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지호는 서영과 함께 아파트 벽면을 따라 빠르게 부상했다. 베란다에 매달린 생존자 표식이 사방에 널려 있다. 부디 저걸 달아 둔 사람들 모두가 살아 있기를.
십 층 이상 올라온 다음 표식 달린 집 창문을 똑똑 두드린 지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헛기침했다.
“잠깐 길 좀 빌리겠습니다. 집 앞에 괴물이 있어서요.”
서영은 기겁했고 안에 있던 사람들은 더 놀랐다. 겁에 질린 중년 남성 하나가 잠금쇠를 풀고 커튼 틈새로 슬쩍 손을 내밀었다.
“지, 집 앞에요?”
“금방 잡겠습니다. 유리를 부수고 들어갈 순 없어서요.”
지호와 서영이 실내로 들어서자 소파 옆 구석에 숨어 있던 학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지호 헌터, 하고 중얼거리는 입 모양이 너무 잘 읽혔다. 이런 식으로 유명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지호는 서영에게 통로에 있는 괴물의 정보를 읊어 주었다.
“다족류 같아요. 벽면에 몸을 붙인 채로 움직이고 있고요.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것 중에서는 크라켄과 유사합니다. 사이즈 중형.”
지호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삐리릭, 하는 알림음에 반응한 놈이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현관을 향해 번개처럼 쏘아졌다. 대비하고 있었는데도 깜짝 놀랐다. 지호가 으악! 하고 소리치자 서영도 놀랐고 그 집 가족들은 더 놀랐다. 연달아 비명이 울리자 지호는 아차 싶어 입을 꽉 다물었다.
속도에 무게까지 싣고 날린 공격이었으나 크게 위협적이진 않았다. 강한 놈이 아니었으니 당연하다. 소리에 반응해 뛰쳐나온 것 같았다. 지호는 놈을 염동력으로 벽에 눌러 붙이며 서영에게 손짓했다. 그러나 서영은 고개를 저으며 무기를 집어넣었다.
“크라켄 과라면 그건 잘라도 제각기 다리가 움직이는 종류예요. 못 움직이게 막을 수 없으면 불에 굽든가 전기로 지져야 돼요.”
“전 불이나 전기 같은 건 쓸 줄 모르는데…….”
“힘을 마찰시키거나 뭐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시던데, 저는 잘 모르겠네요. 신체 계열이라. 모를 땐 생으로 부딪치는 게 제일이죠. 추출해요.”
“살아 있는 것도 되나요?”
“뭘 새삼스럽게…… 가 아니고 모를 수도 있겠네요. 산 채로 뽑는 편이 마정석이 커요. 대신 괴물 반항이 좀 심하죠.”
실제로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지호는 자기 힘을 뚫고 나오려고 다리를 휘두르는 괴물을 제압하기 위해 꽤 힘을 들여야 했다.
살아 있는 것에서 에너지를 추출하기 시작하자 괴물이 괴로워하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생선 머리를 자를 때도 이런 느낌까지는 안 들 것 같은데. 지호는 산 동물 잡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지금 그걸 익사시켜 잡는 것과 비슷한 짓을 하고 있기까지 했다.
“으윽, 그냥 죽여서 꺼내는 게 낫겠어요…….”
“원랜 그게 빠른데 지금은 어쩔 수 없잖아요. 제가 하는 것보다 이지호 헌터가 하는 게 더 빨라 보여요.”
서영의 지시 때문에 지호는 다시 손에 감각을 집중했다. 전신에서 이형 에너지를 뽑아내자 괴물의 바르작거림이 커진다. 지호는 시선을 다른 쪽에 둔 채 으으, 하고 괴로워하며 괴물의 머리통만 한 마정석을 추출했다. 괴물의 시체가 바싹 말라 벽에 눌어붙은 채로 굳었다가 천천히 부서져 먼지가 되었다.
“시킨다고 그런 걸 뽑을 줄은…….”
“작은 것보단 낫죠…….”
지호는 주먹 크기의 마정석을 수납하며 땀을 훔쳤다. 생각보다 피로했다. 물론 땀이나 닦으며 쉴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다음 위치를 찾아 다시 떠나려는 두 헌터를 생존자 가족이 붙잡았다.
“저, 저기. 저희는 언제 빠져나갈 수 있는 겁니까?”
“이 아파트 단지 괴물들 다 잡고 나서 군인들이 올 겁니다. 그쪽 신호에 따라 나가시면 됩니다.”
“괴물들을 다요? 하지만 계속 나오잖아요…….”
“군인들이 더 먼저 올 겁니다.”
서영은 무뚝뚝하게 실종자들의 팔을 쳐 내며 지호에게 지시했다. 지호는 다음 위치를 찾아 서영과 함께 해당 층을 떠났다.
괴물을 잡는 족족 신고를 넣는다. 균열에 있는 모든 헌터들이 동시에 사냥 중이기에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너무 급한 사냥은 균열의 갑작스러운 폐쇄를 불러온다. 그러면 이 많은 사람 전원이 다 실종자가 되어 버릴 위험도 있었다.
“여기까지만 잡고 구조 작업에 동참하죠. 나머지는 죽이지 말고 제압만 하라고 하니까 뒤의 놈들부터는 마정석 추출은 못 하겠어요.”
“그럼 계속 잡고 있어야 해요?”
“우선은 그렇겠네요. 언제 일어날지 모를 놈들을 시한폭탄처럼 매달고 다니면서 작업이라니 스릴이 넘치죠.”
서영은 괴물 관련 정보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균열 관리 팀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지호와 서영은 이동하면서 두 마리의 괴물을 더 잡았다. 크게 진을 빼는 강한 놈이 있지는 않아 약간 맥이 빠질 정도였다.
물론 서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지호의 몸 상태를 들어 알고 있었기에 최상의 상태도 아닌 몸으로 이런 무위를 보인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멀쩡한 상태면 단독 임무도 맡기겠네요? 임보현 헌터 이후로 처음이야.”
“단독 행동은 안 된다고 그러시던데요…….”
“뭐, 단순히 파워며 출력이 좋다고 혼자 일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럴 거예요. 이지호 헌터는 배울 것도 많고 대처 경험도 적으니 아무래도 어렵겠지만, 1세대 헌터들 중에는 단독 행동 하던 사람들도 있긴 했거든요.”
서영은 괴물 두 마리를 포획한 뒤 다음 지시를 기다리며 보조 도구에 아까 추출한 마정석을 약간 쪼개 넣었다. 출력이 안 좋다느니, 연비가 안 나온다느니 하는 투덜거림은 덤이었다.
“원래 성능 좀 개선되고 나서 쓸 수 있는 물건이랬으니 어쩔 수 없긴 한데 속이 쓰리네요. 사냥도 오래 못 나갔는데 계속 기본 수당만으로 일하고 있으니.”
군인들이 아파트 단지로 진입하는 것이 보였다. 서영은 중대장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단지 내에 있었던 괴물은 모두 잡았으니 방송을 써도 될 것 같단 말을 전했다.
아파트 외부에서 아파트 방송 소리에 이끌려 몰려오는 괴물들을 보며 서영은 다시 빔 소드 비슷한 물건을 켰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소리에 이끌려 무작정 달려오는 몇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움직임을 멈추더니 움찔거리며 상황을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뭐지? 뭐라도 나타났나?”
지호의 감지 파장에도 걸리는 게 없었다. 지호의 힘이 괴물 군집을 훑고 지나가자 일부는 펄쩍 뛰며 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신호탄이 된 것처럼, 몰려왔던 괴물들은 큰길 쪽으로 우르르 빠져나갔다. 하필 각성자 연합이 있는 방향이었다.
“저거 왜 저러지?”
“누가 저쪽에서 각성이라도 한 거 아녜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지호의 추측을 들은 서영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그는 황급히 보고를 올리며 지호의 팔을 두드렸다.
“저기, 저쪽으로 가요. 저 사람들 괴물을 죽일 순 있어도 제압은 못 할 거라고요!”
“어, 그게 무슨…….”
“이런 미친 발명품들이 쌓여 있는 곳이잖아요. 빨리요!”
지호는 그가 시제품 테스트했던 물건들을 떠올렸다. 하나같이 일반 각성자가 다루기 어려웠던 것들이다. ‘지나친 고출력으로 일반 헌터가 쓰기 어렵다.’라는 평이 붙어 있던 것들도 더러 있었다. 지호는 서영의 팔을 붙잡고 사과했다.
“이게 빨라서요. 미안해요.”
“왜 사과를, 어어억!”
지호는 몇 바퀴 돌아 그 힘으로 서영을 던져 버렸다. 신체 계열 능력자니까 괜찮겠지! 하는 무식한 방식이었으나 그래도 예상한 것과 비슷한 위치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괴물들보다 앞선 곳. 각성자 연합 사람들의 희게 질린 얼굴에 조금은 핏기가 돌면 좋을 텐데.
지호는 괴물들의 뒤를 따르지는 않았다. 대신 균열 경계를 따라 돌며 안쪽으로 괴물들을 몰아갔다. 놈들은 지호의 반대편으로 황급히 이동하는 편이었고, 접근할 때마다 그런 반응을 보이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이 균열엔 경계 저편 괴물들의 한 입 먹잇감도 못 되는 하찮은 것들만 모여 있다. 놈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자기를 먹을 만큼 강한 괴물을 피해 숨거나 달아나는 것.
도준우가 그를 가리켜 여왕의 하수인이니 뭐니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무슨 의미였을까. 이 괴물들이 보이는 행동의 의미는 뭐가 있지?
이전 균열에서는 분명 지호를 피해 달아나는 놈들은 없었다. 한 번 앓고 일어난 다음에 일어난 현상이라는 건데. 그 중간에 만난 괴물이 하필이면 퀸 패러사이트의 호위대들뿐이라 중간이 없다. 가늠할 만한 놈이 있으면 좀 더 확실할 텐데.
정확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동료에게 할 순 없었다. 지호는 울적한 기분으로 균열을 빠져나가 남쪽으로 향했다. 지호의 가설이 맞는다면 아래에서부터 지호의 힘을 느끼고 물러나는 괴물들이 중앙으로 몰려갈 것이다. 그럼 각성자 연합에서 사람들을 구해 낼 수 있을 것이고.
애석하게도 지호의 예측은 거의 맞아떨어졌다. 물러간 괴물들을 보며 사람들은 환호하고 지호를 반겼다. 그를 노려보는 건 김서영 헌터 정도였다.
“아니, 죽으려고 작정했어요? 한두 놈도 아니고 떼로 몰려 있는데!”
“시험해 볼 게 있었어요. 혼자 해야 해서. 일단 성공했잖아요. 아니어도 금방 날아왔을 거예요.”
김서영 헌터는 뭐라고 더 말하려다 어휴, 하고 머리를 벅벅 긁더니 각성자 연합 측은 정리되었다고 팀장에게 보고부터 날렸다. 곧장 이쪽으로 구조대원들과 경찰로 이루어진 지원 팀이 달려왔다. 꽤 큰 아파트 단지와 지하상가로 대피한 사람들, 그리고 각성자 연합 부근 건물들에서 사람들을 구조하고 나자 하루가 저물었다.
더 이상의 습격은 없었고, 헌터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했기에 작전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지호는 울적한 기분을 숨기려고 애쓰며 균열 안쪽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괴물이 된 기분이었다.
헌터의 감은 잘 맞는다고 누가 말했던가? 가끔 안 맞는 것도 있을 수 있겠지. 심지어는 이게 감이 아니라 그냥 멍청한 오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호는 부디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각성자 연합 건물로 들어갔다.
부상자가 속출했는지 치료기가 만석이었다. 지호는 얼추 긁히거나 베인 정도의 가벼운 상처들에만 치유력을 써 주었고, 나머지는 치료기에 들어가도록 연합 사람들에게 요청해 두었다. 판매용 기기들이 급작스럽게 설치되느라 사방이 시끄러웠다.
피로한 얼굴로 앉아 있던 유선경은 여기저기 헤매는 지호를 보고 손짓했다.
“와 줘서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안쪽까진 괴물들이 못 들어왔나 봐요.”
다 깨진 유리문과 입구를 막으려고 가져다 놓은 온갖 선반, 수납장, 심지어는 간판 같은 것들이 입구에 너저분히 쌓여 있었다. 부평 균열이 열린 건 사흘 전. 헌터들이 투입된 건 오늘이 처음이란 뜻이었다.
“그나마 우린 일주일이나 버티지 않아도 되었으니 다행이었지.”
“다른 분들은요?”
“쉬라고 놔뒀어. 좀 맡겨도 되겠지? 네 상태가 괜찮은지도 좀 걱정이지만…….”
“괜찮아요. 가서 쉬세요.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한대요. 아, 그리고 이거 고마웠어요. 덕분에 목숨을 건졌더라고요.”
지호는 소매를 걷어 팔에 차고 있는 선경의 작품을 확인시켜 주었다. 선경의 피로감 가득한 얼굴에 조금이나마 만족감이 떠올랐다.
“다행이군. 그것도 개량되면 보급할 거야. 원하는 설계까지 구현하고 나면 후유증 때문에 고생하는 은퇴 헌터들에게 도움이 될 거고.”
선경이 떠난 뒤에 지호에게 말을 걸고 싶어 했던 사람들은 몇 있었으나 지호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쭈뼛거리던 사람들은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움직일 힘도 없는 사람들을 챙기러 떠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