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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80화 (81/260)

80화

동주는 피식 웃으며 손을 접었다. 무슨 소리지? 지호는 혼란스러워하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심지어 술도 한 모금 마시지 않았었다. 술을 마신 건 승찬뿐이었던 데다…….

뭔가 기억에 없던 순간이 불쑥 떠올랐다. 본인 기억이니 떠오른 것이 분명한데, 어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상한 장면이었다. 절대 아닌데. 지호는 당황스러워하며 동주를 보았다.

“저 진짜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그런데 생각난 게 있지?”

“아니 근데 없었어요. 그런 순간은 한 번도 있을 수가 없었는데.”

“맞아. 내가 끼워 넣었거든.”

지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영화와 짜깁기해 넣은 거라며 그 묘한 순간을 그대로 읊은 동주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까 뭐라고 했나, 내가? 내가 하는 것들을 막아 보라고 했었잖아.”

“기억 날조를 할 줄 안다고까진 안 하셨는데요!”

“한순간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거지, 그걸 기억으로 만들 수는 없어. 좀 기다려 봐. 어떤 순간이 있었는지 생각이 나나?”

뭔가 생각할 수 없는 장면이 지나갔단 것밖에 생각이 안 났다. 심지어 그 장면은 지호와 승찬 둘 다 보이는 이상한 앵글이다. 그럴 수가 없지. 지호의 눈으로 지호 얼굴을 볼 수는 없으니.

심지어 그 기묘한 장면은 점점 흐려졌다. 동주는 이런 방식으로도 간섭해 올 수가 있다며 태블릿을 켰다.

“어디서 발견됐던 놈인지 기억이 잘 안 나는군. 육체가 강한 놈은 아니었어. 정신계 능력으로 거의 쏠려 있던 것 같고. 그쪽에서 찍힌 영상이다. 잘 봐.”

노이즈가 많이 끼고 흔들림이 심한 영상이었다. 커다란 곰 인형 같은 외형에 실제로 만지면 보송보송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부는 바람에 솜털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한 무리의 헌터들은 그것과 마주쳐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가 괴물이 선 곳과 다른 방향을 향해 온갖 공격을 퍼붓고는 처리했다며 이동해 갔다. 아마 이 영상은 균열에서 만나는 것들을 촬영하다가 나중에서야 발견되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뒤에 적을 남겨 놓고 이동할 리는 없으니.

“정신계 관련 공격들은 영상에 잡히지 않아. 이놈은 자기가 죽는 환상을 다수에게 보여 주고 자취를 감췄다. 그러고도 헌터들은 자기들이 당연히 놈을 사냥했다고 생각했지. 기억을 끼워 넣은 거야.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나고, 괴물이 죽고 나서 어떻게 되었는지가 생각나지 않자 상황을 이상하게 여긴 헌터들은 영상을 확인했지. 그리고 이런 놈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거고.”

“외국에만 있는 놈이겠죠?”

“일단은 이 이상 발견된 적은 없어. 하지만 없다고 할 수도 없지. 보다시피 촬영분으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놈이니까.”

“다른 정신계 공격하는 괴물들도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그 전까지 방벽을 잘 익혀야지. 지금처럼 밀면 미는 대로 밀리지 말라는 뜻이야.”

어느새 곁의 김 반장이 두 사람이다. 또 언제부터 이랬지. 지호는 한숨 쉬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알았어요. 주의할게요. 이런 식으로도 응용이 가능한 능력일 수 있단 거죠.”

“수원 균열에서 확인된 퀸 패러사이트 외에도 도플갱어 역시 나타날 수 있어. 네가 보고했던 그 괴물도 나타날 수 있고, 영상 속 이놈 역시 마찬가지지. 대원이 정신 지배에 약간이라도 저항할 능력을 기르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뜻이야.”

“그래서 지금 절 따라다니면서 온종일 이러고 계실 거란 말씀이세요?”

“근신 중에 헛짓 안 하나 감시도 할 겸, 훈련도 할 겸. 좋은 게 좋은 거지.”

김 반장은 태연히 지호의 등을 토닥였다. 한쪽은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닿은 쪽에서 이질적인 느낌이 났다. 이쪽이 진짜구나. 인식하는 순간에 김 반장은 도로 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래. 그런 식으로 낯선 감각을 잡아내는 게 중요하지. 정신 간섭을 하는 개체는 그 괴리를 예민하게 인식하거든. 자네가 알아챘다는 사실을 나 역시 알 수 있단 뜻이지. 사실상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니까.”

“좀 이상하네요. 제 머리에 들어와 있으시다는 건가.”

“불편하면 어서 쫓아내려고 노력하도록.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지도에서 지호가 말하는 것과 비슷한 환경의 동네를 몇 군데 짚어 준 김 반장은 끼고 있던 선글라스 옆면을 두어 번 두드렸다. 뭔가가 동작하는 작은 비프음이 들렸다.

“가자고. 수색 작업은 언제나 시간에 쫓기는 법이니.”

수색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단서가 없었으나 지호는 일단 관교동 등지와같이 수리 순서가 무한정 밀려 있는 곳들을 찾았다.

추적하는 방법을 배워 본 일이 없으니 지호가 수색하는 방식은 무식하기 짝이 없다. 일단 찾아가 능력으로 훑어가며 사방을 뒤지는 것.

약 한 시간가량 입을 다문 채 지호를 따라다니던 김 반장은 결국 나직한 욕설을 토했다.

“설마 얼마 전에 찾아냈다는 것도 이런 식으로 일일이 뒤져 가며 찾은 거냐?”

하하하. 지호는 어색한 웃음을 입가에 매단 채 다른 후보 지역을 찾았다. 버스 노선이 끊긴 곳, 그리고 차량 통행이 적은 곳 위주로 찾으면 조금 더 쉽다. 김 반장의 손이 불쑥 끼어들어 패널 조작을 막았다.

“조건을 더 추가해. 지금 찾으려고 하는 게 마정석 조각들이고, 일전에 다른 사람들을 이용해 치료하는 봉사를 하고 있었다고 했잖아.”

“그렇죠. 그렇게 위장하고 있었지.”

“그게 정말로 위장일 뿐이었다면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지. 누군가에겐 정말 효과가 있는 치료였을 거다.”

이형 에너지를 쐬는 것만으로 몸이 나아지는 종류의 통증이라면 그럴 거라고 말을 덧붙인 김 반장은 아예 지호의 핸드폰을 빼앗아 우선 조건을 설정했다. 지호는 목을 쭉 빼고 김 반장이 무얼 하는지 보았다.

“물건을 찾을 게 아니라 사람을 찾을 거라면 우선순위를 달리해라. 그런 흔한 마정석 조각들로는 아무도 못 찾아. 그걸 찾는 제일 빠른 곳은 장인들이 쓰고 남은 것들을 가져가 축전지를 만드는 업체들이겠지. 하지만 거기에 네가 찾는 사람들이 없는 건 당연할 터. 국가 복지 지원 대상자들 같은 취약자들을 노려 실험하는 사람들로 보였다면 차라리 그걸 추적해야지.”

말을 뱉은 김 반장은 후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알아서 깨달았어야 했나 보다. 한 시간을 따라다녀 보곤 그 비효율적인 행동들에 훈수를 둘까 말까 하다 물러나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다. 아마 성격 급한 김 반장 특성상 이것도 꽤 오래 기다려 준 것이 분명할 것이다.

“사람들을 수색해도 되나요? 저한테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 걸리면 복지 대상자들이 모인 동네에 가서 미약한 치유력이라도 뿌려 봐라. 일부에게는 효과가 있겠지. 가진 능력으로 남을 돕는 건 근신 대상자라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제가 균열에 뛰어들지만 않으면 다 해도 되는 근신인 것 같은데요?”

“사실 맞지. 남 돕는 걸 왜 막겠나? 돕지는 못할망정. 근데 균열에 들어가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같은 행동이니, 이것만큼은 막겠다는 그런 의미의 근신이야. 너는 너를 챙길 줄 모른다. 적당히 구른 헌터들처럼 자기를 먼저 챙긴 다음에야 남을 돕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아닌데요? 아닌데.”

“입에 침부터 바르게. 아무튼, 그런 식으로 추리면 만수동 부근이 꽤 확률이 높아 보이는데. 장수동이나 서창동으로 넘어가는 방면으로 인천 대공원도 있고. 이쪽에도 균열이 몇 번 열렸었지. 공원은 엉성하게나마 복구됐지만, 옛날만큼 사람이 몰리지도 않고.”

“저도 어릴 때 가 본 적 있어요. 대균열 이후에는 아니지만…….”

“그나마 고속 도로를 끼고 있어서 지원 팀이며 물품이며 들어가기 수월했었는데, 이후로 제대로 복구되지 않아서 무인촌이 꽤 많아졌다고 들었다. 좀 더 가면 구청이 있는데, 딱 그쪽까지만 복구해 놨을 거다. 내 생각엔 이쪽이 좀 더 가능성 있어 보이는군.”

지호는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서쪽과 남쪽을 살피느라 동쪽으론 가 본 적이 없었다.

“그 사람들을 찾으면 그 후엔 뭘 하고 싶나?”

김 반장의 물음이 미세 먼지 낀 하늘만큼 희뿌연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후엔? 뭘 할 수 있을까. 당장 의미 있는 어떤 일도 하고 있지 못한데. 여기마저 매달리지 못하게 되면 그 후엔 뭘 할 수 있지?

센터에서 한계를 시험하는 헌터들처럼 마냥 자신을 내몰아 훈련에만 매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보현이 깨어날 때까지 부지런히 병원 문턱을 드나들 수도 있겠지.

다른 균열 지역에 찾아가 수복 작업을 도울 수도 있다. 지호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해야 할 일은 마땅히 없었다.

여전히 지호는 있을 곳을 찾아 헤맨다.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건 인간이기에 갖는 목표일까.

“잡아 봐야 알겠죠. 왜 이런 실험을 하는지, 뭐 때문에 균열을 열려고 하는지. 사람들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이유가 뭔지 그런 것들도 물어봐야 하고…….”

“균열을 열려는 사람들은 여럿 있었지.”

“왜요? 세상 망할 때가 되었으니 다 같이 망하자고? 인터넷 뉴스마다 꼭 달리는 파괴적인 덧글 같은 그런 심정으로요?”

“주안 공단의 소형 균열 소식을 들었나 모르겠군. 아마 대원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지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해당 지역에 억류되거나 숨어 있는 생존자는 없었다. 애석하게도 사망자와 부상자가 있긴 했지만, 그 이상 신경 써야 할 사람은 없었단 의미다.”

다행이었다. 지호가 그보다 큰 사고를 막아 냈던 일이었다. 그의 표정이 숨길 수 없이 밝아지자 김 반장은 픽 웃으며 만수동 쪽에서 주안 쪽으로 지도를 돌렸다.

“고작해야 1km도 되지 않는 반경의 균열이야. 내부에 살려야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구 팀 반절은 이제 여기 매달리고 있지. 균열이 어떤 식으로 생기고 사라지는지, 여기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한 요소는 무엇인지, 괴물들의 생태까지는 파악하기 어렵더라도 균열 자체에 관한 연구는 활발히 이어질 수 있지. 혹여 큰 사고가 벌어진다 한들 일반인이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연구 자료를 얻어 낸다는 비난을 피할 기회니까.”

어차피 수원 균열 안정기까지는 삼 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일반인과 신체 계열 퓨어 헌터뿐. 그러나 퀸이 나타나기까지 했으니 실제로는 3일간 진입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럼 안정기까지는 다들 주안 쪽에 있으실까요?”

“최소한의 구조 인원 정도는 외곽에 배치할 거다. 퀸을 감시할 인력도 필요하긴 해. 다들 자기가 뭘 해야 할지 정확히 모르지만,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니 대원 역시 그렇게 하면 된다.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게나.”

김 반장의 경쾌한 발언에 지호는 눈을 한참 끔뻑이다 조금 늦게 대답했다.

“반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줄은 몰랐어요.”

“왜. 좀 더 판에 박힌 꼰대일 줄 알았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야. 지금도 자네 감시차 나와 있지 않나. 무슨 사고 칠지 몰라서.”

동시에 김 반장이 둘로 늘어난다. 도대체 어느 틈에. 지호는 한숨 쉬며 방금 나타난 쪽 김 반장의 팔을 찰싹찰싹 쳤다. 이쪽이 진짜다. 다른 쪽으로 손을 휘젓자 환상은 금방 사라졌다.

“저랑 대화하고 있던 게 가짜였다니요!”

“언제 어디서 공격이 들어올지 모르니 항상 긴장하고 있게나.”

김 반장은 지호의 반응을 재미있어하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험악한 인상과 그보다 더 무서운 몸. 그와 함께 걷고 있으면 근처를 스쳐 가는 사람조차 없어 길을 빨리 지나가는 데 유용했다.

만수동으로 가는 버스를 검색하려던 지호는 뜻밖의 도움을 받았다. 해쓱한 얼굴로 센터를 나왔던 이주원 각성자와 마주친 것이다.

“어, 안 가셨네요.”

지호는 인사하려고 입을 열려다 김 반장이 먼저 손을 쑥 내미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나한테 하는 인사가 아니었구나. 약간 부끄러웠지만 김 반장과 서 있는 사람은 누구나 반쯤 투명인간이 되기 때문에 약간은 익숙한 일이다. 센터에서도 종종 그랬으니까. 김 반장은 덩치나 존재감이나 아무래도 남들을 손쉽게 압도하기 마련이라…….

“어딜 가?”

“누나가 김 반장님 수원 쪽 파견 나가셨을 거라고 그랬거든요. 근데 이 앞에……. 임시 헌터님과 함께 계실 거라곤 생각도 못 했네요.”

“나한테 볼일이라도 있었나?”

“따로 찾아뵙죠. 듣는 귀도 있고.”

이주리 헌터가 화낼 때 지호를 챙겨 주었던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보니 남매가 닮았다. 얼굴뿐 아니라 태도까지.

김 반장은 콧방귀를 끼더니 다시금 떠나려던 주원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억, 하고 목을 졸린 그는 반쯤 눈물 고인 눈으로 휙 뒤를 돌아보았다.

“아, 나중에 간다니까요!”

“그건 됐고. 인천 대공원 좀 데려다줘.”

터무니없이 무례한 태도에 가까웠다. 심지어 주원은 헌터도 아니다. 박 팀장이 그를 영입하려던 애타는 태도를 기억한 지호는 조마조마한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다행히 그때 같은 반발은 없었다. 심지어 주원은 김 반장과 친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면서 손가락을 두 개 펼쳤다.

“대신 다음에 알죠? 우리 누나 두 번 잡아 주셔야 돼.”

“이 주 내로 그렇게 하지.”

“좋아요. 이 병아리 분도 동행이신가?”

“쫓고 있는 집단이 있다는군. 혹시 알게 되면 좀 알려 줘.”

“쫓는 집단요?”

“심지어 거기 이동 능력자도 있다던데. 자네가 알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아니면 자네든가.”

주원은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호는 그게 주리가 표현하는 어처구니없어하는 태도와 꽤 비슷하단 걸 알곤 웃었다. 진짜로 얼굴만 닮은 게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거 평화주의자 모임인데 너무 그러지 마시고. 우리 싫어하는 것까진 이해하겠는데 누명은 억울해요.”

“누가 뭐랬나? 괜히 찔려 하지 말고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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