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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12화 (113/260)

112화

“우리는 그쪽들을 괴물이라고 부르는데요.”

“뭐라고 부르건 뭐가 중요하겠어? 하지만 너희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는 변이체 쪽이 맞는 것 같아.”

경계 저편에서 넘겨준 의자에 테이블, 작은 카메라와 모니터가 이렇게 이질적일 수가 없다. 균열 안에서라 더 그런 기분이었다. 도훈의 말을 들은 연구진 쪽에서 질문이 하나 넘어왔다.

-먹은 것들의 기억을 가지는 생물은 없지 않나?

“그래서 우리는 변이체야.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강자는 아니고, 먹힌다고 해서 꼭 사라지는 것만은 아니거든. 개중에는 먹혔으면서도 포식자가 되는 것들이 있고, 혹은 약한 것으로 생각해 먹고는 자신을 빼앗기는 놈들이 있거든.”

-네가 먹은 인간들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의미인가?

“모두라곤 할 수 없어. 약한 것은 기억도 약하니까. 어떤 것들은 이제 내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군. 계속 나에 관한 질문을 할 텐가?”

화면 아래 커서가 깜빡이는 채로 멈추었다. 아마 연구진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균열 저편에 괴물들의 사회가 있다고 들었다.

“사회? 계급은 있는데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군. 강한 것과 약한 것이 있지. 먹은 것과 먹을 것이 있고, 배가 불러 내버려 두는 것과 말 상대하기 좋아 내버려 두는 것이 있을 거고. 아니지, 아마 너희가 궁금한 건 이런 이야기겠지? 여왕 말이야.”

경계 너머에서 연구진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지호는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도훈에게 상황을 전달해 주었다.

“퀸 패러사이트를 말하는 거냐고들 묻고 있어요.”

“어떤 거? 아, 아까 설명했던 놈 말이지. 우리 둘 다 특이한 형질을 가진 변이체라, 각기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합의하긴 했어. 하지만 여왕은 그런 타협의 대상이 못 되지. 그게 나를 먹겠다고 하면 나는 그냥 먹히는 것밖에 도리가 없어서.”

“최상위 포식자 같은 거예요?”

“맞아. 너무 강한 나머지 저쪽에서도 더더욱 깊은 곳에 있어서 그것의 힘을 일부 받은 호위대나 자식들만이 여왕의 존재를 증명하거든. 사실 나도 본 적 없어.”

여왕의 호위대. 지호는 그 이름만으로 긴장했다. 일전에 준우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심지어는 도훈 역시 지호를 그것과 착각했었다.

-여왕이란 최상위 포식자를 뜻하는가? 그의 자식과 호위대는 무엇인가?

호들갑 떠는 연구진들 틈에서 메시지 담당이 두 문장을 화면에 띄웠다. 도훈은 여태 그랬던 것처럼 곧장 대답하는 대신 지호에게 질문했다.

“변이체들이 사는 세계가 있고, 당신들과 같은 인간이 사는 세계가 있지. 그보다 더 많은 세계가 있으리란 생각은 해 본 적 없나?”

지호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괴물이 득실거리는 세계 말인가? 창의력이 부족한지 어떤 걸 떠올려도 하나같이 끔찍한 것 같았다. 머리를 스치는 이미지들이 묘하게 구체적이긴 했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당신네들 사는 동네 말고 다른 세계가 또 있다. 뭐 그런 말인가요?”

“왜 없겠어? 훨씬 위험한 곳들인데. 내가 운 좋게 먹을 수 있었던 괴물 중에는 그쪽에서 넘어온 것들도 있었어. 너희 세계를 노리기 전에, 이미 변이체들은 몇 차례 다른 곳들을 거쳐 왔지. 놈들은 그렇게 똑똑하진 않아도 수가 많고 생명력이 질겨. 그것들이 무엇인지 아는 게 우선일까, 너희가 사는 방법을 알아내는 게 우선일까?”

“둘 다 알 수는 없어요?”

“시간이 너희 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오래 이야기할 순 없겠어. 사정이 안 좋아지고 있어서.”

도훈의 시선이 경계 쪽을 향했다. 연구원들은 눈이라도 마주친 건가 싶어 깜짝 놀랐으나,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저쪽 편 다른 풍경일 것이다.

넘어가는 것이 위험하다고 했으니 다른 방법으로 볼 수는 없을까? 지호는 눈을 감은 채 감지 파장을 경계 저편으로 흘려 넣었다.

순간적으로 뭔가의 이미지가 뇌리를 번쩍 때렸다. 지호는 기겁하며 벌떡 일어났다. 연구원들은 도훈이 무슨 짓이라도 한 줄 알고 더 놀라 펄쩍 뛰었고, 그 반응을 모르는 도훈은 지호의 시선이 간 쪽을 보더니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 저놈들이 이유야. 이 균열은 오래 열려 있지 않을 거다. 이야기 좀 하고 나는 다른 쪽으로 나가야 해. 그러니 진짜 궁금한 거 몇 개만 묻는 쪽이 좋겠어.”

-균열이 닫히는 원인이 있단 말인가? 균열 내부 괴물들의 수가 일정 수 이하로 줄어들지 않아도?

“균열 내부의, 뭐?”

“우리는 여태까지 괴물들을 사냥해서 균열을 닫아 왔거든요. 괴물들이 일정 수 아래로 떨어지면 균열이 닫혔어요.”

“힘을 빼앗나 보지?”

“어, 그렇죠. 이형 에너지를 추출하니까.”

지호는 기계적으로 대답하면서도 그가 읽어 낸 것들의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호가 준우를 따라 경계를 넘어갔을 때 보았던 것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거기 있던 말하는 괴물들조차 위협이었는데, 균열에 들러붙어 그것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들은 앞에 서기만 해도 몸이 덜덜 떨릴 것 같았다. 도훈은 지호 얼굴 근처에서 박수를 딱 쳤다.

“정신 차려. 저것들은 너무 커서 못 넘어오니까. 당장 걱정할 건 그게 아니야. 나들, 내가 기억하는 바에 따라 너희한테 가장 필요한 건 생존이잖아. 인간들이란 도태되는 개체를 버리고 전진하는 군집이 아니니까. 그들 하나하나와 함께 나가려고 사회를 꾸리는 거 아닌가?”

괴물이 하는 말치곤 이상적이다. 꽤 오랫동안 의견을 나누던 연구 팀에서 질문이 넘어왔다.

-우리가 사는 곳을 노리는 다수의 괴물이 있음을 이해했다. 그중 하나가 여왕이겠지. 왜 우리에게 시간이 없는가?

“나처럼 약한 개체들은 이런 균열을 드나들 수 있어. 저쪽 세상엔 비슷한 원리가 통용되지. 강한 것들은 다닐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야. 그래서 자신을 닮은 약한 개체를 만들어서 길을 찾고 먹이를 찾아다니는 거거든. 여왕이 제일 센 놈 중 하나인 건 맞아. 그래서 자유롭게 움직이긴 어렵지. 놈의, 뭐라고 말해야 이해할까. 놈의 손톱들? 머리카락들? 그런 것들을 자식 혹은 호위대라고 부르거든. 여왕이긴 한데 그것의 부속일 뿐인, 그럼에도 본신의 능력을 닮은 것들 말이야. 그것들이 여왕의 졸이지.”

-여왕의 부하들은 다른 괴물과 어떤 것이 다른가? 그것들을 알아볼 수 있는가?

“다른 괴물들이야 당장의 생존, 목숨을 연명하는 길, 혹은 배 채우는 일 정도에나 골몰하지. 하지만 저것들은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여. 나처럼 우연히 높은 지능을 갖게 된 것들도 잘 하지 않는 것을 하거든. 남을 위해 움직이는 일 말이야.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에너지는 의지에 반응해. 자기 자신의 욕망보다는, 타인을 위한 의지 같은 것들을 좋아하더군.”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지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훈이 언급한 건 사실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내용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살고자 하는 의지보다는 살리고자 하는 의지에 힘을 보태 준다는 거죠?”

“그래. 그래서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각성자가 될 수 있는 거지. 안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이미 알고들 있겠지만.”

괴물의 입에서 듣는 각성의 조건이라니, 이토록 낯설 수가 없었다. 지호는 떨떠름한 얼굴로 질문했다.

“원래 알고 있던 건가요, 아니면 그, 많은 걸 먹는 와중에 얻게 된 지식의 누적?”

“얼추 알고도 있고 알게도 되고 그런 거지. 순서가 중요한가?”

“확실한 거였으면 좋겠어요. 지금 엄청 중요한 이야기 하신 거거든요.”

“이 삶에서 확실한 거라곤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뿐이야.”

경계 저편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지호는 몇 번이고 자리를 박차고 싶은 심정을 느끼며 어깨를 움찔거렸다. 도훈 역시 그쪽을 응시하며 혀를 찼다.

“시간이 얼마 없겠어. 이 균열이 곧 닫힐 것 같거든.”

“어떻게요?”

“상위 포식자들이 이런 공간을 닫을 때 쓰는 방법이 있지. 자기 기운을 불어넣는 거야. 내가 곧 너희를 먹으러 들어갈 거다, 하고 속이는 셈이지. 물론 놈들이 들어올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야. 여왕 같은 수단을 쓸 수 있는 놈이 흔한 것도 아니고, 보통은 분리되는 순간 다른 개체가 되니까…….”

연구진은 도훈이 쏟아 내는 정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했다. 흘려 내듯이 툭툭 뱉는 말 하나하나가 보통은 알기 어려운 귀한 정보였으니까. 미약한 지진이 균열 내부를 흔들었다. 책상 가운데 올려져 있던 카메라가 비뚤어지며 녹화되는 영상이 바뀌었다.

균열 경계 부분이다. 본디 미약하게 색이 빠지기 시작하는 부분. 균열 내부가 한 번 더 흔들리자 차이가 명확하게 보였다. 안쪽은 흔들리지만, 저쪽은 흔들리지 않는 것.

“내가 생각보다 먹음직스러운 먹이였거나, 이쪽에 먹고 싶은 게 더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은데. 놈들이 여길 부숴 버리기 전에 이동해야겠어.”

“도망칠 수 있겠어요?”

“내가 처음에 부탁한 건?”

연구 팀 쪽에서 대괴수용으로 개발된 신형 전투복을 준비했다. 도훈은 분명 헌터 복장을 하고 있긴 했는데, 그가 따라 하는 건 겉모습이 전부라 기능까지는 흉내 낼 수 없다고 했다.

“실질적으론 내 몸을 형질 변이시키는 것뿐인데 너희 기술을 똑같이 구현한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반칙이지. 덕분에 좀 더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졌어. 고맙군.”

“아니, 잠깐. 균열이 없어지면 여기 사람들이 갇히잖아요.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죠?”

“절반 정도는 바로 죽겠지. 나머지는 천천히 죽을 테고. 다들 너희한테 관심이 많아. 괜찮은 형질 변이를 얻을 수 있다고들 해서 특히 그렇지.”

“혹시 봤어요? 살아 있는 사람들…….”

지호의 떨리는 목소리에 도훈은 마이크를 떼어 지호의 손에 건네며 고개를 저었다.

“기대하지 마. 네가 아는 모습이 아닐 확률이 높을 테니. 가기 전에 하나만 말해 두지. 너희가 자꾸 죽어 나가며 포식자들 몸을 불릴수록 나 같은 것들이 살기 어려워져. 그러니 여기서 탈출하는 법을 알려 주지.”

도훈은 원리를 설명하기보다 보여 주기를 택했다. 공 모양으로 오므린 손바닥 안에 둥근 구형의 이형 에너지를 만들고, 그 흐름을 지호의 눈앞에 들이민 것이다.

“봐라. 여기가 닫힐 때 에너지가 이런 식으로 움직일 거야. 모든 곳에서 중앙을 향해 쇄도하겠지. 그때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위건 아래건 그 외의 방향이건 상관없을 거야. 같은 방향이면 끌려가고 멈춰 있어도 휩쓸린다. 꼭 반대 방향이어야 해. 닫히는 순간을 놓치지 마.”

다시 한 번 옅은 지진. 도훈은 진짜로 가야겠다며 황급히 방향을 살폈다. 지호는 떠나려는 그의 손목을 덥석 움켜잡았다.

“잠깐. 이거 가져가요. 혹시 다른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도 알아보고 싶어요.”

“음, 이 얼굴이 마음에 드나?”

“이상한 농담 하지 말아요.”

도훈의 옷에 정식 헌터들이 받는 배지를 채운 지호는 인사하고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 쳐다볼 수도 없었다. 이로써 다른 헌터들 역시 그의 위치를 물리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될 것이고, 혹여 다른 모습으로 변해 사람을 해치려는 순간이 오더라도 진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누군가를 무작정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 지호를 슬프게 했다.

오래 상념에 잠길 수는 없었다. 균열 내부 공기가 재차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지호는 황급히 연구 팀 쪽으로 설비를 다 밀어 버리며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

“부평 균열 곧 닫힐 조짐 있음. 이상 현상 연구 팀에서 자료 확인했습니다. 균열 전역에 방송 바랍니다. 균열에 휘말리지 않을 방법이 있어요. 침착하게 지시에 따르도록 협조 부탁합니다.”

하룻밤 안에 몇 안 되는 헌터가 구조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곤 아파트 단지 몇 개와 지하상가, 그밖에 일부 생존자들뿐이었다.

혹여 도훈이 거짓말을 했다 해도 지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부디 신뢰할 수 있는 상대이기를 바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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