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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79화 (80/260)

79화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균열과 균열 사이를 횡단했던 보현만이 일부 답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성 팀장은 안타까움을 느끼며 말을 줄였다.

“만약 거기에서 생존하는 게 가능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가능했다면……. 우리는 실종자들을 찾으러 균열 저쪽으로 여정을 떠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어떨지 몰라 포기했던 때와 달리, 지금은 어느 정도 정보도 있고…….”

“아뇨. 헌터들 다 지쳤어요. 쉬어야 할 땝니다. 장거리 파견이라도 갔다가 만약 균열이 닫히면요? 잘 알잖아요. 왜 구출하러 갈 수 없는지.”

연구 팀 사람들은 두 사람의 대립을 보며 슬그머니 자기 할 일들을 하러 떠났다. 영상 분석 팀이 제일 먼저 사라지고, 나머지 팀원들도 제각기 떠나갔다.

마정석 변인 실험을 제외한 다른 연구 팀에는 양솔 박사와 같은 일반인이 더러 섞여 있었다. 분석용 감지계 도구들을 착용하는 이들을 곁눈질하며 양 박사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누구를 본 겁니까? 성 팀장답지 않게 동요하는데.”

지호는 눈치껏 물러났으나 그의 뛰어난 청력이 성 팀장의 속삭임을 잡아냈다.

“저희 팀원이었던 어린 친구 같아서요. 그때는 인력 부족이 더 심했었잖아요. 제대로 된 훈련도 없이 파견되기 일쑤였고. 몇 년이나 지나긴 했지만, 괴물이 된 모습으로라도 남아 있는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싶어서요.”

“성 팀장이 2세대 헌터였죠? 현장 뛴 게 벌써 삼 년도 넘게 지난 일 같은데.”

눈을 굴리던 성 팀장은 아직도 머뭇거리며 한쪽에 서 있던 지호와 눈이 마주쳤다. 근신을 받아 다른 할 일이 없던가. 순식간에 걱정과 염려, 불안을 갈무리한 성 팀장은 자연스럽게 웃어 보였다. 평소 같은 얼굴이었다.

“이런, 미안해요. 다른 쪽에 신경이 쏠려서. 균열 확장을 막았던 자료라면 우리 쪽도 보내자마자 분석하고 있었어요.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같이 보겠어요? 이지호 헌터도 감지계였으니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음, 저는 그 영상 자꾸 보는 게 좀 힘들더라고요. 저, 그리고요. 현장에 다녀온 친구가 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아까 그 수원 영상 말이에요.”

“네. 그 이상은 공개하지 않고 분석할 거라서요.”

“알아요. 보여 달라는 게 아니고요. 1세대 헌터분들이 그랬다던데요. 살아 있을 리가 없다고……. 혹시 성 팀장님이 영상에 나온 셋과 다 아는 사이셨나요?”

성 팀장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보였다. 떨리는 입매를 억지로 틀어 웃어 보인 것이다.

“한 사람만요.”

“그럼 1세대 분들께 협조를 요청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뭔가 아는 분이 있을 것 같아서요.”

“정보 고맙군요. 자세한 게 밝혀지는 대로 연락할게요.”

웃는 얼굴이지만 피로해 보였기에 지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물러났다. 죽은 줄 알았던 옛 동료가 괴물이 되어 화면 저편에 나타난다면 그 역시도 대단히 심란할 것이 분명했다.

“이지호 헌터!”

연구실을 나온 지호를 불러 세운 건 양 박사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할 일로 바쁠 텐데. 지호는 의아해하며 인사부터 건넸다.

“안녕하세요, 박사님.”

“인사할 때가 아닙니다. 박 팀장이 올린 보고 받았어요. 정체 모를 집단을 쫓고 있다죠?”

이렇다 할 결과가 없다는 사실이 지호의 어깨를 처지게 했다. 양 박사는 그 태도에 의문을 표했다.

“하룻밤 만에 그럴싸한 단서도 찾았다고 들었는데요?”

“없어져 버렸어요. 이상한 불이 났거든요. 사람 다니는 곳도 아니었고, 거기서 불 날 만한 걸 본 적도 없었는데…….”

“흠, 비슷한 방식으로 다른 곳들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어차피 근신 기간이라 현장 출동도 못 하잖아요.”

“그것도 간신히 찾았던 건데…….”

양 박사는 지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룻밤 만에 찾아냈던 거잖아요. 원래는 몇 날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었던 수색이고요. 헌터의 감을 믿고 좀 더 확인해 봐요.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지호 헌터라면 특히요.”

이상할 정도의 믿음과 신뢰였다. 지호는 눈을 굴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실 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나, 양 박사는 오래 머무르지 않고 돌아갔다.

아무리 봐도 참 이상한 사람이다. 그가 보이는 각성자들을 향한 무한한 믿음과 호의는 다른 데서 오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입은 은혜를 타인에게 대신 갚으려는 듯이…….

그러나 그의 말에 틀린 것이 없다. 처음부터 한 방에 찾아냈던 게 이상한 거였다. 지호는 급성 균열이 열렸던 곳들 중 관교동처럼 복구가 늦어지는 곳이나 소외되는 지역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바삐 달려갔다.

* * *

센터 곳곳에서 수원 균열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립된 촬영 팀이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영상들을 보면서 지호는 균열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다잡았다.

다른 놈도 아니고 퀸이 경계 부근에 보였다. 생존자들 주변이라는 게 심히 신경 쓰였다. 뭔가를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경계 주변을 살피다 경계 저편으로 넘어가 버리기도 한다.

균열 어플로 올라오는 수많은 영상마다 그랬다. 퀸은 균열 경계를 탐색하려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고, 가끔은 괴물에게서 극적으로 도망쳐 균열을 탈출하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경계가 어딘지 알아내려는 것 같았다.

퀸이 다른 괴물들보다 확연히 지능이 높은 괴물이라는 사실은 그 이상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다른 놈들을 조종하는 놈이다. 조종당하는 것보다 멍청해서야 가능할 리가.

괴물이 경계를 지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통 사람들은 균열 저편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보현이 통과한 거로 볼 때 이형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가능하리란 추측 정도만 할 수 있었다.

언니가 일어나야 뭐든 할 수 있을 텐데.

균열 내부의 실종자들이 살아 있을 수 있으며, 최근에 당한 사람의 흔적이 발견된 거라고 전해 주면 보현은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기다리던 사람 역시 살아 있을 수도 있으니.

온갖 방송사의 교차 촬영된 영상을 보며 걷던 지호는 누군가에게 부딪혀 걸음을 멈췄다. 지호 쪽이 멀쩡했다. 당연한 일이다. 신체 능력자와 아닌 사람의 차이만큼이나.

“앗, 죄송해요. 앞을 못 보…….”

지호의 말이 쏙 들어갔다. 몇 걸음이나 밀려 났던 김 반장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일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여기 있었군.”

“예?”

“수원 균열에 퀸 패러사이트가 나타났단 소식은 들었겠지? 수원 지역 소속 헌터들은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과부하 상태다. 지원을 가야 해.”

“하지만 저는…….”

“정신 방벽이 없지. 파트너도 없고. 임시로 내가 맡는다. 당장 진입 지시하는 거 아니니까 긴장 풀어. 요청이 올 시에 들어간다. 그 전까지는 대원의 일을 감찰할 예정이야. 또 혼자 균열에 뛰어 들어갈까 봐 양 박사님께서 요청하셨다. 뭘 찾고 있다지?”

“예?”

“두 번 말해야 하나? 시간 없다. 전투복 지급받고 와.”

“아니 저 근신…….”

“신경 쓰지 마라. 다른 지시가 내려왔으니 움직여. 내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니 어디 딴 데로 샐 생각 말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지호는 일단 전투복을 받아 왔다. 위아래로 훑어보며 지호의 장비를 검토하다 손목에서 시선이 멈춘 김 반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아까 부평에서 받은 거예요. 균열 들어갈 때 보호해 줄거라고 뭐 그러면서…….”

“정신계 쪽으로?”

“아뇨. 몸이 무너지는 걸 막아 준다나 그랬던 것 같아요.”

“시제품인가 보군. 빨리 보급되었으면 좋겠다고 장인분께 전해 줘라. 기본 보급 장비 외에 필요한 건?”

“저는 괜찮아요. 반장님은 뭐가 되게 많으시네요…….”

선글라스에 총기, 용도 모를 장비들에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들어간 가방까지 챙긴 김 반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대원 같은 철인이 아니라서 말이지.”

“벌써 균열 가요?”

“몸도 좀 풀 겸. 현장에 직접 들어가지 않은 지 좀 됐거든. 장비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고. 할 일 있으면 하게. 따라갈 테니.”

지호는 대놓고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먹힐 리 없다. 김 반장은 적당히 무게를 맞추고는 아직 안 가고 뭐 하고 있냐며 지호를 채근했다.

“할 일이 마땅히 없나? 그럼 정신 공격 방어 훈련을…….”

“아뇨! 찾으러 갈 게 있어요!”

김 반장은 그 명백한 회피에 씩 웃기만 했다. 지호는 그냥 날아서 도망갈까 생각도 해 봤지만, 나중이 더 괴로워질 것 같아 그냥 포기했다.

지도를 켜고 대중교통으로 갈 거리를 가늠하는 사이 김 반장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어디로 가나?”

“아직 몰라요. 수색 안 한 곳들 뒤져 봐야죠.”

지호는 그가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겪었던 일들을 짧게 이야기했다. 김 반장은 최근에 발견했다가 전소하였다는 그 흔적 이야기를 들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균열을 강제로 열려고 하는 집단을 만났단 말이지. 어떻게 그러고 있는 줄 알았나?”

“음, 이상한 느낌도 있었고요. 균열 경계에서 보이는 그 이상한 공기 있잖아요. 그것도 보이고 색도 흐려지고 좀 위험했어요.”

“그런 게 느껴진다고?”

지호가 감지계 능력을 타고나서 그런 걸까. 약간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던 지호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머리를 슬쩍 숙여 보였다.

“확인해 보실래요? 머릿속 훑고 영상으로 뽑아내고 막 그런 거 하시잖아요. 막 판타지 같은 거.”

“기본적인 정신 방벽으로도 막는 힘이야. 아니지, 그래. 내가 기억을 읽어 볼 테니 내가 하는 것들을 한번 막아 봐라. 지금부터 할 테니까.”

김 반장이 손을 뻗었다. 지호는 아예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린 채 열심히 방벽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높은 장벽, 이형 에너지 방벽과 같이 본인을 둘러싸는 정도의 형태.

“감지계 파장을 펼치지 않아도 이런 식으로 보이는군. 다른 사람들은 확인이 어려웠겠어.”

“엑, 벌써 확인하셨어요?”

“뚜렷하게 보이진 않아. 약간 정도는 타인의 간섭을 막아 낼 수 있다는 뜻이겠지. 물론 멀었네만.”

아직 가시지 않은 정신 간섭의 여파에 지호는 떨떠름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미약한 현기증과 멀미 같은 울렁거림이 느껴진다. 잠시 쉬면 곧 괜찮아지는 정도의 약한 증상이었다.

“여태 이런 느낌 든 적 없었는데…….”

“자네의 기억을 읽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좀 전에도 굳이 해 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볼 생각은 없었네만, 꽤 유익한 경험이군. 이런 모양이었나?”

지호의 기억 너머에서 흐릿하던 그 집단의 얼굴들이 또렷이 나타났다. 지호는 깜짝 놀라 동주의 손 위를 보았다. 미니어처만 한 크기이긴 했지만, 지호가 봤던 그 얼굴들이었다.

아닌가? 인상이 약간 다른 감도 있었으나 얼추 비슷했다. 이걸 넘기면 다른 헌터들이나 헌터 경찰들에게 수색을 도와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핸드폰을 들이밀어 그걸 찍으려던 지호는 아, 했다. 카메라에 찍힌 건 동주의 손뿐이었다.

“환상은 영상에 안 찍혀.”

“깜빡했네요. 정신계 공격이건 뭐건 다 차단해 버리는 뭐 그런 헬멧 같은 거 만들면 좋겠어요. 영화에 나오는 그 뭐더라, 그거 아세요? 주먹 쥔 손에서 막 손톱 길게 나오는 옛날 영환데.”

“영화는 영화지. 아무튼, 이동 능력자가 협조하고 있으니 찾기 어렵겠는데.”

“그래도 이 환상을 저 말고 다른 분들에게 보여 주시면…….”

“무슨 소용이겠나? 자네 말고 다른 사람들에겐 그리 인상적인 기억이 아닐 텐데. 직접 본 것도 아니라서 오래 기억하기도 어려워. 애초에 기억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것 자체가 오류가 많기도 하고. 아마 자네가 본 진짜 얼굴들과 내가 만들어 낸 얼굴이 다를 거다.”

동주의 손 사진을 지운 지호는 시무룩하게 동주의 손 위 얼굴들을 내려다보며 질문했다.

“어디까지 보셨어요?”

“그 구조대원도 나쁜 사람 같진 않은데, 그래도 대원은 아직 미성년자니까 일 년만 기다렸다가 만나는 건 어떤가? 아무리 각성자래도 남자 함부로 집에 들이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아니 무슨 말씀을……. 아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고 확신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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