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82화 (83/260)

82화

10. 방해들

센터로 돌아오기 무섭게 박 팀장은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가뜩이나 바쁜 사람 불러다 일을 시킨 거라 지호나 김 반장 모두 불만을 가질 턱이 없었다.

게다가 지호가 불만을 가질 대상은 박 팀장이 아니었다. 연수 센터로 돌아온 김 반장은 돌연 지호를 빈 연구실 한쪽으로 불러 명령했다.

“수원 균열 안정기까지 집중 훈련이다.”

“네? 잠깐만요. 설마…….”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김 반장의 모습이 여럿으로 쪼개졌다. 예고도 안 하고 그러는 게 어딨냐고 비명을 지른 지호는 김 반장의 본체를 찾아낼 때까지 거기서 나갈 수 없었다. 그로부터 삼 일, 지호는 마지막까지 김 반장을 찾지 못했다. 신체 계열 능력자인 지호는 멀쩡하게 걸어 나왔으나, 덕분에 이틀 꼬박 밤을 새운 김 반장은 반쯤 녹초가 되어 수면실에 푹 쓰러졌다.

“이야, 김 반장 독하네. 졸기라도 하면 금방 환상이 깨지거든요. 커피 마실래요?”

“저도 눈 좀 붙여야 할 것 같아요. 몇 시간 있으면 수원 균열 안정기잖아요.”

성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홀짝였다. 이쪽도 만만치 않게 얼굴이 상했다. 다른 헌터들보다 연구 팀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은 상황이다. 거기에 지호가 가지고 온 것도 분석해야 하니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이 없는 게 용할 정도다.

“어떻게 차도가 좀 있긴 했나요? 새로 알게 된 것들이나 뭐 대처법이나 아무거나 제가 모르는 뭔가가…….”

“그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거면 좋았게요. 그나저나 지호 씨 근신 안 풀려서 수원 균열은 못 가지 않겠어요?”

“박 팀장님한테 말씀 좀 해 주세요. 손 하나라도 더 필요하잖아요…….”

“저도 찬성하기 어려운데요. 임시 헌터에, 심지어 정신계 공격 하나 인지하기 어려운 상태의 각성자라고요. 저쪽에 싱싱하고 먹음직스러운 먹잇감 하나 던져 주는 거랑 다를 바 없지 않을까요?”

“그럼 진입하지 않고 경계 밖에서 도울게요. 그 정도는 괜찮죠?”

언제나 필요한 인력은 부족한 법이었다. 성 팀장은 그 정도야 용인될 것 같다고 물러나면서 어느새 바닥을 보인 컵을 탈탈 털었다.

“혈관에 커피가 흐르는 것 같네. 참, 양 박사가 지호 씨 자료 분석 맡았거든요? 나는 주안 쪽 담당이라서. 근데 다행이었다고 하더라.”

“다행이요?”

“주안 균열이 열릴 때 그 앞에 있던 각성자가 지호 씨여서 다행이라고요. 이형 에너지를 다루는 수준이 낮은 사람이었다면 수원 균열과 큰 차이 없는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다던데요. 자세한 수치는 나중에야 나오겠지만……. 감이 좋은 사람이니까요.”

양 박사 이야기를 할 때면 그 피로하던 얼굴도 슬쩍 풀린다. 지호는 성 팀장의 표정 변화를 모른 척하며 감사를 표했다.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본다고 뚝딱 나오는 건 아니었을 테니.

수면실에 누워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았다. 켜진 채로 삼 일이나 방치되어 배터리가 다 닳아 있었다. 조금 기다리니 전원이 들어온다. 부재중 전화가 왜 이리 많은가 했더니 사방에서 연락이 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온 연락처들을 쭉 훑던 지호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됐다. 뉴스 기사가 있다. 모르는 연락처로 온 장문의 메시지도.

A사 기자 이강민입니다. 하고 시작된 메시지 뒤로 지호 본인 사진이 몇 장이나 첨부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괴상한 자세다. 날거나, 날아가려고 하거나, 착지하거나, 그래서 사람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는.

하나같이 급한 상황들이라 신경을 못 썼다. 그러나 갑자기 피해를 본 사람들에겐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었을 것이다. 그 기자는 사진을 보낸 다음 인터뷰를 하고 싶다며 자기 연락처와 메일을 남겼다.

인터뷰는 중요하지 않다. 이름이며 뭐며 보자마자 잊었다.

다만 예전에 보현이 차 태우러 왔을 때가 생각났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운전대를 잡았었지. 카메라 망가뜨리려다 차도 망가뜨렸었고…….

연락 온 것들을 쭉 읽으면서 내심 기대했다. 보현이 눈을 떴다는 소식이 남아 있기를. 부재중 전화 목록에 언니의 이름이 있기를.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지호는 앞으로 움직일 때는 좀 더 조심해야겠다고, 필요하다면 선글라스를 꼭 끼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하며 필요 없는 문자들을 지웠다. 연락처는 어떻게들 알았나 모르겠다.

모르는 연락처 문자들은 보지도 않고 일괄 삭제했다. 온갖 스팸이 다 와 있었다. 요즘 광고는 다채롭게 온다. 하나는 문구가 웃겼다. [균열까지도 배송해 드립니다. 전국 양배추 운송 연합.]

하나같이 웃음거리도 안 되는 시시한 소식들뿐이다. 지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아무리 신체 계열이래도 조금 정도는 자야 할 테니.

균열이 열린 후로부터 72시간이 지났다. 휴식은 짧고 쌓인 피로는 잔뜩이라 김 반장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협회 전체에 울리는 요란한 알람에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지호 역시 번쩍 눈을 떴다. 사실 잠을 자지는 못했다. 곧 균열로 출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영 잠이 오질 않아 그랬다.

“이동 포트로 가자. 혼자 움직이지 말고.”

“괜찮으시겠어요?”

“안 괜찮으면 어떻게 하겠나?”

균열 진입을 앞두고 너무 무리했다. 김 반장은 얼굴을 거칠게 두드리며 성큼성큼 움직였다. 지호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뒤를 쫓으며 질문했다.

“반장님도 들어가시는 거예요? 그럼 왜 며칠간 저랑 훈련하면서 무리하신 거예요?”

“퀸이 데리고 있을 놈들이 어떤 수준인지도 모르는데, 처음엔 당연히 최정예가 들어가지. 놈들을 탐색한 다음에 후발대가 들어갈 거다. 나는 정신계 능력밖에 없는 연약한 헌터인데 당연히 후발대지. 하지만 상황 파악할 사람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하지만 지금 상태론 도움이 안 될 거예요.”

“나도 안다. 그래도 그 삼 일간 네게 정신계 공격이 조금이라도 익숙해지길 바랐던 거야.”

“어차피 전 못 들어가잖아요?”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법이다. 최정예 전투 요원을 썩히는 건 아까운 일이니까.”

지호는 유일하게 모든 능력을 다 보유한 유일한 사람이다. 정신계 능력마저 약간 정도는 있었다. 혹여 퀸 패러사이트가 상상을 초월하는 강함을 보인다면 선발대를 구하러 일부가 균열로 들어가야 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퀸의 촉수 개수엔 한계가 있다. 김 반장은 말할 수 없는 최악의 사태를 생각했다.

선발대가 전부 세뇌당하게 된다면.

퀸 패러사이트의 세뇌는 빠르지 않았다. 어떤 원리인지 밝혀진 바 없으나, 촉수가 꽂히자마자 놈의 수족인 것처럼 움직이지는 않는다고 했었다. 일전에 당한 헌터의 동료들이 피눈물 흘리며 찍은 영상 자료가 일부 남아 있어 대충은 추측할 수 있다.

그러니 선발대가 당해 세뇌당하는 동안, 지호를 비롯해 정신계 능력 없는 헌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균열에 뛰어들어 생존자들을 구할 수 있다.

아무도 찬성하지 않겠지만, 누구도 그 순간에 반항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목숨을 중시하느냐는 다음 문제다. 구할 수 없는 사람과 구할 수 있는 사람 중에는 후자를 택하도록 훈련했으니 그렇게 따르겠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늘 최악을 상정하고 움직여야 했다.

이동 포트 앞에 좀비처럼 나타나는 이동 능력자들은 반쯤 죽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이동 능력을 가진 헌터들은 지나칠 정도로 한계에 부딪혀 있다. 여기 남은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진작 균열 앞으로 따로 이동해 갔다. 그래야 중요할 때 이동 능력자들이 다시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지호 씨. 조심해야 해요.”

지호네 병아리 무리 중에선 제일 먼저 임시 자격증을 뗀 소민이 걱정스레 지호 손을 잡았다. 이동하기 위한 접촉일 뿐이지만, 지호는 맞닿은 손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어차피 후방 지원 팀이니까요!”

소민은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둘의 대화가 길 수는 없다. 그를 비롯해 몇 사람과 함께 이동을 시작한 소민은 몇 군데 경유 지점을 거쳐 수원에 도착했다.

“살아서 다시 봐요.”

번쩍, 빛과 함께 소민의 에너지 파장이 옅게 남았다 흩어졌다. 연수 센터에서 넘어온 사람은 지호를 제외하면 전부 정신계 능력자였다. 본래는 지호도 여기 와 있어야 했지만, 김 반장이 훈련이 필요하다고 고집을 부려 따로 와야 했던 셈이다.

“임시로 각 팀에 인원 배정할 겁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하니까.”

만약의 사태. 정확한 언급은 없으나 다들 표정을 굳혔다.

균열을 지휘하는 사람은 일전에 지호를 데리고 구조대로 진입했던 1팀 팀장이었다. 보현과 마찬가지로 1세대 헌터인 그였기에 선발대에 포함되는 건 당연해 보였다. 지호는 임시 편성을 받아 모르는 조에 투입되면서 선발대로 나선 사람들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소민의 인사에 담긴 미약한 소망처럼. 지호 역시 그들과 살아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랐다.

큰 신호는 없다. 균열 내부의 괴물들이 외부의 정보를 얼마나 인식하는지 알 수 없으니까. 혹여 소리를 듣는 놈이 있을까 싶어 여기서 떨어진 곳에서 교란하는 팀도 있다고 했다.

퀸이 관측된 가장 마지막 지점 부근에서, 1진입 팀이 대형을 잡았다.

제 숨소리조차 지나치게 크게 느껴지는 고요. 호흡을 고르던 선발대는 작은 수신호와 함께 균열로 진입했다.

색이 일렁인다. 물감에 물을 타듯이 옅어지는 빛깔들.

그들을 반겨 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감지계 능력자가 조심스럽게 파장을 퍼트린다. 지호는 눈에 힘을 집중하려다 남들처럼 선글라스를 썼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쓸 힘은 다 아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다.

선발대가 몇 걸음 떼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침묵을 깨고 저기! 하고 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선발대는 당연히 그 외침을 들었다. 방벽이 펼쳐지기 무섭게 뭔가가 방벽에 요란하게 충돌했다.

충격에 대비하지 못한 헌터 하나가 바닥에 요란하게 엎어졌다. 다행히 누군가 그의 다리를 잡아 멀리 굴러가는 것은 면했다. 균열 경계가 갑자기 하얗게 빛났다. 지호를 비롯해 외부에서 대기 중이던 헌터들은 그게 무슨 신호인지 너무 잘 알았다.

“일부러 경계 밖에 있었어?”

균열 쪽에서 공격해 온 괴물은 방벽에 부딪히기 무섭게 그대로 튕겨 나가 도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지금, 선발대의 등 뒤로 균열 경계 너머의 괴물들이 천천히 나타나고 있었다.

헌터들이 지나갈 때는 천천히 빠져나갔던 색은 눈이 아플 정도로 하얀 빛깔이다. 경계 위치를 파악하던 건 이걸 위해서였을까? 얼굴을 단단하게 굳힌 선발대 팀장이 쓰러진 팀원을 일으켜 세우며 주변을 훑었다.

“퀸 패러사이트의 앞에 있던 두 놈으로 확인됨.”

이를 악문 음성이 또렷이 전달됐다. 퀸 패러사이트는 균열 경계 너머에 있을 것이다. 놈에게 연결된 촉수가 길게 늘어져 경계 언저리에서 슬그머니 빛으로 변한다. 고작 둘밖에 보이지 않는다. 먼저 공격해 온 놈은 퀸의 수족이 아니었을까? 괴물들끼리 고등한 의사소통이 가능해 그런 지시를 내렸단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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