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형 에너지가 이상할 정도로 지호 주변에 몰려 있나 싶더니 균열 조짐이 점점 이상해졌다. 지호는 최근에 이 현상을 겪은 적이 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 균열은 열린 지 시일이 꽤 됐다. 곧 없어져도 이상치 않기는 했지만,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에.
사방을 살피다 반쯤 무너진 건물에 눈이 갔다. 약간의 도움만 있으면 완전히 무너질 것 같은 형태다. 철거반 일을 도우며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지호는 자기 주변에 모여든 이형 에너지를 전부 끌어모아 튀어나온 건물 철골을 걷어찼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건물을 유지하고 있던 마지막 균형이 깨지며 끼이이, 불길한 소리가 난다. 지호는 다시 균열 쪽으로 달려갔다.
“여기요, 여기!”
건물이 무너지고 흙먼지가 요란하게 일었다. 이형 에너지 역시 비슷하게 흔들린다. 주변도 함께 흔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균열과 저쪽이 유리되고 있었는지 저쪽까지 충격이 가해지진 않았다. 지호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때 연구 팀이 임시로 쓰고 있는 컨테이너 문이 열렸다. 담배를 물며 나오는 건 김 반장이었다. 지호는 악을 쓰며 펄쩍펄쩍 뛰었다.
“반장님! 여기요! 여기!”
둘의 눈이 마주쳤다. 김 반장은 들고 있던 걸 던지며 뭐라고 소리쳤고, 곧바로 컨테이너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나왔다. 경악에 찬 얼굴들. 누군가 균열로 뛰어들려는 걸 사방에서 막았다. 외부에서 볼 때 이미 위험한 모양새란 건 균열이 곧 사라질 거란 뜻이다. 급성 균열이 사라질 때 중앙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밖으로 나올 수 있었지. 지호는 도훈이 알려 주었던 상식을 상기하며 이를 악물었다.
갑자기 보현의 걱정하던 얼굴이 떠오른다. 그 감각을 믿었어야 했다. 불길하다고 했었는데.
곧 쇄도하는 경계면.
판교에서는 중앙에서 그 에너지에 휩쓸렸었다. 중심으로 갈수록 거칠어지는 에너지라 바깥쪽에선 충격이 크지 않다. 지호는 눈을 질끈 감으며 빠르게 가까워 오는 균열 경계로 몸을 날렸다.
비행은 길게 느껴졌으나 추락은 금방이었다.
바닥에 머리를 처박아 눈에 모래가 잔뜩 끼었다. 몸을 짓누르는 이형 에너지들의 집요한 감각. 알고 싶지 않은 현실 앞에 지호는 울었다. 왜 하필 이 시점에? 지호가 진입하기 전까지 균열은 안정적이었다. 소멸기에 진입한 건 경계를 넘어갔다 온 다음이었다.
수신기에서 노이즈가 길게 울렸다.
-자----확인하여? 수색--
눈물로 엉망이 되었던 지호는 벌떡 일어났다. 경계를 통과하길 바라며 던진 몸은 흙투성이였다.
수신기에서 신호가 잡힌다. 아까처럼 두 방향에서의 신호는 아니었다. 시흥 쪽에서 오는 미약한 신호. 지호는 자기가 꽂아 놓고 왔던 발신기 쪽으로 달려갔다. 고개를 드는 것들이 있다. 지호는 감지 파장에 닿는 것들에 질겁하며 방벽 두께를 올렸다. 소음 내는 괴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신음을 삼키며 달리기에 집중했다. 뒤를 쫓아 꼬리처럼 이형 에너지가 덩어리째 매달렸다. 지호는 곤혹스러워하며 속도를 올렸다. 다행히 그것들은 지호 쪽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몸을 돌려 돌아누웠다.
-하여 접근---생존 확인----
신호가 명확해질수록 가슴이 뛰었다. 저쪽 경계가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다행일 줄은. 심지어 인천과 시흥만큼의 거리보다 가까운 위치 같았다.
붕붕 날아다니던 괴물이 지호에게 관심을 보인다. 정확히는 지호를 따라다니는 것들을 보는 것 같았다. 입맛을 다시는 꼴이 불길하다. 주먹만 하던 것이 일 미터도 넘게 입을 벌리는 순간, 지호는 경악하며 그걸 후려쳤다.
케윽! 괴물은 비명과 함께 입을 다물었다. 다른 것들의 시선을 끌기 전에 에너지 덩어리를 떼어 내야 했다. 그런데 무슨 수로?
곧바로 시선을 끄는 건 예전에 본 적 있었던 눈알 괴물이다. 이번에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붉은 눈이 아니었다. 무슨 차이일까? 놈은 지호 쪽을 빤히 응시했으나 눈을 돌려 버렸다. 공격이 쏟아질 것 같지는 않았기에 지호는 수신기에 최대한 집중하며 달렸다. 뛰다가 신호가 약해지는 감이 있으면 방향을 약간 틀었다.
지직. 노이즈가 섞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것마저 꺼지면 정말 방법이 없다. 일전에 준우가 그를 내보냈던 것 같은 구멍을 찾을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형 에너지로 채워진 괴물들의 세계는 정체 모를 동식물로 가득했다. 생각보다 발을 잡는 것이 적었고, 숨을 곳이 많아 기분이 이상했다. 정글을 뛰어다니는 느낌.
식물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무언가가 건물에 붙어 있던 몸을 떼었다. 섬뜩한 기분. 잠시 발을 쉬고 있던 지호는 허겁지겁 다시 달렸다. 신호는 점점 선명해졌고, 이윽고 알아들을 수 있는 메시지로 바뀌었다.
-생존자 확인 중. 알아들을 수 있는---- 쪽으로 이동하여--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누구 목소린지 알 것 같았다. 만약 균열 간 시간 차가 같다면, 시흥에서 출발한 선발대는 이제 막 균열에 들어왔고 상황을 살피다 실종자들을 찾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지호 역시 잠깐 고개 내밀고 장비 설치했다가 이 꼴이 났다. 접촉한다면 저쪽이고, 탈출하는 것도 저쪽뿐이었다.
애석하게도 하늘은 지호를 돕지 않았다. 점점 어두워지더니 앞뒤 분간도 하기 어려운 어둠이 자욱이 내리깔렸다. 심지어 하늘이 우르릉, 울리기 시작하는 것이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여기 비는 맞아도 되나? 그냥 물일 것 같진 않다는 오싹한 예감이 덜미를 잡았다.
헌터의 감각을 신뢰하라는 격언에 따라 지호는 황급히 근처를 훑었다. 급한 김에 감지 파장으로 사방을 다 확인하자 숨어 있던 괴물 중 몇이 황급히 몸을 피하는 게 보였다. 천장 있는 구조물이 있다. 위험해 보였지만, 당장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묘하게 필로티 구조 빌라를 닮은 지형이다.
그럴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지호는 저도 모르게 입구가 있을 법한 위치를 확인했다. 진짜 있었다. 부서져 떨어진 cctv의 흔적까지 생활감 제대로인 환경들이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지호는 어째 묘하게 익숙한 곳이다 생각하며 건물을 올랐다.
균열에 휘말렸던 곳들은 그 이공간이 사라진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데 사람들 사는 곳과 겹쳐졌던 이쪽 공간은 어떻게 되나? 균열 저편으로 넘어갔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어 확인된 적 없던 것들이 이제 눈앞에 있었다.
-생존자, 생존자 없습니까?
이쪽에 수신기밖에 없어 응답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나 충분히 가까이 온 것 같고, 이 비가 지나가면 저들과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멀쩡히 돌아갈 수도 있을 터였다.
운이 좋다면.
그때 버석. 뭔가를 밟는 소리가 났다.
건물을 오르려던 지호의 몸이 우뚝 멈추었다. 건물 내부에서 나는 소리였다. 어두워지던 주변은 완전히 암흑에 잠기고, 광원이라고 부를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지호는 장님처럼 주변을 더듬었다.
우르릉. 천둥 같은 소리가 나더니 곧 비가 내린다.
물이 쏟아질 거란 익숙한 감각을 기대했던 지호는 충격을 받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것 때문에 주변이 미약하게 밝아졌다. 구슬 같은 형태로 쏟아져 내리는 건 비보다는 우박에 가깝다. 발치에 닿으니 터졌고, 안에선 연기 같은 것이 새어 나와 쉬이익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기괴한 모양새였다.
수신기로 넘어오던 소음이 잠잠해진 게 마음에 걸렸다. 쏟아지는 것이 너무 많아 발치에 닿아 깨지는 것들이 산더미다. 연기를 자꾸 맡자 조금 어지러운 기분이었다. 이거 괜찮나? 문득 든 생각에 주춤하며 뒷걸음질 치다 뭔가에 부딪쳤다.
“어, 죄송…….”
할 리가 없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지호는 질겁하며 몸을 돌렸다. 뒤는 수상한 연기 덩어리들이고 앞은 정체 모를 괴물이라니. 심지어 접근하는 걸 눈치채지도 못했다.
상대는 사람 모양을 하고 있었다.
경험상 사람 형태를 하고 있던 것들의 지능이 상당했던 터라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부딪친 후에도 움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지호가 눈치를 살피자 그것은 고개를 갸웃한다.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마저 흰 연기 알갱이가 빛을 내고 있지 않았다면 형태조차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이것과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당했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공격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지호는 기억을 더듬어 남동구 균열에서 마주했던 그 이상한 인간을 떠올렸다. 직전에 부평 균열에서 마주한 놈도 있다. 둘 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한 가지에 집중했다. 한 놈은 수희를 죽이는 것에, 한 놈은 뭔가를 먹는 것에.
이것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지호의 감각에 인지되지 않았던 것 중에 수상쩍은 거라곤 그것들뿐이었다. 놈은 느릿하게 몸을 기울였다가 천천히 허리를 폈다. 지호보다 키가 컸다. 얼추 승찬과 비슷한 느낌.
“위험.”
그것이 입을 열었다. 사람 같은 음성이다. 다른 것들도 사실 목소리 자체가 그렇게까지 이상하진 않았으니…….
놈이 손을 뻗기까지 지호는 머리털이 쭈뼛 서도록 긴장하고 있었다. 퇴로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손끝이 뾰족한 손을 뻗어 지호의 팔을 붙잡았다. 닿자마자 움찔하자 저쪽도 같이 놀랐는데, 자기가 잡은 지호의 팔부터 살피는 것이 꼭 이쪽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경계가 약간 느슨해졌다. 그것은 다시 지호의 손목을 잡고 그를 끌어당겼다. 연기로 된 구슬들을 밟지 않으려 하는 걸 보니 이게 뭔가 해로운 작용을 하는 모양이었다.
믿어도 될까.
처음 놀랐을 때를 제외하면 위험하다는 느낌도 잘 들지 않았기에, 지호는 머뭇거리면서도 그를 끄는 손에 이끌려 갔다.
빛 한 점 없는 실내. 눈치를 보던 지호는 이형 에너지를 한 점으로 뭉쳤다. 광원이라고 부르긴 애매하지만, 얼추 주변 물체들 실루엣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미미한 빛이 손끝에서 빛났다.
지호는 손 코앞에 놈이 머리를 들이민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하마터면 후려칠 뻔했다. 지나칠 정도로 가까웠던 탓이다.
신기한 것을 보는 것 같은 모양새. 사람처럼 말하며 직립 보행하지만, 동물에 가까운 걸까? 지호는 조심스럽게 손을 옆으로 움직였다. 시선이 따라온다. 미미한 빛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거, 보여?”
녀석은 머리를 끄덕였다. 동의를 표하는 행동까지 할 줄 알다니! 지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천천히 빛의 세기를 키웠다. 서로 다른 에너지를 손끝에서 충돌시키는 방식이라 방벽을 유지할 때보다 에너지 소모가 심한 편이었는데, 덕분에 이쪽을 보는 괴물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녀석은 사람에 가까워 보였다.
등에 튀어나온 뭔가를 제외하면 꽤 사람 같다. 아니, 그럴싸하게 사람 형태를 갖추고 있는 괴물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았다. 놈은 지호가 자기를 찬찬히 살피도록 내버려 두었다. 밖엔 여전히 구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선발대 쪽이 걱정스럽다. 그들도 비를 피할 장소를 찾았을까.
지호의 눈이 밖으로 돌아간 것을 보자 녀석이 다시 말했다.
“위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