 않을 거예요. 아니면 체육 시간이라 저기 모여 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교실로 돌아가기엔 너무 거리가 멀다든가.”

준영은 소심하게 덧붙였다. 지호가 너무 슬픈 표정을 하고 있어 더 그랬다.

“사방에서들 그런 시도를 하면서, 부질없이 목숨을 버리고들 있겠군요. 안타깝게도.”

누가 뿌린 소문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가뜩이나 불안한 시국에 사방으로 퍼져 나간 헛소문이 들불처럼 번진다. 어느 정도 진실에 기반한 거짓말이라 사람들의 마음이 쉽게 흔들렸을 것이다. 꽤 그럴싸해 보이니까.

정말 그렇게 하면 각성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목숨을 던지는 일에 비하면 남을 돕는 것 정도의 사소한 선행들은 쉽다. 그리고 다수를 위한 선행을 위해 사람 많은 곳으로 모여들어 움직이다가 쾅, 돌이킬 수 없이 사고가 나고 마는 현상들.

거짓말쟁이의 화로에서 튀어 오른 불씨들이 지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는 협회에 해당 사항을 보고하며 일반인들에게 퍼진 잘못된 소문을 정정하도록 보도를 요청했다. 방송 매체만큼 영향력이 큰 것도 없으니.

승찬이 그랬던 것처럼, 각성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삶을 사는 사람들일수록 각성 조건을 빨리 알아챌 것이다. 이번이야 좀 헛발질했다지만, 언젠가는 모두가 각성 조건을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

과연 그날이 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각성자가 생길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웠다.

좀 더 자세히 살피다 보니 준영의 마지막 추측이 좀 더 신빙성을 가지게 됐다. 시신 중에 교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호는 아마도 체육복이었을 천 조각들에서 눈을 떼며 일렀다.

“이제 충분히 쉬었으니 다시 움직여요. 뭐가 됐건 여긴 좀 위험한 것 같아요. 저쪽 성당이나 아니면 다른 아파트 단지 쪽으로 이동할게요.”

“진짜로 선행이 각성 조건이 아녜요? 그럼 전 어떻게…….”

어차피 알아야 할 사실이기에 지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손짓했다.

“크게 보면 완전 거짓말이 아니긴 해요. 제일 중요한 게 빠져서 그렇지.”

“제일 중요한 거요?”

준영이 좀처럼 안기질 않자 지호는 할 수 없이 성큼 다가서서 저보다 키 큰 남학생을 번쩍 안아 올렸다. 이러고도 대화는 할 수 있었으니까.

“남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거요. 잘 잡아요. 좀 빠르게 날아서 갈 거니까.”

준영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자세였으나 지호는 차라리 그러는 쪽이 속 편하다고 생각했다. 감수성 풍부한 고등학생이다.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괴로워하거나 호기심을 보이는 걸 보면 자꾸 옛날 생각이 났다. 지호 역시 이랬던 시절이 있었겠지.

지금은 그저 메마른 감성의 헌터 하나만 남아 있다.

꽤 먼 곳에서 대형종의 발 구름 소리가 들렸다. 피어오르는 먼지구름을 등지고, 두 사람은 다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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