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물론 그것도 악몽 중에서도 최상위 악몽 중 하나이긴 할 터였다. 그러나 지호의 죽음은 구월동 대형 마트 앞에서였지, 다 부서진 균열 안 어딘가가 아니었다.
“가 본 적 없는 곳에서 겪은 적 없는 일을 봤어요. 균열에서 겪은 일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있을 법한 일을 조합해 낸 것 같기도 하고…….”
승찬은 지호가 횡설수설 쏟아 내는 말들을 가만히 들어 주다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질문했다.
“제가 전에, 퇴원하고 나서 알려 주겠다던 거 기억해요?”
“네? 어, 뭐더라. 아!”
도중 너무 많은 일이 있어 떠올리는 것이 더뎠다. 승찬의 옛 상사 이야기를 들은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다른 정보들에 밀려 가물가물했다. 지호의 아리송한 얼굴을 본 승찬은 다시 한 번 그의 동료인 송예진에 관한 사항들을 읊어 주었다. 현재 장기 휴가 중, 현장에서 가져왔던 망가진 균열 생성기를 외부로 반출한 구조대원이며 균열에 가족을 잃은 사람.
그가 간 곳을 조사하겠다고 나갔던 승찬의 등을 봤던 게 한참 전인 것 같다. 떠올려 보면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인데도 그랬다.
“예진 씨가 보고를 올린 장소의 좌표를 추적했어요. 공개되어 있는 자료라서 크게 문제 될 건 없고요. 새로울 건 없지만, 예진 씨가 생존자를 찾는 극단주의 성향 연합에 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승찬이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기 전부터 지호는 거기가 어딘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국 양배추 운송 연합?”
승찬의 눈썹이 이상하게 꿈틀거렸다.
“어떻게 알았어요? 혹시 지호 씨한테도 그쪽에서 접촉한 사람이 있던 겁니까?”
“저한테도라뇨?”
지호의 보호자로서 협회에 얼굴 비친 시기가 꽤 되었기에 승찬은 일반인 신분으로도 협회를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균열이 열려 몸이 열 개여도 모자라도록 바쁘던 동안에도 짬을 내 자료를 모으며 헌터들에게 질의하러 센터를 오갈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가, 짧게 덧붙였다.
“몇 사람 있더군요. 그쪽에서 자기들과 함께하자고 제안을 받은 헌터들이요.”
“이주원 각성자는요?”
“아직 못 찾았습니다.”
전양련인지 뭔지, 평범해 보이는 이름에 수상쩍은 자들은 아직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잡아 놓았던 자는 이동 능력자라 자취를 감춘 다음이었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연합이라 그 이름이 자주 들린다고 말하기에는 접점이 지나칠 정도로 많다. 심지어 방금 꿈에서 들었던 이름조차 전양련이었으니.
“그분 지금 위치 파악돼요?”
“다른 균열에 출동 나갔어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휴가며 뭐며 다 취소됐으니까요. 부평 균열이 생각보다 빨리 닫혀서, 다른 지역도 그럴 것 같다는 전망이 돌긴 해요. 이런, 여기서 오래 떠들고 있으면 안 되죠. 저도 가 볼게요. 여기서 자지 말고 집에 가서 눈 좀 붙이고 와요. 엄청 피곤해 보이니까.”
“괜찮아요. 잤으니까 됐어요.”
“무리하지 마요. 병원에 더 누워 있고 싶은 거 아니죠?”
또 자면 그 꿈을 다시 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단 말은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승찬은 이번 사태 마무리되고 곧장 연락하겠다며 옆에 내려놓았던 헬멧을 챙겼다. 방호복이다. 또 생각나는 기이한 꿈.
승찬이 다른 대원들과 함께 떠난 뒤, 지호는 살이 쩍쩍 들러붙는 시트에서 몸을 떼어 냈다.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가라앉은 채였다.
헌터의 직감이 신뢰할 만하다면, 꿈은 어떨까? 평범한 사람들처럼 별것 아닌 개꿈 취급해도 좋을까? 그렇지 않으면,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을까.
균열 밖에는 단서가 너무 적고 사방에 파편처럼 흩뿌려져 있다. 반면 균열 내부엔 단서며 새로운 이야길 들려줄 사람이 있지만,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지호는 다른 헌터들보다는 힘 다루는 데 조금 능숙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자신을 구해 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균열에서 일하는 팀으로 소속이 옮겨졌다. 파트너 역시 급하게 바뀐다. 임시로 합을 맞췄던 서영과는 힘차게 악수를 한 뒤 각자의 갈 길로 떠났다. 회복이 빠른 신체 계열 능력자들을 원하는 팀이 많았다.
다른 균열에서 타 팀과 협조해 괴물들을 사냥하고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온 정신이 팔리면서 다른 생각은 한쪽으로 밀려났다. 당장은 이쪽이 더 중요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는 길.
그러는 동안 몇 개의 균열이 생겨났던 것만큼 급하게 닫혔다. 부평 균열에서 그러했듯이 지휘 통제실을 통해 알린 공지로 역대급 생존자 수가 집계됐다.
그러나 사망자나 실종자 수 역시 사상 최고로 많았다. 워낙 많은 곳에 균열이 열린 탓이었다. 그들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헌터 수가 열 배는 많아야 할 것이다.
모두 과로 상태였다. 지호는 자기가 신체 계열 병행 헌터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매일 밤 죽은 듯이 잠들었다. 며칠을 깨어 있을 수 있는 능력자라 한들 한계까지 쭉쭉 힘을 뽑아 써 대는 나날이 계속되면 쉬지 않고는 못 배기는 법이었다.
군인들은 고작해야 괴물을 밀어 내거나 잠시 저지하는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데도 사방에 투입됐다. 불평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개중에 군부대가 휘말린 곳도 있었는데, 상층부는 그쪽에선 생각보다 사상자가 적다고 안도했다. 건물을 무너뜨릴 만한 놈들이 없어 다행이었다. 목숨 걸고 무기고에서 실탄을 반출한 군인들이 나머지 대원들을 살렸다. 탄약을 가지고 돌아오는 도중에 분대원 절반이 사망했지만, 덕분에 중대 전체가 생존할 수 있었으니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균열 수복 때문에 건설 업체들은 밀려드는 일감에 비명을 질렀다. 기쁨에 찬 비명이었다. 철거반을 따로 운용할 시간은 없었기에 헌터들의 도움 없이 건물 철거에 들어가야 했고, 사방에서 폭음과 함께 건물 무너지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나중에 열린 균열 쪽은 워낙 파손된 건물이 많아 거의 허허벌판이 될 지경이었다. 반드시 헌터의 손이 필요하지 않은 곳까지 헌터를 파견하기엔 인력이 너무 부족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병상에 있던 보현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은 소식을 전해 주었다. 경계를 넘어 저편으로 가는 방법을 연구 팀에 전해 주고 시범까지 보여 주었는데도 그걸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경계 저편으로 갈 방법이 있다는 말에 너도나도 자원했으나 정작 알려 줘도 쓸 수 없는 방법이라는 사실이 자원자들을 좌절하게 했다고 했다.
“지호 씨였으면 보여 주자마자 따라 할 수 있었을걸요?”
지호는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준우가 경계 통과하는 모습을 보여 준 건 딱 한 번이었다. 그걸 임의로 분석해 나름의 방식을 만든 건 지호 본인의 능력이 맞았다.
아무튼 경계로 넘어가는 방법에 대해선 좀 더 보편적인 방식이 연구되어야 할 것 같았다. 당장은 피해 지역 복구가 급했고, 사라지지 않은 균열에서 사람들 구해 내는 게 더 시급하다. 연구 팀이며 헌터 아닌 각성자들이며 일반인들이며 너 나 할 것 없이 피해 지역을 도왔다. 특히 그러지 않으면 자기들이 피해 입게 될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리란 공포가 팽배한 까닭이다.
대균열 이래로 2세대까지 모든 사람이 무작정 각성자들에게 의존하며 맹목적인 희생을 요구했었다. 당연히 각성자의 수는 급감했고, 그쯤 헌터 협회가 설립됐다. 헌터들은 체계를 갖췄고 옆 동네가 위험해도 자기 집만 지키던 사람들은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사회가 이럴수록 서로를 지키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남을 위해 목숨 던져 본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냉정한 사람들이다. 헌터들의 상당수는 자기가 지키고자 하는 이를 위해 죽었기 때문에 소중한 이들을 잃었다. 자기 사람을 지키기 위해 팔이 안으로 굽는 사람조차 수가 적었다.
균열이 열리면 경계로 달려가 도망쳐 나오는 사람을 돕고 부상자를 후송하는 것. 각성자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균열 구조대가 따로 생겨날 때까지 그 모든 일은 이웃의 일이었다. 그리고 구조대가 생긴 후에도 서로를 돕는 것은 당연한 약속으로 남았다. 죽음으로 얼룩진 사회의 유일한 따스함 같았다.
임시 파트너인 김 반장과도 몇 번 호흡을 맞췄다. 코드 레드 개체를 제외하고도 정신계 공격을 하는 괴물이 두어 번 다른 균열에 나타났던 탓이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퀸 패러사이트는 다른 균열 어디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생존자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사방에 열린 균열을 돌며 전투와 구조로 혹사당한 지호가 마지막 균열에서 빠져나온 건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오던 늦가을 즈음이었다. 급성 균열에 휘말렸을 때 생존법이 방송을 타고 인터넷에 퍼지며 사방에 알려진 덕분에 예전보다 실종자 수가 훨씬 줄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처음 작전 제안 당시 자기 이름을 팔라고 말했던 지호의 의견은 생각보다 더 잘 받아들여졌다. 덕분에 덩달아 명성을 얻게 된 지호는 가는 곳마다 환호를 받았다. 처음에는 얼굴 붉히며 어쩔 줄 몰랐으나 그것도 익숙해졌다. 보현만큼 뻔뻔하게 시선을 즐기지는 못해도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자기 할 일 하러 떠나는 정도의 얼굴 두께를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십수 개의 균열이 닫힐 때까지 과로를 거듭한 헌터들의 수는 꽤 줄었다. 새로 들어온 각성자들도 있었으나 훈련을 거쳐 쓸 만한 동료가 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연일 균열 소식으로 헤드라인을 채우던 뉴스에 새 소식이 올라왔다. 지호가 균열 저편으로 끌려간 뒤로 사방에 그를 찾는 소식이 떠돌았던 적이 있어 사람들을 안심시킬 용도로 인터뷰를 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임보현 헌터 이후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 얼굴이라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었다.
“이지호 헌터. 생존 소식을 듣게 되어 기쁩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감사합니다. 사고에 휘말렸던 건데 다행히 큰일이 있진 않았어요. 무사히 통로를 찾아 빠져나왔습니다.”
“균열에 사람과 대화할 수 있을 만한 지능 있는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균열 저쪽 편 세상에 그런 괴물들이 득실거린다는 건 사실인가요? 혹시 돌아오실 수 있었던 건 그것들과 협상을 할 수 있어서였다든가…….”
선글라스를 쓴 채 기자와의 인터뷰에 응했던 지호는 민간인 기자가 그런 뉘앙스의 질문을 던지자 잠시 침묵했다. 염동력으로 카메라를 끈 지호의 입매가 단단히 굳었다.
“어디서 들으셨어요?”
“어, 이거 생방송…….”
카메라맨과 기자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려 댔다. 지호는 전화 받으려는 이들의 핸드폰을 휙 끌어당겨 한 손에 쥐며 재차 질문했다.
“어디서 들으신 거냐고요.”
“아니 저는 이걸 방송에서 물어보란 말을 들어서…….”
기자는 겁에 질려 들고 있던 질문지를 내밀었다. 정갈하게 적힌 두 개의 문장이 거슬렸다.
<인간 수준 지능의 괴물 있음. 이지호 헌터와의 커넥션 의심.>
질문지를 와작 구겨 던진 지호는 해당 방송국과는 더 인터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기자는 당황해 쩔쩔맸다.
“아니, 하지만 방금 생방송 중에 사고 났잖아요. 현장 수신 오류였다고 해명하고 좀 마무리하면 안 될까요? 곤란하실 질문은 안 할게요. 부탁드립니다.”
손안에서 시끄럽게 울려 대는 전화를 돌려준 지호는 짧게 몇 마디만 하고 끝내겠다고 하며 촬영 재개를 허락했다. 카메라는 다시 돌아갔으나 기자의 얼굴 역시 뻣뻣했다.
“아이고, 이거 균열 없어지고도 남은 에너지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기계 이상이 있었어요. 스튜디오, 이제 다시 보이시죠?”
방송은 엉성하게 끝났다. 지호도 협조적이지 않고 기자 역시 고장 난 것처럼 시답잖은 질문만 하다 끝난 까닭이다. 방송 후 게시판에 항의가 빗발쳤는데, 방송 끊긴 시점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었느냐고. 그 답은 그래서 뭐였느냔 말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