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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31화 (132/260)

131화

이렇게 따로 불러 자리를 마련할 정도라면 그런 식으로 재차 희생한 사람들의 수가 두 자릿수는 넘어갈 것 같았다. 지호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여 가며 성실히 답했다.

“걱정하시는 일 없도록 더 주의하겠습니다.”

“그래. 살아서 다시 봤으면 좋겠네. 귀관의 노고에 감사하네.”

남선일 사령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악수를 청했다. 지호는 굳은살 단단히 박인 군인의 손을 마주 잡으며 힘주어 팔을 흔들었다. 남선일의 팔은 미동도 없었다. 그도 신체 계열 능력자였다.

지호가 무엇을 시도했는지 금세 깨달은 사령관은 무례를 지적하는 대신 싱긋 웃었다.

“이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 중에 은퇴자는 있을지언정 책상물림은 없네. 나는 이번 일 같은 현상이 모든 각성자들에게 퍼져 나가지 않을까 싶어 각별히 주의하는 거야. 혹시 불편했다면 사과하겠네. 이런 걱정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질 않아서.”

“아닙니다.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부주의하게 활동했고, 충분히 위험하다고 보일 수 있었죠. 생존을 우선에 두고 움직이겠습니다.”

“좋아. 이만 가 봐. 오늘 이야기는 양 박사한텐 따로 하지 말도록. 아마 귀찮게 굴 거야.”

양 박사가 귀찮게 굴 수 없는 유일한 헌터가 알겠다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호가 떠난 뒤에는 다른 주제로 재차 회의가 시작됐다. 이번에도 공개 브리핑은 아니었다.

밖에서 지호를 기다리던 승찬은 방송이 끊기고도 한참 나오지 않던 그를 걱정하느라 찌푸려진 이맛살이 펴질 줄을 모르던 참이었다. 대기실로 돌아온 지호를 본 승찬은 그제야 안도했다.

“무슨 취조도 아니고 분위기가 생각보다 험했네요. 괜찮아요? 무슨 일 있던 건 아니죠?”

“아저씨 말대로 했는데요. 제가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어요. 이제 다른 사람들의 고민이 되었으니, 결정이 나면 따라야죠.”

“지호 씨 생각과 달라도요?”

“언젠 뭐 제 생각하고 같은 적 있었나. 저 맨날 혼나고 근신받고 그런 거 잊었어요?”

“이렇게 방송까지 해 가며 보고할 일은 아닌 거였다고요. 지호 씨 보고 아니면. 그거 때문에 지금 사방이 난리예요.”

지호 핸드폰도 아까부터 요란하게 울렸다. 한 번 받기 시작하면 끝도 없겠지. 지호는 신호를 무음으로 돌렸다.

“보고서는 또 따로 올려야 돼요. 서류가 싫다…….”

가끔 서류 작업을 피하려고 현장에 가고 싶단 이야기와 동의하는 말이 오가면서 둘은 짐을 정리했다. 협회 본부에 들렀더니 챙겨 주는 것이 워낙 많아 빈손으로 왔다가 한 짐 가득 들고 간다.

꽤 묵직해 보이는 기기를 양손으로 든 승찬은 나머지도 이렇게 무거우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는 얼굴로 지호를 돌아보았다. 물론 전혀 할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한 손에 승찬보다 무거워 보이는 테스터용 도구들을 든 지호는 나머지를 염동력으로 띄운 채 턱짓했다.

“가요. 한동안 여기 있어야 한댔어요. 조산지 실험인지 뭔지.”

“저보다 협회 연구원 하나 데려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누가 누구 귀일 줄 알고 사람을 막 데려와요.”

지호는 진지하게 고개를 저으며 직원의 안내를 받아 움직였다. 본부 건물에 딸린 숙소는 척 봐도 입 벌어질 만큼 돈 처바른 시설이었다. 본래 헌터들만 머무를 수 있는 곳이란 안내를 받으며 들어온 두 사람은 떨떠름한 얼굴로 짐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무슨 센터 연구실만 한 크기의 방이다. 한쪽에 개인용 치료기가 구비된, 본격적인 헌터 시설이기도 했다.

“이것저것 써 보고 알려 달라고 하면서 시설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라더니, 되게 튼튼하네요.”

“만져만 보면 강도를 압니까?”

“어, 습관이 돼서요. 형질 분석 같은 거…….”

지호는 머쓱하게 웃으며 도구들을 쭉 늘어놓고 테스트를 시작했다. 승찬은 믿음직한 보조로 선택받고 나서도 영 찜찜한지 입을 멈추지 않았다.

“센터에 있는 다른 헌터들과 손발 맞춰 가며 꽤 오래 일했잖아요. 그 사람 중에서도 믿을 사람이 마땅치 않아요? 파트너가 없어서인가?”

“흠,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다들 하나씩 숨기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 이건 영 강도가 별로네요. 신체 계열 능력자가 좀 세게 쥐고 휘두르다 보면 손잡이 금방 망가질 듯.”

승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에 지호의 감상을 적어 내려갔다. 지호가 여전히 그걸 휘두르고 있으니 진도가 나가질 않아 그가 하나 집었다가 도로 내려놓는다.

“이건 치료 관련 도구라고 되어 있는데 실험해 보려면 다쳐야 하는데요. 나중에 쓰죠.”

“금방 다칠 수 있는데.”

“기기 테스트하자고 팔 긋는 짓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금방 낫고 또…….”

“신체 계열에 치유 능력 보유자다. 잘 알고는 있지만, 일부러 다칠 필요는 없단 말은 백번 더 해도 모자람이 없겠죠? 저건 어때요? 제가 들어 봤는데 꿈쩍도 안 하더라고요. 상용 장비는 아닌 것 같던데.”

검고 매끈한 유선형 몸체가 인상적인 패널이었다. 목적으로는 방어용 장비라고 되어 있으며 만지며 확인해 보니 꽤 튼튼했지만, 무게가 꽤 나갔다. 지호마저 힘겹게 들 정도였으니.

“흠, 이건 어디 기지 세워 놓고 쭉 쌓는 용도로나 써야겠는데요. 아니면 건물 방어용 설비 같은 데나…….”

“왜 이렇게 중구난방이죠?”

“물건이나 사람이나 처음에는 왜 섞이게 됐는지 잘 모르죠. 얼추 비슷한 것들을 같이 놓다 보니까 이렇게 보면 저거 같고 저렇게 보면 이거 같아서 섞이고, 그래서 기준 없이 막 나열된 것처럼 보이는 거 아닐까 싶어요.”

“사람도요?”

“박 팀장님이 공인 각성 지원부 팀장이거든요. 거기 부서장은 아까 저기 회의실 중앙에 앉아 있던 사령관님이래요. 갑자기 막 엄청난 곳 같지 않아요?”

헌터들 사이에서나 알 법한 부서라 승찬은 그 이름을 지금 막 처음 들은 참이었다. 당연히 알 리 없는 사실들을 설명하며, 지호는 찜찜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맨 처음 각성자들은 다 거기 들러요. 헌터가 안 돼도 일단 등록을 하죠. 그래서 처음 균열에서 각성한 사람 찾아내면 미등록 각성자라고, 꼭 저기 데리고 가게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요. 이상하다고 생각은 안 했거든요. 왜, 우리도 주민등록증 나오고 지문 찍고 그러잖아요.”

“한국인이라 익숙한 단계네요.”

“박 팀장님이랑 김 반장님, 둘이 같이 있으면 별로 사이 나빠 보이지도 않고 협동 임무도 잘 뛰거든요. 근데 다른 데서 보면 피차 신뢰하질 않고 정보 교류도 잘 안 해요. 심지어 의심하고도 있고, 이쪽은 아예 상대 안 하기도 하고……. 같은 데서 일한다고 꼭 모든 걸 공유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의심하면서 정보를 캐려고들 하는데 다른 데는 심어 놓은 귀가 없을까요.”

결국, 처음부터 하던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왜 승찬을 여기 데려와야 했는가. 지호 때문에 연차를 쓰니 헌터 협회에 사람이 부족하냐며 의아해하던 형철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호와는 사뭇 다른 근무 환경이다. 구조대원들은 저렇게 복잡한 정치를 할 여력까진 없는 사람들이라 오히려 담백했다.

“참, 아저씨가 아까 동생 얘기했었잖아요. 그, 혹시 거기서 이사 안 가는 이유가 가족과의 추억 때문이에요?”

“돈 없어선데요. 구조대원이 돈 잘 버는 일은 아니라서요. 헌터들 버는 단위랑 다르다니까요.”

“아니,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균열에 파괴된 집에 사는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임대 아파트 거주 순위에 들어가잖아요. 지금 있는 아파트도 사람 꽉 찬 거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좀, 그. 감상적인 이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런 이유가 아예 없진 않죠.”

농담으로 상황을 넘기려 했던 승찬은 웃으며 손만 움직였다. 저러고 대답하지 않는 패턴은 보현의 것이다. 지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재촉했다.

“아, 뭔데요. 그렇게 말 돌릴 수 있는 건 한 명뿐이에요. 아저씨는 말해 줘야 해.”

“그런 게 어딨어요?”

“제가 실종자들 보고 왔었잖아요. 그쪽에 여기 있는 건물들이랑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건축물들이 있었어요. 거의 부서지고 깨져서 구분하기 어려웠는데, 그래도 개중에는 좀 알아볼 법한 큰 건물들 있잖아요. 제가 거기서 구월동 중간에 있는 영화관을 봤거든요. 왜, 역 근처에 있는 거 있잖아요. 지하에 대형 마트 있고. 아저씨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그 위치요.”

승찬은 지나치게 익숙한 지명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하면서 다음 물건을 들어 확인하는 도중에 떠드느라 지호는 그의 표정을 놓쳤다.

“균열 저쪽에 전기가 없어서 해 떨어지면 완전 캄캄하긴 한데, 건물이나 뭐 그런 것들이 유지되는 거로 봐선 음식이나 뭐 그런 것도 같이 넘어갈 것 같거든요. 실종자들 살아 있는 것도 보긴 봤고, 어. 물론 사람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거기 근처에서 아저씨네 집이랑 비슷한 건물을 본 것 같았거든요?”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아 이리저리 뒤집어 보다 확인을 포기한 지호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열심히 떠들던 입이 그제야 닫혔다. 승찬이 괴로워 보인 탓이었다.

“어, 미안해요. 눈치도 없이 떠들었네.”

“아닙니다. 우리 집이 있을 수도 있죠. 균열에 휩쓸린 지역이었으니까요. 그렇게 튼튼한 건물도 아닌데 용케 버텼네요.”

“거기도 괴물이 하나 있었어요. 다른 실종자들하고 좀 떨어져 있었는데, 그쪽에 특이한 기상 이변이 있거든요? 구슬이 막 떨어져요.”

지호는 당시 상황을 열심히 묘사하며 흰 구슬과 거기에서 나오는 정신 계통 영향에 관해 설명했다. 생경한 이야기에 승찬은 저도 모르게 인상까지 찡그려 가며 설명에 집중했다.

“저도 거기 휩쓸릴 뻔했는데 절 구해 준 괴물이 있었어요.”

“괴물들이 이상하게 지호 씨한테 친절하네요.”

“네? 설마요.”

“코드 레드 투에게 협조 요청을 받은 사람은 지호 씨가 처음이었잖아요. 그 괴물이 만난 사람이 지호 씨가 처음은 아니었을 거고. 그러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자아를 유지하고, 그 많은 모습으로 변할 줄 몰랐을 테니까요.”

실제로 도훈 역시 헌터였던 껍데기다. 지호는 승찬의 눈치를 살피다가 하고 싶던 이야기를 도로 물렸다. 확인되지도 않은 거로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생긴 건물들이 아저씨 집 주변에 쭉 있긴 했었죠. 아저씨 집이라고만 볼 수 없긴 하네요”

“왜 우리 집이라고 생각했어요?”

“흠, 부서진 꼴이 비슷해서?”

“내가 일 년만 더 벌면 지호 씨네 옆집에 들어갈 수 있거든요? 한 방에 크게 이사하려고 얌전히 있던 겁니다.”

“보현 언니한테 물어보고 이사 와요. 언니 술 취하면 가끔 옆집 창문 열고 들어간대요. 침입자로 오인받고 패대기쳐진 사람이 몇 명 있었나 본데, 그래도 언니가 신체 계열 능력자는 아니니까 크게는 안 다칠 거예요.”

“제가 한 낙법 하니까 괜찮겠네요.”

둘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마저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두 사람 다 머리가 한층 복잡해졌다. 승찬의 마음이 어지러운 데 일조한 지호는 이번에 돌아가면 그의 집에 한 번 초대해 달라고 말해 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하필 호수도 똑같을 게 뭐란 말인가? 어린 동생이 있었단 이야기까지 듣자 몇 배로 심란했다.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이름자마저 비슷하니 그 가능성을 떨쳐 내기 어렵다.

타인의 기분에 민감한 승찬은 지호가 금세 시무룩해져선 축 처져 있는 걸 알았다. 어른답게 불길한 생각을 한쪽으로 미뤄 놓은 그는 일부러 종이 소리를 크게 내며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그나저나 임보현 헌터가 술을 좋아합니까? 헌터가 술에 취하는 줄은 몰랐는데요.”

“어, 신체 계열 헌터는 체질에 따라 조금씩 다르대요. 언니는 신체 계열이 아니라서 그렇고요.”

“흠, 조금 있으면 지호 씨도 스무 살이잖아요. 술 먹어 보고 싶어요?”

지호는 승찬의 눈치를 살폈다. 이게 함정인지 아니면 나이 될 때 술 같이 먹어 주겠다는 관대한 어른의 제안인지 가늠하는 것이다. 물론 그의 성격으로 볼 때 후자일 확률이 높았다. 지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종알거렸다.

“그치만 저번에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제가 취하면 아무도 제압할 사람 없다고.”

“그렇게까지 인사불성으로 들이부을 생각을 했어요? 우리 쪽 사람들이야 회식 한 번 하면 쓰러질 때까지들 달리니까 말린 거죠.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계속들 줄 텐데, 그거 다 받으면 사방 민폐 끼치는 헌터로 여기저기 영상 찍혀 올라갈 수도 있었어요.”

“말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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