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전철뿐 아니라 모든 대중교통이 멈춘다. 차 없는 사람들에겐 정말 재앙이 따로 없는 상황. 그 때문에 나이 어린 학생이나 노인, 그 밖의 취약 계층이 유독 많이 남겨진다.
역을 지나 아파트 단지를 빠르게 통과했다. 문 열린 곳은 가정집이 아니다. 사람들이 도망치다 말고 급하게 피신할 수 있는 곳. 단지 입구에 장기 지구대가 보였다.
지호와 태양이 처음 마주한 세 사람은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노인들이었다. 추레한 차림에 찢어진 무릎. 덜덜 떠는 손.
균열 어플 동작시키는 것조차 숙지하기 어려울 만큼 나이 든 사람들이다. 태양은 할 말을 잃었고, 지호는 빠르게 주변을 훑어 위험한 괴물이 근처에 없다는 걸 확인했다.
“아이구, 헌터님 왔어. 애들 말이 맞았네.”
“다 늙으면 죽어야지 뭘 살라고.”
노인들은 눈물을 훔치며 두 헌터의 도움을 받아 지구대 건물을 나왔다. 가진 핸드폰도 노인들이 흔히 쓰는 알뜰폰 종류가 아니었다. 태양은 이동 능력자 파견을 요청하며 좌표를 찍었다.
“어르신, 신호 보내는 건 배워 두셨나 보네. 잘하셨어요. 생존자 발견. 노약자에 부상자다. 속히 파견 바람.”
“아냐. 이거 내 거 아니야. 애들이 주고 갔어. 괴물 소리도 나고……. 얘들 꼭 찾아 줘. 헌터님들, 응?”
지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태양은 본부에 보낸 무전을 끝내기 무섭게 질문했다.
“주고 갔다고요? 그럼 걔들은?”
“몰라. 우리 여기 있으라고 하더니 뛰어나갔어. 어떤 애가 눈이 마주쳤단 이야길 했는데…….”
지호의 덜미가 쭈뼛 섰다.
여긴 급성 균열이 아니다. 그러나 대형 균열이었다. 지호는 아직 균열 저편에서 넘어오는 것들에 대해 잘 몰랐다. 수원 균열에서 벌어졌던 불가피한 사고가 여기서도 똑같이 일어날까 봐 외부에서 대기하고 있는 헌터들이 있긴 하지만 그 수가 많지 않다. 군부대의 지원까지 받아 가며 균열을 포위한 상태.
어차피 안정기가 올 때까지는 여기에서 나갈 수 없다. 이동 능력자가 도착해 노인들을 데리고 사라지기 무섭게 지호가 태양의 팔을 덥석 움켜잡았다.
“혹시 뱀처럼 생긴 괴물 본 적 있어요? 머리는 뱀인데 팔이며 상체가 있고, 하체부턴 다시 뱀이에요.”
“몰라. 중요한 질문이냐?”
태양은 임시 파트너의 창백한 표정을 간과하지 않았다. 지호는 그가 헌터가 되던 상황을 간략히 읊으며 중얼거렸다.
“그때 그놈들도 균열 생기자마자 그림자에서 튀어나왔고, 나오자마자 절 봤어요. 놈들이 노리는 사람들 중에 공통점이 있을 수도 있어요. 걔들 먼저 찾아야 해요.”
“어떻게? 핸드폰도 주고 갔잖아. 신호도 없는데.”
태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갱신된 지도가 지이잉 울리며 전송됐다. 아무도 찍지 않은 표식 중에 이동하고 있는 게 있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멀지 않은 도로다. 조금 달려 들어간 곳이 교회라니. 괴물들에게 발각되었을 텐데도 살아 있는 걸 보면 누군가 재치를 발휘해 놈들의 시선을 돌린 모양이었다. 다급하게 울리는 구조 신호. 교회 건물 주변을 서성이는 커다란 괴물들은 지호나 태양 역시 처음 보는 놈들이었다.
공룡에 가까운 거체. 깃털을 다 뽑아낸 닭이 좀 더 험악한 이빨과 발톱을 가진다면 저런 모양일 것이다. 태양은 혀를 찼다.
“손질 마친 닭대가리처럼 생겼군. 생존자들이 근처에 있어. 신호가 몇 개나 잡히는군.”
교회는 숨기 좋은 장소지만, 한편으론 생존하기 어려운 장소이기도 하다. 유리 장식에 많은 창문. 괴물들이 손쉽게 부수고 들어올 수 있는 건물이었다.
지호는 잠시 고민하다 의견을 내어놓았다.
“유인하죠. 차라리 아파트 단지 쪽이 사람이 적겠어요. 여기 잡히는 신호가 한둘이 아녜요. 지원 신호 보내 주세요.”
“혼자 가는 거야?”
“제가 시선 모을 동안 생존자들과 접촉해 주세요.”
교회 첨탑이 한 블록 건너 하나다. 반대편엔 큰 마트도 있었다. 이쪽에도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몸 숨기려고 들어가기 좋은 위치니까. 버틸 물건도 많았다.
다행히 괴물은 두 놈뿐이다. 저것들이 퀸 패러사이트의 호위대만큼이나 어마어마한 놈들이 아니길 바랄 수밖에.
소리를 내면 다른 것들이 올까 싶어 지호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차 한 대 없는 도로. 신호등이 좌회전 신호로 바뀌었다.
“난 치킨보다 피자가 좋은데.”
또렷한 음성에 괴물들이 고개를 돌렸다.
조류 같은 모습에 날개까지 달렸지만 펄럭이는 부위에 달린 것은 깃털이 아니라 피막이었다. 놈들이 날갯죽지로 바닥 더듬기를 멈추고 포효했다. 주변에 있는 놈들을 불러 모으는 것 같았다.
그러면 곤란하다. 이놈들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모르는데 많은 수를 한 번에 상대할 순 없었다. 지호는 날아오르는 놈들과 고도를 맞추며 화살을 조준했다. 지호 뒤로 떠오른 이형 에너지 화살체가 열두 개.
쐐애액, 공기를 가른 화살 중 두 개가 놈들의 날개를 스친다. 변칙적으로 날아다니는 놈들이라 좀처럼 맞질 않았다.
꽤 높은 하늘로 올라온 지호는 날아다니는 게 한두 놈이 아니라는 사실에 깊은 우려를 느꼈다. 염동력 능력자가 아니면 하늘 나는 놈들을 상대하긴 어렵다. 그마저도 하늘을 날면서 전투하는 데 익숙한 사람은 더 적을 터.
설상가상으로 날아오른 괴물들 뒤로 울룩불룩한 구형 괴물이 보였다.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전에 본 그놈이었다. 녀석이 눈을 뜨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맹숭한 닭대가리에게서 시선을 돌린 지호의 몸이 살처럼 쏘아졌다.
보현이 휘둘렀던 광선검 같은 건 없다. 대신 지호는 그의 손 위로 켜켜이 쌓은 이형 에너지를 휘감았다. 비슷한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터.
휘둘러진 검이 뜨지 않은 눈알을 쪼갰다. 그것은 퍽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갔다. 뜨거운 액체가 후두둑 아래로 떨어진다.
눈이 아래로 떨어지기 무섭게 부근을 날아다니던 놈들이 난폭해졌다. 지호의 등으로 뛰어내린 놈이 그의 머리를 물어뜯으려고 부리를 들이댔다. 필사적으로 피하며 몸을 뒤집자 다른 놈이 달려든다. 균열에 들어올 때면 습관적으로 두르고 있던 방벽이 그를 살렸다. 어깻죽지로 반쯤 파고든 발톱이 매섭게 얼굴을 할퀴었다.
눈알을 터뜨린 무기를 휘둘러 한 놈의 발목을 숭덩 잘라 냈다. 두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다 저들끼리 머리를 부닥쳤다. 생긴 것답게 지능이 떨어진다. 지호는 몸에 가하던 염동력을 없애 아래로 뚝 떨어지며 자기를 향해 부리를 벌리는 것들을 응시했다.
침착하게. 조준할 기회가 많지는 않다. 놈들은 머리가 나빴으나 타고난 비행 실력이 뛰어나 좀처럼 잡기가 어려웠다. 매번 몸을 내어 줄 수도 없는 노릇.
떨어지며 가속도가 붙었다. 놈들도 푸덕푸드덕 날갯짓을 해 대며 이빨을 들이밀었다. 이빨과 부리라니 정말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생각과 동시에 놈들의 머리 위에서 길고 두꺼운 창 형태의 이형 에너지가 생성된다.
중력을 가르며 쇄도하는 빛의 창날. 두 개의 창이 새들의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며 땅에 내리찍혔다. 지호는 지면에 도착하기 직전에 몸에 염동력을 가해 신체를 허공에 고정했다. 중력 때문에 압박감이 느껴지며 온몸이 콱 짓눌렸다.
지호는 허공에 멈추었으나 괴물 두 마리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다. 애당초 대화를 나눌 만큼 똑똑한 놈들은 아닌 것 같았다. 눈이 마주쳤다던 것이 이놈들일까?
“생존자들은요?”
교회로 뛰어 들어온 지호는 눈물범벅 된 고등학생들을 발견했다. 태양은 험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너 치유 계열 능력도 있댔지? 빨리 와 봐!”
쪼그려 앉은 태양 앞엔 창백한 얼굴로 몸을 떨고 있는 학생이 누워 있었다. 그렇게까지 추운 날씨가 아닌데도 덜덜 떤다. 이 부딪치는 소리가 딱딱 울릴 정도였다.
지호는 황급히 치유력을 흘려 보내며 학생의 상태를 확인했다. 태양이 응급 처치를 해 두긴 했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저체온 상태였다.
“팔이?”
“한 번 잡혔을 때 다쳤다더라. 당연히 의료학 수료 안 했겠지? 빌어먹을.”
“고작해야 자가 치유력 좀 올려 주는 정도예요.”
지호의 손이 녹색으로 물들었다. 애석하게도 학생의 신음은 줄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겉옷을 벗어 주었으나 크게 효과 있어 보이지 않았다.
“준영이 죽어요?”
“안에 들어가서 물이라도 좀 찾아봐라.”
다친 학생보다 친구들 표정이 더 심각해 보였다. 태양이 이미 부상자 후송 요청을 넣은 상태였으나 사방에서 요청이 있어 이동 능력자가 금방 도착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균열 내부로 들어온 헌터들 중에 이동 능력자는 고작 셋이었다. 나머지는 외부에서 더 심각한 상황을 막는다. 공지로 적색 신호가 켜졌다.
“이런 젠장.”
생존자들이 듣고 있어 길게 말하진 못했으나 공지를 확인한 헌터 두 사람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수원 균열에서와 비슷하다. 자기 몸을 쪼갠 괴물이 경계 밖으로 뛰쳐나가 군대와 조우했다는 알림.
“여길 닫을 수도 있겠네요.”
“무슨 미친 소리야?”
“예전에도 한 번 비슷한 상황이 있었어요. 수원 균열은 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닫혔죠. 이번 일과 비슷한 상황 때문에요. 가뜩이나 크기도 어마어마한 균열인데, 여기서 사방으로 괴물들이 뛰어나가면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여기 이렇게 많은……. 아무튼 그럴 리가 없어.”
“그때 실종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발생했죠. 아시잖아요?”
태양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교회 안에 식당이 있었는지 물병 하나를 통째로 들고나온 학생들 덕에 대화가 끊겼다. 여전히 신음하고 있는 학생의 상처 위로 깨끗한 물을 부어 흙먼지를 닦아 낸 태양은 연신 욕설을 중얼거렸다. 응급 처치에 일가견이 있어 보여 다행이었다.
상비약이 어디 있는지 뒤질 시간이 없다. 불길한 괴성이 밖을 쩌렁쩌렁 울렸다. 어마어마한 놈이 있는 모양이었다. 지호는 잠시 몸을 낮추었다가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얘가 어쩌다 다쳤어?”
“어르신들 넘어진 거 부축해 드리다가 괴물하고 눈이 마주쳤대요. 자기만 보고 있다고, 그 사람들한테 지구대 양보하고 뛰다가 붙잡혔어요. 두 놈이 동시에 달려들어서 자기들끼리 엉켜 있다가 저들끼리 싸우는 동안 저희가 업고 뛰었어요.”
“잘했다. 너희가 얠 살렸구나.”
살렸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괴물에게 짓밟혀 바닥에 쓸린 얼굴이며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고, 그 어마어마한 발톱에 내리찍힌 어깨나 잡아 뜯긴 한쪽 팔이 쇼크사하고도 남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준영은 덜덜 떨면서도 자기를 돌봐 주는 헌터의 손을 슬그머니 붙잡았다.
“그, 그, 그 하, 할머니 어떻게…….”
“다른 헌터가 와서 데려갔으니 무사히 탈출하셨다. 다음은 네 차례야.”
“다, 다행, 이…….”
가까스로 태양을 붙잡았던 아이의 손이 툭 떨어졌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참는다. 밖에서 괴물 소리가 내내 들려와 태양은 거기 오래 있을 수 없음을 알았다.
“얘들아. 안쪽으로 들어가자. 여긴 너무 눈에 띄어.”
“준영이, 준영이는…….”
“내가 데리고 가마. 눕힐 만한 장소를 찾아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