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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22화 (123/260)

122화

1세대부터 헌터 일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 아는 사람이 많아지기 마련이었다. 더욱이 고정 파트너 한 사람을 제외하면 자주 팀을 바꾸었다고 했으니 당연하겠지.

더군다나 그 임보현 헌터다. 그가 해 왔던 일만으로 존경심을 갖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다. 지호는 보현이 병원에 얌전히 있길 바라며 한숨 쉬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쏘다니며 자기를 혹사하니 그 임보현이란 이름을 갖게 되긴 했을 것이다.

“본인이 들어가겠대요?”

“아니, 그렇게까진 안 하던데요. 저희도 이제 막 깨어난 환자 데려다 쓸 만큼 인력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니죠.”

성 팀장은 너스레를 떨곤 이번 작전의 핵심을 브리핑했다.

“다른 부가적인 도구들은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에요. 있으면 도움이 되는 정돈데, 꼭 필요한 건 이거 하나거든요. 이형 에너지 측정 및 감지 장비인데, 카메라도 달렸어요. 일정 범위 내에서 자기들끼리 수신하는 놈이고, 내부로 드론을 띄울 거예요. 10km까지는 신호를 받으니까 그 이상 떨어져 있으면 진입이 어렵겠죠. 신호 닿는 범위 안에서 만약 잡히면? 그럼 그때 가서 구조 작전을 다시 수립하겠죠. 곧바로 움직이진 않아요. 빠졌다 다시 들어갈 거니까 무리하지 마요. 절대 무리하면 안 돼요.”

간밤에 보현이 임무 운운하며 떠나기 싫어했던 게 생각났다. 확실히 병원 장비보다 특정 부분 회복용으로는 뛰어난 치료기를 두고 있는 사람이니, 날아간 팔만 집에서 대충 고치고 다음 임무에 뛰어들 생각이었는지도 몰랐다.

헌터의 감이 어쩌네 하는 이야기는 다 핑계였을까. 지호는 그 밤에 보현을 잘 말렸다고 생각하며 손에 잘 맞지 않는 장비들을 재차 점검했다.

지부 간 협조가 긴밀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고는 인천에서 쳤어도 재앙은 사방에 퍼졌으니까. 서울에서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지원을 왔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 작전 팀에서 성 팀장과 몇몇 연구 팀원을 제외하곤 대부분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이것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현장 사람들은 피로로 탈진했다. 이번 작전 팀에 베테랑은 거의 없고 대부분 책상머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나마 보안 유지를 서약하고 왔으니 당장은 괜찮기를 바라야 했다.

기자들이 센터 코앞까지 온 탓에 이동을 서둘렀다. 성 팀장의 긴장한 표정을 보자 지호 역시 덩달아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주안 공단은 조용했다. 이쪽까지 신경 쓸 여력 없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워낙 크기도 작고 괴물도 시답잖은 것들만 나오다 보니 더더욱 눈길을 끌기는 어려워 연구 팀만 신났다고 이것저것 기계를 가져다 놓은 덕분에 절반 이상은 현장 부근 임시 연구 팀의 설비를 쓸 수 있었다.

“이쪽에서 드론 조종도 하면서 지호 씨 보는 상황을 카메라로 공유받을 거예요. 다시 말하지만…….”

“퇴각 신호에는 즉각 따른다. 알아요. 제 목숨 소중한 거 제가 제일 잘 아는데, 장비 다 놓고 뒤도 안 돌아보고 튈게요.”

그거 비싼 장비라는 다른 연구원의 울상은 무시했다. 아무렴 목숨보다 비싼 게 있을까. 성 팀장 역시 현역을 뛰어 봤던 사람이라 망설임 없이 다 버려도 된다고 한마디 얹었다.

작은 균열이어도 균열은 균열인지라 공기가 무거웠다. 일전에 여기서 준우에게 끌려갔던 기억이 난 탓에 진입하자마자 주변 감지부터 시작했다. 근방에 위협적인 개체는 없었다. 균열을 넘어오려고 하는 경계 너머의 포식자도 없었고.

도훈은 어떻게 되었을까? 의문 속에서 카메라 연결 상태를 점검하는 메시지들이 울렸다. 수신 상태도 괜찮았다. 지호가 보고 있는 걸 연구원들도 함께 보고 있겠지. 노이즈가 좀 끼는 탓에 감명도는 4-4정도. 경계를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급성 균열치곤 묵직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처음부터 그렇긴 했었다.

-잠시 대기. 시흥 팀에서 연락 오면 출발합니다.

선발대에게선 아직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쪽 연합 측 연구원에게서도 이렇게까지 신호가 없을 줄 몰랐다는 답만 들었다. 붙잡혔기에 배짱을 부리는 건지 균열 내부에서 뭔가 사고가 일어난 건지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시간 흐름이 달라서 그렇겠지.

이번 작전은 시행부터 모두의 걱정을 사고 있었다. 균열 저편과 이쪽의 시간 흐름이 다르다는 보고 때문이다. 선발대 역시 저쪽에서는 넘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다. 얌전히 며칠 정도 기다려 보는 게 해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이 그걸 가만두지 않고 있었고, 한쪽에서도 말이 나왔다. 모든 균열을 통과할 때 동일한 시간 지연 현상이 발생하는가? 그걸 알아보자고 하는 실험이기도 했다.

지난 균열 너머에서의 한 시간은 이쪽에서의 일주일이었다. 절대적 시간으로만 가늠해도 일 대 몇이냐……. 지호는 숫자에 약했으나 대충 어마어마한 차이일 거란 것 정돈 짐작했다.

“찍고 바로 빠지기.”

연구원이 재차 중얼거리며 손을 비볐다. 시간이 아무리 상대적이라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이 정도로 상대적인 시간을 다루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가 기준이고 뭐가 차이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지호는 우선 일선에 던져졌다.

넘어갈 시간이었다.

“신호 왔어요. 출발합시다.”

정신계 괴물이라도 나타나면 다 끝이었다. 그런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몇 번을 반복해서 감지 파장을 펼쳤고, 나중에는 아예 그걸 상시 대기 상태로 전환했다. 정신 방벽이 없는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애초에 지호 수준으로 막을 수 있는 놈은 잔챙이라 큰 의미 있는 건 아니었다.

눈치껏 시도했으나 드론은 경계를 넘어갈 수 없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사라지자 모두의 얼굴에 불안감이 감돈다. 지호 역시 난처했으나 어차피 하기로 한 일 일찍 끝내자는 생각이 먼저 났다.

“계획 다시 짜야 하는 거 아녜요? 이렇게 되면 이지호 헌터 단독 임문데. 진짜 위험해.”

“나가서 기계 박고 곧바로 나올까요?”

“그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신호 안 잡히면 바로 나오기 어때요?”

연구원들이 술렁이며 의견을 모았다. 본부에선 위험하지 않게 십 분 내로 빠져나올 것을 권했다. 아무튼, 들어가지 말란 말은 안 나왔다.

경계를 넘어가기 위해 이형 에너지에 변성을 가했다. 본래 한 가지 색이어야 할 이형 에너지가 노이즈 낀 것처럼 자글자글하게 바뀐다. 경계 저편과 이쪽 압력 차이가 컸다. 준우는 이걸 아무렇지 않게 변형했었는데. 새삼 이형 에너지를 다루는 수준 차이를 체감하며 지호의 손이 천천히 경계를 넘어갔다.

경계를 넘어가는 것보다 중간에 끼어 있는 쪽이 압박이 심했다. 멈춘 상태로 차이를 가늠하려 했던 지호는 생각 이상의 통증에 기겁하며 경계 밖으로 뛰쳐나갔다. 빨려 나가는 것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손을 도로 빼자 손톱이 쑥 자라 있는 게 보였다. 한쪽 손만 시간의 흐름을 정통으로 맞은 것 같은 모양새라 웃겼다.

갑자기 배가 훅 고파 왔는데 여기서 뭘 먹고 출발하겠다고 할 수는 없어 우선 변동 사항을 보고했다. 연구 팀에선 손톱이 얼마나 자랐는지 알고 싶어 했지만, 자기 손 사진을 미리 찍어 두고 임무에 임하는 게 아니라서 보여 줄 자료가 없었다.

-그거 나중에 확인하고 우선 들어가죠? 이 균열이 언제까지 열려 있을지 누가 알고.

“불길한 소리 마세요…….”

말이 씨가 된다는 격언이 떠올라 지호는 몸을 떨었다. 아무튼, 서둘러 출발해야 하는 건 맞았다. 손뿐 아니라 전신을 경계 너머로 밀어 넣는다. 경계를 지나치자마자 모든 기기 출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온몸을 쥐어짜는 것 같은 압박. 지난번과 달리 균열 부근을 둘러싸고 있는 괴물 같은 건 없다. 다른 균열들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럴 수도 있었다. 지호는 패널을 보며 빠르게 움직였다. 이상 전파가 잡히는 곳이 있었다. 시흥에서 보냈다던 신호일까? 명확한 알림이 되지 못한 잡음이 울렸다.

-치직- 여기는--- 발? 구조를? 치이이익----- 보이는? 가? 했다-----

단어 하나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운 신호였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었다. 구조.

뭘 구하러 간 건지, 위험해졌으니 구조해 달라고 하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신호 잡히는 방향으로 움직일수록 음질은 선명해졌다.

반면 지호가 원래 받고 있던 쪽 신호는 거의 없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시흥 신호가 잡힌다는 걸 감사하게 여겨야 할까. 두 신호의 세기가 비슷하게 약해지는 지점에 챙겨 온 신호기를 땅땅 때려 박은 지호는 서둘러 귀환했다.

경계 너머에서 보는 균열은 기묘했다.

어두컴컴한 정경은 얼추 비슷했으나 산 것처럼 움직이는 이형 에너지는 이쪽에 훨씬 충만하다. 헤엄치는 것 같은 기분으로 에너지들을 파헤치던 지호는 그것들이 달려드는 통에 나중에는 끙끙대며 길을 터야 했다. 앞에 보이는 건 없는데 저항은 상당했으니 곤란한 일이었다.

이것들이 다 녹화되고 있어야 할 텐데. ‘보는’ 재주 있는 각성자들이 이 현상을 연구할 수 있을 터였다.

작전 개시 후 13분이 지난 뒤 균열을 다시 빠져나온 지호는 완전히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쪽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해야 십여 분이지만 이쪽에서는 이틀가량이 지났을 것이다.

경계를 지나며 재차 압박받은 기기 손상이 심하다. 지호는 수신기를 두드렸다.

“이지호입니다. 들리나요?”

소음이 컸다. 망가진 모양이었다. 이형 에너지를 덮어쓰지 않고 균열을 나가려던 지호는 멈칫했다. 그가 통과해 나간 건 도로 균열 건너편이었다.

당황해 이쪽으로 넘어오는 동안 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사이 시간이 흐른 건지 하늘 색이 조금 바뀌었다. 지호는 당황했다. 몸에 두르고 있던 변이성 에너지는 진작 흩어 버렸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수가 없는데.

균열 저편 정경이 흐릿하게 흩어진다. 직전에 지호가 보고 있던 쪽이 보였다.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풍경이었다. 지호의 당황은 더 커졌다.

넘어갈 수가 없다.

균열을 지날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전신을 코팅했다. 똑같았다. 지호가 지나간 곳은 여전히 경계 너머 괴물들의 땅일 뿐이었다. 몸을 누르는 이형 에너지의 묵직함. 저편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른 균열보다 유독 밀도 높은 이형 에너지가 지호 주변을 꽉 채웠다. 진짜 살아 있는 것처럼.

뭔가에 꽉 붙잡혀 움직일 수 없는 기분. 지호는 막막한 심정을 어떻게든 해소해 보려 몸부림쳤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연구원들이 이쪽을 보고 있지 않나? 처음부터 연결이 끊겨 뭔가 잘못되었구나 하고 연구 팀을 철수시켰나? 저쪽에서 오던 연락은 간헐적으로나마 계속 들어왔다. 완전히 철수하지는 않았을 터.

중첩되어 보이는 경계 너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뜬 지호는 떨림을 감추려고 애썼다. 이래서 혼자 다니지 말라고 하는구나. 홀로 남아 있으니 불안감이 배가 됐다.

저쪽으로 신호를 줄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

지호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괴물들은 경계 저편을 못 본다. 하지만 경계를 자유롭게 지날 수는 있었다. 경계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나 싶었는데, 몇몇을 보면 또 그런 것만은 아니다. 본인에게 일어난 상황을 알아보기에 앞서 균열 상태가 수상함을 눈치챈 지호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뭘 어떻게 해야 외부로 신호를 보낼 수 있을까? 물건을 던질 수도 없는 마당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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