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12. 오해들
신체 계열 헌터들 중에서도 발군의 능력자인 이주리에겐 비슷한 시기에 동시 각성한 쌍둥이 동생이 있다. 상당수의 헌터들에겐 존재하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는 각성자였던 터라 헌경에 끌려가는 이주원 각성자를 본 상당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쪽을 쳐다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마치 이주리 헌터가 끌려가는 것 같은 모양새였던 탓이다.
“멍청한 새끼 같으니.”
주리는 동생 발치에 침을 탁 뱉곤 쥐었던 주먹을 내렸다. 지금 때리면 죽는다. 죽을 만큼 다치든가.
“탈출하면 그땐 내 손에 진짜 죽어.”
노여움을 꾹 눌러 참은 주리는 주원 손에 채워진 수갑을 꽉 움켜쥐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떻게 걷는 거였는지 기억 안 날 만큼 다리를 박살 내 버릴 거야. 알아들어?”
“살벌하네, 누나.”
주원은 변명도 없이 떠나 버렸다. 주리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를 신고한 장본인인 지호는 몇 걸음 뒤에서 복잡한 심경으로 남매의 이별을 응시했다.
신고하지 않을 수도 있긴 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범죄들은 언제나 아는 얼굴을 통해 일어나는 법. 지호 뒤로 헌터가 되는 새싹들이 이런 일을 똑같이 겪게 될 수도 있었다. 최소한의 의리로 지호는 본인이 겪은 일과 신고할 거란 이야기를 주리에게 먼저 전했다.
주리는 자기한테 연락하기 전에 신고했어야 했다고 말하곤, 곧바로 이쪽으로 달려왔다. 근소한 차이로 헌경이 도착했고, 덕분에 주리는 끌려가는 주원 멱살을 잡고 으름장을 놓을 수 있었다.
사실 지호는 주원이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 이동 능력자였으니까.
“도망갔으면 못 잡았을 거야.”
주리 역시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지호 곁으로 걸어왔다. 원망 하나 없는 똑바른 시선에 지호는 눈을 내리깔았다. 하나 남은 가족을 감옥에 넣어 버리는 동료가 반가울 리 없을 텐데도, 주리는 그게 뭐가 문제냔 얼굴로 지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했어요. 이런 짓거리까지 할 멍청이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네. 그런 멍청이가 내 근거리에 살아 숨 쉬고 있을 줄도 생각 못 했고, 한 지붕 아래서 종종 보고 있을 줄도 몰랐네.”
“고생하셨어요…….”
“내가 고생은 무슨. 지호 씨가 했지. 근래에 자꾸 균열 부근에 얼쩡거리길래 수상하다 했어요. 범죄에까지 손댈 줄은 몰랐지만. 도망가지 않은 건 최후의 양심인가?”
“본인한테 소중한 사람을 구하려고 남을 납치한다는 걸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웠던 건 아닐까요?”
주리는 지호 말에 코웃음 치면서도 우선 사과부터 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양심적인 새낀 아닐걸요. 비웃은 건 아니에요, 미안. 주원이가 막내랑 유달리 친하긴 했죠. 둘이 어릴 때부터 착 붙어 다니면서 저 쌩까는 솜씨가 일품이긴 했거든요. 게임이며 취미며 다 비슷하게 좋아한 데다 막내가 유독 주원이한테 살가웠어. 걔도 자기 좋다는 꼬맹이 챙겨 다녀서 제가 편했죠. 그랬었지. 늦둥이라 가뜩이나 동생보단 조카 같고 그랬었는데.”
주리는 덤덤히 말을 뱉으며 품에 손을 넣었다. 다 떨어진 낡은 동전 지갑. 주리와는 영 어울리지 않지만, 주리는 그걸 꺼내 매만지며 균열 경계를 노려보았다. 항상 보이곤 하던 냉정한 면모와는 사뭇 다른 얼굴이었다.
“이게 막내 거예요. 유품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아요. 막내가 돌아오면 주려고 갖고 다니는 거니까요. 걔랑 난 애정 표현 방식이 달랐을 뿐이지, 우린 둘 다 막내를 아꼈었어요.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난 후에까지 방식이 다를 줄은 몰랐네. 내내 나한테 막내는 죽은 거라고, 미친 것처럼 균열 뒤지고 다니지 말라고 잔소리나 해 대더니 병신 새끼가 자기는 뭘 꾸미고서…….”
주리는 쥐고 있던 지갑을 도로 품에 넣으며 한숨 쉬었다.
“그놈들 추적해 봐야겠어요. 어디서 또 무슨 허튼짓 하다 사고 칠지 모르니까. 내가 오늘 주안 공단 균열 경계 담당잔데, 일어난 사고 수습은 조금 더 경험 필요한 친구한테 맡겨야겠네요. 잘할 수 있죠?”
“예? 제가요? 균열요?”
“어느 정도 정리는 끝났어요. 균열 내에 대형종은 없고, 일부에 센서를 붙여 놔서 가까이 오는 대로 빠지면 되고요. 처음 보는 괴물 봤다는 보고 없음, 코드 레드 개체 출현 없음. 급성 균열이라 기상 현상 없이 쾌청하니까 다른 건 걱정할 것 없어요. 참, 균열 크기가 크기인지라 몇 마리만 잡아도 금방 없어질 것 같아서 사냥 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예요. 우리가 할 일은 마정석 사냥꾼들 출입을 막는 일이고요.”
“사냥꾼들요? 그런 사람들도 있어요?”
“드물게 있어요. 마주칠 일은 잘 없을 거예요. 보통 안전한 균열에만 나타나니까. 급성 균열에 잘못 들어갔다가 못 나오고 뒈지면 그게 무슨 개죽음이에요. 보통 그 사람들 일반인이 장비만 빡세게 갖춘 거라서 군인들이랑 별반 차이는 없는데, 마정석 도구들 써서 괴물들한테 공격 먹히긴 해요. 사냥꾼들 들어오면 진짜 무슨 일 날지 모르니까 감시만 잘해요.”
“저도 임시 파트너가 있는데 불러야 할까요?”
“임시 파트너? 못 들었는데?”
“양 박사님이 김 반장님하고 같이 움직이라고 하셔서요.”
주리는 한참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런 일 인계받았다는 보고 정도만 남겨요. 아마 안 올 거예요. 김 반장님 능력이 여기 특화된 것도 아니라서. 그래도 알리는 거랑 숨기는 건 천지 차이니까 말은 꼭 해 둬야 하는 거고요. 알겠죠?”
“그 사람들이랑 충돌하게 되면 어떻게 해요?”
지호의 걱정은 타당했으나 주리는 걱정하지 말라고 입으로만 말하며 자기 장비를 점검했다. 급하게 뛰어나온 것 치곤 있을 건 다 있었다.
“충돌하진 않을 거예요. 상대도 안 될 테니까.”
“제가요?”
“아니, 사냥꾼들 말이에요. 적당히 상황 봐서 균열에 들어가 있어요. 시야 방해하는 현상은 없어서 안쪽에서도 경계 밖을 분간하기 쉬우니까 내부에서 대기해도 될 거예요.”
“안에서요? 하지만 괴물이…….”
“큰 위험 개체는 없는 데다 지호 씨 속도면 바로 빠져나올 수 있어요. 각성자가 강해질 방법, 기억나요?”
몇 가지 있었다. 부천 센터에서 진행되던 그 극단적인 실험을 제외한다면 일반적인 방법은 두 가지. 마정석 등의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균열에 들어가 이형 에너지에 노출되는 것.
주리는 이제 막 헌터가 되었을 뿐인 어린 동료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힘차게 외쳤다.
“이렇게 안전하게 강해질 기회도 별로 없으니까 경계 임무 하면서 경계 주변 좀 왔다 갔다 해요. 괴물도 상대할 필요 없고, 뭔가 사냥할 필요도 없고, 사람들 구조하러 긴장한 채 들어갈 필요도 없는 상황이라니 진짜 드물다고요.”
“예? 하지만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이럴 때는 또 말 잘 듣네. 청개구리 엄마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균열이니까 당연히 항시 감시 상태로 긴장하고 있어야 하고, 뭔가 잡히면 바로 뛰쳐나오는 게 포인트예요. 절대로 거기 있는 것들하고 맞서지 말 것. 잡을 수 있다고 해도 안 돼요. 이유는 아까 설명했죠?”
주리는 괜찮을 거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 다음 자기 볼일을 보러 휙 사라져 버렸다. 황망한 심정으로 균열 쪽을 돌아본 지호는 한숨 자고 오기는 글렀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숨 쉬었다. 어제부터 내내 강행군이었다. 몸도 마음도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사냥꾼들이라는 미지의 집단이 거슬리긴 했으나, 다행히 이쪽 균열로 섣불리 접근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지호는 균열에 반쯤 걸쳐 있는 건물 옥상에 앉은 채 눈을 굴렸다. 가까운 거리에 괴물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어른들은 다 모순적이다. 언제는 절대 혼자 움직이지 말고 말 들으랬다가, 또 언제는 당연히 이렇게 하여야 한다는 것처럼 규칙을 어겨 버리고.
사람은 시각에 지배받는 동물이라, 눈을 뜬 채로 감지 파장을 퍼트리면 균열 내부와 균열 밖, 즉 보이는 위치밖에 감지되지 않았다. 예전에 균열 저편을 탐지할 땐 어떻게 했었지? 아마 그때도 등 뒤에서 뭔가를 느꼈던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들.
감시 임무를 맡았기에 눈을 감아 버릴 순 없었다. 지호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살짝 돌렸다. 경계면을 오른쪽에 두면 우측 뒤편은 경계 저편을 탐지할 수 있을 테니…….
지호는 그 상태를 유지한 채 김 반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주원 각성자와 그 연합의 요구를 들어달라는 명목으로 납치를 당한 까닭에 그를 신고했다는 간략한 설명이었다. 문자를 쪼개 보내려던 탓에 곧바로 전화가 울렸다.
-무슨 미친 소린가?
“어, 설명해 드린 대론데요. 무슨 전국 양배추 무슨 사람들이 제 협조가 필요하다고 저를 납치했어요. 일단 아무 일 없이 풀려나긴 했는데, 납치 자체가 범죄잖아요. 그래서 신고를 했는데 일단 주리 헌터님 동생이니까 그쪽에도 연락을 드려서…….”
-다친 곳은?
“아무 일 없었어요. 진짜로요. 근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이동시키시더라고요. 제가 배웠던 이동 능력 막는 방법이 안 통했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김 반장의 단호한 음성에 지호는 딴 곳으로 흘러가려던 대화의 고삐를 얼른 잡아챘다. 하마터면 이주원 각성자가 그에게 펼쳤던 기술에 관해 설명하며 떠들 뻔했다.
“아, 그렇지. 그것 때문에 이주리 헌터님이 비슷한 연합들 뒤지러 가 버리셔서요. 주리 헌터님 자리를 제가 대신 채우고 있거든요. 주안 공단 균열인데…….”
-감시 역 말이지. 사냥꾼들은 지금 많이들 지방으로 내려가 있어서 빠듯하게 근무 서진 않아도 될 거다. 천안 쪽에 거대 균열이 열렸는데, 자유 사냥 허가가 떨어졌거든.
“사냥꾼들이란 거 처음 들었어요. 왜 아무도 알려 주시지 않았던 걸까요?”
-그다지 마주칠 놈들이 아니니까. 게다가 네가 각성하고 나서는 내내 훈련이니 실전이니 뛰고 쫓기느라 바빴잖아.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지금도 중요한 건 아니야. 앞으로도 그렇겠지.
균열 내부이기에 색이 바랬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다른 곳과 큰 차이가 없는 주안 공단을 훑어보며 지호는 지나가듯이 물었다.
“여기로 오실 건가요? 우린 파트너잖아요.”
-됐다. 내가 가 봤자 도움도 안 돼. 아마 이주리 헌터도 비슷한 이야길 했을 거다. 둘이 같은 팀에 속할 상황이 많았거든. 서로 필요한 만큼 알고는 있지.
“이주리 헌터님이 저한테 균열에 들어가라고 하셨어요. 강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요.”
-거기서? 그렇군. 효율적인 방식이야. 뭐가 보이면 싸우지 마라. 보고하고 물러나지 말고, 물러나서 보고해. 알겠나?
변동 사항 생기자마자 보고하겠다고 몇 번쯤 이야기한 뒤에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균열은 덜 고요했다. 간혹 들리는 발소리나 괴이한 울음소리가 살갗을 훑었다. 지나치게 작은 크기라 평소처럼 조용하기만 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지호의 시야가 닿지 않는 뒤편에서 두 가지 공간의 이질적인 느낌이 시작됐다. 양쪽 모두를 탐지하는구나. 지호는 본능에 좀 더 자신을 맡기기로 하며 감지 파장을 최대한 멀리 펼쳤다.
이형 에너지는 균열을 통과하는데 왜 사람 신체는 통과하질 못할까? 생각해 보면 물건도 그렇다. 균열 밖이나 안에서 물건이 오갈 때도 경계를 통과해서 저편으로 넘어가진 않는다. 순수한 에너지만 가능한 걸까? 아니면 이형 에너지로 이루어진 뭔가라면 가능한 걸까.
의식의 흐름에 생각을 맡긴 채 구부정하게 앉아 있던 지호의 등이 퍼뜩 놀라 펴졌다. 그는 너무 당황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마자 당연하게도 균열 저편에서 느껴지던 모종의 감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낭패다. 지호는 다시금 방금의 자세를 유지했으나 한 번 깨진 집중은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억지로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집중할 수 없는 법이다.
지호는 눈을 어떻게 깜빡이고 있었는지 깨달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혹은 혀를 어디에 수납하고 있었던가 생각하던 사람 같았거나.
불행히도 지호가 다시 집중력을 회복했을 때, 감지 파장에 걸린 그 느낌은 지나칠 정도로 가까이 와 있었다. 지호는 너무 놀라 펄쩍 뛰며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채 거리를 벌리기도 전에 지호와 균열 사이로 하얀빛이 나타나더니 천천히 형태를 갖추었다.
이윽고 드러난 것은 구형 전투복을 입은 헌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