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온갖 추측으로 머리가 팽팽히 돌아가는 사이 괴물들이 움직였다. 커다란 팔이 느릿하게 위로 올라갔다.
이윽고 쾅, 내리친 지면이 사정없이 파괴됐다. 그 힘을 짐작한 팀장의 얼굴이 햐얘졌다.
“도우러 가야 하지 않을까요?”
“여섯 사람으로 한 놈 상대하기도 힘들 텐데 둘에 숨은 놈 하나라니…….”
외부에서 대기하던 이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들어가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다. 정신계 능력자들조차 그랬다. 괴물을 상대하며 동시에 세뇌를 막아야 하는 상황이니 당연할 터였다.
지호 역시 이를 악문 채 경계만 노려보았다. 빛 너머로 괴물의 윤곽이 잡힌다.
“직접 진입 금지! 초기 구조와 같이 염동력 능력자 앞으로!”
선발대 팀장 뒤로 두 번째 팀장을 맡은 이가 무전을 잡았다. 지호 역시 대열에 합류했다. 공기가 찌릿찌릿 마음을 찌르는 것 같았다. 숨죽이는 대치 끝에 괴물들의 모습이 또렷해지자, 팀장이 또렷이 신호했다.
“발사!”
염동력 능력자들이 던지는 물건들과 이형 에너지 능력자들이 쏘아 낸 힘이 동시에 날아갔다. 외부에서 공격이 날아올 줄 몰랐던 모양인지 괴물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쪽이 보일까? 지호는 새로이 던질 돌덩이 단면을 날카롭게 변형시키며 내부를 살폈다.
다른 이들이 노린 건 괴물이었지만, 지호가 노린 건 그 괴물과 퀸 사이의 연결체였다.
그게 꽂혀 있는 괴물들이 퀸 주변을 맴돈다. 괴물을 제거할 수 없으면, 그들의 연결이라도 끊으면 되는 거 아닌가?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의 공격이었던지라 괴물의 대응이 느렸다. 심지어 헌터들은 선발대보다 연결 부위 자체를 타격하기 훨씬 좋은 위치였다.
“저걸 끊어요!”
지호의 외침에 주변 헌터들이 호응했다. 두꺼운 근육 선 같은 촉수가 꿈틀거렸다. 통각을 느끼는 걸까? 괴물이 사납게 뒤로 달려들었으나 곧 빛으로 화해 사라졌다.
균열을 통과해 나올 수 있었다면 곧장 헌터들을 덮치는 모양새였기에 일부가 뻣뻣하게 긴장했던 어깨를 풀었다. 놈들은 균열을 나올 수 없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지.
균열 너머로 넘어간 한 놈이 멀리 갔을 턱이 없다. 선발대는 나머지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들을 관찰하는 것을 마주 응시하며 집중했다. 습격해 오는 놈의 위치도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한 놈일 때 처리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등에서 나온 다리로 걷는 놈만 남았어요. 절지동물과 유사한 구조. 다리 관절을 공격합니다. 인간 신체 부위의 움직임 관측되지 않음.”
“엄호합니다.”
다수의 헌터가 던질 것을 집어 들었다. 지호는 크기가 큰 것보다는 날카로운 것이 위협적일 것 같아 바닥 콘크리트의 일부를 길쭉한 창 모양으로 변형했다. 관련 능력이 있는 헌터들 역시 비슷한 작업 중이었고, 염동력만 있어 변형할 수 없는 옆 동료에게 날카로운 도구를 건네기도 했다.
괴물은 전조도 없이 움직였다.
곤충과 같은 다리가 바닥을 가로지르자 다각다각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선발대 지척에서 고개를 번쩍 든 괴물이 아가리를 벌렸다.
일반적인 입이 아닌지라 인간형을 유지하고 있던 이의 머리가 절반으로 갈라졌다. 역겨운 장면에 몇몇이 얼굴을 찡그렸다.
공격은 방벽에 막혔다. 두어 번 방벽을 씹으려 하던 괴물은 머리인 줄 알았던 입을 다물며 그대로 방벽 위로 올라갔다. 무게가 더해지자 방벽 담당 헌터가 신음하며 비틀거렸다.
신호에 따라 공격이 가해졌으나 역효과였다. 놈은 공격이 날아오는 방향을 알고 방벽 뒤로 뛰어내려 날붙이들을 피했다. 오히려 선발대의 방벽을 내리찍은 건 이쪽의 공격이었다. 그는 눈에 띄게 충격을 받으며 휘청였다. 아뿔싸 싶어 공격 중단 신호가 떨어졌으나 이미 방벽이 눈에 띄게 얇아진 다음이었다.
“지원 들어가야 돼요!”
“하지만 퀸이 안 보여. 위험해!”
“다른 지역에서 구조대 진입 중. 생존자 구출 중입니다. 여기 전투조만 대기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저거랑 싸울 순 없어요. 퀸 패러사이트한테 다른 헌터들을 넘겨줄 생각이세요?”
지휘 팀 의견이 갈리기 시작하자 내부에서 공격에 노출되어 있던 선발대 팀장이 잡음 섞인 무전으로 토론을 중단시켰다.
“오솔잎 팀장 재량으로 선발대 탈주를 알립니다. 생각보다 고등 개체고, 경계 부근을 떠나지 않는 위치에서 놈들을 유인하는 방식으로 상대해야 할 것 같음. 후퇴합니다.”
보현 또래로밖에 보이지 않는 헌터였으나 눈빛이 깊고 신중했다. 그는 무릎이 꺾여 몇 번이고 주저앉는 방벽 담당 헌터를 업으며 방벽 유지에만 전념하라고 지시했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헌터들은 계속해서 공격을 날리며 엄호에 전념했다. 건물과 방벽 위를 오가며 선발대를 곧 잡아먹을 것처럼 굴던 괴물은 일정 거리 이상은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지호를 위시한 일부 헌터들은 그 괴물과 퀸 사이에 연결된 선을 공격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걸 알고서 균열 쪽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약간 이동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진입한 헌터들을 보호하는 게 순서다.
선발대는 천천히 물러나 균열을 빠져나왔다. 지호는 퀸이 왜 코드 레드 개체라고 불리는지 깨달았다. 이런 전투는 본 적이 없었다. 보통은 먹기 위해 달려들고, 상대가 안 되는 것을 알고 도망친다. 괴물에게 그 두 가지 패턴 외의 행동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방벽에 압박을 가하는 방법도 알고 있고, 다른 곳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영리하게 이용해 오히려 헌터들을 타격하는 모양새는 지나치게 위협적이었다.
“저게 퀸과 연결되어 똑똑한 개체인지 그냥 똑똑한 개체인지 알 수가 없군.”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지호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괴물들은 균열 부근을 왔다 갔다 하며 선발대를 찾으려고 돌아다녔다. 균열 저편으로 다시 들어가 버리면 추적하기 곤란하기에, 후발대로 계획되었던 다른 팀이 백여 미터 떨어진 다른 방향에서 균열로 진입했다.
다행히 퀸의 호위대는 그들을 쫓아 다시 공격을 가해 왔다. 확실히 지능이 있다. 다른 괴물들과 달랐다. 몇 번이고 위치를 바꾸어 놈들을 유인하고 균열에 진입한 헌터들을 엄호하면서 다들 지쳤다. 여전히 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다행히 처음 위치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놈들을 끌고 올 수 있었다.
구조 작전에 투입된 강남 쪽 헌터 보고가 속속들이 올라오면서 오솔잎 팀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대로 시간을 끈다. 놈들이 시간 끈다는 걸 알아챌 수 없도록 해야 해. 다음 팀부터는 공격에 들어간다.”
“어떻게요? 저희가 균열 바깥쪽으로 공격하면 대기하는 헌터들이 맞을 것 같은데.”
일동은 침묵했다. 균열을 어떻게 통과하지?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가 영영 깨어나지 못하리란 추측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많은 1세대 헌터들이 그러했으니.
오솔잎은 다 마신 물병을 구겨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은 휴식이 끝났다.
“팔달산 뒤편으로 구조 작업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저쪽 편에 괴물이 얼마 없다고도 하고요. 어쩌면 이쪽으로 오고 있을 수도 있죠. 퀸이 조종할 수 있는 괴물이 저렇게 연결된 놈들만이 아닐 수도 있고.”
전투조의 최종 목표는 서호 부근으로 퀸과 그 수족들을 유인하는 것이다. 잘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화서동 부근에 균열 방비가 잘된 아파트가 있어 그쪽으로 유인해 가면 된다. 일차적 목표였다.
“다행히 화서 공원 방면으로는 피해가 적어요. 여기 숙지산 앞 아파트 단지까지 데려가는 게 목푭니다. 구조 끝난 지역으로 최대한 데려가야 수원역 부근에 고립된 사람들 구조도 빨라져요. 퀸이 균열 중심으로만 이동하지 않고 계속 경계에 머물면…….”
오 팀장은 말끝을 흐리며 웃었다. 무슨 보고가 올라왔는지 알 수 없다. 좋지 않은 소식인 모양이었다.
“속도를 올려야겠군요. 세류동과 매교동 방면으로 동탄 센터 지원이 올 거예요. 코드 레드 개체들이 몰려다닌다는 가설에 힘이 실리는 걸 원치 않았는데, 식별 암호가 있습니다. 모르는 헌터를 만날 시 반드시 확인할 것. 균열 어플을 통해 세 시간에 한 번 갱신될 겁니다.”
지호는 어플을 통해 올라오는 도플갱어의 출현 소식을 접했다. 곧 헌터 접근 메뉴 한쪽에 암구호 정보가 떴다.
“퀸과 도플갱어가 서로 사이가 안 좋길 바라야겠어요.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양쪽에서 움직이는 작전을 펼치고 있는 거라면 정말이지 끔찍할 테니.”
오 팀장은 소매로 대충 땀을 닦아 내며 팀원들을 일으켜 세웠다. 다시 경계로 진입할 시간이었다. 경계와 경계 저편을 오가던 괴물의 움직임이 뜸해졌다. 놈들이 수상함을 느끼고 물러난 것인지 다른 곳으로 간 것인지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구조 팀 진입. 전투조 출발합시다.”
헌터들이 휴식을 끝내고 각자 자리로 향했다. 진입해 퀸과 괴물들을 유인하다 다친 사람들을 비롯해 에너지 유지가 어려운 사람들,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사람들은 치료기와 치료계 헌터의 도움을 받고 있었으나 그마저 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지호는 자기 에너지 총량이 남들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반가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구조자 숫자가 빠르게 올라간다. 그러나 사망자 숫자도 마찬가지로 오르고 있었다. 사망 확인자보다 생존자 파악이 먼저였기에 이쪽 속도는 빠르지 않다. 균열 안으로 들어온 팀을 보고 괴물 하나가 포효한다.
고릴라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는 팔이 커다란 괴물 하나는 땅을 쿵쾅쿵쾅 울리며 달려와 방벽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방벽 담당 헌터가 버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곧바로 방벽이 실낱처럼 얇아지자 당황한 팀원들은 곧장 방향을 틀었다. 치유계 헌터가 자기 살 힘까지 짜내어 방벽 담당을 보조하고 있었으나 다음 공격이 너무 빨랐다.
방벽이 깨졌다. 헌터들이 추풍낙엽처럼 흩어졌다. 방벽이 깨지자마자 미리 약속되어 있던 다음 진입조가 곧장 뛰어들었으나 팀원 하나의 다리가 고기처럼 으깨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듣기 괴로운 비명이 길게 울렸다. 구조를 위해 진입한 팀은 하나가 아니었다. 개중에는 정신 방벽이 없는 헌터들도 있다. 지호는 외부에서만 도울 수 있는 신세를 욕하며 곧바로 에너지체 대여섯 개를 띄워 올렸다. 바닥재를 변형할 시간이 없었다.
“고개 숙여!”
누군가의 거친 외침과 함께 헌터들의 머리를 스치며 날아드는 커다란 발톱. 처음부터 내내 모습을 숨긴 채로 그들을 노리는 또 하나의 괴물이다. 이쪽은 심지어 퀸과 연결되어 있지도 않았다. 모습을 온전히 드러낸 적도 없다.
외부 지원 팀이 날린 철근 몇 개를 한 번에 손에 쥐고 괴물의 공격을 받아친 어떤 헌터는 콘크리트 바닥을 흙 밟듯 뭉그러뜨리며 밀려났다. 뼈가 부러져 팔이 덜렁였다. 맙소사. 누군가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질겁하며 신을 찾았다.
일전에 한 번 같이 구조 팀에 속해 있던 신체 계열 헌터. 지호는 그의 이름이 김서영이라는 것과, 그 헌터가 자기를 업어 주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처음 균열에 파견되었던 때에 그를 돌봐 주었던 오솔잎 팀장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안 뛰어들 수가 있겠는가?
저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는 건 지호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어떤 움직임을 포착한 순간, 지호는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주변이 아주 느리게 보였다. 균열 뒤에서 빛으로 화하며 튀어나오는 괴물과 건물 그림자 속에서 달려 나오는 괴물이 동시에 시야에 잡힌다. 누군가 안 된다고 외치는 소리와 동시에 지호는 방치된 헌터들을 향해 에너지를 쏘아 보냈다.
시퍼런 이형 에너지 방벽이 너덜너덜해진 헌터들을 감쌌다. 괴물의 발톱과 이빨이 비슷한 타이밍에 방벽을 찢으려 했고, 지호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괴로워하면서도 방벽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보현을 지키기에 실패했을 때, 멀리서 방벽을 만들 수 있었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거라고 자책하며 몇 날 며칠을 여기에 매달렸다.
결과적으로 지호가 성공한 건 자기를 지키는 대신 멀리 떨어진 남을 지키는 일이다. 방벽을 두 개 다른 장소에 유지하는 건 아직 어려웠다.
“방벽 쳐!”
아는 목소리가 소리쳤다. 그러나 지금 본인에게 에너지를 돌리면 저 사람들이 다친다. 지호는 자기를 향해 돌아오는 시선을 느꼈다. 동시에, 건물 저편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눈이 선명하게 붉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