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생방송이라 문제였다. 기자가 던진 질문과 굳어진 지호의 얼굴. 그리고 툭 끊어진 방송까지 완벽한 클립으로 온라인을 돌아다녔다. 헌터가 방송 못 내보내게 한 것 같은데? 하는 사실에 가까운 추측들이 뒤를 이었다.
협회 측에서 급하게 수배한 헌터 몇 사람이 방송을 켰다. 예전에 지호도 시험 준비니 정보 습득이니 여러 핑계로 찾아보곤 했던 그 채널 스트리머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여러분의 생존을 책임지는 오디세이 등장! 오랜만이죠? 균열 터지고 나서 저희도 현장 뛰느라 바빴어요. 본업엔 충실해야죠. 헌터니까요!”
“오랜만에 들고 온 소식은, 다들 뉴스를 통해 접해서 알고 계시죠? 급성 균열에 휘말렸을 때 살아남는 방법과 그 원리에 대해서! 랍니다.”
협회가 참관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촬영이라 지호도 운 좋게 현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연예인 보는 기분이라 새로웠다. 오디세이 팀 헌터 두 사람은 수많은 카메라맨과 구경꾼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활짝 웃었다.
“아,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저는 다친 덴 없는데 오디세이 팀원 중 하나가 부상이 심해서 치료기를 쓰고 있어요.”
“병원이 하도 붐벼서 개인용 치료기 빌려 쓰겠단 사람까지 있더라고요. 그래도 균열 출입자들은 전부 거쳐야 하는 과정이니까 시청자분들 빼먹으시면 안 돼요!”
카메라를 향해 주는 소소한 팁들은 지호에게도 익숙했다. 한때는 이 채널을 통해서만 현장 정보를 얻을 때가 있었으니까.
“물론 이런 이야기들이야 저희가 워낙 많이 했던 것들이고, 새삼스럽게 비공식 라이브 켜 가면서 할 말은 아니죠. 저희한테 궁금한 게 있으실 거예요. 저희도 아까 그 방송 봤거든요. 이지호 헌터 인터뷰.”
한쪽에 띄워 놓은 채팅창 화면이 읽을 수도 없는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호는 약간 불안한 얼굴로 채팅과 오디세이 팀을 번갈아 보았다. 무슨 말을 할지까지 논의하진 않았다. 협회에서 수습하겠다는 말만 들었을 뿐.
지호 쪽을 바라본 오디세이 팀 헌터는 그에게 윙크했다. 그 표정을 보자 기분이 약간 풀렸다. 어떻게 수습해도 지호에게 나쁜 방향은 아닐 것 같은 느낌.
“그 보고는 어느 정도 사실이에요. 인간과 대화 가능한 수준의 괴물이 발견되었단 것 말이죠.”
지호는 본인이 신체 계열 능력자가 아니었다면 채팅창 읽는 건 꿈도 못 꿨으리라 생각하며 미친 듯이 올라오는 로그를 훑었다. 물음표가 대다수였는데 개중에는 욕설과 비난도 섞여 있었다. 촬영진 중 하나가 지호의 앞을 막았다.
“읽지 마세요. 필터링 안 한 거라 좀 더러운 말 많아요.”
지호를 향한 욕설뿐 아니라 오디세이를 향한 욕도 많았다. 몇 사람 되는 매니저들이 빠르게 그들을 내보내도 채팅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오디세이 팀 간판 헌터 신다은은 손바닥 위로 둥근 구를 띄워 올렸다. 순수한 이형 에너지로 이루어진 공이다. 내부에서 에너지가 순환하는 형태로 움직였다. 아마 다른 사람들 눈에도 보일 것이다. 일부러 가시화되도록 빛의 형태를 띄운 상태.
“이걸 균열이라고 생각해 봐요, 여러분.”
채팅이 순식간에 줄었다. 손바닥 위엔 사람 형태라기엔 조악한 종이 인형이 팔랑이고 있었다. 공 내부 에너지 흐름은 제멋대로라, 인형은 이쪽저쪽으로 나부끼며 흔들렸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흐름이 보이지 않죠. 하지만 딱 두 번, 일반인들에게도 균열이 눈에 보일 때가 있어요. 언제죠?”
몇몇 사람이 답을 타이핑했다. 균열 시작 때, 그리고 균열이 닫힐 때. 다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균열 모형의 에너지 흐름을 가속했다. 내부 에너지 때문에 종이 인형이 찢어질 것 같다.
“맞아요. 균열이 생길 때와.”
다은이 주먹을 쥠과 동시에 모형 균열의 모든 에너지가 단박에 중심으로 향하며 빛이 번쩍였다. 그의 손바닥에 남은 건 재 가루로도 흔적을 남기지 못한 종이 인형 다리 한 짝이 팔랑팔랑 떨어진 것뿐.
“없어질 때죠.”
연출이 흥미진진했기에 지호 역시 아는 내용이면서도 다은의 설명에 집중했다. 그는 어떤 식으로 균열이 닫히는지 시청자들에게 보여 주면서 지호가 언급했던 대피 방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숙지시켰다.
“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면 여러분의 이름 앞에는 실종자라는 딱지가 붙겠죠. 아마 다른 방법이 생길 때까지는 구조대를 기다리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괴물들의 세계에 갇히실 거고요.”
채팅창 한쪽에 이지호 헌터의 이름이 다시 거론됐다.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처럼 싱긋 웃으며 손을 오므렸다. 종잇조각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 맞아. 경계 저편으로 사라졌다가 돌아온 그 헌터 말이죠? 초임 헌터라 저도 아직 만난 적은 없어요. 아시다시피 요즘 헌터들이 친목이나 다지며 노닥거릴 시간이 없기도 했고.”
“신다은 헌터가 한가해서 균열 탈출 원리를 눈으로 보여 준 건 아녜요.”
오디세이 팀 다른 헌터가 바람을 잡자 다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왼쪽 위를 쳐다보는 시늉을 했다. 화면에는 그 빈 곳에 지호의 인터뷰 화면이 떴다.
“그래요. 바로 이 문제의 생방 사고.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지능의 괴물 이야기 말이죠. 현장에서 보고된 것 중에 공지해도 된다는 정보 나오는 대로 바로바로 알려 드리고 있었잖아요. 그게 저희보다 다른 쪽으로 먼저 새 나간 것 같더라고요? 누구신지 수완도 좋으셔.”
다은은 손가락을 딱 튕기며 다른 쪽을 가리켰다. 지호의 방송 화면이 사라지고 다른 자료가 화면에 떴다. 지호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뜰 정보였다. 이걸 민간에 공개한다고? 협회 결정이겠지만 파장이 클 터였다.
“보이시죠? 자세한 건 상세 정보 눌러 보시면 보실 수 있게 링크 걸어 놨어요. 맞아요. 지능 있는 괴물에 관한 정보죠. 보고자는 이지호 헌터가 아니라 독일의 볼프 루카스 헌터예요. 영상 자료가 있습니다. 같이 보시죠.”
영상이 화면 전체에 떴다. 지호 역시 몸을 앞으로 수그려 가며 집중했다. 모니터링 화면을 함께 보던 스태프는 웃으며 몸을 뒤로 빼 주었다.
영상 속 볼프 루카스는 초췌한 얼굴로 재생 버튼을 누른 뒤 물러나고 있었다. 그의 중얼거림 아래로 자막이 달렸다.
-정확한 시간은 알기 어렵지만, 자정은 지났다. 공익 목적으로 이 영상을 찍는다. 차후 내 시신을 찾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화면은 거칠게 흔들렸다. 화질이 좋지 못하고 배터리마저 얼마 없다. 볼프 루카스는 연신 얼굴을 쓸어내리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팀원들이 모두 사망한 뒤 나 혼자 남았다. 탈출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허공에 떠다니는 이상한 가루 같은 것을 맡으면 신체 기능이 마비되어 멈춘다. 인지 기능은 약간 살아 있으나 그대로 괴물의 신선한 먹이로 전락하는 것 같다. 우리 팀 외에도 꽤 많은 사람이 산 채로 잡혔다. 괴물들은 마비된 사람들을 바로 먹지 않고 어딘가로 옮긴다. 균열 밖일까? 경계 너머로 사람을 데리고 갈 수 있다니 심각한 일이다. 이 사안에 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영상을 찍는 볼프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졌다. 사람들의 비명으로 채팅이 요란하게 올라간다. 실제 상황이었고, 그는 기습에 화면 아래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괴물은 볼프가 중얼거리고 있던 화면 부근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다 입을 열었다.
-살아 있는 것? 아닌 것 같아.
충격의 연속으로 채팅이 폭주하자 매니저가 채팅창을 얼렸다. 괴물은 화면 쪽에 머리를 기웃거리며 몇 번 그걸 조작하려다 실패했다. 손과 같은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부속지는 없는 것 같았다. 그것은 신경질 내듯 바닥을 쿵쿵거리며 볼프의 몸을 끌고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 장면 이후, 몇 차례 괴물들이 지나가는 것이 영상에 남았다. 빠른 감기로 휘리릭 흘러가던 어두운 실내 정경. 날이 밝아 오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며 헌터 전투복 입은 사람들이 괴물과 싸우는 모습이 잡혔다. 일부가 영상 쪽으로 달려왔다가 슬픈 표정으로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영상이 끊긴다. 그 이후 검은 화면에 한 문장이 출력됐다. 볼프 루카스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그는 여전히 실종 상태이다. 구조 요청 신호만 남아 있었다는 메시지를 끝으로 다시 신다은 헌터가 화면 앞에 섰다.
“대화가 가능하긴커녕 인간을 사냥 대상 정도로만 보고 있는 것 같단 판단이 있었습니다. 공개 여부를 두고 토론하느라 발표가 늦었는데, 아마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게 까고 있을 거예요. 똑똑한 괴물들이 사람 흉내를 내며 숨은 사람들을 끌어내려고 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뜻이죠. 그것들을 믿지 마세요. 피식자와 대화하는 취미를 가진 포식자 같은 건 없는 법입니다. 다음에는 좀 더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올게요. 볼프 루카스를 추모하면서, 오디세이였습니다.”
다음 영상 홍보가 뜨면서 오디세이의 영상이 끝났다. 생방송인데도 영상을 이렇게 집어넣으며 만들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다은은 촬영 끝나기 무섭게 지호 쪽으로 달려왔다.
“이지호 헌터! 몸은 괜찮아요?”
“어, 안녕하세요. 네, 이지호예요. 전 멀쩡하고요.”
“아, 이런. 인사도 잊었네. 안녕하세요, 신다은이에요. 오디세이 팀의 스피커 중 하나고요. 반가워요.”
다은과 악수를 나눈 지호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이형 에너지의 흐름에 당황했다. 근래 만난 헌터들 중에 제일 빠른 속도로 에너지를 운용하는 사람이었다.
“놀랐죠? 이번 다빈도 발생 균열 여기저기 돌면서 갑자기 이렇게 됐어요. 몸에 해롭지나 않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균열 너머는 어땠어요?”
아직도 손을 맞잡고 있었기에 지호의 몸이 굳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도 다은은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협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정말 괴물들이 사람을 먹이로밖에 인식하지 않나요? 먹이로 잡혀간 사람들은 그럼 먹히기를 기다리며 그냥 누워만 있는 신세로? 말 통하는 먹잇감이면 대화해 볼 법한데요. 어떻게 생각해요? 경계 저편에서 실종자들을 만난 적 있나요?”
단단하게 잡은 손이 축축해졌다. 이상하다. 긴장하는 손이다. 지호가 아니라 다은의 손이 그랬다. 지호는 어리둥절해하며 다은이 던진 질문을 생각했다. 이런 질문을 던질 법한 사람들은 따로 있지 않다.
“음, 실종자 가족분이신가요?”
“너무 많이 들어서 질리죠? 그래도 저 같은 사람들한텐 엄청 중요한 이야기예요. 협회에선 아니라고 하는데 그래도 지호 씨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어요.”
“경계 넘어가서 실종자들을 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아까 본 영상에 나온 괴물들보다 훨씬 사람에 가까운 지능을 가진 것들은 봤어요. 아마 협회에서 발표 곧 할 텐데, 이쪽으로 넘어오고 싶어 하는 괴물이 있거든요.”
“먹이를 편하게 먹으려고요?”
“그럴 수도 있을 텐데,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진 않았어요. 이번 균열 탈출 정보 역시도 그 괴물한테 받은 거라서요.”
“지호 씨가 알아냈다는 그…….”
“일반인들의 급성 균열 탈출법이요.”
도훈의 이야기는 길게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아직 다른 이야기가 더 나온 것이 없으니 더 그랬다. 인터뷰 허락이 내려올 때 도플갱어 관련 정보는 함구하라곤 했지만, 헌터들에게 비밀을 지키라곤 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들 알아야 할 정보이기도 하다.
다은은 그제야 지호의 손을 놓았다. 복잡한 표정이었다.
“괴물이 제공한 정보라니, 혹시 뭐라도 잘못되면 어떻게 하죠?”
“하지만 이번 최악의 사태에서 진짜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었잖아요. 그 정보 덕분인걸요. 그 많은 사람을 소수의 헌터가 구할 수도 없었는데…….”
“하지만, 괴물이 넘긴 정보예요. 그걸 신뢰해도 되는 건가요? 작은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놈이 넘어왔을 때 인류 최악의 재앙이라도 되면?”
“아직 믿을 수 있는 괴물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더 알아봐야겠죠.”
“믿을 수 있는 괴물이라. 정말 모순적인 단어예요. 그 선택이 부디 인류를 위협하지 않길 바랄게요.”
다은은 촬영 팀 쪽으로 떠났다. 손바닥에 남은 이형 에너지의 기묘한 감각이 지호를 괴롭혔다.
실종자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괴물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사라진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면 거기에 동조할까, 아니면 복수심 때문에 괴물을 배척하는 걸 옳다고 생각할까?
모두의 경험이 다르기에 함부로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다 부서진 균열에서 야외 촬영을 했던 것이라 촬영 팀이 철수한 뒤엔 철거반이 와서 철거 장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여유가 있을 때는 지호 역시 그들의 일을 거들었지만, 지금은 여러모로 피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