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통로는 불이 환했다.
갑작스러운 빛에 다들 눈을 찡그렸다. 전기가 들어오는 층이라면 카메라도 돌아가고 있을 터. 지호는 문을 나서지 않고 나연에게 질문했다.
“카메라 돌아가는 건 어느 쪽이죠?”
“이쪽 복도는 없어요. 저쪽 왼쪽 코너 방면. 회전해요. 잠시 대기.”
주먹을 쥐어 신호를 보냈던 나연이 손을 저쪽 편으로 돌렸다. 동시에 복도로 튀어 나간 소민이 염동력으로 카메라를 고정한다.
“지금요!”
지호가 두 사람을 달랑 들어 올려 카메라 아래로 질주한다. 아슬아슬하게 살짝 비튼 카메라 아래에 도착하기 무섭게 나연이 신호했다.
“잠깐. 사람!”
길게 말할 상황은 아니었다. 지호는 문에 손을 짚어 형질을 변환시키며 아래로 쓸어내렸다. 문을 여는 것보다 소음 없는 방식이지만 에너지 소모가 많은 편이라 자주 쓰기는 나빴다. 허물어진 문에 둘을 집어 던지고 뒤로 돌아 문을 복구한 지호는 찌릿할 정도로 등을 찔러 오는 이형 에너지를 느꼈다. 천천히 돌아보자 어마어마한 크기의 설비가 그들을 반겼다.
“잭 팟인 것 같죠?”
나연은 벌써 녹화 버튼을 눌렀다. 시퍼렇게 빛나며 돌아가는 기기가 끊임없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익숙한 색 변화가 있다.
“이쪽도 균열을 넘어가는 연구를 하고 있었네요.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고…….”
예진이 보이지 않는 건 좀 이상했다. 그리고 이 정도 되는 건물에서 다른 층 전기는 다 끊어 놨으면서 이 기기는 계속 켜 놓는다는 것도. 나연의 생각을 들은 지호의 의견은 좀 달랐다.
“다른 실험실에서 하던 실험을 이쪽에서도 같이 한 것 같아요. 그쪽은 실패했는데 여긴 성공한 것 같네요. 고정 좌표의 출입구요.”
둘은 지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서로 얼굴만 마주 보았다. 지호는 승찬에게 예진이 나가는 것을 보았는지 묻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간략히 설명했다.
“균열이 열릴 때마다 이쪽과 저쪽이 연결되는 좌표가 다르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비슷한 위치의 균열로 들어가도 인접했던 지역 실종자들을 찾을 수가 없는 거고. 전에야 균열 저편으로 들어가도 찾을 수 없다는 걸 알아서 경계 넘어가는 것에 대한 연구엔 관심들이 없었는데 이게 성공했으면 이야기가 다르겠어요.”
실종자를 찾아 달라고 시위하는 사람들도 거칠게 무력시위하거나 헌터들을 방해하지 않는 까닭은 하나였다. 경계 저편으로 넘어갈 방법이 없어서.
일전에는 균열이 닫힐 때 사고로 휘말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균열 저쪽 세계로 들어가 실종자를 찾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고.
그러나 돌아온 사람은 없다. 돌아올 방법도 없었다.
“이 문을 어떻게 열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일단 열었고, 꽤 오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주변 흐름이 안정적이잖아요. 급작스럽게 열린 것도 아니고, 곧 닫힐 것도 아닌 거예요.”
감지계가 아닌 소민은 지호가 그렇다고 하는 말에 고갤 끄덕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연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남아 있는지 주의 깊게 주변을 탐색했다. 숨겨진 공간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다. 들킬 염려라곤 하지 않고 만든 시설이거나, 그런 것들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짐작될 뿐이었다. 지호는 당시 김 반장과 찾아갔던 연구실보다 더 본격적으로 갖춰진 설비들을 보며 놀라워했다.
“이런 걸 왜 지하에서 따로 연구하고 있었을까요? 일이 잘못돼서 괴물들이라도 튀어나오면 어떻게 하려고…….”
지호의 의문에 답변한 사람은 소민도 나연도 아니었다. 벽 쪽에 기대어 서 있던 예진은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며 세 사람 쪽으로 걸어왔다.
“그 정도의 통로를 뚫으려면 건물만 한 마정석이 필요할걸요.”
움찔하며 물러났던 지호는 소민과 나연의 앞을 막아서며 방벽부터 둘렀다. 현직 구조대원 송예진은 서늘한 눈으로 세 명의 헌터를 훑었다.
“어디서 온 거죠? 아무 연락 안 온 걸 보면 원래 라인이 아니란 뜻인데.”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에게 정보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모른 척하기에 지호는 너무 유명한 얼굴이 되었고, 구조대원들 사이에선 특히 더 그렇다. 예진은 팔짱 끼고 있던 팔을 풀며 기계를 턱짓했다.
“보면 뭔지 알 것 같죠? 우리 쪽 선발대가 진입한 상황이라 저랑 연구 팀원밖에 없어요.”
“선발대요?”
“이걸 여느라 예기치 못한 사태가 좀 터져서요. 우리도 수습하느라 나름 사방팔방 뛰어다녔어요. 약간의 충격으로 그렇게 많은 균열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요.”
“뭐라고요?”
욱한 소민이 앞으로 나섰다. 예진이 말한 뜻을 이해 못 하는 헌터는 아무도 없었다. 최근 생겼던 무수한 급성 균열들. 그 원인을 말하고 있었다. 지호는 선글라스를 벗고 예진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암적응 기능으로 돌려놓은 상태라 밝은 곳에선 오히려 불편했다.
“왜 그런 짓을 했죠?”
“다시 말하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덕분에 많이들 살았죠. 헌터님의 희생에 감사드려요. 이걸 고정하는 데 헌터님 위치 데이터가 유용하게 쓰였거든요.”
머리가 차게 식었다.
이 정도 설비를 갖추려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할 수 없을 터. 마정석을 이렇게까지 들이붓는 기계는 구동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 이만한 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진들도 땅 파서 돈 버는 게 아니겠지. 누군가 뒤로 정보를 빼돌리고 있기까지 하다면 말 다 했다. 영향력 있는 어떤 이가 쓸 수 있는 수단들을 다 퍼부어 가며 경계 저편으로 넘어가고자 하고 있었다.
그만한 정보를 제공할 만한 사람으로 달리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역시 제대로 한 대 쳤어야 했는데.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특수반에서 근방을 들를 때 여긴 안 왔었는데.”
“우린 압류당할 일 안 했거든요. 받은 정보 정직하게 써서 보고 올렸고, 매번 허가도 받았어요. 이번 건 빼고.”
지호는 슬쩍 뒤를 살폈다. 나연의 카메라는 아직도 촬영 중이다. 예기치 못한 손님의 등장에 놀라 핸드폰을 내린 상태였긴 하지만, 녹음은 잘 되고 있을 터.
“이주원 각성자는 어딨죠?”
“우리 주원이 제안은 거절했다면서요? 아쉬운 일이에요. 헌터님이 같이 넘어가 주셨으면 선발대도 덜 위험했을 텐데. 그래도 당장은 괜찮을 거예요. 변이가 쉬운 것들을 내어 주고 우리 가족들을 일부 돌려받기로 했거든요.”
지호는 참지 못하고 예진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갑자기 숨이 탁 막혀 기침하면서도 예진은 자기 할 말을 토해 냈다.
“다들 도와주질 않으니까, 우리라도 나서야죠. 나라에서 안 도와주고, 힘 있는 사람들이 안 도와주는데. 우리라도 뛰어들어야죠. 아니면 무슨 수로 사람들을 구해요?”
“남들 다 뒈지게 한 판국에 지금…….”
“똑같은 처지가 되어 보면 이해하겠죠. 가족들을 잃고, 자기도 위험에 처한 다음에서야 허겁지겁 우리 심정을 이해하는 거라고요. 당신은 이해 못 하겠죠. 부천 센터 헌터들은 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니까. 기다릴 사람이 없는 사람들이니까.”
“닥치고 선발대인지 뭔지에 연락 넣어요. 당장 돌아오라고!”
“싫어요. 직접 들어가시든가요. 경계 너머에, 케헥, 이미 다녀온, 적 있으시, 잖아요?”
소민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지호의 팔을 잡았다. 힘이 너무 들어가 예진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탓이었다. 자기 힘으론 툭 쳐도 이런 사람들이 다칠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친 지호는 가까스로 화를 참았다.
“자기 가족들만 중요해요?”
“모르는 사람들 아무리 많이 있으면 뭐 해요. 우리 엄마 한 사람하고 바꿀 수 있어요? 난 그렇게 못 해요. 내 아들요? 또 낳으면 된다고요? 남들처럼 그런 막말 한번 해 봐요. 사람이면 그런 말 하면 안 되죠. 남의 가족이라고 쉽게 포기한 사람들은 더더욱.”
지호는 예진을 바닥에 팽개쳤다. 복도 쪽으로 나갔던 연구원이 들어오다 깜짝 놀라며 도로 다른 쪽으로 달려갔다. 경비라도 있나. 지호는 소민을 돌아보며 나연에게 눈짓했다.
“지금 여기 들어가진 않을 거예요. 이 사람이 날 이쪽에 집어넣고 싶어 하는 것 같거든요. 데리고 나가죠.”
“선발대로 들어간 사람 중에 제대로 된 각성자는 주원이밖에 없어요! 그 사람들 모른 척하는 거예요? 당신 헌터잖아요. 구하러 들어가야죠!”
“남들 죽건 말건 상관 안 하는 사람들의 목숨이 그렇게까지 가치 있을 리가요.”
예진이 주먹을 꽉 쥔 채 지호를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다. 그러나 이야기하는 내내 균열을 향해 있던 시선. 안으로 들어갔다고 강조하는 선발대. 한 사람뿐이라는 각성자들의 언급이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지호가 따라오고 있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예진이 승찬과 한패일까 짐작해 본 지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까지 세상 믿을 사람 하나 없으면 너무 서글플 것 같았다. 승찬에게 균열에서 잃은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승찬은 남을 희생시킬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 정도로 절박했다면 자기가 각성하려고 방법을 찾으면 찾았겠지.
“우리가 원하는 실종자들 찾으려고 좌표계를 얼마나 뒤졌는데! 저쪽은 여기보다 훨씬 넓어요. 그거 알아요? 한 번 뚫린 구멍은 완전히 복구되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그 빌어먹을 급성 균열들이 튀어나온 거고!”
“당신들 가족 찾는 놀음에 그 많은 사람을 밀어 넣었다고요? 제정신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오기 전에 당신들이 실종자들을 찾으러 갔어야 했어요. 적어도 시체라도 찾아왔어야 했다고요!”
말이 안 통한다. 지호는 참으려 애썼으나 참을 필요 없었던 나연이 튀어나와 쓰러진 예진을 걷어찼다. 억 소리와 함께 몸을 웅크린 예진을 내려다본 나연의 얼굴은 지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친 새끼들. 죽은 게 뻔한 너희들 가족 시체 몇 구 찾자고 지금 이 지랄을 했어?”
예진은 기침하느라 대답도 못 했다. 온 힘을 다해 걷어찬 모양인지 때린 쪽도 아픔을 참는 눈치였다. 하필 명치를 맞은 건지 숨도 못 쉬고 꺽꺽대던 예진은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안 죽었어. 안 죽어서 구하러 가는 거라고.”
“당연히 뒈졌지. 당장 어제 닫힌 균열에서만도 몇 명이 죽었는데!”
“안 죽은 거 확인하고 하는 거야. 살아 있어. 놈들이 포로로 잡았다고. 이 문을 열지 않으면 그 사람들 다 죽을 거라고 했단 말이야.”
어쭙잖은 존중과 예의는 한쪽으로 집어 던지고 눈물과 분노 섞인 악다구니만 오갔다. 소민은 필사적으로 나연을 붙잡았다. 예진의 말을 들어야 했다. 지호는 이를 악물고 예진의 팔을 잡아 그를 일으켰다.
“다른 여왕의 자식과 접촉한 게 너희야?”
“그게 뭔진 잘 몰라. 그것들이 균열에서, 균열 저쪽에서 미세한 통로를 만들었어.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통로일 뿐이었지만…….”
“가족들 살아 있다며?”
“우리 이름을 불렀어.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 그래도 살아 있잖아. 구해야 했어.”
이를 너무 꽉 깨물어 잇몸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지호는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나연 씨. 더 들을 거 없어요. 헌경으로 영상 전송해요.”
예진의 눈이 커다래졌다. 필사적인 버둥거림은 당연히 나연에게 닿지 못한다. 지호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할 수 없던 예진은 울부짖으며 지호를 할퀴고 때렸다. 아프지는 않았으나 맞아 줄 마음도 없었기에 지호는 예진의 두 손을 한 손으로 붙잡아 채며 으르렁거렸다.
“내가 때리면 죽으니까 놔두는 거예요. 가만히 안 있으면 저거 꺼 버릴 거니까 입 닥쳐요.”
예진은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보고가 올라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연의 전화에 불이 나도록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경비들이 달려왔을 때 실내엔 구동 중인 기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