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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03화 (104/260)

103화

허공에 뜬 채 한참 메모에 집중하던 지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메모 쓰던 손가락이 그대로 통화 버튼을 누른 까닭에 전화가 연결됐다.

-야 이 미친놈아!

지호는 전화가 잘못 걸린 것은 아닌지 고심했다. 그러나 화면에 뜬 번호는 그의 동료 번호가 맞았다.

“지윤 씨?”

-어디 갔었어! 어디 갔었냐고!

잠깐 균열 저편으로 넘어갔다 온 게 전부였다. 파일은 깨졌지만 녹음된 시간이 표기된 거로 봐서는 한 시간 남짓 되었을까. 고작 한 시간 연락 끊긴 거로 이렇게 길길이 날뛰다니. 혹시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생각해 보면 그가 균열 경계 너머로 끌려갈 때 지호를 본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보고를 올렸겠구나. 지호는 뒤늦게 깨닫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저 괜찮아요. 무사히 빠져나왔어요.”

-무사 좋아하시네. 일주일이나 사라져 있었어. 알아?

“예?”

-지금 어디야!

평소의 장난스러운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지호는 당혹스러워하며 날짜를 확인했다. 진짜 일주일이 넘어가 있다. 날짜 말고 요일, 시간만 확인하며 대충 넘어갔더니…….

지도 앱을 켜자 주변 정보가 빠르게 업데이트됐다. 지호가 떠 있는 강 이름이 제일 먼저 보였다. 지호는 아무 생각 없이 그걸 그대로 읊었다.

“음, 여기 사상역 근처 낙동강 위인데요…….”

-뭐? 사상? 낙동강?

너무 낯선 지명들이다. 지호는 자기도 당황해서 지도를 쭉 당겼다. 확대한 지 얼마 안 돼 밑에 바다가 보였다.

강이 그냥 넓은 게 아니었다. 바다 코앞이라 넓은 거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부산이라니.

균열 어플은 착실히 부근 정보를 수집했다. 지호가 들어와 있는 곳은 부산 부근 균열이었다. 바다 쪽으로 약간 걸쳐져 있는데 그나마 경계에 가까웠다. 당겨 보니 서면 쪽으로 크게 펼쳐진 균열이었다.

“어, 어쩌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됐는데. 그러니까 그게요. 제가 경계 뒤편으로 넘어갔는데 어쩌다가 보니까 다시 나왔거든요. 근데 일주일이나 지났어요? 거짓말 아니고?”

-뭣 때문에 그런 거로 거짓말을 해요? 우선 근처 센터로 가 있어요. 철로가 살아 있나 모르겠네.

지윤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격해져 튀어나왔던 반말도 슬그머니 들어간 것 같다. 그런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지호는 균열 정보부터 확인했다.

부산 균열 분류는 일반이다.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특수 기상 현상으로 표시된 노란 마크가 보였다. 지호는 각성 시기 특성상 일반 균열보다는 급성 균열에 더 자주 파견되어 왔다. 그러니 통신 방해 현상 정도나 겪어 봤을 따름이라 이 표시는 낯설었다.

이게 뭐지? 궁금해서 검색해 볼 생각으로 핸드폰을 툭툭 건드리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쿠르릉, 불길한 소리가 울렸다.

노란 마크. 직관적인 번개 표시.

흐리다 못해 어둡기까지 한 하늘. 지호의 덜미가 서늘해졌다. 그는 자기 감을 믿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빛이 공기를 찢어발긴다.

지호가 떠 있던 부근을 지나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를 내리친 낙뢰는 잠시 잠잠해졌다. 그러나 또 하늘이 우르릉 울린다. 정보니 뭐니 다음에 찾고, 우선 균열을 나가야 했다.

번개가 내리친 건 그것 한 번뿐이었으나 하늘이 불길하게 울려 댄 탓에 온 감각이 하늘을 향해 곤두섰다.

자기가 생각해도 초인적인 속도로 균열을 빠져나온 지호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뭐였지? 평소보다 속도가 훨씬 빨랐다.

경계를 지나치자 세상이 짙어졌다.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운 감각이다. 지호는 서둘러 자기 상태를 확인했다. 몸 주변으로 저릿하게 흐르던 묘한 느낌이 사라지고 없었다.

낙뢰가 지호를 노리고 떨어졌던 건 저것 때문이었나 보다. 균열과 관련된 공지를 찾아보니 이 지역 헌터들에게 비상경계령이 내려져 있다. 낙뢰 위험 지역. 출입 시 각성자에게 낙뢰가 내리침……. 통신 방해 지역은 그나마 나은 곳이었구나. 벼락을 맞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준우의 말대로였다. 어디로 나갈지 알 수 없다더니 부산으로 나오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외국이 아니어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지호는 영어엔 젬병이었고 다른 외국어는 아예 할 줄 몰랐다.

전파가 연결되자마자 밀려 있던 문자가 우르르 도착해 핸드폰이 계속 진동했다. 행방 묻는 문자부터 위치 추적 문자까지 다양했다. 이건 무슨 일이래. 등록된 헌터에 한해서 무단 위치 추적이 가능한 건 알고 있었는데 추적 중이라는 알림이 떠 가면서 감시할 줄은 몰랐다.

걱정 가득 담긴 온갖 문자들을 쭉 확인하며 지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경계로 들어가는 방법 같은 거나 물어볼걸.

준우가 지호를 잡고 경계를 통과해 들어갈 때의 감각을 상기하면 그렇게 어려운 느낌은 아니긴 했다. 평소 방벽으로 사용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이형 에너지로 전신을 감쌌던 것 같은데……. 지호는 몇 번씩 방법을 바꾸어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물론 균열 밖에서였다. 낙뢰 무서워서 안에 들어갈 순 없고.

박 팀장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박찬민 : 데리러 가려고 했는데 위치가 왜 그래요?]

[이지호 : 저라고 알고 여기 온 건 아닌데요.]

[박찬민 : ktx노선 복구된 지 몇 달 안 됐어요. 중간에 균열에 낀 노선이 있어서 동대구까진 따로 이동해야 할 겁니다. 거기서부터 기차 타요. 몸은 괜찮고요?]

[이지호 : 멀쩡해요.]

준우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지호는 여태 진위를 판별할 수 없는 정보들 속에서 헤맸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누가 그에게 거짓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와중에 이제 막중한 책임까지 얹어진 상태. 어깨가 지나치게 무거웠다.

[박찬민 : 안 다쳤다고요? 거길 끌려갔는데?]

[이지호 : 설명하자면 길어요. 우선 좀 쉴래요.]

쉴 곳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지호는 우선 연락을 멈췄다. 괴물과 내통하면서 균열을 열어 사람들을 괴물 아가리로 밀어 넣으려 한다는 무시무시한 자들이 마음에 걸렸다.

역시 실종자를 찾으려 한다던 집단 중 하나겠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도 아니고 이건 너무 범위가 넓었다. 심지어 한국에 없을 수도 있는 거였다.

균열 안에선 고작해야 한 시간도 걷지 않은 거리였는데 여기서는 도대체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공간이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던 이야길 듣지 않았다면 더 심한 패닉에 빠졌을 것이다.

전화가 또 울렸다. 이번엔 누군가 하고 화면을 쳐다본 지호는 반색하며 다급히 통화를 눌렀다.

“언니?”

-금방 받네. 진짜 나왔구나. 괜찮아요?

조금 가라앉았으나 평소같이 다정하고 상냥한 음성이다. 누가 물을 말을 하는 거냐고 되받기 전에 울음이 왈칵 쏟아졌다. 지호는 옷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지르며 대답했다.

“언제 일어났어요? 언니는 괜찮아요? 팔은, 아니 몸은 어때요?”

-자고 일어났더니 햇살이 따사롭고 새가 짹짹 지저귀는 그 기분? 막 서늘하고? 지각의 강렬한 예감 같은 거 느껴 본 적 있어요? 딱 그런 기분으로 깼죠.

“그게 뭐예요.”

-병문안 와요. 아직 나가면 안 된대요.

지호가 무슨 상황에 부닥쳤는지 알고 있을 텐데 보현의 음성은 큰 흔들림 없이 초연했다. 너무 평상시의 보현이라 지호 역시 그러마 하고 고갤 끄덕였다.

“금방 갈게요.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병원 밥 빼고 아무거나요.

수화기 저편에서 간호사가 상태 확인하겠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 지호는 우선 전화를 끊겠다고 했다. 통화가 끊어지자 어안이 벙벙했다. 보현이 깨어났다. 건강한 것 같았다.

그럼 이제 균열 저편으로 가는 방법도 알아낼 수 있을 터.

준우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보현은 분명 기뻐하겠지만, 한편으론 기뻐하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지호는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아니 괴물이 되어 살아났다는 사실을 보현에게 알리는 것이 현명할지 그렇지 않을지 고민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아무튼, 낯선 하늘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모르는 헌터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착지 유도다. 지호는 그쪽으로 날아갔다. 아까 느낀 것처럼 속도가 좀 빨라진 것 같다. 기분 탓이 아닌가. 측정해 본 적이 없어서 알 수가 없었다.

“저길 들어가면 우째요. 알림 못 봤습니꺼?”

억센 사투리가 섞인 억양이었다. 지호는 당황해서 우선 사과했다. 어쩐지 사과해야 할 것 같았다.

“저기, 죄송합니다…….”

“미안할 거 없고 사냥 금지 내려진 곳이니깐 들어가믄 안 돼요. 어, 헌터네. 사냥꾼도 아닌 사람이 왜 헷갈리게 거 있습니까?”

“아니 그게…….”

“됐고. 다신 들어가지 말고 딴 데 가쇼. 지금 바쁘니까는.”

괜히 혼났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지호는 시무룩해져선 지도 앱을 켰다. 동대구역이 어느 쪽일까. 살면서 동네를 벗어나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이쪽 지역 지도는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이쪽 동네는 균열이 이렇게 크게 열리나, 하고 생각 없이 지도를 확대하던 지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균열 공지가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난리였다. 그중 일반 균열은 이거 하나뿐이었다.

나머지가 전부 급성.

미친 재앙이 따로 없다. 식은땀이 흘렀다. 여기서 벗어나서 위로 올라가도 되는 건가? 이 사람들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지호는 평범한 사람은 하지 않을 법한 생각에 잠겨 고민했다.

계속 새 소식이 갱신되는 공지 창을 위로 위로 올렸다. 눈에 딱 띄는 뉴스가 보였다. 급성 균열 동시다발적 생성으로 인한 균열 중첩 사태 발생으로 이상 현상 발생. 관찰된 적 없는 개체 출현. 말할 줄 아는 괴물.

지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벌써 뭔가가 일어나다니 이건 막기엔 너무 큰 사태 아닌가. 아직 아무 실마리도 못 잡았는데…….

급성 균열끼리 겹친 구역에서 나왔다는 괴물은 그 겹쳐진 구역 외에는 돌아다니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말을 걸어 유인하고 사냥한다는 특이 사항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공지를 꼼꼼히 읽던 지호는 중첩 지역이 딱 한 곳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급성 균열들끼리는 겹쳐도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반 균열과 급성 균열 사이 중첩이 사고를 부른 모양이었다.

일반 균열이 이 정도 크기로 커진 건 지호도 처음 봤다. 예전 대균열 시대에나 있을 법한 기록적인 크기다. 과연 멀쩡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편의점에 들러 간단한 요기를 한 지호는 물과 먹을 것을 약간 챙겼다. 생존 배낭 새로 꾸리느냐는 아르바이트생의 질문에 어설픈 웃음을 지어 주는 게 다였다.

헌터 전투복 입은 사람이 갑자기 물품을 사재기하면 주변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건 당연했다. 지호는 서너 군데 편의점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만 사들였다. 그러고 난 다음에야 동대구로 출발할 수 있었다.

고속 도로를 타고도 한 시간은 더 걸리는 거리다. 그만한 속도까진 낼 수 없는 지호였고, 이상할 정도로 허기가 밀려와 음식을 꾸역꾸역 먹으며 하늘을 날았다.

내비게이션 기능을 켜 놓아서 도로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경쾌한 알람음이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하고 위치를 잡아 주었다. 도로가 거의 직선으로 나 있어서 다행이지, 빙빙 도로만 따라 날아가야 했으면 머리 꽤나 뜯었을 것이다. 차가 달리는 속도로는 못 날아가니까 자전거 속도로 계산하면 꽤 어마어마한 시간이 나온다. 휴게소에 들러도 괜찮았겠지만, 속도를 늦추며 멈추기를 원하지 않아 지호는 몇 시간이나 비행했다. 동대구에 도착했을 땐 녹초가 다 된 상태였다.

다행히 역에는 헌터 보조 팀 직원이 나와 있었다. 지호는 그가 끊어 주는 표를 받아 의자에 앉자마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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