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10화 (111/260)

110화

13. 포로들

경악을 삼킬 수 있었던 건 경계에서 뭔가 오고 있단 걸 알고 있던 까닭이지만,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머리 없는 방호복이 움직였다. 문제는 목 아래쪽으론 있는 것 같단 거였다.

빛 때문에 이쪽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을 터였다. 서영이 그들을 데리고 무사히 경계를 나가면 좋을 텐데. 서영 역시 경계에서 뭐가 넘어왔으리란 사실을 짐작했을 것이다. 그러기를 바랄 뿐이었다.

목 위쪽에 헬멧만 얹고 있는 정체불명의 괴물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살아 있는지조차 궁금할 지경이다.

방호복이 슬쩍 움직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보행의 움직임이 아니다. 다리 부분이 앞으로 나오며 몸 전체가 슬쩍 앞으로 기우는 형태.

방호복의 형태가 앞으로 우르르 무너졌다. 마술을 보는 것 같다. 몸이 바닥으로 푹 꺼졌다가 도로 솟아오르는 모양새. 저건 도대체 무슨 부류인가? 감지 파장에 걸리는 걸 보니 아까 죽은 괴물과 같은 종류는 아닐 터였다.

지호는 주의 깊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것은 지호의 움직임을 감지하지도 못했다.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부류. 그런데 왜 이렇게 감각이 곤두설까? 지금 당장 지호를 공격할 것 같단 느낌은 없다. 그런데 위험하단 느낌은 들었다.

꾸물거리던 방호복은 천천히 가라앉더니 이내 납작해졌다.

끝난 걸까?

감각을 집중시켜 주변을 싹 훑었으나 수상한 움직임은 더 없었다. 대신 납작해진 방호복이 다시 꾸물거리기 시작했고, 지호는 몸 주변에 두른 방벽에 두께를 더하며 조금 더 물러났다.

육안으로 뭔가를 자세히 보기는 조금 어려운 위치까지 물러났을 때였다.

방호복 등판, 본래는 산소통 같은 것을 메는 위치의 빈 통에서부터 일그러짐이 시작됐다.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한 공간의 갈라짐. 균열의 시작과는 확연히 달랐다. 균열 내부의 이형 에너지들을 쭉쭉 흡수해 가며 몸체를 불리는 모종의 덩어리를 본 지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저걸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뭔지 추측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침착하게 촬영 버튼을 눌렀다.

“21일 새벽 1시 17분. 코드 레드 개체로 보이는 생물 발견. 자료를 남깁니다.”

예전에 상원이 병문안을 왔을 때 해 주었던 이야기가 있다. 먹은 사람의 형태를 그대로 베껴 따라 하던 괴물, 도플갱어.

살아 있는 인간을 먹었을 때 놈은 헌터처럼 행동했다. 그럼 이미 죽은 것을 먹었다면? 시체 모양을 그대로 베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혹여 도플갱어가 아니라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처음 보는 괴물 기록을 남기는 건 모두에게 도움되는 일이니까.

공간을 일그러뜨리던 그것이 드디어 행동을 멈췄다. 바닥부터 서서히 쌓이는 에너지. 감지 계열 능력자만 이게 어떻게 변이되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사람 모양을 갖춘 에너지에 천천히 색이 입혀졌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을 형태가 갖춰진다.

헌터 복장이었다.

모르는 얼굴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 영상을 볼 누군가는 알 수도 있겠지. 지호는 용감하게 조금 다가갔다. 물러나기만 하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아마 도플갱어일 그것은 사람이 된 다음에도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눈에 초점이 없고 입도 반쯤 벌어져 있기까지.

함정일까, 아니면 원래 이런 놈일까. 두 코드 레드 개체가 서로 대화하며 어딘가로 이동했다던 목격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지호는 우선 입을 열었다.

“저기요.”

먼 곳을 보는 것처럼 멈추어 있던 눈이 데룩 움직였다. 지호는 움찔하면서도 더 물러나지는 않았다. 갑자기 몸 한 곳이 무기 같은 걸로 변해서 팍 찔러 오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온갖 불길한 상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후, 바닥을 돌아다니던 도플갱어의 시선이 발부터 다리를 훑어 지호의 얼굴까지 쭈욱 올라왔다.

마주친 눈빛엔 공포가 담겨 있었다.

지호는 촬영 종료 버튼을 눌렀다. 카메라 때문에 겁을 먹는 것 같기도 해서였다. 변이 장면을 찍었으니 충분할 것이다.

사람 모양을 하고 사람처럼 행동하니 진짜 사람을 겁주는 기분까지 들기도 했는데, 직전에 납작한 방호복에서 솟아나 몸을 재구성하는 장면을 보지 않았다면 진짜 사람으로 오해했을 것이다.

그것은 지호의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여왕의?”

“그놈의 여왕이 뭔지 아직 정확히 모르겠는데, 아니에요.”

“아니야?”

“그쪽은 뭐예요?”

아까 사람 꼴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던 이상한 괴물에게는 반말이 튀어나오더니 이쪽에는 영 말을 편하게 하기 어려웠다. 괴물이란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데도 그랬다.

“헌터인가 보네.”

“맞아요.”

“그렇다면 잘 찾아왔군. 다른 사람들도 있을 테지?”

놈의 발언에 지호의 몸이 확 긴장됐다. 무슨 의미의 발언인지 알 수 없다. 도플갱어는 불안한 시선을 여기저기 돌리다가 양손을 펼쳐 보였다.

지호는 그게 무슨 신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안심해. 그 사람들을 노릴 생각 같은 거 없어. 여기가 닫힌 균열이 아니고, 그쪽이 고립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헌터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무슨 말이죠?”

도플갱어는 아까부터 계속 주변을 살폈다. 뭔가 듣고 있는지 의심하는 것 같았다. 지호는 자기 몸에 두르고 있는 방벽 외에 또 하나의 방벽을 만들어 냈다. 급조한 데다 두 번째 방벽이라 불투명해 밖을 살필 수는 없었지만, 도플갱어의 표정은 조금 편해졌다.

“고마워. 친절한 사람이로군.”

“그쪽은…….”

지호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머뭇거렸다. 이 괴물을 뭐라고 칭해야 할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어 더 그랬다. 도플갱어는 자리에 털푸덕 주저앉았다.

“도망치느라 너무 오래 걸렸어. 감시망을 빠져나왔나 했는데 바로 여왕의 기운이 느껴져서 꼼짝없이 죽나 했지.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그것들을 뚫고 헌터로 남을 수 있는 인간이 있을 줄 몰랐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아, 그래. 미안하군.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지 얼마 안 됐어. 얼마 전까지 나는 무엇이건 우선 집어 먹고 보는 짐승에 가까웠으니.”

“무엇에게서 도망친 거예요?”

“포식자들이야. 너희는 상상할 수 없는 괴물들.”

가볍게 몸을 떨며 어깨를 감싸고 웅크린 도플갱어는 괴물답지 않은 언행으로 지호를 점점 더 당혹시켰다. 지호는 지금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말을 하게 된 건데요?”

“많이 먹어서.”

도플갱어는 의도적으로 주체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호의 얼굴에 한층 경계의 빛이 드러나자 도플갱어는 황급히 손사래 쳤다.

“아냐, 아니야. 다른 것도 많이 먹었어. 심지어 시체까지 집어 먹었단 말이야. 먹을 수 있는 거라면, 그게 내 몸을 이룰 수 있는 무엇이 된다면 아무거나 상관없었어. 시체가 될 때는 생각도 할 수가 없어서 거의 죽을 뻔했었지.”

“마음대로 변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럴 수 있었으면 내가 먹은 것 중에 효율적인 것들을 짜깁기했겠지. 뭣 때문에 이렇게 불편한 변이를 계속 거친단 말이야?”

도플갱어는 내젓던 팔을 슬쩍 내리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근래에 파트너를 이루었던 김서영 헌터가 훨씬 더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표정 변화들이라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사실 알아내고 싶지 않아. 이 구조를 파악해 내는 순간, 이 능력을 얻고 싶은 괴물들의 표적이 될 테니.”

“그냥 도망쳐 온 건가요? 우연히 여기로 온 거고?”

“우연은 아니야. 그놈들은 여기 못 들어오니까, 사실 일부러 들어온 거지.”

“그래서 겸사겸사 사람도 먹고요?”

도플갱어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상했다. 그것이 보이는 태도는 진짜 사람보다 더 사람 같았으니. 놈은 자기 몸을 더듬었다. 왼쪽 주머니에 적힌 이름자. 죽은 시신을 수습했을 때 누구의 것인지 파악이 쉽도록 안쪽에 적어 놓는 바로 그 이름이 도플갱어가 구현한 헌터 몸에도 남아 있었다.

“나는 그러니까, 지금은 민도훈이야.”

“지금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우리에 관해 알고 있어? 우린 먹은 것들이 곧 내가 되는 것들이잖아. 나는 너무 많은 걸 먹었어. 원래의 내가 어디에서 시작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 내가 먹은 최근의 나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나는 지금의 나야. 그래서 이 모양새를 빌렸어. 놈들에게 도망치면서 빌린 시체에 관해선 남은 기억이 거의 없지만.”

“그런 것에 남은 기억조차…….”

“왜 그러냐고 묻지는 마. 네가 왜 너인지 설명해 달라고 하면 너도 그렇게 할 수 없잖아.”

도플갱어는 담담히 설명하며 자기 몸을 확인했다. 지호는 여전한 혼란 속에서 놈이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럼 사람을 많이 먹은 괴물은 결국 사람이 된다는 뜻인가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내가 사람인가?”

지호 기준으로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호는 도플갱어의 기준으로 역시 그가 자신을 사람이라 주장할 리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자기 몸 상태 확인을 마친 도플갱어, 당장은 민도훈 헌터의 모습을 한 괴물은 양팔을 내밀었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일까 두렵다면 포박해도 좋고, 팔을 잘라 버린다 해도 어쩔 수 없겠지. 복구는 어려우니 거기까지는 안 해 줬으면 좋겠지만.”

“다른 이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갈 생각이에요?”

“나는 너무 많은 나를 먹었어. 인간을 많이 먹은 괴물들을 손쉽게 삼킬 수 있었지. 좀 그런 체질이거든. 그래서 혼란스러워. 내 안의 기억 속에 사람이고자 하는 내가 너무 많아. 사람들을 좀 더 마주할 수 있으면 해답이 나올지도 몰라.”

다중 인격 같은 건가. 지호는 적은 상식으로 답을 추측해 보려고 애쓰며 물었다.

“아까는 다른 것들에게서 도망친 거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필요하다니, 어떻게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봐. 나는 각성자를, 특히나 헌터를 너무 많이 먹었어. 내 의식의 절반 이상이 그런 놈들로 채워져 있단 말이야. 내가 어떻게 사람을 해치려고 들 수 있겠어?”

“당신이 최근 목격된 균열에서도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해쳤어요.”

“맞아. 말했잖아. 정상적인 대화를 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어.”

“갑자기 의식이 생긴 것도 아니었을 텐데요? 그전에도 분명 다른 괴물들보단 지능이 높았을 거고, 그것들과 대화할 수단도 충분했을 텐데요.”

“괴물들 사이에서 대화란 건 배부른 놈들끼리나 가능한 거야. 아니면 같은 명령을 받은 것들이나.”

“명령이요?”

“아까도 말했잖아. 여왕 말이야.”

방벽을 치고 있으니 소리가 상당 부분 차단되어 있을 텐데도 여왕을 논할 때의 도훈은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예전에 준우도 여왕의 이야기를 했었다. 퀸 패러사이트를 칭하는 것이 아니라, 괴물들이 말하는 진짜 여왕.

지호는 이제 그에게 답을 줄 수 있는 이를 찾았다. 비록 사람은 아니었지만.

“사람들 있는 곳으로 데려갈 순 없어요. 대신 다른 괴물들에게서 당신을 보호해 줄 수는 있을 것 같네요. 이 균열이 사라지기 전까지의 이야기겠지만.”

도훈은 동의를 표하는 대신 침묵했다.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가? 지호가 재차 그건 안 된다고 말하려 할 때, 도훈의 입이 조금 더 빨리 열렸다.

“나는 균열을 나가고 싶어.”

“나가면 되잖아요.”

“내가 도망쳐 온 곳 말고, 다른 나들이 살아가던 세계로 가고 싶어. 너희가 오는 곳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