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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13화 (114/260)

113화

지호가 가져온 소식이 워낙 중요한 것이라 전화 건너편 사람이 점점 더 높은 사람으로 바뀌었다. 박 팀장 선으로 올라간 정보가 나중에는 TV에서 이름 좀 들어 봤다 싶은 사람들로 바뀌더니 나중에는 장성급 인사가 전화를 받았다. 물론 지호는 그 체계를 잘 알지 못해 그냥 모르는 아저씨들을 쭉 거쳤다고 생각했을 뿐이었지만.

“귀관의 활약은 잘 전해 듣고 있다. 이번 보고는 신뢰할 만한 대상의 정보인가?”

“어,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자세한 보고는 차후 올릴 수 있지만, 사람들은 지금밖에 살릴 수 없어서요. 그 절차는 뒤로 미뤄도 될까요?”

“안전한 정보가 아니라면 실행에 옮길 수 없다.”

“이러나저러나 다 죽기는 마찬가집니다. 이번 균열은 이상해요. 이렇게 빨리 열렸다가 닫힌 적이 없었으니까요. 다른 방도가 없으니 부탁드립니다. 특히 지금 이 부평 균열은 더더욱요. 곧 닫혀요. 에너지 흐름이 이상합니다.”

짧은 침묵 후에 수화기 저편 높으신 분이 물었다.

“누군가 이 일이 잘못되어 책임을 묻는다면 어떻게 할 셈인가?”

“뭘 어떻게 해요. 안 하면 다 죽고 하면 살 수도 있는 건데. 이러다가 망하면 그 사람한테 책임지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진짜로 좀 급해요.”

균열 조짐이 정말 이상했다. 예전에 판교 균열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그때 균열을 닫으려 했던 주체가 지금의 주체와 달라서 그럴 확률이 제일 높았다.

“언제나 만약의 경우라는 것이…….”

“아, 만약 만약! 당장이 중요하니까 좀 움직여 주세요! 안 되면 제가 책임이라도 지면 안 되나요? 아무것도 아니라서 못 지나? 그래도 좀 유명하지 않아요? 뉴스며 신문에서 종종 오르내리는 거 봤어요. 그런 유명세라도 이용해 주세요.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살 수 있다면요.”

수화기 너머 상대는 길게 한숨 쉬었다.

“귀관에게 그런 책임을 짊어지란 게 아니다. 상황이 잘못되면 내가 옷을 벗지, 어떻게 균열의 영웅에게 그런 소릴 할 수 있겠나?”

“그럼 요청 받아 주시는 거로 알겠습니다.”

급성 균열 소멸 시점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전달한 지호는 상대로부터 짧은 감사를 받은 후에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끝난 다음에야 그가 통화한 높으신 분이 누군지 모르고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알고 이야기했다고 달라지는 내용은 없었겠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지역 전체에 방송이 울렸다. 민방위 때나 들을 수 있는 전국적인 방송일 것이다.

-지휘 통제실에서 알린다. 모든 생존자는 균열 중심으로부터 자기 위치를 파악하고 중심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이동 거리를 확보할 것. 곧 균열이 사라질 것이다. 폭풍이 휘몰아칠 때 반대 방향으로 약간이라도 이동하면 생존자 전원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다. 반복한다. 자기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반대쪽으로 이동할 공간을 확보하라.

몸이 성치 않았기에 지호 역시 균열을 빠져나왔다. 한 번 더 폭풍에 휘말리면 진짜 무사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균열 밖에서 내부를 지켜보았다. 경계 전역이 흔들린다고 대부분이 느끼게 될 즈음, 눈 깜빡하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이형 에너지가 번뜩이더니 경계가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안쪽을 향해 쇄도하는 이공간. 도훈은 멀리 도망쳤을까? 다른 사람들은?

경계가 닫힌 후는 차라리 소란스러웠다. 후폭풍에 건물이 무너지고 유리가 깨져 나갔는데, 안쪽으로 갈수록 피해가 심했다. 외부에서는 눈 좀 찡그릴 정도의 바람이 중심부로 갈수록 폭풍에 가까운 바람으로 바뀌는 것 같기도 했다.

외부에서 볼 때와 내부에서 느낄 때의 충격량이 확실히 다르긴 하다. 사방에 널린 생존자 표식들이 애처롭게 흔들렸다. 균열 구조대도 머지않아 투입됐다.

지호는 잠시 끊겼던 구조 신호가 사방에서 울리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방송을 따라 행동한 사람들이 있었다. 신호의 수를 보니 꽤 많은 것 같기도 했다.

가슴이 벅차 조금 눈물이 날 것 같다. 직접 뛰어다니지 않았는데도 많은 사람을 구한 기분이라 가슴 한편이 찡하게 울렸다.

새벽이 다 깊어 사방이 어두웠기에 작업은 느렸으나 균열을 벗어난 사람들은 기쁨으로 펑펑 울며 기뻐하느라 늦은 구조대를 원망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빠져나온 건 아니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다고 알려진 급성 균열에서 살아 나온 사람들이 있다는 건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교차로 남쪽으로 끔찍한 흔적들이 즐비했다. 날이 밝으면 충격에 빠질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추모하는 것보다는 생존의 기쁨이 좀 더 크기를 바랄 수밖에.

날 밝는 줄도 모르고 구조 작업에 매진하다 보니 어느새 동이 텄다. 붉은 얼룩 가득한 도로를 달리는 건 사방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의 차량이다. 생존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할 차량이 부족하다는 뉴스에 여기저기서 차를 가지고 모여든 사람들로 새벽부터 도로가 번잡했다. 위급한 환자들은 구급차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서로를 도와 가며 하나둘씩 악몽 같던 동네를 떠난다.

“부평 세림 병원은 꽉 찼대요. 성모 병원은 아슬아슬하게 균열 범위라 오히려 환자가 발생하고 있고, 거리가 좀 있어도 순천향 병원 쪽 응급실 베드 좀 비어 있다니까 송내 쪽에서 구출한 인원은 그쪽으로 넘어가 주세요. 근로 복지 공단 응급실도 좀 더 받고요. 세종 병원요? 아니 감사하긴 한데 너무 멀다. 그래도 집이 그쪽인 분들은 괜찮겠어요. 고맙습니다.”

지휘 팀은 당장이라도 과로사할 것 같은 얼굴로 구조한 환자들을 보낼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보느라 바빴다.

서영은 인간 굴착기가 되어 사방의 잔해들을 들어내며 구조 작업에 매진하다 방금 한쪽에 쓰러진 채 근육통을 호소했다. 지호 역시 힘이 고갈될 정도로 장기간 시달려 보긴 처음이라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외의 헌터는 셋. 고작 다섯 명의 헌터가 이 넓은 균열을 책임져야 했다. 나머지 셋은 신체 계열도 아니었던지라 진작 뻗었다. 코 고는 소리 덕분에 죽지 않은 줄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에겐 불가능한 일들을 해치우고도 칭송이나 찬사를 기대하지 않고서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들이 가까스로 얻은 휴식이다. 누군가 잠든 헌터들의 사진을 찍었다. 온갖 커뮤니티와 sns를 달구며 오래도록 회자될 사진이었다.

* * *

잠깐 눈을 붙인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잠들어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깨어나기 위해선 잠을 자야 하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정신을 차린 뒤에도 몸을 일으키지 않았던 건 엔진 소리 때문이었다.

도로가 평탄하지 않은지 차가 덜컹 흔들렸다. 말하던 둘 중 한 사람이 욕을 뱉었다. 혀를 씹은 모양이었다.

몸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는데 움직이질 않는다. 눈을 어떻게 깜빡이는지, 혀를 입 안 어디에 수납하는지, 숨은 어떻게 쉬는지 같은 보통의 자연스러운 감각을 낯설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해 봐도 소용이 없다. 지호는 당황했다.

“젠장, 여기도 막혀 있어.”

“어쩌지? 돌아갈 기름은 없는데.”

누군지 모를 두 사람은 초조하게 정보를 나누며 주변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자세가 나빠서 둘의 행동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누가 각성자를 이렇게 제압할 수 있나? 독이나 약인가? 이형 에너지를 움직이려 해도 불가능했다. 몸은 차가웠고 의지대로 움직이던 눈알마저 뻑뻑해진다. 그건 죽음의 감각에 가까웠다.

“추적자가 가까워. 저놈마저 먹이로 주고 나면 어떻게 돌아가?”

“방법이 있을 거야. 전양련에서 곧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열린 통로가 있다고 했었어. 저쪽 좌표랑 여기 좌표가 거의 겹쳐. 잠깐만. 이 근처다.”

차가 천천히 멈추었다. 차에서 내린 앞 좌석의 두 사람이 뒷좌석 문을 열어 지호를 끌어 내렸다.

팔다리가 남의 것처럼 늘어졌다. 경직도로 보아서 죽은 지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그 순간조차 지호의 머리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가 또 죽은 걸까? 그것도 이렇게 죽음을 인지하고 제삼자처럼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바닥에 널브러진 지호의 몸을 뒤집어 몸수색을 시작한 이들은 뜻밖에도 방호복 차림이었다. 잠든 사이에 구조대와 헌터 사이에 믿을 수 없는 알력이 일어나 전투가 벌어지고 치명적인 사고라도 나지 않는 한 일어날 리가 없는 일들.

그러나 여기에선 가능하다. 눈이 하늘을 향하자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잿빛 하늘에 누르스름한 태양.

균열 내부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방호복 너머의 얼굴이 누구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그 방호복에 자기 얼굴은 볼 수 있었다. 지호는 너무 놀랐으나 그 놀라움은 밖으로 표현되지 못했다. 머리가 거의 망가진 얼굴. 누구인지 알아보기보다는 시체에 가까운 형상. 경직이 일어나기 시작한 탓에 눈꺼풀조차 깜빡이지 않는다.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이 몸은 거의 죽은 상태였다.

‘내가 죽은 건 아니야. 이 사람은 누구지? 왜 내가 여기 있는 거지?’

사삭, 사사삭. 명확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방호복 입은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떠나가는 그들을 지켜볼 수도 없었다.

얼굴 위로 그림자가 진다. 어디선가 들어 보았던 소리. 영혼에 새겨진 공포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눈을 들어 앞을 가리고 싶었으나 죽어 가는 신체는 죽음 앞에서 눈 감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파충류를 닮은 아가리가 머리를 으깼다. 다행히 죽음은 한순간이었다.

“지호 씨?”

지호는 이번에야말로 깨어났다.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식은땀 범벅이 된 그를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건 익숙한 얼굴이었다. 지호는 여전히 부평 균열 수습하는 지휘 본부 옆에서 문짝 하나 뜯어진 차량 의자 한쪽에 기대어 자고 있던 채였고.

직전의 그 생생하던 꿈은 뭐였을까? 아직도 현실 구분이 잘 안 되어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지호는 승찬의 손뼉 한 번에 정신을 차렸다. 그를 내려다보는 친숙한 얼굴.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아저씨.”

염려로 가득한 승찬의 얼굴이 보인 뒤 그제야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한 지호는 소매로 이마 부근을 대충 쓸었다. 물론 소용없는 일이었다. 전신이 땀으로 젖어 있었으니 손등이라고 안 그럴까.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더듬으려던 그는 자기 복장을 깨닫곤 이마를 긁적였다.

“지금은 저도 손수건이 없네요. 애를 이 지경 될 때까지 일하라고 굴린 거예요? 다들 아무리 헌터니 뭐니 해도 너무들 한데.”

“아니, 아녜요. 잠깐 꿈을 꿨는데, 악몽이었나 봐요.”

“헌터들 꾸는 요즘 악몽은 사람을 이렇게 절여요?”

“아니, 좀 이상한 꿈……. 근데 아저씨가 여기 어쩐 일이에요?”

“급성 균열이었잖아요. 구조 요청자가 수두룩한데 쉬고 있을 수는 없죠. 지금도 현장에 구조대원들 많이 투입되어 있어요. 출동할 땐 다들 보러 오겠다고들 다투다가 현장 오니까 그럴 상황이 아니라서 다들 일하러 갔어요. 못 만나서 다들 아쉬울 거예요. 지호 씨 사라지고 나서 걱정 많이들 했거든요. 돌아오고 나서 다 낫지도 않았는데 현장 뛰어들었단 걸 알았을 땐 다들 난리였다고요. 나중에 우리 팀원들 만나면 한 소리 들을 겁니다.”

멀지 않은 건물에 묶여 있던 생존자 표식 하나를 난간에서 풀어 온 승찬은 지호가 아직도 떨떠름한 표정인 걸 보곤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무슨 꿈이었어요? 각성할 때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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