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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04화 (105/260)

104화

몇 시간쯤 지났을까.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던 지호는 누군가 털썩 소리가 나도록 시끄럽게 자리 잡는 통에 깼다. 잠시 상황 인식이 되지 않아 눈을 비비며 창에 기울어 있던 머리를 든 지호는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이 너무 존재감이 큰 탓에 저도 모르게 그쪽 얼굴을 확인했다. 아는 사람이었다.

“어, 반장님…….”

“임시 파트너 되기 무섭게 파투를 내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 징계 내리든가, 하는 배짱이야?”

“아니 그게, 하하. 고의는 아니었는데요.”

지호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냈다. 얼마 없긴 하지만 준우의 목소리가 약간 녹음된 녹음본도 있고, 다녀온 기록을 메모해 둔 메모장도 있다. 기억이란 불분명하여 매 순간 이리저리 바뀌기 마련이니, 지호는 다소 불분명해지기까지 한 균열 안 정경을 최대한 상기하려고 애썼다.

“제가 균열 저편으로 넘어가는 방법 비슷한 걸 얼추 알아냈는데요. 아직 시도를 해 봐야 하지만 대충 될 것 같아요.”

“그거라면 됐다.”

“예?”

“임보현 헌터가 깨어났잖나. 대원은 끌려가고 임 헌터는 자기 발로 들어갔는데 본인이 알겠지. 누가 더 잘 알겠어?”

생각해 보니 너무 맞는 말이라 지호는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김 반장이 그대로 의자를 뒤로 기울여 버리고 눈을 감자 지호는 당황했다.

“어, 주무시게요?”

“도착하면 깨워.”

빈말이 아니었다. 김 반장은 눈을 감기 무섭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지호는 황당하고 어이없어 잠이 다 깼다.

눈 잠깐 붙이자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닐 텐데. 지호의 의문은 타당했다. 사방에 급성 균열이 나타난 지금, 정신계 최상위 방어가 가능한 김 반장의 존재 의의는 더더욱 커진다.

혹시 이 기차가 정신계 괴물 나타난 균열이라도 통과하나? 지호의 상상이 어처구니없는 경지까지 이르렀을 때였다. 차량 앞쪽 칸에서 몇 사람이 지호 쪽을 보며 수군거리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승객인가 했는데 몇 차례나 눈을 마주치는 걸 보니 그냥 승객이 아니다.

균열에서 나온 다음에는 감지 파장을 잘 쓰지 않았는데, 모처럼 이상한 느낌이 든 김에 한 번 확인해 볼 겸 지호는 힘을 쭉 펼쳤다.

감각이 확장된다.

순식간에 본인이 있는 곳을 포함해 앞뒤 차량을 스캔한 지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앞쪽뿐 아니라 뒤쪽 문 부근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수상한 사람들이라고 보긴 어렵다.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실내에서도 습관처럼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다행이었다. 지호는 앞쪽 통로 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들고 있는 것들이 얼추 보인다. 카메라에 꽤 많은 전자 기기. 아까 확인할 때 소지품에 마정석 관련 도구는 없었다. 일반인들인 모양이었다.

그럼 왜 이쪽을 노리는 걸까? 지호는 떨떠름하게 도로 의자에 몸을 눕혔다. 이쪽에 관심 있는 게 아니고 내리려고 통로 쪽에 모여 있는 건가?

바짝 곤두선 지호의 감각은 느낌과 달리 별다른 것을 잡아내지 못했다. 헌터의 감은 믿을 만하네, 어쩌네 하더니 사실 그냥 보통 사람이랑 똑같은 거 아닌가.

“거 신경 좀 쓰지 말고 조금이라도 자면 안 되냐?”

“어, 일어나셨어요?”

“가뜩이나 기자들 신경 쓰느라 제대로 잠도 못 자. 잠깐이라도 좀 쉬자.”

“기자들? 아, 저 사람들 기자예요?”

“그래. 우리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망나니 헌터 찾으려고 언론에 기사까지 풀었었거든. 지금 대원과 비슷한 사람도 목격되고 고속 도로 위 날아다니는 영상도 올라오고 찍어 달라 찾아 달라 난리인 관종 짓거릴 해 준 덕분에 다들 역으로 몰려들었지.”

“저 사람들이 절 찾고 있어요?”

“그래. 제발 잠 좀 자자. 저쪽에 걸어 놓은 거 꽤 오래간다. 간단한 환술이라 뇌에 지장 가는 것도 아니고…….”

김 반장은 중얼거리더니 다시 잠들었다. 애석하게도 용산역까진 오래 걸리지 않아서 금세 일어나야 하긴 했지만.

동주가 곁에서 짧은 잠을 청하는 잠깐의 시간 동안 지호는 양쪽 통로를 가로막고 있는 기자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일전 사태로 본인의 신상이 언론에 일부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실종되었다가 일주일 만에 돌아온 신입 헌터를 저렇게 우르르 몰려와 취재할 필요가 있나?

지호의 궁금증은 생각보다 빨리 풀렸다. 용산역에 진입하자 기자들이 홀린 듯한 얼굴에서 벗어난 탓이었다. 정신 차린 기자 중 하나가 문을 벌컥 열었다. 김 반장이 욕을 뱉었고, 앉아 있던 사람들도 뭐야, 뭐야 하고 수군거리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어, 저 어떻게 해야 돼요?”

“신비주의.”

김 반장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딱 다물어 버렸다. 지호 역시 일단 입을 다물긴 했지만, 뭘 어쩌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지호 헌터! 균열 건너편으로 실종되었다가 돌아왔는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실종자들을 만나고 오신 겁니까? 어떻게 일주일이나 사라졌었나요?”

“그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여태까지 실종자들을 구조하지 않은 이유가 뭡니까?”

“지금 급성 균열이 사방에서 생겨나는 원인이 뭔지 알고 계십니까?”

“다친 곳 없이 돌아오신 겁니까?”

사람들을 밀치고 의자를 밀치고 서로를 밀치고 들이미는 마이크들이 지호를 당혹스럽게 했다.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던 김 반장은 계속해서 쏟아지는 질문들을 듣다가 지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답하고 싶은 질문은?”

“딱히요.”

“그래. 그럼 가자.”

그가 일어서자 지호 역시 일어났다. 놀랍게도 기자들은 김 반장을 피해 후다닥 멀어졌는데, 그가 시선 두는 곳마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무슨 짓을 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까지 겁을 먹을 리 없으니.

“필요한 발표는 협회 측에서 알아서 할 거다. 험지에서 돌아온 헌터에게 길을 좀 비켜 주겠나? 고맙군.”

기자들이 비켜 준 길을 따라 김 반장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지호는 그 뒤를 따르며 뒤돌아볼 생각도 못 했다. 기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잔뜩 마시고만 있던 숨이 단번에 새어 나왔다.

“와, 반장님 무서워하네요. 다들.”

“다른 놈들한테 당하면 피해를 보았다고 신고라도 하지, 나는 티 안 나게 해를 끼칠 수 있으니까.”

“아니, 아니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들이에요? 저 없던 동안 무슨 일이 있었어요?”

“별일 있었겠나. 대원 실종 이후로 갑자기 급성 균열이 사방에서 생겨나고, 자기가 다른 사건 범인이라고 제 발로 잡혀 들어왔던 이동 능력자 놈은 갑자기 이렇게 될 리 없다고 뛰쳐나가서 이주리 헌터가 미쳐 팔짝 뛰고.”

“네? 이주원 각성자가 탈옥했어요?”

“수감까진 안 갔으니 탈옥이라고 하긴 좀 이상하다만, 아무튼 사건 조사받던 중에 도망갔으니 경찰이 쫓고 있긴 하지. 이동 능력자라 쉽진 않다고 들었다.”

들을수록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지호가 균열 경계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쪽으로 넘어가 실종자들을 찾아오길 바라는 자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 아닐까.

“이렇게 될 리 없다는 건 무슨 말일까요?”

“다들 그걸 설명해 줄 사람이 대원이길 원하고 있긴 한데, 난 그것보다 균열 저편 이야기가 듣고 싶군. 임보현은 그쪽을 오래 지나지 않았다고 했어. 경계를 통과하기 무섭게 뭔가의 공격을 받았고, 그러자마자 근접한 다른 곳으로 나왔다더군. 운 좋게 균열 경계 저편끼리 가까웠으니 살아 나올 수 있었다면서.”

“흠, 하긴 제가 고작 한 시간 정도 있던 게 일주일이 되어 있으니까 언니가 잠깐 들렀던 게 몇 시간 되는 것도 이상하진 않겠네요.”

“그래. 그 한 시간 동안 도대체 뭘 본 건가?”

지호는 설명했다. 김 반장의 표정이 괴상해졌고, 부천 센터에 모여 지호를 기다리던 온갖 관계자들 앞에서 다시 한 번 저쪽에 대해 브리핑을 했을 때도 모두의 표정은 똑같았다.

“이쪽 균열로 넘어오는 괴물들이 저쪽에서는 약한 것들이라고요?”

“우리 균열은 조용하잖아요. 저쪽은 되게 부산스럽고 소란스러웠어요. 그리고 조용한 것들은 대부분 먹히지 않으려고 소리를 내지 않는 것 같았고요.”

“지호 씨 끌고 갔던 그건 어떻게 된 거죠? 퀸 패러사이트의 숙주였잖아요. 어떻게 살아 돌아왔어요? 지금 상태 멀쩡한지 확인부터 하라고 김 반장님이 갔던 거예요. 알죠?”

누군가 공격적으로 질문했다. 김 반장은 어깨를 으쓱였고, 지호는 제 임시 파트너가 기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러 역까지 마중 나온 것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도플갱어란 괴물도 있었다. 그런 것들 때문에라도 다들 경계가 하늘까지 곤두설 수밖에. 심지어 괴물들은 경계를 지나 이쪽으로 넘어오려고 하고 있었으니…….

“의심하시는 건 어쩔 수 없긴 한데요. 그 괴물이 구형 헌터 전투복 입고 있었잖아요. 그게, 자기가 한때 헌터였다고 소개하긴 하더라고요. 지금은 아니라고.”

그 이름을 말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나온 정보는 전부 헌터 커뮤니티로 들어갈 거다. 당연히 보현도 보겠지. 적어도 그를 만나 처음으로 이야기해 주어야 할 일이다. 지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누군가 어쩐지 이상했다고. 영상 속에서 카메라를 끄던 손이 굉장히 부자연스러웠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었다.

“성 팀장. 아는 사람 같다고 했었죠?”

“인간형을 온전히 유지하는 쪽 말고 다른 둘이요. 재차 발견될 때마다 점점 형태를 잃어 가고 있긴 하던데, 그쪽 둘도 우리 쪽 헌터였어요.”

연수 센터 성 팀장은 심각한 얼굴로 말을 얹었다.

그 외에도 주목할 정보는 많았다. 인간만큼의 지능을 가진 괴물들이며, 그들이 퀸이라고 이름 붙인 괴물이 사실은 진짜 여왕의 딸린 자식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도.

“우선 균열이 수습되고 나면 다 같이 초과 근무들 해야겠어요. 실종자들 찾는 집단 한둘이 아니잖아요. 다 찾으려면 하루가 24시간인 게 모자라다 싶을 거야.”

“근데 기자들은 왜 저를 쫓아왔던 거죠?”

“균열을 넘어서 저쪽으로 갈 수 있게 된 것 같으니까. 실종자들 찾아 달란 청원이 들불처럼 일어나서 골치예요.”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 대부분 책임자가 모인 자리다. 지호는 그들이 나누는 심각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짧게 고민했다.

다른 이야기들은 전부 털어놓았으나 실종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못 꺼냈다. 괴물들이 그들을 의도적으로 변이시키고 있으며, 그래서 먹으려고 키운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괴물이 혹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방법은 없을까?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다행히 협회 사람들은 몸도 다 낫지 않은 상태로 균열 저편에 끌려갔다 돌아온 지호의 상태를 배려해 주었다. 우선 쉬고 내일 다시 나와라, 하는 말을 듣자 지호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이런 큰일 당하면 며칠 쉬라고 해 주지 않나.

그러나 쉴 새 없이 균열로 파견되는 헌터들이 있다. 구조대원들도 전원 출동해 있고,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도 잠깐 쉴 짬을 내 나와 있는 터라 불평하기 어려웠다.

[이지호 : 균열 안정되고 나서 병문안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까지 맛없어도 병원 밥 잘 먹고 있어요!]

보현에게선 웃기는 이모티콘만 하나 돌아왔다. 그러곤 끝이었다. 지호 역시 길게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다. 도준우 헌터 이야길 어떻게 꺼내야 할지 결론을 내릴 때까지는 쭉 그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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