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저게 위험해?”
녀석은 재차 동의했다. 사람 말을 얼추 할 줄 아는 것이 사람깨나 먹은 녀석인 모양이었다. 준우만큼 인격이 또렷해 보이진 않았지만, 아무튼 지호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괴물이란 사실만으로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으니.
“저거 왜 위험한데? 독 같은 거야?”
“아니야.”
“그럼 공격해?”
“못 움직여.”
준우나 도훈에 비하면 어린애 잡고 대화하는 느낌이지만, 녀석은 충분히 자기 의사를 전달해 왔다. 물론 완벽한 의사소통이 된 건 아닌지라 지호는 다시 고심했다. 신체를 마비시키는 종류의 연기일까? 아까 좀 어지러운 느낌이 들긴 했었다.
“혼자니?”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행동 때문에 어린애 같단 느낌이 들어, 지호는 저도 모르게 그를 안쓰럽게 여겼다. 분명 괴물인데도 이상하게 친숙한 느낌이었다.
“나 도와준 거지? 고마워.”
구슬 비가 쏟아지는 탓에 괴물이 뭐라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바닥을 더듬어 불붙일 만한 것을 찾자 녀석이 그르렁댔다. 불만을 표하는 것 같았다.
벽이며 바닥이며 잡히는 게 없다. 지호가 주변 더듬기를 끝내자 녀석은 지호 발치에 와 앉은 채 콧김을 훅 내뿜었다. 그것 보라는 느낌이라, 지호는 어이없어하며 놈을 내려다보았다.
“못 찾을 줄 알았단 거야?”
“없어. 다 써서.”
“내가 뭘 찾았는데?”
“불붙일 거.”
올려다보는 눈은 금색으로 빛났다. 지호의 이형 에너지가 반사되어 그렇기도 했고, 이 어둠 속에서 또렷이 보이는 게 샛노란 눈뿐이라 좀 무섭기도 한 기분이다.
구슬 비가 쉬이 그칠 것 같지 않았기에 지호는 그냥 털푸덕 앉았다. 녀석은 다시 눈높이가 비슷해지자 지호에게서 조금 물러났다.
멀리 떨어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까이 오지도 않는 것이 묘하다. 지호는 이 괴물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너 괴물이 맞긴 하니?”
“환이 괴물 아니야.”
“환이가 네 이름이야? 누가 지어 준 건데?”
“엄마 아빠.”
“엄마 아빠가 있어?”
“사람은 원래 다 엄마 아빠 있어. 멍청한 헌터.”
대답이 워낙 예상치 못했던 터라 지호는 눈을 굴렸다. 어두운 게 차라리 다행인 것 같았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잘 몰랐으니.
이 괴물은 어쩌면 어린애를 먹은 거 아닐까.
어린애처럼 행동하는 이유를 추측하기론 꽤 타당한 것 같았지만, 그 생각이 떠오르기 무섭게 같이 앉아 있는 게 거북해졌다. 자기를 환이라고 반복해서 말한 녀석은 탁탁 바닥을 두드렸다. 팔이나 다리로 치는 게 아니었다. 꼬리 같은 것이 녀석의 뒤에서 흔들렸다.
“여기 왜 왔어?”
“오려고 온 건 아니야. 사고였어.”
“모든 헌터들 다 그렇게 말해.”
“헌터를 많이 봤니?”
“몇 명. 다 떠났어. 그래서 혼자야.”
구슬 비가 천천히 멈추었다.
해가 떠 있을 때도 어두침침한 곳이라 밤은 더더욱 깊었다. 더욱이 그게 정체불명의 것들이 쏟아진 후라면 당연히 더 그렇다. 지호는 이제는 드문드문 쏟아지는 구슬들을 보며 물었다.
“헌터들이 저거에 당했어?”
괴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슬그머니 움직여 문 앞에 앉았다. 길을 가로막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전혀 소용없는 행동이다. 깨진 창으로 숭숭 들어오는 바람에 살갗이 서늘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