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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93화 (94/260)

93화

걱정은 기우였다. 지호는 순식간에 식판을 비우곤 스스로 어이없어했다. 김 반장은 빈 식판을 병실 밖으로 내놓고 돌아와선 당연하다는 어조로 부연했다.

“각성한 뒤에 돌이라도 입에 넣고 싶을 만큼 밀려오던 허기를 생각해. 네 몸을 재생하느라 에너지를 쓰고 있는 마당이라 그때와 크게 차이가 없을 거다. 지금처럼 크게 다칠 때는 보통 그렇지. 많이 먹어 둬라. 그래야 회복도 빠르니.”

음식을 먹는 동안 고민했으나 별다른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호는 이주원 각성자와 사라지던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어쩌면 김 반장은 아무렇지 않게 지호의 기억을 읽어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호가 뭘 봤는지도 알게 되겠지.

다행히도 환상을 보여 줄 때와 달리, 김 반장이 직접 지호의 기억을 읽을 때는 두통이 동반됐다.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 기억을 훔쳐보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정신계 능력자 앞에서 머리 굴리는 건 너무 땀나는 일이다. 지호는 박 팀장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약간 이해했다. 우리 편이었을 때는 그렇게 든든했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손잡고 딴짓을 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자 자꾸 손에 땀이 찼다.

“내 파트너로 있기 그렇게 불편하면 얼른 다른 놈 찾아서 데려와. 합이 맞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보내 주마.”

“그게 싫은 건 아니에요.”

“대원은 본인이 거짓말을 잘 못한다는 걸 알고 있나?”

지호는 입술을 실룩였다. 알면서 뭘 물어보는지. 모른 척하는 것보다 더 성격 나쁜 것 같다. 김 반장은 표정 변화 없이 태블릿PC를 꺼냈다. 본인이 워낙 덩치가 있는 사람이다 보니 꽤 큰 사이즈의 전자 기기인데도 핸드폰처럼 앙증맞아 보였다.

“어차피 같이 움직여야 하는 판이니 협조를 구하지. 나는 개인적으로 조사하고 있는 것이 있다. 낫는 대로 동행한다면 좋겠군.”

“제가 안 한다면요?”

“피차 동반 임무에 지원해 주지 않겠지. 임시일 때면 모를까, 정식 자격을 받은 상태에서의 단독 행동은 징계 사유다.”

어떻게 해도 김 반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 분명했기에 지호는 더 반항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김 반장이 보여 준 화면을 본 지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실종자를 찾기 위해 뭉친 사람들의 모임은 생각보다 많다. 그중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들과 접촉했고, 개중 일부에는 소속하는 데 성공했지. 세 개가량의 그룹이 최근 수상쩍은 행동을 시작했다. 놈들끼리 연합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어, 잠깐만요. 뭐 조사하고 계신 거라고요?”

김 반장은 이걸 보고도 모르냐는 약간은 한심해하는 시선으로 지호를 내려다본 다음, 아무렇지 않게 설명했다.

“균열을 여닫는 기술을 가진 놈들을 추적하고 있다. 대원 역시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 않았나? 가진 정보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 좋을 것 같은데.”

말문이 턱 막혔다.

김 반장은 스스럼없이 본인 패를 까고 있었다. 박 팀장이 그를 수상하게 여기며 떠난 것이 고작 반나절 전이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지호가 아는 것들은 상당수 헌터 협회 전체에 공유되고 있어 굳이 그를 끌어들여 수작을 부려 가며 정보를 얻을 필요는 없었다.

“개인적으로요? 왜 혼자서…….”

“나 외에도 몇 명 있어. 이쪽 일에 집중하기엔 균열에서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진행은 더딘 편이고. 그래서 대원이 찾아낸 건 뭔가?”

“아직 확실한 게 아니고 조사 단계라서요. 뭔가 좀 알게 되는 게 있으면 말할게요.”

이주원 각성자와는 무슨 관계인지, 그때 나누었던 대화가 무엇을 뜻했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지호는 질문을 눌러 참았다. 좀 더 많은 단서를 찾은 후에 해도 될 이야기 같았다. 아닌가. 지금 물어봐야 하나. 김 반장 쪽에서 갑자기 패를 까 보인 덕분에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핸드폰이 울렸다. 지호는 그 진동이 너무 반가워 황급히 이름을 확인했다. 이주환 헌터였다.

“어, 전화를 주셨네요. 쉬는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어차피 쉬니까 괜찮아요. 휴식이란 모름지기 따끈한 방바닥에 퍼진 떡처럼 늘어지는 게 최고잖아요. 안 그래도 그 신호 수신했을 때 기계적으로 수차례 구조 요청이 날아오길래 뭔가 했었거든요. 본인이 한 게 아니라면, 갖고 있던 물건 중에 비슷한 작용 할 만한 게 있지 않았을까요?

“헌터용 핸드폰은 그런 기능이 있어요?”

-그럴 리가요. 그러니까 다른 헌터들이 갖고 있지 않은 물건들 있으면 확인해 봐요. 각성자 연합에서 만드는 물건 중에 특이한 게 많더군요. 부평 연합 장인이 만든 선글라스도 그중 하난데 제 것도 그쪽 제품이거든요. 거기에 비슷한 기능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구조 요청 기능요?”

-아마 비슷할 거예요. 거기 확인해 보지 그래요? 어떤 방법으로 신호를 보낸 것인지까진 확인 못 해도, 온 신호가 전부 같은 자리에서 발신되었던 건 기억합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아녜요. 감사합니다. 쉬세요!”

이주환 헌터의 목소리가 훨씬 좋아 보였다.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그런데 이동 능력이 개화돼 사방으로 쏘다녀야 하는 운명이라니 가혹하기 짝이 없다.

“구조 신호에 이상이 있었나?”

“네? 아, 판교 균열 소멸기에 에너지 폭풍에 휘말리는 바람에…….”

“왜 수원 균열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판교 균열에 뛰어갔지?”

그걸 묻고 싶은 건 지호 본인이었다. 입을 벙긋거리던 지호는 결국 머릿속에서 싸우던 두 의견 중 한쪽 손을 들어 주었다.

“수원 균열 닫힐 때 이주원 각성자랑 이야기하시는 걸 우연히 들었어요.”

“우리 얘기?”

“네. 확장할 것 같아서 급하게 닫았다던…….”

말을 마친 지호는 김 반장의 여러 가지 반응을 예상하며 긴장했다. 뜻밖에도 그는 별 동요 없이 말을 받았다.

“그랬나? 부주의하게 이야기했었군. 남이 들을 만한 이야긴 아니었지.”

“그게 끝이에요?”

“뭘 더 바라나?”

지호의 눈이 심하게 깜빡였다. 뭔가 오해라도 하고 있나? 그때 했던 대화는 분명 의심할 여지 없이 균열에 관한 이야기였다. 물론 주어가 많이 생략된 감이 있었지만, 확장이니 희생자니 하는 것들. 심지어 균열에 갇혔다던 그쪽 연구원 이야기까지 수상하기 짝이 없었으니.

김 반장은 보여 주었던 태블릿에서 뭔가를 찾아 내밀었다. 균열 현장이 찍혀 있었다. 지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괴물이 균열을 나올 수가 있어요?”

“교육을 대체 어떻게 받은 건가? 균열 경계에 지나치게 근접하면 놈들에게 끌려 들어갈 수 있어. 전례가 몇 번 있지. 드물긴 해도 균열 경계를 빠져나왔던 놈들이 없던 것도 아니고. 자료 본 적 없나?”

“아니, 아니 근데 괴물들은 경계에서 빛으로 하얗게 변해서 없어지잖아요. 경계를 통과 못 하고…….”

“자네가 그간 너무 급한 상황에서 강한 괴물들만 마주쳐 온 것 같은데, 일반인도 대치할 수 있는 수준의 괴물 중에는 균열을 나올 수 있는 놈들도 더러 있어. 오래는 못 살아 있지만.”

사진 속 괴물은 균열을 빠져나와 방호복 입은 구조대원을 공격하고 있었다. 어류에 가까워 보이는 비늘에 날카롭고 개수가 많은 이빨, 넓적한 몸체가 이질적이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이야기의 흐름을 놓쳤던 지호는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근데 그거랑 이 사진이 무슨 상관인데요?”

“이건 대외비니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아야 해. 약속할 수 있나?”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무엇을 오해하고 있었는지 알아야 했다. 김 반장은 전부 다른 장소에서 찍힌 같은 괴물종의 사진을 여러 장 보여 주었다.

“이 괴물 무리가 균열을 빠져나와 사람들을 습격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피해를 막을 길이 없어, 균열을 닫을 수밖에 없었지.”

“균열을, 닫아요? 헌터들이?”

“그럼 또 누가 있나?”

지호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이주원 각성자와 김 반장이 손을 잡고 수작질했던 게 아니야? 여태까지 했던 게 다 헛발질이란 뜻인가? 지호가 충격받은 부분을 오해한 김 반장은 이번에는 지도를 보여 주며 넓은 지점을 훑었다.

“세류동 쪽으로 올라오던 헌터들과 마주쳤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진짜 대형 사고 요란하게 터졌을 거다. 이놈이 균열에서 증식하고 있었어. 괴물 놈들의 번식 방법은 정확히 몰라도 이것들이 자기를 쪼개 개체 수를 늘릴 수 있단 건 알려져 있거든.”

“자기를 쪼개요?”

“아마 절반가량 약해지는 것 같지만, 자기 자신을 쪼개 같은 놈 둘이 되더군. 그런 식으로 군집을 이룬 거야. 원래는 뭐하는 놈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반인들에겐 쪼개진 놈 하나마저 버거운 법이지. 인간이건 뭐건 살아 있는 걸 먹으면 다시 몸을 불릴 수 있을 테고, 그러면 균열 외부가 지옥이 되어 버린다. 그걸 막아야 했어.”

“그건…….”

“실종자들을 구할 수 없었던 건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었어. 이놈만 그런 생각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낙관적이지. 임보현 헌터의 경우를 생각해 판교 균열 쪽으로 진입해 그들을 구출할 계획을 세운 참이었다. 판교 균열이 닫히는 바람에 다 틀려먹었지만.”

지호는 부끄러워졌다.

이주원 각성자가 헌터들과 함께 일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편견을 가진 것 같았다. 심지어 사람들을 구하려고 남들에게 못 할 결정을 내린 사람들인데. 지호는 그가 무슨 오해를 했는지 입 밖에 내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깨어나지 않았는데 균열 경계를 어떻게 넘어갈 수 있는지 알 방법이 있는 건가요?”

“자네를 이용할 생각이었네만.”

“예?”

“임보현 헌터가 송도 균열에서 나타날 때 자네가 그걸 감지했잖나. 경계 너머로 감지 파장을 보내서 임보현 헌터를 잡아냈었다고.”

“그건 너무 오래됐는데…….”

“오래된 기억은 희석되지. 확실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우리가 잡을 동아줄이라곤 자네 하나뿐이었으니까. 본래는 판교 균열이 닫히기까지 2주가량 시일이 더 있었다고.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김 반장은 무거운 표정으로 사진을 보여 주던 태블릿을 가져갔다. 거기엔 온통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지호는 부끄러움에 몸을 떨었다. 누구를 오해하고 있었던가. 차라리 물어볼 걸 그랬다. 그랬으면 이런 상황은 안 생겼을 텐데.

“그래서 판교 균열에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게 대원이 되어 버렸는데. 갑자기 균열이 소멸한 원인이 뭔지 조금이라도 짐작 가는 게 있나? 일반 균열이 이렇게 갑자기 닫힌 적은 없었거든.”

박 팀장이 그를 의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지호는 자기가 봤던 것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긴다. 그러니 되도록 많은 것들을 나누어야겠단 걸 새삼 다짐하게 됐다.

“사실은 두 분 이야기하는 걸 듣고 저도 판교 균열로 쫓아갔었거든요. 거기에 남아 있어 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해서요.”

지호는 그가 가졌던 이상한 오해들을 설명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이어 보려고 애썼다.

“근데 두 분은 못 찾고, 들어갔던 균열 안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중심부 정도였는데 방호복을 입고 있던 두 사람이었고요. 왜 제가 전에 같이 찾아 달라고 말씀드렸던 그 기계 말이에요. 우리가 인천 대공원 쪽에서 찾았던 거. 그 기계가 거기 있었어요. 그 수상한 사람들이랑 같이요.”

지호는 판교 균열에서 있었던 일들과 나누었던 대화들을 간략히 설명했다. 세 번이나 설명하자니 이제 제법 정리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김 반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균열을 닫는 기술이 발견된 건 최근이야. 양 박사의 연구 팀을 비롯해 몇 개 주요 선진국에서나 공유하는 기술이지. 그걸 일반인들이 알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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