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저, 제가 그 호위댄지 뭔지가 아닌데 왜 여기로…….”
“감시자의 이목을 끌 수 없어서 얼추 둘러댔다. 영 틀린 건 아니라서 대충 넘어갈 테지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군. 나를 증명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쓴 것 같아. 솔직하게 말하자면, 옛 동료의 안위가 궁금했다. 거기서 물어볼 순 없었어. 이름에는 힘이 있지. 괴물들이 그 녀석 이름을 들으면 그걸 기억할 거라서.”
“고작 그걸로요?”
남자는 짧게 웃었다.
“아냐. 헌터들에게 전해야 할 위험이 있다. 내가 이제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었던 시절을 잊은 것도 아니거든.”
남자는 설명했다. 그가 인간일 시절이라고 말하며 언뜻 그리움을 내비치긴 했으나, 그는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수원 균열에서 당신을 봤어요. 영상에 찍혀 있던 사람 맞죠?”
“음, 실시간 송출 중이던 카메라였나? 그게 그냥 녹화 중인 줄 알았지. 아무튼, 전달 사항은 간단하다. 그것들이 사람들을 노려. 아마 요즘 들어 문이, 그러니까 균열이 이상 현상을 보인 경우가 많았을 거다. 갑자기 열린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야.”
지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호가 각성하기 전에도 수차례 급성 균열이 열렸었다고 했다. 남동구 균열만 재앙에 휘말렸던 것이 아니란 뜻이다. 남자는 부근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몇 개 주웠다.
“이걸 너희들 세계라고 생각해. 옆에 있는 게 이쪽 괴물들 판이고, 다른 세계도 여럿 있지. 우연히 너희들 세계로 넘어가는 길 뚫는 법이 알려진 거야. 넘어갔더니 이게 무슨 일? 반항도 못 하는 먹이들이 널려 있네. 당연히 넘어가겠지?”
균열과 괴물 이야기다. 지호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을 살피지 못하는 남자는 나뭇가지 몇 개를 교차해 격자를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길이 생겨도 이런 식으로 구멍이 나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 되는 놈들은 직접 사냥하러 갈 수가 없었어. 덕분에 우리가 먹이로 삼고 있는 열등한 놈들이 더 작은 먹이를 먹으러 들어갔지. 뭐라고 해야 할까……. 플랑크톤 먹는 작은 물고기처럼? 이런 비유로 하면 알아듣나?”
한때 산호와 상어 비유를 예로 균열 생태계에 대해 배웠던 것이 떠올라 지호의 눈썹이 축 처졌다.
“작은 먹이를 먹고 돌아온 큰 먹이를 먹는다……. 그런 순환 개념이란 뜻인가요?”
“맞아. 이쪽으로 넘어오는 것들이 드물게 있잖아? 그것들은 변이 과정을 거쳐서 좀 숙성시키는 편이지. 놔두면 좀 더 늘어나.”
“죽는 게 아니고요?”
“이곳의 공기가 인간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까진 정확히 알 수가 없어. 하지만 잠시 노출되는 게 아니라 오래도록 이 환경에 내몰리면 생물은 살기 위해 선택하게 되지.”
“그쪽도 그랬었나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익숙한 방식이다. 자기 필요한 내용만 늘어놓고 묻는 말에 대답해 주지 않는 모양새.
지호는 그 이상 시간 낭비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대답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기 끌고 와서 그를 와작와작 씹어 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천운인지. 게다가 심지어 정보를 준다고 하지 않나? 아까 눌러 놓은 녹음 기능은 아직도 작동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여기 사는 놈들이 그걸 기다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거야. 먹이가 크기 전에 먹고, 숙성되기 전에 먹고. 심지어는 넘어오기 전에 먹고 싶어 하지. 그래서 놈들은 길 뚫는 방법을 찾고 있어. 여왕이 자식들에게 요구한 바가 바로 그거지.”
“여왕은 뭐고 자식은 뭐예요? 혹시 퀸 패러사이트인가?”
“퀸 패러사이트?”
남자가 모르는 말이다. 하기야 인간들이 붙인 이름인데 괴물들이 알고 있으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이상할 터였다. 지호는 핸드폰에서 퀸의 자료를 찾아 이미지를 보여 주려다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이 자는 앞을 못 봤다.
“보여 줘도 못 보시죠?”
“설명해 봐.”
“다른 개체를 조종하는 종류의 괴물이에요. 얼추 사람처럼 생기긴 했는데 머리 부근에 입이 있고…….”
지호는 열심히 생김새를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남자는 오래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퀸이라고 부르는군. 하지만 진짜 여왕은 따로 있다. 네가 말하는 퀸 패러사이트란 건, 내 주인이야.”
“예?”
“내 주인이라고. 아까 말했었지? 시야를 공유하지 않으려고 이걸 쓰고 있다고.”
끈적끈적한 수지 흐르는 나무에서 괴물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작은 놈이다. 지호에게 위협조차 되지 않는 크기. 그런데 그걸 따라 다른 놈이 거대한 몸을 휙 내민 통에 흙이 다 파헤쳐져 난리가 났다. 드러난 지면에선 작은 벌레들이 꾸물거리며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그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남자는 평온히 말했다.
“여긴 문명이 없어. 대신 힘으로 갈린 계층은 존재하지. 여왕이란 최상위 계층 포식자가 있고, 여왕이 낳은 자식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사실 자기 일부를 약간 떼어 내 만들어 낸 분신들이 그 아래에 존재하는 식이야. 여왕은 너희 세계를 노리고 있어. 내 주인 외에도 여러 자식이 길을 찾고 있을 거다.”
“그걸 어떻게 막죠?”
“다시 말하지만 여긴 문명이 없어. 사회라고 해 봐야 폭력에 굴종해 고개 숙이는 놈들이 모여 있을 뿐이지. 너희들이 과학 기술 발전시키듯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진 않을 거다. 대균열 때부터 벌써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그래서 얼마나 지났지? 이쪽은 시간관념이 잘 없어서.”
“대균열이야 십 년 전 일이죠.”
숲은 소란했다. 균열이 고요하다고 느껴 왔던 이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남자에게 이런 크고 작은 소란들은 대단히 익숙한 것처럼 느껴졌다. 사방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이토록 넓은 공터가 있는데도 딱히 나타나는 것 없이 숲만 소란하다니 이상할 정도였다.
“여왕의 다른 자식 중에 너희 쪽과 내통하는 놈이 있어. 갑자기 균열이 열리는 속도가 빨라지지 않았나? 놈은 자기가 찾는 사람들을 돌려받는 대신 다른 이들 전부를 위험에 밀어 넣으려고 해. 나는 그런 모양새는 도무지 두고 볼 수가 없겠더군. 이렇게 다시 태어나긴 했지만, 한때 사람이었던 놈으로서 말이야. 그것들을 찾아. 그쪽에서 찾는 편이 빠르겠지. 여긴 위험하니까.”
“아니, 잠시만요.”
묻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었던지라 지호는 남자의 말을 끊었다.
“우리는 각성할 때 한 번 죽잖아요. 그쪽 분도 헌터였던 사람이라고 했었죠? 그런데 두 번 죽음을 겪나요? 그건 이상해요.”
“이상한가? 음. 그렇지. 사람의 기준으로는 좀 이상하지. 아까 먹이를 숙성한다고 했었지. 인간들은 이형 에너지의 영향을 받으면 다방면으로 변이해. 너희 표현대로 말하자면……. 그래. 괴물화라고 부르는 게 옳겠군. 보통은 이지를 가지기는 어렵고, 무작정 본능에 따라 행동하지. 먹는 것 말이야. 우리는 먹은 것을 잊지 않아. 때때로 내 것으로 발현할 수도 있는 그 먹은 것을 말이지. 먹은 건 내가 돼. 그래서 드물게, 자아가 강한 것은 먹히고도 살아 있지. 나처럼.”
“그게 무슨…….”
“지금 당장 네가 어느 괴물에게 먹힌다고 해도 나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은 못 하겠군. 하지만 나는 그런 과정을 거쳤고, 그래서 지금은 인간이던 시절보다 훨씬 강해졌어.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다양한 능력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편리하다곤 말할 수 있어.”
남자의 표현에 지호는 현기증을 느꼈다. 지호는 그를 인간처럼 느꼈다. 그러나 남자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거침없었고, 그는 자신을 인간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먹혔다고요? 그래서 죽었다 살아났다고 말한 거예요?”
“형태의 변이까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나라고 인식하는 모양을 하는 것 같더군. 그래서 나는 먹이들과 같은 생김새야. 그들을 유인하기도 아주 쉽지. 이 손은 여러 가지 물건을 쓰는 데 아주 유익하기까지 해. 뭘 먹더라도 이 이점을 버리지는 않을 것 같군.”
“보현 언니를 알고 있었잖아요. 언니 안부도 묻고…….”
“죽기 전의 나에겐 아주 중요했던 사람이거든.”
“지금은 아니란 말이에요?”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같을까? 마찬가지로 그 사람에게도, 그때의 나는 중요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중요하지 않겠지. 오히려 원수가 아니냐? 그가 아끼던 이를 집어삼켜 괴물로 만든 것이니.”
지호는 현기증을 느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보현이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옛 친구. 연인. 파트너…….
“도준우 헌터님…….”
“이제 그건 내 이름이 아니야.”
“그분의 기억이 있잖아요. 그래서 언니를 걱정했잖아요. 그래서 저한테 이걸 알려 주고 있으신 거 아닌가요? 저를 먹는 대신!”
“배불러서 그래.”
한때 준우였던 남자는 여전히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다. 그가 고개를 슬쩍슬쩍 돌리는 곳마다 크고 작은 괴물들이 엉켜 싸우고 있었다. 그것들의 기척을 느끼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던 준우는 몸을 일으켰다.
“음, 불필요한 걸 설명하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됐군. 주인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
지호는 기겁했다. 퀸 패러사이트가 주인이며 준우가 그의 숙주 중 하나였다고 했다. 퀸의 다른 두 숙주가 보였던 어마어마한 힘이 생각나지 않을 턱이 없었다.
“저, 저는 어떻게……. 혹시 들었으니 죽어라! 하시는 건 아니죠?”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위해 굳이 시간을 낼 필요가 있었을까? 바로 죽이면 됐을 텐데.”
준우는 아무렇지 않게 지호를 겁먹여 놓고는 그들이 앉아 있던 공터 부근에 쓰러질 것처럼 서 있는 오래된 나무 앞에 섰다. 고목은 기울고 불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 힘겨워 보였다.
“뭐……. 말은 도준우였던 내가 이미 죽었다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여전히 자신을 헌터였던 도준우로 여긴다. 그래서 주인의 의지를 배반하고 이러고 있는 거야. 널 돕고 있는 걸 알게 되면 나를 다른 놈에게 먹이겠지. 나를 나로 여기게 하는 이지가 사라질 때까지. 그러니 들키기 전에 가라.”
“저, 저기.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요. 엄청요.”
준우는 여전히 지호 쪽에서 조금 동떨어진 곳을 향해 시선을 둔 채 가만히 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무 중간쯤을 몇 번 더듬었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그의 손이 나무로 쑤욱 들어간다. 크기를 대략 가늠해 본 준우는 일 미터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을 휘저어 확인시켜 주며 말했다.
“어디로 나갈지는 잘 몰라. 그쪽인 건 확실하지만, 위치가 고정된 건 아니거든.”
“다음에는 퀸 패러사이트가 아닌 진짜 여왕에 대해 알려 주세요. 우리를 위협하는 진짜 적이라고 하셨죠?”
“말이 많다. 어서 가라.”
지호는 손이 쑥 통과하는 나무에 다리부터 밀어 넣었다. 일 미터가량의 정방형 통로. 밖에 뭐가 있을지 몰라 몸이 바짝 얼었으면서도 지호는 마지막까지 속삭였다.
“언니가 당신을 그리워해요.”
“이미 죽은 사람이야. 소식 전하지 마.”
준우는 손을 뻗어 지호의 머리를 나무까지 쑥 집어넣었다. 다리가 묘하게 허전하다 싶었는데, 그 이상한 통로를 통과한 순간 몸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떨어지는 감각에 본능적으로 몸을 허공에 고정한 지호는 뒤늦게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흐릿한 색감에 떠 있느니만 못한 태양. 다행히 괴물들의 세계는 아니었다.
발아래로 물이 찰랑거린다. 바다까지는 아니었다. 폭이 좀 넓은 강 하류 같기는 했지만.
목숨이 멀쩡히 붙어 있단 사실을 상기하자 잠시 안도한 지호는 녹음 상태를 확인했다. 시간이 꽤 길어서 전부 들으려면 꽤 걸릴 것 같았다.
그러나 두근거리며 재생한 파일은 깨진 채였다. 균열 경계를 넘어가기 전 준우가 했던 목소리들만 조금 남아 있고, 안쪽에서 했던 대화는 사라진 것이다. 그 주옥같은 정보들을! 지호는 황급히 메모장에 기억들을 갈무리했으나 그토록 귀중한 정보들이 벌써 몇 가지는 가물가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