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경계 저편에서 나타난 괴물이 하는 말로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지호는 불편함을 드러냈다.
“그건 안 돼요.”
“뭘 걱정하는지는 나도 알아. 어떻게 하면 믿어 줄까? 팔다리를 다 자르면 되는 거야? 하지면 그렇게 신체에 위협을 가하면 내 본성이 튀어나올 거야. 지금 나들로 억누르고 있는 식욕이. 그래서 그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걸.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너희가 안심할 만한 어떤 것. 나들이 생각을 해 봐도 썩 좋은 생각이 나질 않더군. 그래서 물어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았어.”
지호는 도훈이 자신을 칭하는 방식에 낯설어했다. 먹은 자들의 모든 기억을 갖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모든 괴물이 사람을 먹어 사람의 기억으로 도훈과 같은 모양새가 되기까지 놔두는 실험을 하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지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일단 상부에 보고부터 할게요. 진짜 괜찮을지 어떨지 알 수는 없어도, 적어도 위험 개체로 인식하고 공격하지 않고 대화부터 좀 할 수 있는 뭔가가 나타났다고 이야기 정도는 하고.”
“안 들을걸.”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요.”
“이상한 녀석이구나. 나한테 말 걸 때부터 그랬어. 괴물한테 말 거는 헌터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냐?”
그런 헌터와 만난 것이 도훈에겐 행운이었을 것이다. 지호는 서영에게서 줄기차게 오고 있는 전화를 보며 도훈에게 잠시 전화를 받겠다고 수신호를 보냈다. 그걸 이해하는 도훈을 보며 또 복잡한 심경이 된다. 손짓으로 수화기 모양을 만들어 얼굴께에 가져다 대는 이 일반적인 행동을, 동물이라고 이해할까? 하물며 괴물은 어떠한가?
그러나 도훈은 그렇게 한다. 심지어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을 기본적인 상식들 역시 보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심경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통화가 연결됐다.
-왜 이렇게 안 받아요! 무슨 일 난 줄 알았네.
“생존자들은 다 넘어갔어요?”
-군인들 포함해서 일단은요. 장인들이 자기들 쓰던 도구가 없다고 아쉬워하는데 그런 것까지 가져올 시간은 없다고 못 박았어요. 어떻게 됐어요? 아까 그 빛은 뭐죠?
“설명하자면 좀 길긴 한데, 대화 가능한 괴물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할래요?”
짧은 소란이 일었다. 목소리 몇 개가 겹쳐 제대로 들리는 말이 없었다. 이런, 스피커폰이거나 주변에서 들은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균열이 워낙 조용했던 터라 도훈 역시 통화 내용을 듣고 있었고, 그의 초조함을 읽은 지호는 애써 웃어 보였다.
-무슨 미친 소리예요?
“괴물 중에 똑똑한 놈들이 있다는 거 다들 알고는 있었잖아요. 함정도 파는데 말은 못 할 게 뭐예요?”
-그쪽으로 갈까요?
“아뇨. 상황만 먼저 보고해 주세요. 제 위치 보이죠? 여기서 멀리 안 갈게요. 경계 근접부에 계속 있을 거고요. 혹시 괜찮으면 외부에서 음식 좀 주실 수 있나요?”
-뭘 하려고요?
“이 괴물을 신뢰할 수 있나 알아봐야죠.”
-미친 짓 하지 말고 연구진 기다려요.
“일단 끊을게요. 괴물을 앞에 두고 통화만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지호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 공격 직전이라는 위험 상황 같은 거로 받아들인 건 아니었으면 싶었다. 고작 하루 합을 맞춘 사이지만, 지호는 서영과 함께 움직이는 게 꽤 마음에 들었다. 임시치곤 괜찮은 파트너다.
“다른 사람들을 불러도 괜찮을까?”
“다짜고짜 공격하지는 않겠죠. 일단 헌터같이 생겼잖아요. 아마 실제로 당신이 먹은……. 당신 중 하나일 테고요.”
“모두의 기억이 완전한 건 아닌데…….”
“일부라도 기억나면 그걸 읊어 줘 봐요. 다른 사람들에게 괴물들의 정보를 제공하고, 그게 신빙성 있다면 어느 정도는 당신을 신뢰하게 되겠죠. 죽은 사람이 돌아왔으니 그게 괴물의 증거라고 총부터 쏴 대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면요.”
다소 과격한 추정이지만 최악의 상황은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괴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히 들을 기회가 또 있을 리 없었다.
일전에 만났던 준우는 퀸 패러사이트가 그의 주인이라고 했고, 자기 시야가 그것과 공유되고 있다고도 했었다. 심지어 본인은 헌터였던 무엇이라고 하기도 했었지.
보현이 알게 된다면 슬퍼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를 슬프게 할 소식을 제 입으로 직접 전해야 한다는 사실이 지호를 힘들게 했다. 도훈을 바라보며 그가 아끼는 헌터를 떠올리던 지호는 도훈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눈치채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미안해요. 다른 생각 좀 하느라.”
“나 같은 자를 아는 모양이지?”
“알고 지내던 사람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이런 변종이 많을 턱은 없으니, 그쪽은 당신과 같은 부류겠군.”
“예? 아뇨, 정신계 괴물에게 지배당하게 된 사람이었어요. 그게, 본인 말로는 괴물에게 먹혔던 거라고 이야기하긴 하는데. 정확한 건 잘 모르겠어요. 먹혔는데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는지 같은 것들요.”
“자기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당신들은 보통 각성자라고 부르지.”
“당신도 모르잖아요. 마음대로 원하는 모습으로 변할 수 없다면서요?”
“그래도 당장은 괜찮은 것 같아. 당신에게 우호적인 나들이 많아서.”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칭호다. 지호는 거북함을 드러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 자신을 다수로 지칭하는 건 저한테 너무 낯선 방식이라서요. 그냥 나라고 하면 안 돼요? 헷갈려요.”
“어, 그렇지. 보통 사람은 인지하는 자신을 다수로 여기지 않으니까. 미안해. 사실 나도 종종 헷갈려.”
도훈의 선량해 보이는 웃음은 지호의 경계를 조금씩 무너뜨렸다.
이건 괴물이라고 인지하려고 해도 멀쩡히 사람 같아 보이는 자를 두고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긴 어려웠다.
“당신이 말하는 자가 누군지 대충 알 것 같군. 사람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많지는 않으니까.”
“우리는 그쪽에 퀸 패러사이트라는 코드 네임을 붙여 놨어요. 다른 것들을 지배하는 괴물은 처음 봐서 특히들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고요.”
“코드 네임? 나는 뭔데?”
정말 모르고 물어보는 걸까? 그렇게 많은 사람을 먹었다면서. 지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가 도플갱어가 목격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까스로 떠올릴 수 있었다. 상원이 상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면 지호 역시 막연하게 사람의 모양을 흉내 내는 괴물 정도로나 이해하고 있었을 터였다.
“당신 지금 이름하고 비슷해요. 도씨 돌림이요.”
도훈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지호는 그의 표정만으로 도훈이 자기 말을 순식간에 이해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웃음으로 상대를 당황하게 한 도훈은 너무 웃어 눈물까지 약간 흘렸다. 진짜 이게 사람이 아니라면 뭘까. 지호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숨기려고 애쓰며 화난 표정을 지었다.
“왜 웃어요?”
“아니, 너무 뻔하잖아. 누군가 내 사냥 장면을 봤나 보지? 하기야, 정신 차릴 즈음에는 헌터들을 자주 마주쳤던 것 같아.”
“사냥이라니…….”
“살인이라고 할 순 없잖아.”
도훈의 자극적인 발언이 지호의 입을 닫아 버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만 벙긋거리던 지호는 한숨 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둘 말고 다른 방식은 없는 거예요?”
“몰라. 도플갱어라니 너무 흔한걸. 셋이 모이기는커녕 있던 하나도 없애는 괴물인데, 이름을 잘못 붙인 거 아닌가?”
“그때는 외형을 따라 하는 종류라고 생각했나 봐요. 첫 발견자한테 물어봐요.”
“나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실례. 이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었지.”
경계 저편에서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것 같기도 했다. 지호는 미동 없이 어둠 저편에 시선을 두고 있는 도훈에게 슬쩍 질문했다.
“이 소리 들려요?”
“무슨 소리?”
“경계 너머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요.”
“안 들려. 큰 소리인가?”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은 복잡한 표정으로 경계로 추측되는 방향을 슬쩍 쳐다보았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내게 저 방향은 포식자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쪽이라서.”
“아직도 있어요?”
“말했잖아. 놈들에게 나는 매력적인 먹이일 거라고.”
“다른 모양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게까지 좋은 거예요?”
“아니. 그것보다는 먹은 것들의 기억을 축적하는 쪽이? 다른 것들은 먹거나 먹혀서 하나만 살아남게 되거든. 나처럼 다수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는 없어. 이쪽이 생존에는 유리하겠지. 많은 경험, 많은 기억. 심지어는 상황에 따라 유리하게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몸도 있고. 나로서는 많은 개체와 합류하는 쪽이 이득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언제 이 형질이 열등한 것으로 분류되어 사라지게 될지 알 수 없으니 강한 것들에게 먹히는 것이 무조건 생존하는 길이라고 보긴 어렵거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도훈은 담담히 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경계 쪽에서 눈을 돌려 버렸다.
경계 너머에 도대체 뭐가 있을까?
준우가 보여 주었던 독특한 종류의 이형 에너지를 떠올렸다. 얼추 흉내 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시도해 본 적은 없지만,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 것. 지호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이형 에너지의 종류가 균열 내부 에너지와 유사한 형태로 변하자 도훈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넘어가려는 거야? 가지 마. 진짜 지금은 아니야. 특히 여기는 더더욱 아니고.”
“저기 뭐가 있는데요?”
“이름 없는 것들과는 비교되지 않는 놈들이지. 여기로 들어오기엔 너무 강한 것들. 살아 있는 재앙들……. 여왕의 자식들과 세력 다툼을 할 만큼 강한 것들이야.”
균열 구조대 차량이 아니라 경찰차를 타고 사이렌을 울리며 뛰어온 연구 팀 사람들이 허겁지겁 차에서 내렸다. 경계 저편의 분주함을 본 지호는 그쪽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왔어요. 저 사람들을 들어오라고 하진 않을 거예요. 밖의 소리가 안 들려요? 보이지도 않고?”
“나한테 들리는 건 포식자의 울음소리고, 보이는 건 놈의 아가리야.”
“설명 들을 게 많네요.”
연구 팀은 싣고 온 장비들을 설치하느라 허둥댔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생물학적 연구도 하고 싶었던 모양인지 샘플 채취 용도로 갖고 온 키트들도 꽤 있었는데, 들어올 엄두를 내는 연구원이 없어 이쪽은 진행이 어려울 것 같았다.
본격적인 촬영 장비도 설치됐다. 야간이라 조명도 가져다 놓고 켰는데, 부근이 갑자기 밝아지는 걸 본 도훈은 놀라 펄쩍 뛰었다가 불안한 얼굴로 대낮처럼 밝은 자기 주변을 돌아보았다.
“저쪽에 뭔가 있다는 건 아는데, 알면서도 영 이상한걸.”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저편에 괴물들이 입 벌리고 기다리고 있단 걸 상상하긴 아무래도 어렵고.”
녹음을 위해 필요한 마이크는 저쪽에서 넘겨주는 걸 염동력으로 받아 왔다. 가까이 온다면 좀 더 안전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던 지호는 아차 싶어 제 뺨을 착착 두드렸다. 고작 대화 몇 마디 나누고 안전한 사람 운운하다니, 아직 쓴맛을 덜 봤다. 일이 잘못되면 지호는 약간 다칠 뿐이지만, 들어오는 연구원은 죽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몸을 사릴 수밖에.
우습지만, 이십여 미터 떨어진 위치에 설치된 간이 연구실과의 대화는 통신으로 이루어졌다. 나누는 대화 모두를 영상으로 남기고 싶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어, 이게 저쪽에 들리는 건가?”
“맞아요. 뭔진 알죠?”
“어떤 나들은……. 아니야. 알고 있기도 하고, 모르고 있기도 하군.”
도훈은 지호의 요청을 떠올리곤 금세 말을 바꾸었다. 이것부터 녹화되고 있겠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자료를 남기는 데 동의한 건 도훈 본인이었고.
물론 도훈은 영상 자료를 남기는 조건으로 독특한 요구를 했다. 연구진은 당황했으나 들어주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던 터라 인터뷰 중간에 그걸 주기로 약조했다.
지호는 연구 팀의 임시 보조가 되기로 해 도훈 옆에서 장비 세팅을 맡았다. 시키는 대로 이걸 저기 놓고 뭘 어디에 끼우는 것뿐이지만, 나름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설치된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난 뒤, 도훈은 렌즈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지호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우선은 당신에겐 당연한 이야기들부터요. 경계 저편의 환경이나, 그쪽 생태계 같은 것들. 혹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도 좋겠죠. 어떤 사람은 당신을 알아볼지도 몰라요. 그, 지금 당신의 모습이었던 사람을요.”
“사과하진 않겠어. 해도 의미가 없겠지. 나는 한때 민도훈이었던 것이고, 너희가 붙인 코드 네임으로는 도플갱어. 일반적인 것들과 달리 삼킨 것들의 기억을 일부 남겨 두는 변이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