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그간 일반 균열은 거의 겪어 본 적 없는 지호가 경험하는 정련된 첫 실전이다. 항시 급성 균열에만 뛰어들었던 터라 감회가 새롭기도 했다.
지호의 파트너로 배정된 헌터는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난 좀 바꿔 주쇼. 어린애랑은 잘 안 맞아서.”
지호는 인상을 찡그렸다. 임시 파트너 정보를 열람해 보니 신체 계열에 정신 계열 병행. 지호와 능력적으로는 합이 잘 맞아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지호의 불만스러운 얼굴을 본 그 헌터는 코웃음 쳤다.
“이거 봐. 반항도 못 하잖아. 진짜 어린애란 거지.”
“그게 무슨 말이세요?”
“얼굴만 어린 애늙은이 헌터들은 여기서 자기 나이가 몇 살인 줄 아냐고 버럭들 하거든. 초짜면 지시는 내가 한다. 어차피 지금 바꿀 상황도 아니고.”
지호 역시 썩 마음에 드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워낙 합 맞출 사람 구하기가 힘든 능력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서로의 단말기를 태그하고 위치 정보를 맞춘다. 지호 화면에 파트너 위치가 푸른색으로 표시됐다. 조태양. 말하는 꼬락서니는 어디 다 부서져 가는 행성에 가까운데 이름이 아까웠다.
이동 능력자가 워낙 소수라 현장 집결에 시간이 좀 걸렸다. 균열 크기별로 상황이 좀 다른데, 이번 균열은 워낙 커서 진행 속도가 느린 모양이었다. 염려했던 것보다 대피 속도가 빠르다. 균열 중심으로는 이동 능력자들이 들어가 노약자 중심으로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 일반 헌터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이동해야 했다.
움직이는 도중에 경보가 2단계로 올랐다. 지호의 힘으로 날아가는 주제에 태양은 그를 재촉했다.
“좀 더 빨리 못 가나? 이러다 균열 열리겠는데.”
지호는 욱했으나 틀린 말은 아닌지라 잠자코 속도를 올렸다. 특수 전투복 덕분에 이동 속도도 빨라진 기분이었다. 경계 부근에 다 와 가자 사방 도로마다 차가 꽉꽉 들어차 있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경보 단계 상승 이후로 사람들 얼굴에 부쩍 긴장이 감돌았다. 아직은 통솔 가능 단계다. 2단계로 오른 것도 직전이니까. 한 구간에서 정체가 일기 시작하자 사방이 막혔다. 곤란한 일이다. 균열 내부 투입 팀이 아닌 헌터들이 도로를 막는 것들을 즉각 치워 냈다. 대부분은 성급하게 차선을 바꾸거나 끼어들다가 사고 난 차량이다. 부서진 차체를 들고 도로 밖으로 나오는 헌터들 뒤로 도망치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봐, 속도 올려. 늦는다고. 지각 때문에 외부 팀으로 강제 편입될 셈이야? 곤란해. 이번 사냥에 꼭 끼어야 한다고.”
사냥이라니.
헌터는 돈을 잘 번다. 그 이유야 간단했다. 돈 될 수 있는 걸 사냥할 능력이 있으니까.
여태까지 지호는 일반 균열에 투입된 적이 없었다. 훈련 명목을 제외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정식 헌터가 된 다음에도 급성 균열 사태들에 휘말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람들 구조하는 일만 맡아 왔으니, 사실상 균열 구조대와 큰 차이가 없기도 했다.
그러니 이번 일은 지호의 첫 사냥이다. 마정석 추출 방법은 알고 있다. 해 본 적도 몇 번은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사람 구하는 일이 우선이란 생각만으로 달려온 나날이 있어, 이 사태가 이상할 정도로 낯설었다.
굳은 표정을 긴장으로 해석했는지 태양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초짜는 아니잖아? 이제 막 정식 헌터가 된 건 알아. 뉴스에서도 많이 봤고, 공지 일람에 네 이름이 얼마나 많이 오르내리던지.”
“그렇긴 한데, 급성 균열에 파견되기만 했었거든요. 항상 사람들 구하고 다급하게 싸우고 정신없었던 것 같은데 다들 태연하시길래.”
“우리도 구조 작업이 우선이야. 그건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돈벌이도 중요하거든. 그렇다고 해서 생존자와 괴물 중에 돈을 고르지는 않을 정도의 분별력들도 있고.”
자기 입으로 저렇게 떠벌리자 신뢰도가 떨어졌다. 일반 균열에서 안전하게 사냥하는 방법에 대해 떠들어 대는 태양을 내버려 둔 채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균열을 응시한 지호는 잠시 아득함을 느꼈다.
근래 보았던 균열이 하필 가장 작은 사이즈였던지라 당연히 비교할 수밖에 없다. 한눈에 돔 형태가 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크기. 하필이면 김포가 휘말리는 바람에 김포 공항이 마비됐다. 이쪽 상공을 지나는 노선 역시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급작스럽게 열린 균열이 아닌지라 생각보다 태연하다. 질서 정연한 대피 행렬을 뒤로하고 균열에 도착한 지호와 태양은 먼저 와 있던 헌터 무리에 합류했다.
곧 3차 신호가 울린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숨을 장소를 찾을 때였다. 다 탈출했다고 생각하는 경계 부근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때다. 비슷한 경고 방송이 울렸다.
-3차 경보. 3차 경보. 움직이지 말고 안전한 장소를 찾아 움직이십시오. 반복합니다. 은신처를 찾아 움직이고 생존자 표식을 외부에 걸어 두십시오.
급성 균열 방송과 달리, 안내 음성이 함께 나온다. 애당초 급성 균열은 1차나 2차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아, 안내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곧바로 숨어야 하는 상황이니 긴 안내가 나갈 수 있을 턱이 없다.
마지막까지 내달리는 사람들과 안전한 곳을 찾아 헤매는 이들. 균열 사태 때는 공공기관 문이 모두 열려 있다. 필요시에 숨어서 해당 기관 비품을 사용하는 것도 허용되어 있었다.
헌터들은 각기 배정받은 위치로 이동하며 구조 표식부터 확인했다. 중앙 부근에 신호가 꽤 몰려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차 경보 울리자마자 빈손으로 출발했다고 해도 나오기 어려웠을 위치니까.
3차 신호 후에 4차 신호가 뒤따르는 건 금방이다. 찾은 은신처에서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 때.
익숙하고 낯선 경보음. 지호는 그의 각성 당시를 생각하며 추억에 젖는다. 의식적으로 부모님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던 때가 많아, 맨 처음 각성하고 모든 것에 정 붙이기 어렵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두 분 생각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그러지 않으면 그리움에 매몰될 테니.
4차 경보는 짧다. 균열 예상 범위 안에 들어와 있는 헌터들은 그리 당황하는 이가 없었으나, 지호를 비롯해 얼마 전 정식 헌터가 된 사람들은 일부 당황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허공이 깨진다.
급성 균열은 중심에서부터 이형 에너지가 퍼져 나오는 식이지만, 일반 균열은 범위 전역이 동시에 부서지며 와르르 무너진다. 본디 충만히 차올랐을 빛이 부서져 내린 자리로 인간 아닌 것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측정기 이상 없음. 대형종 수가 많습니다. 식별 가능 개체 포착 중.”
보고를 맡은 이가 쉴 새 없이 화면을 확인했다. 다양한 계측기에 잡히는 신호들. 일전에 서명은 장인이 이쪽에 시설 설치 건으로 수차례 오간 적이 있다. 보현 역시 장인들과 함께 이쪽을 다니느라 바빴었다.
이날을 준비했겠지. 급조해서 세워진 것치곤 시설이 나쁘지 않았다. 검단 센터에서 파견된 헌터가 제일 많았는데, 본디 이쪽 센터 소속인 소민 역시 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일부가 지호 쪽을 흘깃거린다. 워낙 얼굴이 알려진 편이라 다들 알아보기는 할 터. 태양은 툴툴거리며 지도를 공유했다.
“이거 원, 구조 작업 할 때는 편하겠어. 사람들이 얼굴만 보고도 헌터구나 하고 믿을 거 아냐.”
“복장만 봐도 믿지 않아요?”
“이런 혼란스러울 때 남의 집 터는 또라이 새끼들도 많아. 요즘이야 좀 줄었지. 한창때는 정말.”
태양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몇백 미터 떨어진 아파트 단지의 생존 신호부터 가리켰다. 이쪽 팀 리더가 여기로 가겠다고 표식을 찍으면 다른 헌터들은 다른 곳으로 간다. 구조 동선이 겹치면 효율적이지 못하고,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위에서 지시를 내리면 그건 그것대로 효율이 낮다.
태양이 마킹한 위치에서 세 개의 구조 신호가 빛났다. 그르릉 하는 낮은 울음소리. 근처 그림자에서 괴물이 솟아난다.
“조태양 팀에서 김포 장기동 진입합니다. 출발.”
태양이 짧게 한마디 하며 지호에게 손짓했다. 날아오는 동안 동료의 능력을 숙지한 다음이다. 지호는 자기 정보를 대부분 공개해 놓은 편이라 팀장으로선 계획 세우기 편한 동료였다.
물론 태양 입장에서야 대부분 공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지호가 공개한 건 각 분야당 몇 가지 능력뿐이다. 그걸로도 남들과 확연한 차이가 있어, 마치 깨끗하게 정보를 열어 놓은 헌터처럼 보인다.
일부러 그렇게 했다. 김 반장의 도움이 있었다. 모든 정보를 열어 두는 건 여기저기 불려 다닐 빌미밖에 되지 않을 거란 말도 들었었다. 지호가 원하는 구조 작업에 들어갈 땐 이 정도로 충분했다.
“균열이 방금 열렸다. 못 숨은 사람이 발견되면 보고 없이 곧장 행동하도록.”
헌터의 감을 따르란 말과 비슷해 보였다. 하기야, 위험 상황에 허락을 일일이 기다렸다간 남는 건 생존자가 아니라 시체뿐일 것이다.
일반 균열에 휘말린 도시는 묘한 모습이었다.
균열 저쪽 편과 이쪽 도시가 반쯤 섞인 모양이다. 저편 세계를 본 적 없을 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얼추 짐작이 갔다. 저쪽과 이쪽이 겹치면서 생겨나는 게 균열. 본디 먹잇감인 것들조차 먹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
바다에서의 위치로 따지자면 플랑크톤쯤 될까? 지호는 씁쓸한 추측을 넘기며 위치를 가늠했다. 도망치다가 들어간 곳일 터.
재차 구조 신호가 발광한다. 생존자들이 살려 달라는 필사의 노력을 보내는 것이지만, 구조 자체에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 배터리만 나갈 뿐이고……. 지호 역시 아무것도 모를 때는 무작정 자주 구조 신호 보내는 게 생존할 방법이라고 믿었다. 개중에는 십 분에 한 번은 신호를 보내야 헌터들이 잊지 않고 찾아올 거란 팁을 떠드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두 사람은 차가 다 빠져나가 깨끗하게 정돈된 대로를 달렸다. 괴물들은 생겨나기 무섭게 근방의 만만한 것들을 잡아먹으려 안달이라 생각보다 방해받는 일이 없었다.
“괴물들끼린 구역이 겹치지 않는댔는데.”
“이런 난리를 한 번 거친 다음에는 그렇지. 약한 것들이 먹힌 다음에는 정리되는 게 사실이니까. 비슷한 것들끼리는 사냥을 안 해. 싸우다 다른 놈에게 죽을 확률이 높잖아.”
거미를 잡는 건 태양의 노련함이 꽤 도움됐다. 그는 자세를 낮춘 채 지호에게 지시했다.
“네가 움직이면 곧장 이쪽으로 달려올 거다. 놈들은 다리 하나만 묶여도 균형이 깨지거든. 다리 하나만 중점적으로 부숴. 그럼 못 일어난다.”
태양이 지시하고 지호가 쏜다. 날카로운 화살 모양 이형 에너지가 거미의 다섯 다리 중 하나를 노렸다. 열 개 중 여섯 발이 명중하자 놈은 달리다 말고 바닥에 처박혔다.
“나머지 네 개로도 걸을 수 있지 않아요?”
“구조 자체가 달라서 안 돼. 저놈들은 다리마다 땅을 짚는 순서가 있거든. 하나만 망가져도 저 꼴이 되지. 아마 먹이 계층에선 꽤 하위에 있을 거야.”
태양의 팀 외에도 이 동네로 들어온 팀이 있다. 우체국과 장기 고등학교 쪽으로 표식을 찍은 걸로 봐서 학교 쪽에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왜 전철역 주변에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요?”
“경보가 울리자마자 곧바로 전철 운행이 중단되는데, 그것도 모르고 전철 타고 빠져나가려고 모여든 사람이 많아서 그래. 좀 기다리면 오겠지, 오겠지 하다가 3차 경보 때 현실을 깨닫고 도망치다 늦은 사람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