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애석하게도 수색은 금방 시작될 수 없었다.
헌터는 물론이고 일반 각성자에 균열 구조대원들이며 소방관, 경찰에 잘 동원되지 않는 군인들까지 모조리 소집됐다. 사방이 아수라장이었고, 연락되지 않는 사람이 찾는 사람보다 더 많았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고 생각했으나 어느새 아침이었다. 세상에서 이만치 억울할 때도 없다.
집에 들어갈 새도 없어 수면실을 썼다. 집에 들어갈 시간조차 사치인 헌터들이 사방에 빨랫감처럼 널려 있었다. 개중에 신음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 시체 같다. 일주일을 연달아 대기 상태였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지호는 졸린 눈을 비비며 핸드폰부터 확인했다. 상단에 고정해 놓은 임시 파트너의 대화방에 메시지가 떠 있었다.
[김동주 : 나는 현장엔 안 들어간다. 퀸 패러사이트 출몰 균열 근처에서 대기할 예정이고, 혹시 필요하면 호출하마. 배치받은 균열에서 구조 작업하다가 신호 오면 바로 넘어와. 대림에 구로 끼고 있는 동네니까.]
[이지호 : 서울까지 가셨어요?]
김 반장 역시 핸드폰을 잡고 있던 모양인지 답장은 금방 도착했다.
[김동주 : 대원이 올린 보고는 협회에 다이렉트로 올라갔다. 이쪽 부근에서 퀸 패러사이트가 목격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어. 너를 납치했던 전직 헌터와 대화하거나 접촉할 기회가 있을 수도 있을 테니까. 꾸물거리지 말고 움직이지 그러나? 이동 중일 리는 없고.]
어떻게 보지도 않고 알 수 있지. 지호는 툴툴거리며 수면실을 빠져나왔다. 일어나 대충 세안을 마치자마자 간편식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현장으로 뛰어나가야 했다.
몸이 다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참 긴장했고 장거리 비행도 한 데다 쉬지도 못하고 이동만 해 대서 더더욱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일주일씩 죽어 가며 몸을 갈아 넣은 사람들만큼은 아니다.
지호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신체 능력자라 다행이었다. 본래는 이보다 더 힘겨웠을 것이다.
“어, 지호 씨. 맞다, 어제 돌아왔댔지. 보자, 배치 나왔을 거예요. 어플 확인해 봐요…….”
이동 포트로 가던 길에 반쯤 죽은 얼굴로 좀비처럼 걸어가던 차나연과 마주쳤다. 평소처럼 교육만 하고 있을 수 없는 때였다.
헌터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마저 며칠째 철야다. 재난 대책 본부의 불빛이 일주일 내내 꺼지지 않고 있다는 뉴스도 흘러나왔다. 다들 TV에 눈은 두고 있는데 정신은 반쯤 다른 곳으로 흘러간 것 같다. 개중에는 제대로 된 숙소도 못 오고 근처 파괴된 건물 아무 데서나 구겨져 자는 헌터들도 있던 모양인지, 기자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런 풍경들을 화면에 잡으며 연신 뉴스를 쏟아 냈다.
-현재 파괴된 지역의 재산 피해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로 재난 보험에 들지 않은 시민들은 이 상황을 처리해 달라며 국가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주요 철도가 균열에 포함되어 교통마비 현상 또한 심각하지만, 당장은 생존자 수색이 우선이라 전부 뒷전입니다.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아니, 뭘 어쩌란 말이야 이런 비상 시국에? 당연히 사람 목숨이 먼저지!”
누군가 격하게 불만을 토로하며 벽을 걷어찼다. 항변할 여력 있는 사람도 동조할 힘 있는 사람도 없다. 더 죽어 가는 얼굴의 이동 능력자가 포트에 나타났다. 지금이라도 쉬어야 할 것 같은 얼굴이었으나 그는 생명력을 다 짜내는 목소리로 손짓하며 속삭였다. 다음요.
아는 얼굴이었다. 일주일 전에 지호를 구출하러 판교 균열로 들어왔던 헌터. 이주환 헌터의 피골 상접한 얼굴을 본 지호는 그가 분명 쉬러 갈 수 있다고 좋아하며 떠났던 것 같아 더더욱 안쓰러워졌다.
아무튼, 누구도 쉴 수 없는 상황이니 불만에 의미가 있을까.
이동 능력자들이 운반하는 건 치유계 능력자들뿐이었다. 신체 계열은 뛰어가고 염동력 능력자는 날아서 가란다.
“어쩔 수 없어요. 이동 능력자들을 구출 전선에 최대한 투입해야 해서, 나머지 헌터들을 이동시키는 데까지 에너지를 쓰게 할 순 없거든요.”
나연은 졸음 가득한 얼굴을 짝 두드리며 설명조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한때 가르쳤던 후배라고, 여전히 모르는 것이 있을 것 같아 한마디 거들어 준 모양이었다. 지호는 감사를 표하며 자기 소집 위치를 확인했다. 파견 위치가 멀지도 않다.
그런데 균열 위치를 확인한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니, 부평에 균열이요?”
“각성자 연합 사람들이 안에서 사람들 조기 대피시켜서 최악의 사태는 막았대요. 균열 생길 때 내부에 각성자 다수가 있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죠. 적어도 생존자들에게는요.”
지급된 전투복은 다행히 새것 같았다. 청결도보다는 기능적 문제로 새 물건이 훨씬 나은데, 그래도 아직 사태 터진 지 일주일이라 비축한 것들로 어떻게든 충당 가능한 모양이었다.
헌터들부터 일반 직원들까지 피로 가득한 얼굴로 돌아다닌다. 지호는 서둘러 센터를 나왔다. 염동력 능력 없는 일부 헌터가 뒤를 따라 나왔다.
“저기요, 이지호 헌터죠? 미안한데 지금 도로가 너무 막혀서요. 우리 차째로 좀 옮겨 줄 수 있나요?”
“예?”
“살아 있는 거 움직이는 것보다 그편이 피로가 덜하잖아요.”
“부평 가세요?”
“나머지는 지나서 논현동 쪽으로 넘어가요. 거기까지만이라도 좀 부탁할게요.”
반쯤 방전된 상태들에다 이형 에너지가 꺼지기 직전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지호는 그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본인만 날아가는 것과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었으니.
부평 균열 앞 구조대도 정신이 없었다.
막 구출된 생존자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고, 상태를 검사하려고 구조대원들이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절반만 말을 듣고 움직여 나머지 절반은 미적미적 한쪽에 남았다.
“어, 이지호 헌터?”
모르는 사람들이 지호를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뉴스며 어디며 사방팔방 떴다더니 이제 진짜 유명인이 되어 버렸구나. 지호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 상태를 확인했다. 내부에서 울리는 구조 신호가 너무 많았다.
“바로 구출 작업 들어갈게요. 근데 제 임시 파트너는 현장엔 안 왔어요. 팀 편성할 때 좀 끼워 줄래요?”
해당 구역 팀장이 지호의 정보를 조회하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손발 맞출 상대로는 신체 계열 퓨어 헌터밖에 없겠는데요? 보자, 김서영 헌터!”
호명된 헌터와 지호는 동시에 서로를 확인했다. 아는 얼굴이다. 일전에도 같이 구조 팀에 속했던 그 사람. 심지어 최근에도 비슷한 현장에 있었다.
“구면이네요.”
“그러게요. 지시해 주시면 따를게요.”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넘겨받은 서영은 현장 팀장에게 몇 가지 지시를 받고 이동했다. 부평 지하상가 입구가 멀지 않은 곳이다. 워낙 넓게 퍼져 있긴 하지만, 어디로건 들어갈 수만 있다면…….
“우린 부평 동아 아파트 단지로 해서 아래로 내려갈 거예요. 여기 단지에 생존자들부터 구하면서요. 다른 팀도 각개로 움직이고 있을 거고, 위험 개체 나타나면 바로 보고합니다. 알았죠? 송내 쪽에서 다른 팀이 사냥 작업 중이니 조짐 있으면 바로 움직여요.”
“알겠어요.”
지호는 서영과 위치 정보를 공유하기 무섭게 균열에 들어섰다. 몸을 내리누르는 묵직한 공기. 주변은 여전히 불길한 고요에 휩싸여 있었다.
이제는 이 고요가 부자연스럽단 사실을 아는 지호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느끼며 감지 파장을 빠르게 넓혔다. 층계를 돌아다니는 괴물과 실내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그림자 속에서 기회를 노리는 놈이 포착됐다.
“구조 작업이 먼절까요, 사냥이 먼절까요?”
“가능하다면 전자겠지만, 방해될 게 있으면 치우고 가죠. 뭐가 잡힙니까?”
“서너 마리 정도요. 우리끼리 잡을 수 있을까요?”
“해 보죠. 백업할게요.”
서영은 손등을 탁탁 두드려 뭔가를 조작하더니 팔을 옆으로 힘 있게 뿌렸다. 동시에 손등에서 이형 에너지로 만들어진 예리한 칼날이 튀어나왔다. 지호는 당연히 눈이 빠질 것처럼 놀랐다. 예전에 본 적 있는 물건의 변형이다. 보현이 들고 있던 것과 비슷했다.
“아니, 그게 뭐예요?”
“이번 일 터지고 각성자 연합에서 급하게 내어 준 무기들요. 이형 에너지 계열 아니면 괴물 잡을 방법 없었잖아요. 때려 패 잡을 수 있는 놈들은 한계가 있고.”
대화를 오래 할 상황은 아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워낙 조용한 공간이라 소리가 확 눈에 띈다. 지호는 그쪽으로 휙 고개를 돌렸다가 염려를 표했다.
“저런 소리 나면 눈에 확 띄지 않나요? 총이라니, 군인 합동 작전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17보병 사단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바로 투입됐어요. 일반 총기가 저지력 정도는 있으니까 없는 것보다는 낫고, 헌터들이 정리한 자리에서 실종자들 꼼꼼히 수색하는 데는 훨씬 도움돼요. 사람들 통제하는 데도 그렇고. 그래서 괴물은 어디죠?”
“3층이요.”
두 사람은 어렵지 않게 3층으로 뛰어올랐다. 두 사람을 감싸는 크기의 방벽을 만든 지호는 그 크기를 천천히 줄여 서영의 몸 주변에 푸르스름한 빛을 남겼다. 서영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다 무기를 휙 휘둘렀다. 당연히 충돌한다.
“이 방벽이랑 무기는 상성이 안 맞네. 손만 빼 줄 수 없어요?”
지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방벽을 조정했다. 몸에 맞게 부착해 놓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충 원하는 형태가 만들어지자마자 서영이 자세를 잡았다.
창문을 뜯고 진입할 필요는 없었다. 유리창은 진작 깨져 있었으니.
두 사람이 창문을 넘어서며 유리 조각들을 밟는 소리에 괴물의 기척이 뚝 끊겼다. 숨죽인 진입. 지호는 일부러 몸을 띄워 이동했다. 서영은 진작 멈춰 선 다음이었다. 눈짓으로 묻는다. 저쪽? 지호는 고개를 저으며 손을 내밀었다. 잠시 대기. 헌터들 사이에 통용되는 신호였다. 순차 진입 후 즉시 교전. 간략한 신호 이후에 서영이 문을 발로 걷어찼다.
지호는 온몸에 두꺼운 방벽을 두른 채 실내로 굴러 이동했다. 곧장 앞을 겨누자 보이는 건 없다. 당연한 일이다. 감지 파장은 위에 뭔가 있다고 강렬히 신호를 줬다. 그러나 일부러 움직이지 않는다.
곧 위에서 찍어 내리는 날카로운 발톱. 그놈을 겨냥해 김서영 헌터의 새 무기가 빛을 발했다.
번쩍. 오래 걸리지 않는다. 놈은 반으로 토막 나 퍼덕거리다가 천천히 움직임을 멈췄다.
“반으로 나뉘거나 그러진 않겠죠?”
“빨리 수습하면 괜찮아요.”
둘은 괴물의 양쪽 시신에서 각기 마정석을 추출해 포켓에 넣었다. 지호가 손을 대자마자 빛나는 돌을 얻은 것에 반해 서영 쪽은 시간이 좀 걸렸다. 죽자마자 바로 뽑아내는 것이라 순도가 높고 크기도 컸다.
“원래 이렇게 적은 인원이 이런 물건을 건지긴 쉽지 않은데.”
서영은 피식 웃으며 본인이 추출한 마정석을 흔들어 보였다. 사체가 사방에 널려 있진 않았다. 남은 건 핏자국과 부서진 가구들, 뜯긴 벽지와 엉망이 된 집 안 꼴뿐이다.
“나머지는요?”
“이동하고 있네요. 잠시. 엘리베이터 통로로 기어 들어간 것 같아요. 기어서 움직이네요. 위로 날아가죠. 생존자분들한테 문을 열어 달라고 하는 편이 빠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