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오 팀장이 무전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지호는 주리가 빠른 속도로 뛰어나가는 것을 보았다. 안 돼요! 하고 손을 뻗는 그 순간 주리 앞에 사람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동 능력자다. 주리와 똑 닮은 얼굴의 남자.
튀어나오자마자 주리를 깔아뭉개 넘어뜨린 그는 악을 쓰며 제 누나를 붙잡았다.
“누나, 미쳤어! 저게 뭔지 알잖아. 들어가면 죽어. 못 나와!”
“이거 놔!”
“제발, 누나 제발!”
주원이 어떻게 타이밍 좋게 튀어나올 수 있는지까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주리의 발을 막아 준 덕분에 지호를 비롯해 몇몇 헌터 역시 이주리 헌터를 붙잡았고, 눈 벌게진 주리는 고함을 치며 그들을 떨쳐 내려 애썼다.
“나타나자마자 사라지는 균열이 어딨어! 저기에 뭔가 있어. 찾아야 해!”
아무리 주리라고 해도 그 헌터들 전원을 떨쳐 낼 수는 없었다. 균열은 처음 나타날 때보다는 느린 속도로 줄어들었다. 지호는 숨어 있던 사람들이 토끼 눈으로 뛰어나오는 걸 보았다.
균열이 줄어든다. 내부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거기 남아 있던 사람 중 달려 나오던 사람들은 빠져나왔고, 멈추어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작아지는 균열에 휩쓸렸다.
균열이 생기고 나서 사라지기 위해서는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져야 한다. 적어도 그에 준하는 수의 괴물이 사라지거나.
그러나 그 모든 상식을 박살 내며 수원 균열은 고작 사흘 만에 닫혔다. 실종자 수는 역대 최고로 많았고, 피해가 어마어마했다.
균열이 닫힌 후, 핏발 선 눈으로 사라진 균열을 노려보던 주리는 동생을 돌아보았다. 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네가 왜 여깄지?”
“우리한테 협조 요청이 들어와서. 오자마자 누나 자살하려는 꼴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비아냥거리지 마. 왜 너희에게 협조를 요청하지? 평소 같으면 균열 보이는 곳에도 오기 싫어하는 새끼를.”
“오늘은 오고 싶더라. 누나가 이럴 줄 알았나 보지.”
둘 사이에 불꽃이 튄다. 안 다친 곳이 없어 신음하던 헌터들이었기에 주리를 오래 잡고 있긴 힘들었다. 다 떨어져 나가고 지호만 남았다. 주리의 팔을 붙잡고 있던 지호는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그를 놓았다.
균열은 사라졌고, 헌터들은 탈력감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주원의 일행인 듯한 이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주리의 시선을 그대로 받고 있기 힘들었는지 주원은 얼른 지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생긋 웃었다. 닮은 얼굴에 안 닮은 행동. 생긴 거론 절대 남매 같지 않다.
“잡아 줘서 고마워요. 혼자였으면 금방 집어 던지고 가 버렸을 겁니다.”
“어, 가서 얼른 치료받아요.”
“맞아. 가서 치료받아.”
주리는 둘을 번갈아 노려보다 뒤로 휙 돌아가 버렸다. 당연히 치료기 쪽이 아니다. 주원은 목덜미를 긁적였다.
“뭐, 어차피 균열 외부에서 다친 거니까 금방 낫긴 하겠죠. 너무 신경 안 써도 돼요. 저런 경우가 드문 건 아니니까, 또 볼 일은 없을 거예요.”
“구조 작업 도와주러 오신 거예요?”
“네, 뭐. 균열에서 구조한 사람들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 정도는 저희도 도울 수 있으니까요.”
“음, 그, 평화주의자분들요.”
주원은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처음 봤을 때도 주리 때문에 금방 스쳐 지나갔고, 두 번째는 김 반장과 할 일이 있어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어설프게 아는 사이란 뜻이다.
“사실 김 반장님 뵈러 온 거예요. 여기 계시죠? 체력은 없고 성질만 있어서 분명 일찍 지쳐 나가떨어지셨을 텐데.”
“주둥이 닥쳐.”
주원은 한 대 얻어맞고는 실실 웃으며 맞은 곳을 문질렀다. 김 반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그를 흘겨보곤 지호의 상태를 살폈다. 아까는 너무 정신이 없어 그럴 새가 없던 탓이다.
“뭘 남겨 놓거나 하진 않았군. 아깐 진짜 철렁했다, 애송이. 뭘 잘났다고 뛰어들어 왔어.”
“반장님이 납작 오징어 될 것 같았거든요.”
“도와줘서 고맙다. 하지만 진짜 위험했어. 솔직히 날 죽게 내버려 두고 네가 사는 편이 헌터들 쪽에 훨씬 이득이긴 하겠지만……. 막상 덕분에 살아난 꼴이 되니 할 말이 없군.”
그는 한 번 나동그라진 다음에는 다시 균열로 진입하지 못해 뒤로 빠졌고, 먼저 치료를 받은 다음에야 다시 투입될 수 있었으나 균열이 사라진 탓에 이도 저도 못하게 된 상황이었다고 말을 전했다.
지호 역시 누구를 신경 쓸 상황이 아니어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 정도나 인식했었다. 그래서 주리는 어디로 간 걸까. 다른 사람들은 괜찮을까? 오 팀장은 황급히 다가와 두 사람을 슥 살피고 괜찮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우선 센터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지호는 곧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김 반장과 이주원 각성자가 나누는 대화가 너무 흥미로워 발을 멈추고 말았다.
“확장 조짐이 보여서 급히 닫은 것 같아요.”
“희생자가 너무 많잖아.”
“어쩔 수 없었어요. 심지어 우리 연구원은 균열에서 나오지도 못했다고요.”
지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청력이 너무 좋아 생긴 사고였다. 둘은 목소리를 낮추고 사람들에게서 멀어졌으나, 온 신경을 집중한 지호를 피할 수는 없었다.
“위치 파악은?”
“판교 균열에서 잡힌대요. 우선 투입조가 있는데…….”
말하다 문득 뒤를 돌아본 주원은 지호와 눈이 마주치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지호는 엿듣고 있던 것을 들키자 어쩔 줄 몰라 우선 인상부터 찡그렸다. 내용이 너무 이상했다.
“일단 가서 이야기하죠.”
이주원 각성자의 모습이 김 반장과 함께 사라졌다. 지호는 어안이 벙벙해 자기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들었나 추측했다.
균열을 닫았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게 가능하기는 한가?
지호는 그가 쫓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수상쩍던 집단. 균열을 강제로 여는 실험을 하는 듯했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균열을 닫는 실험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었다. 하필이면 그게 사람들 못 구한 균열이란 게 문제긴 하지만……. 지호는 찜찜한 기분을 어쩌지 못하고 돌아섰다.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판교 균열이라고 했었지. 그는 위치와 방향을 가늠했다. 인천보다 가까운 거리다. 잠깐 들르는 것 정도야 괜찮겠지.
지호는 땅을 몇 번 구른 다음 위로 날아올랐다. 수습은 어차피 그의 몫이 아니었다.
* * *
균열 터진 직후 그랬던 것처럼 전파 상태가 엉망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연락들 때문이다. 균열이 갑자기 사라지는 걸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사상 최단기간 균열 증발.
구조된 사람들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사방에 난리가 났다. 문제는 균열에 갇혀 버린 실종자들에게서 연락이 오고 있다는 거였다.
[강하나 : 판교 균열이 열려 있어서인가 봐요. 균열 내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도, 그쪽과 멀지 않은 모양이죠.]
메시지가 오는 속도가 눈에 띄게 더뎠다. 병아리즈 단톡방에 각자가 받은 소식들이 속속 올라왔다. 어떤 것들은 오다 말고 취소되기도 해서 중간중간 내용이 비어 있었다.
[장지윤 : 수원 균열 경계 있던 곳 앞에서 다친 헌터들 치료하는 중인데 여기 사람 넘 많음요. 지호 씨 어디 갔어여? 치료 덜 받았잖아여.]
[이지호 : 판교 가요.]
긴 설명을 할 새가 없었다. 지호는 하늘을 날아가며 메시지까지 할 여유가 있다는 사실에 자신을 훈련시킨 몇 헌터들에게 감사하며 빠르게 소식을 훑었다.
[최소민 : 이동 능력자들 올 스탑 대기 받았어요. 뭐가 벌어지는 것 같은데 뭔지…….]
누군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기는 할까. 뉴스가 쏟아졌다. 개중에 실시간 검색에 오르는 뉴스가 하나 눈에 띈다.
[생존자 있음. 구조 요청]
데스크를 거치기는 한 건지, 날것 그대로 올라와 버린 뉴스였다. 현장 르포에 가까운 기사다. 사진도 방금 찍은 것 같고, 화질 낮은 카메라로 촬영한 짧은 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수원역에 나타났던 균열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지금, 균열 내부에 갇힌 실종자 대표로서 소식을 전합니다. 이 영상이 닿는다면, 아직 내부에 실종자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수색을 포기하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리포터의 음성은 담담했다. 차라리 슬픔이나 공포에 어쩔 줄 몰랐다면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뉴스를 멀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생각보다 침착해 보였다.
닫힌 균열에 갇힌 호네쨩, 하는 닉네임으로 sns를 갱신하는 사람도 있었다. 리포터 부근에 있었는지 쉴 새 없이 새 피드를 갱신한다.
[호네쨩 방금 TV에 나왔던 것 같은데 본 사람?]
[사람 엄청 많았었는데 이리저리 도망치다 보니까 다들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
[구조대 왔다는 소식 듣고 나갔다가 괴물에 당하는 헌터 본 호네쨩 위로해 줄 사람?]
[그나저나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다들 포기한 것 같아서 호네쨩 무서워]
남잔지 여잔지 분간도 안 갔다. 처음에는 어그로 계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방송 팀에서 찍어 올린 영상과 비슷한 장소 사진이 올라오며 믿음에 불을 지폈다. 사람들이 소식 퍼 나르는 데 혈안이 되자 계정 주인은 몇 초가 멀다 하고 새 소식을 적었다.
[여기 어디냐면 수원여고~]
[호에에? 호네쨩이 18세 여고생인 거 당연하잖아?]
[하와와와 군필 여고생쟝 되는 거시와요]
해당 sns는 뉴스에도 올라갔다. 웃기는 일이었다. 그는 자기가 뉴스에 올랐다며 펄쩍펄쩍 뛰면서도 현장 상황을 꾸준히 알렸다.
[호네쨩 옆에 있던 근육맨 형님이랑 식량 수색 팀 되어 버린 거시와요]
[정문에서 쪼금 나가면 편의점 있다구 해서~ 호네쨩 다녀오는 길에 충전기두 챙겨야 하는 고야]
[무섭다 괴물 같은 거 봤구]
사진이 몇 장 같이 올라왔다. 현장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균열이 닫힌 후 균열 내부 소식이 이렇게 바로 전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심지어 지호를 비롯한 다른 헌터들도 뉴스 기사가 퍼 나르는 그 sns를 쳐다보고 있었으니.
화면을 쭉쭉 내리며 지호는 중간에 잠시 나온 말을 신경 썼다. 괴물에 당하는 헌터를 봤다고? 그런데 사람들이 멀쩡할 수 있나?
어떤 괴물인지 알 수 없고, 얼마나 멀리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구조대로 투입된 헌터들이 당했다니. 그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뭔가가 균열에 더 있었던 걸까? 어렵지 않게 도플갱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상원이 했던 말도 생각이 난다. 그 괴물은 사람을 먹고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고 했었다.
그러면 실종자들 사이에서 태연하게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괴물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이 사람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침착하고 태연하게 본래 살아 있던 시절의 말버릇을 고스란히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니.
그리고 그런 놈이 헌터를 또 하나 잡았다면 그건 정말 재앙일 터.
퀸과 도플갱어는 이전에도 같은 균열에 나타났었다. 이번에라고 안 될 건 없었다. 지호는 자기 생각을 채팅창에 간결하게 적었다.
[이지호 : 저 그 호네쨩인가 하는 계정 보면서 가는 중인데, 중간에 괴물에게 헌터가 당했다는 이야기 있잖아요. 혹시 구조대 측 희생자 소식 있나요?]
[강하나 : 균열 닫히는 데 휘말린 사람 있다고는 들었어요. 못 나온 것 같다고.]
과연 못 나온 걸까, 죽은 걸까.
지호는 말을 삼켰다. 상원이 했던 이야기는 다른 헌터들에게도 혼란스러운 이야기일 것이고, 점차적으로 교육을 거쳐 퍼져야 할 이야기일 것이다. 심지어 지호 역시 그 상황을 다 설명할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당분간 다른 사람들은 균열에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그 가운데 중요한 정보들이 또 풀려 나오겠지. 지호는 적을까 말까 하던 이야기를 무르며 한마디 남겼다.
[이지호 : 판교 균열 쪽 소식 혹시 들리는 거 있으면 알려 주세요.]
[최소민 : 근데 지호 씨, 지금 판교를 왜 가요?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죠? 아직 임보현 헌터도 안 일어났어요. 균열 간 이동 방법은 아무도…….]
[이지호 :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해 봐야죠. 그리고 이상한 이야기도 좀 들었어요.]
누구를 믿고 누구를 믿을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이주원 각성자야 모르는 사람이니 그렇다 쳐도, 김 반장이 수상쩍은 건 약간 충격이었다.
무슨 대화였을까.
나쁜 쪽으로 뻗어 가려는 생각을 다잡았다. 그래도 헌터고, 그래도 각성자다. 나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마정석 가루들과 수상쩍은 기기로 무언가를 하려는 괴집단 역시도 각성자가 속한 곳이었다. 지호는 각성자들이 모두 선하다는 기본 전제를 배제했다. 김 반장이며 이주리 헌터며 누누이 강조하던 사항들이다.
배운 대로 행할 대상이 하필 그의 스승들이라는 사실이 지호를 슬프게 했으나, 언제나 성실한 학생이었던 지호는 가르침을 따라 행했다.
그가 목격한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은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장지윤 : 연구원여? 우리 쪽 연구원? 수상하네. 진짜 수상하네.]
[이지호 : 지윤 씨 이주원 각성자랑 친한 거 아니었어요? 혹시 들은 거 있으면 생각해 봐요. 뭐 수상쩍은 그런 거 있었나.]
[장지윤 : 아니, 그 오빠는 그냥 이동 능력 살려서 작게 운송업 같은 거 하고 있다고 했는데여. 캐치프레이즈가 뭐더라, 그 균열까지도 배송해 드립니다? 그런 거라고. 근데 요즘 많이들 써서 그렇게 경쟁력 있는 문구는 아니랬음요.]
들은 적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들은 적이 있다. 지호가 tv를 비롯한 온라인 매체들에 그렇게까지 자주 접근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언제 봤었지? 검색 기록이나 광고 같은 걸 뒤져 보면 확인하기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흔한 문구라고 하기도 했었지. 지호는 지윤에게 이주원 각성자에 관한 걸 좀 알아낸다면 알려 줄 수 있겠느냐고 협조를 구한 다음 노파심에 덧붙였다.
[이지호 : 저도 위험한 일 있을 것 같으면 피할 테니까, 다들 혹시 좀 수상한 것 같으면 접근하지 말고 물러나기 해요.]
[강하나 : 아니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를;;]
[최소민 : ㅋㅋㅋㅋ솔직히 지호 씨가 제일 조심해야죠. 저희는 현장에 뛰어드는 것도 아닌데. 만약에 거기 가서 뭐 이상한 거 찾으면 저한테 바로 연락해요. 어차피 지금 대기 중이라 곧장 갈 수 있어요. 알겠죠?]
텍스트 너머로 느껴지는 다정함에 지호는 방긋 웃으며 이모티콘을 보냈다. 날아오며 방향 몇 번 수정한 것 같은데 벌써 판교가 코앞이었다.
[이지호 : 그럼 저 균열 들어가요. 위치 정보 간간이 공유할게요.]
균열 어플에는 관련 기능이 있다. 지호는 본인 그룹에 속해 있는 병아리즈에 공유되도록 설정을 변경하고 판교 균열에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