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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36화 (137/260)

136화

태양 딴에는 친절하게 설명한 편이지만 준영이 그걸 알 수 있을 턱이 없다. 추가 설명은커녕 금세 패널을 보며 다른 현장 상황을 파악하느라 바빠진 헌터에게서 눈을 돌린 준영은 주방에서 채소를 썰고 있는 앳된 얼굴의 헌터를 관찰했다.

둥근 뺨에 꼭 다물려 부리처럼 내민 입술. 집중하고 있을 때의 버릇인 모양이었다. 아무리 동안이라고 생각하자며 애써도 고작해야 자기 또래로 보이는 얼굴이다. 심지어 태양처럼 노련한 느낌도 아니었다. 아까 친구가 이지호 헌터니 뭐니 하며 중얼거렸던 게 생각난다. 뉴스에 종종 나오곤 하던 그 이지호 헌터가 맞다면 실제로 헌터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것이니 진짜 준영 또래일 터였다.

깨어나자마자 무작정 이지호 헌터를 끌어안았던 게 생각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를 품에 안고 있었지. 눈 뜬 뒤에는 천국인가 생각했었다. 그를 데리러 온 천사인 줄 알았고.

오해할 만했다. 등 뒤로 햇빛이 부서지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화려하게 내리쬐고 있었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를 품에 안은 채 내려다보는 여자란 현실성 없는 법이었으니.

새삼스럽게 부끄러워진 준영은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배가 고픈 것도 고픈 건데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지금 제 꼴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다.

“야, 어디 가!”

준영이 막 식당을 나가려는 찰나, 태양이 다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다녀오는 건데 안 되나? 그는 몸을 움츠리며 돌아섰다.

“어, 화장실에 좀 가고 싶어서…….”

“화장실? 흠, 꼬맹이! 같이 다녀와.”

준영은 펄쩍 뛰었다. 그러나 태양은 지호를 주방 밖으로 내보내며 자기가 들어가고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지호 역시 당연하다는 것처럼 가자고 손짓해 보여 준영을 당황하게 했다.

화장실 정도는 좀 참을걸. 준영은 후회하며 지호를 따라 걸었다. 화장실은 1층에 있어 도로 올라가야 했다. 입구 부근이 유리문이라 주의가 필요한 상황. 아까 내려왔던 곳과는 다른 계단으로 올라가며 지호가 뒤편을 향해 손짓했다. 준영은 바짝 긴장해 몸을 수그렸다.

“밖에 한 놈이 있네요. 감지형은 아닌 것 같아요. 시선만 좀 다른 곳으로 끌죠.”

어떻게? 하고 물을 새가 없었다. 바깥 가로등 중 하나에 스파크가 튀었다. 파지직, 하는 요란한 소리 때문에 괴물의 시선이 그쪽으로 휙 돌아간다.

준영은 숨이 턱 막힘을 느꼈다. 지호가 그를 집어 든 탓이다. 그대로 화장실까지 내달린 지호는 그 와중에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큰 소리를 내며 건물 안으로 놈을 불러들일 필요는 없었다.

준영을 내려놓은 지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 그, 미안하지만 밖에서 기다릴 여력이 없어서요. 볼일 보고 나가죠.”

지호의 귀 끝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걸 본 준영은 죽고 싶어졌다. 존엄의 문제였다. 태양이 같이 왔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두 사람의 능력 차이를 알지 못하기에 할 수 있는 오해였다. 지호는 필요하다면 귀를 막고 있겠다며 돌아서면서도 한마디 했다.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면 안 될 것 같으니 안쪽을 이용해 줄래요? 그편이 피차 프라이버시 유지에 도움도 되고요.”

싱긋 웃는 지호를 보며 준영은 진짜로 죽고 싶어졌다. 준영에게 보여 주려는 것처럼 팔을 높이 들어 귀를 막고 선 헌터의 등은 조그마했다.

사실 진짜 요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긴장 때문에 습관적으로 오고 싶었던 것이지.

나오지 않는 걸 짜내는 건 고문에 가깝다. 어차피 소릴 안 듣겠다고 했으니 그냥 나갈까? 준영은 온갖 생각을 하면서도 어떻게 볼일은 봤다. 그의 존엄성은 괴물이 팔과 함께 뜯어 가 버렸을 것이다. 그나마 쳐다보고 있을 테니 해결하라고 안 한 게 어딘가.

귀를 막고 있었다지만 지호의 표정 역시 볼만했다. 신체 계열 능력자라 안 듣는 쪽이 어려우니 당연한 일이다. 차라리 나이 차이가 좀 나는 사람 쪽이 편했을 텐데. 서로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도 모른 채 둘은 어색하게 그, 저, 그럼, 같은 종류의 의미 없는 말들로 상황을 마무리했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스파크 이후 주의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는지 밖에 있던 괴물은 없다. 또 준영을 들고 뛸 생각으로 그를 어깨에 얹었던 지호는 안도하며 그를 내려 주었다. 볼일을 본 이후 유독 소극적이고 얌전해진 준영은 시키는 대로 지호를 쫓으며 연신 불안한 감정을 드러냈다. 내려가는 동안 큰일은 없다. 운이 좋았다.

재료들을 불에 올려 솜씨 좋게 구워 낸 태양은 식탁에 음식을 내려놓으며 준영을 불렀다. 허기에 진 신입 각성자가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밀어 넣는 사이 태양이 속삭였다.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렸는데? 무슨 일이라도?”

“입구 근처에 괴물이 하나 있어서 유인하기도 하고요, 음. 저를 신경 쓰느라 볼일 보는 데 좀 오래 걸려서.”

“밖에 뭐가 있었으니 같이 들어갔겠군. 그럴 법도 하지. 저놈이 못된 짓 하려고 하진 않았겠지? 각성자니 기본 인성이야 의심할 바 없긴 하지만…….”

지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각성자는 안 되지 않아요? 그게, 어.”

“고자 새끼들 많은 거야 익히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생식 능력을 잃는 거잖아. 그걸 세우는 데 생식 능력까진 필요 없다고. 인식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특정 행동이 가능한 놈들도 있거든. 그리고 굳이 그걸 안 쓰고도 개짓거린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척 보니 그런 쓰레기 같진 않군.”

어린 헌터를 배려해 말을 순화했지만, 지호 역시 알아들을 건 다 알아들었다. 보현이 아무렇지 않게 고자가 된다느니, 안 선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려줬던 탓에 착각했다. 사라지는 건 생식 능력이지 신체 능력은 아닌데.

“아무튼, 지원받기가 힘들게 됐다. 네가 말했던 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어. 구조자 찾고 균열 안정되자마자 전원 퇴거해서 곧바로 닫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군. 균열을 강제로 닫는다니, 옛날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실종자들 반발은 어떻게 무마하는 거지?”

“그러게요. 아직 결정된 사항이…….”

내려온 공지를 일일이 읽어 가며 현장을 뛸 만큼 여유롭지 않아 확인이 늦었다. 밀린 공지들을 나누어 확인했으나 여전히 변이한 실종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공지는 없다.

“알기 전에는 몰라도, 보고 후에는 좀 다르겠죠. 이 정도 크기의 균열을 쉽게 닫는 것도 어려울 거고.”

“그래. 군부대에 마정석 가공탄을 보급한다는 이야기가 있군. 각성자도 아닌 사람들 전열에 세워 놓고 괜찮을까 몰라.”

군은 절반은 모병제, 절반은 징병제를 유지한다. 모병 대상자도 옛날보다 확연히 줄었고, 모집되어 간 병사는 기초 훈련 과정을 거쳐 일 년 후부터 제대할 수 있다. 탄약이 괴물들에게 먹혔다면 아마 그 기간은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효과적으로 괴물을 제압할 수 있는 집단의 존재는 항시 유용하니까.

자원입대한 병사들은 대인전보다는 대괴전 관련 훈련을 우선으로 받는다. 태양은 그런 것들을 간략히 설명하며 앞으로는 판도가 뒤집힐 거라고 말했다.

“각성자가 아니어도 괴물을 사냥할 수 있어지는 시대가 오면 우리 몸 갈려 나가는 거야 확실히 줄어들겠지. 수입도 줄겠지만.”

“군대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상황이 오니 제 역할을 못 하면 더 큰일 나. 제대로 동작하는 기관이라곤 군대가 거의 유일한 상황이잖냐.”

꽤 쌓여 있던 계란 요리를 허겁지겁 비운 준영이 식기를 내려놓았다. 배가 차고 나자 한층 더 현실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지호와 눈이 마주치자 바늘에 찔린 것처럼 움찔하며 시선을 돌리는 게 부자연스럽다. 태양은 낄낄 웃으며 일어났다.

“여기서 대기하라고 했으니 잠시 쉬면서 기본 사항을 알려 주지. 편법으로 능력 측정부터 할까?”

“기계 없이도 할 수 있어요?”

“몇 가지 특징들 있잖아. 우선 이거.”

태양의 손끝에서 빛이 피어올랐다. 빛은 천천히 형태를 갖추어 나비 모양을 이루더니 날개를 팔랑이며 손가락 끝에서 떨어져 나왔다. 준영의 시선이 떨어질 줄 모른다.

“이상한 거 있어 보이나?”

“예? 어,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정신계는 아니군. 이쪽 계통 능력자들은 남이 만든 환영을 보면 이질감을 느끼거든.”

“들어 보니까 무겁지도 않았어요. 신체 계열은 아녜요. 이형 에너지가 발산되는 걸 보니 이형 에너지 계열은 맞고, 다른 게 병행되는지는 확인해야겠어요.”

눈만 깜빡이고 있던 준영의 손을 휙 낚아채 잡은 지호가 실례, 하고 한마디 하며 그의 손바닥을 그었다. 따끔 하는 감각과 함께 손바닥에 얇은 실선이 그어졌다.

“회복력을 보려고?”

“치유 능력 보유자들은 자체 회복 기능이 균열에서도 작동해요. 의식해서 능력을 쓰지 않아도 몸을 회복시키고요.”

본래 균열에서 다친 상처는 회복이 더디다. 만약 치유 계열이 아니라면 지호가 회복해 줄 수 있는 정도의 얕은 상처. 준영은 손바닥이 좀 간지럽다고 느끼며 손을 꿈지럭댔다. 지호가 잡은 쪽 손에 땀이 차 축축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네. 치유 계열 병행인가 봐요.”

“잘됐군. 너 치유계는 주력이 아니랬지?”

“이 친구도 아닐 수도 있죠.”

“괜찮아. 치유계는 많을수록 좋아.”

나머지는 감지계와 염동력이다. 이건 개화 여부를 간이 확인하는 방법이 없어서 확인을 미뤘다. 그나마 두 가지 능력이라도 찾은 게 다행이었다.

“신체 계열이었으면 좋았을걸.”

태양은 혀를 찼다. 본디 신체 계열 능력자 둘이 강행군할 예정이었던 팀이라 더 그렇다. 다른 안정적 활동 위주 팀을 만나면 각성자를 넘겨주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여의치 않은 선택이다.

“이형 에너지에 치유계라. 여기저기서 노리겠는데요?”

준영은 뭐가 잘된 건지 몰라 눈치를 살폈다. 여전히 그의 손을 잡고 있던 지호는 뒤늦게 준영을 놓아주며 웃었다.

“잘됐어요. 치유계는 남들보다 상황이 좀 낫거든요. 치료기 대기할 필요도 없고요. 다행이죠?”

준영은 뭐가 다행인 줄도 모르고 마주 웃었다. 순해 보이는 얼굴이라 그런지 지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부스스 풀어졌다.

“간략한 설명을 해 줄게요. 헌터들의 능력에는 크게 다섯 갈래가 있어요. 각 능력마다 소질 적성이 있고, 해당 능력에 적성을 보이는 사람들을 또 종류별로 분류해요. 좀 복잡하지만, 익히고 나면 어렵지 않을 거예요. 준영 씨는 이형 에너지 계열에 치유 능력 더블 같아요. 자세한 측정은 돌아가면 할 거고, 이형 에너지 능력자는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어요. 제가 주변에 쳐 둔 방어벽 같은 것도 만들 수 있고.”

지호는 여러 가지를 만들어 보이며 그의 관심을 유도했다. 치유 능력이야 워낙에 직관적이기도 하고, 지호 본인부터 자가 치유력 높이는 것 외에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없어 알려 줄 것이 없다.

태양이 이동 능력자들 쪽으로 이동 가능 여부를 묻는 동안 지호는 차근차근 각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 설명을 멀뚱히 듣고 있던 준영이 질문했다.

“날 수는 없어요?”

“그건 염동력이 있어야 가능해요. 다른 방법으로는 뭐, 편법이 있긴 하지만 당장은 안 되죠. 기어 다니지도 못하면서 순간 이동 하려고 하는 꼴이라서요.”

아까 측정할 수 없다고 했던 종류다. 준영은 지호가 보여 주는 화살을 비롯한 다양한 것들을 보며 넋이 나갔다.

죽음의 순간에 경도되지 않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는 편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지호는 자기 경우를 떠올렸다.

지호의 이형 에너지 화살을 손으로 만져 보려고 만지작대던 준영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헌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졸업하고 나면 입대할 예정이었는데.”

“군대요? 왜요?”

개발 중인 마정석탄이 보급되면 모를까, 지금 군대는 살상력이 현저히 저하된, 말 그대로 저지용 집단에 불과하다. 두 헌터의 이야기를 듣고 묘한 표정을 짓던 이유가 여기 있었는지 준영이 화살 건드리던 손을 거두며 머쓱하게 웃었다.

“헌터들처럼 멋진 활약을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사람들 구하는 데는 투입되잖아요. 균열 구조대 들어가겠다는 친구들도 더러 있긴 했는데, 그쪽은 시험을 보니까……. 그리고 뒷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긴 한데 구조 작업에 좀 더 집중하고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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