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78화 (79/260)

78화

팀원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퀸을 사냥해야 한다고 말했던 보현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최정예였다던 보현의 팀이 그렇게 당했는데, 보현 혼자 뭘 어떻게 할 수 있다고 퀸을 찾아다녔을까.

헌터들만 열람할 수 있는 메뉴에는 이번 코드 레드 개체로 확인된 것이 패러사이트 퀸이라는 알림이 새빨간 글씨로 박혀 있었다.

일반인뿐 아니라 헌터들 중 일부가 퀸에게 잠식당한 이후로 퀸 패러사이트의 위험도는 최상위로 치솟았다. 계양 균열에서 전도유망한 헌터들 몇이 당했는데, 장비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 균열에 나타나면 금세 추적이 가능하다는 묘한 장점이 생겨 버렸다.

일반적으로 잠식된 개체는 퀸의 본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지난번처럼 생존자들이 적은 쪽으로 유인하면서 구조 작업에 들어가겠지.

그 정도라면 지호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묘하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구조 작업을 하는 팀이건 사냥하는 팀이건 전원이 다 정신 방벽을 가지고 있진 않다. 주로 유인 팀 정도나 완벽한 정신 방벽을 갖추겠지. 팀원 중 일부가 저항할 수 있으면 대처할 수단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팀조차 지호를 포함시키진 않았다.

본래 모두 정신계 공격에 저항할 수 있어야 투입되는 것이 옳겠지만, 헌터의 수는 너무 적었고 추가 인원은 보충되기보다 소모되는 게 더 빨랐다. 최근 균열 터지는 경우가 너무 잦아 모두 한계까지 온갖 작업에 내몰리고 있었기에 더 그랬다.

일반적으로 넷 혹은 다섯이 한 팀. 그 팀을 여럿 합쳐 큰 군집으로 움직이는 일도 있었으나, 빠른 수색 작업을 위해 팀은 최소 단위로 쪼개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직 파트너가 없기에 지원을 받아 주지 않는 게 아니다. 정식 헌터가 되면 오라고들 말을 둘러대지만, 임시 헌터들도 현장에 투입되는 일이 많았으니까.

그러나 코드 레드 출현 균열에 지호가 들어가는 것을 이상하게들 막는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경인 교대에서 사람들을 구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팀에 포함됐다. 용처럼 생긴 놈과 싸울 때도.

[장지윤: 수원 균열 초기 지원 다녀왔는데 생각보다 조용하드라구요. 정리된 건 아닌 것 같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일단 촬영 팀에서 송출하는 실시간 영상들 받아 보고 있거든여? 연수 센터로 얼른 ㄱㄱ]

단톡방에 올라온 긴 메시지에 지호는 서둘러 방향을 잡았다. 어차피 연수 센터 쪽으로 가야 한다. 그쪽에 연구 팀도 있고 분석 팀도 있으니까.

[강하나: 신라tv에서 찍은 영상 꼭 봐요. 1세대 헌터분들이 이상한 소릴 하시더라고요.]

[이지호: 이상한 소리요?]

[강하나: 살아 있었을 리가 없다고요.]

핸드폰을 오래 보고 있을 새가 없었다. 지호는 곧장 날아올랐다. 남의 눈 신경 쓸 새는 없었다. 살아 있을 리 없다고? 죽은 누군가 돌아오기라도 한 걸까?

퀸에게 조종당하는 사람 중에 옛날에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투입된 헌터가 놀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

센터 옥상으로 뛰어내려 잠긴 문을 뜯고 센터로 달려온 지호는 자기 말고도 여러 사람이 이미 분석실에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한 게 찍혔다면서요?”

“아, 지호 씨. 퀸이 화면에 제대로 잡힌 영상을 받았어요. 운 좋게 외부에 설치해 놓은 카메라 근처를 지났다고 하더라고요. 숨어 있는 사람 중에 휘말린 방송 팀에 계속 연락을 받고 있었는데, 일단 봐요.”

김 반장이 정신계 관련 수업을 하며 퀸을 보여 준 적이 있었고, 처음 이후로도 몇 번쯤 어떤 식으로 헌터들을 공격하는지 등을 학습하느라 이미지를 접했다.

괴물 둘이 먼저 지나간 길목으로 퀸이 천천히 걷는 것이 보였다. 다른 괴물들보다 인간에 가까운 외형.

그 뒤편으로 구형 헌터 전투복을 입은 이가 호위하듯 걷다가 문득 화면 쪽을 응시했다. 발소리가 점점 커진다. 약간 아래쪽을 비추고 있어 얼굴이 제대로 찍히진 않았다. 날렵한 턱선과 흉터투성이의 목, 손상된 전투복이 확대되어 잡히다가 이내 화면이 툭 꺼진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화면이 꺼졌다. 카메라를 부수거나 연결이 끊긴 게 아니다.

“끈 거야?”

누군가 믿을 수 없다는 어조로 중얼거리며 화면을 앞으로 돌렸다. 아무리 봐도 그게 맞다. 화면 뒤쪽으로 손을 쭉 뻗어 카메라를 껐다.

“퀸 패러사이트와 같이 걷고 있었어요. 멀쩡한 사람이라면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완전한 인간형? 아니면 잠식되고 외형이 바뀌지 않은 사람? 감염된 다음에 모습이 천천히 바뀌긴 하는데, 최근에 감염된 거면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복장이 초기 전투복이었어요. 제대로 이형 에너지 반사 처리 되어 있지 않은, 그 군복만 적당히 바꿔서 방검복이랑 같이 덧대었던 거 있잖아요.”

실내는 갑자기 시장통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여러 사람이 자기 생각과 추측을 입 밖에 내놓느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맨 앞에서 화면을 뚫어지도록 응시하던 성 팀장은 손을 들었다.

“조용히 해 봐. 아는 얼굴 같다고.”

“예?”

“앞에 지나간 둘 다시 보자. 확대 좀 해 봐.”

방송국 카메라라 화질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퀸의 앞에서 주변을 경계하듯 걷고 있는 헌터 장면에서 재생을 멈추었다.

헌터 데이터베이스가 돌아간다. 일부 실종자에서 일치 자료가 확인됐다. 성 팀장은 설마 하며 화면으로 들어갈 것처럼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급성 균열 실종자들?”

날짜가 꽤 앞이었다. 2세대 혹은 3세대가량. 뒤의 호위자와 달리 앞선 경계자들은 사람의 모양새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직립 보행 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겉모습으로 그들이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유추하긴 힘들다. 그러나 신체와 융화되어 남아 있는 구형 전투복의 흔적들과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양새가 사람들을 수군거리게 했다.

“팔이 기형적으로 큰 쪽과 등에서 삐져나온 다리로 걷는 쪽, 둘 다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데 사람 얼굴이 달려 있긴 하네요.”

“어떻게 이런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을까요?”

“왜 전에 남동구 균열에서 보고 올라온 개체와 비슷한 거 아닐까요? 포자 같은 걸 뿌린다던 그…….”

지호가 올렸던 보고는 필수 숙지 정보로 뿌려졌기 때문에 센터에 모인 헌터들 모두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성 팀장은 화면을 느리게 재생했다.

사람이라면 본디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입이 달린 퀸 패러사이트. 시야는 어떤 방식으로 확보하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다리 옆으로 흐늘거리며 뻗어 나간 촉수가 셋 모두와 연결되어 있었다. 길이가 유동적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보니 정확하게 그 개체다.

“이 뒤에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 사람처럼 보이는 괴물은 얼굴이 다 안 잡혔네요. 하관만으로 신원을 파악하긴 힘들겠어요.”

“우리 쪽에 신호가 잡히는 그 헌터였을까요?”

“일단 그런 걸로 추측되긴 하는데……. 모양새를 멀쩡히 유지한 유일한 사람인 걸로 봐선 거의 맞다고 봐야겠죠. 이름표가 보이면 좋았을 텐데…….”

“대화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 툭 말을 던지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누구도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심지어 질문을 던진 사람조차 답을 원해서 꺼낸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연구 팀 사람들은 불안한 듯 시선을 나누었다. 짧게 한숨 쉰 성 팀장은 느리게 돌아가는 화면 속 퀸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대화할 수 있으면? 말이라도 걸어 볼 심산이냐? 그러다 네 목을 씹어 먹을 놈들이야. 설령 말이 통한다고 해도 문제지. 말 못하는 괴물일 때보다 놈들을 사냥하는 데 거부감 느끼는 사람들도 생겨날 수 있고.”

일부 채식주의자들을 제외한다면 소나 돼지를 도축해 고기를 먹는 것은 평범한 일상일 뿐일 것이다. 그러나 도축할 돼지와 대화할 수 있으면? 궤가 좀 다른 이야기지만, 지금만 해도 애완동물로 기르는 종류의 동물들은 윤리적, 감정적 문제로 먹지 말자고들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괴물과 동물은 다르다. 그러나 대화 가능한 상대가 될 수 있단 점에서 누군가는 머뭇거릴 것이다. 성 팀장은 이 영상을 공개하는 것이 현명할지 고민하며 신음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관해 걱정하지 말죠. 그것보다 퀸 패러사이트의 치맛자락을 봐요. 세 개가 아니고 다섯 갭니다. 화면에 보이지 않지만 세뇌된 두 개체가 더 있단 뜻이겠죠.”

“양 박사, 언제 왔어요?”

“옥상에서 머리 좀 식히고 있는데 누가 옥상 문을 뜯고 들어가더라고요. 무슨 일 났나 싶어서 뛰어온 겁니다. 저는 헌터가 아니라서 이쪽 알림을 직통으로 받는 건 아니니까요.”

양솔은 어깨를 으쓱인 다음 헌터들이 보고 있던 화면을 빤히 응시했다. 화면은 또 헌터 전투복 입은 사람이 카메라를 끄는 부분에서 끝이 났다.

“이 사람은 구형 전투복을 입고 있잖아요. 최근에 당한 분들은 신형 전투복이니 따로 연결되었고, 화면에 잡히지 않은 두 사람이 그들이겠죠. 이 사람이 누굴지 알아내는 게 먼저겠네요.”

“하지만 어떻게…….”

“급성 균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실종자들 중에 살아 있던 사람들이 최근까지 저항하다 당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퀸이 조종하던 자들이 평범한 인간이거나 괴물이었다가, 갑자기 헌터가 되었으니까요. 전투력이 올라갔다고 봐야 할까? 그래서 당했다고 보면 말이 되지 않나 싶어요. 저렇게까지 멀쩡한 모양새라니.”

양솔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작게 덧붙였다.

“꼭 괴물이 아니고 사람 같긴 하네요.”

성 팀장은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가뜩이나 조용하던 연구실이 더더욱 침묵에 잠겼다. 양 박사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가능성 하나까지 고려하는 게 제 일입니다, 성여진 팀장.”

“추가 정보가 들어올 때까지 이 영상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퀸의 세뇌 개체가 다섯이라는 점만 알릴 거예요. 현장 보고 올라오는 대로 정보 취합해서 계속 갱신해 주세요.”

성 팀장은 영상을 껐다. 자세한 건 센터에 모인 헌터들이 아니라 연구 팀 사람들끼리 프레임 단위로 분석하며 돌려 볼 것이다. 지호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으나 여러 번 본다고 알 수 있는 게 있던 것도 아닌 터라 금방 볼일을 생각해 냈다.

“팀장님. 아까 연락드렸던 거예요. 부평 연합에서 감지계 도구들 가지고 여러 번 확인해 봤는데 몇 가지 추측할 만한 게 있었는데…….”

덕팔이 했던 이야기를 들은 성 팀장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본 영상에 온통 신경이 쏠린 눈치였다. 지호는 딴생각에 빠진 성 팀장에게서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생각에 잠긴 건 양 박사도 똑같았다.

“자세한 건 영상 보시면 알 것 같아요. 부평 연합에서도 보고 자료 보낼 거고요.”

“실종자들이 입구 닫힌 균열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될까요?”

성 팀장의 물음이 툭 튀어나오자 지호는 당황했다. 사실 지호에게 물어본 건 아닌데, 바로 앞에 있어 어쩐지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건 사실이었다. 그는 쩔쩔매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식량이 확보되는, 그러니까 큰 마트 같은 곳에 적은 인원이 숨어 있었다면 꽤 오래되지 않을까요? 전기나 통신이 끊기는 건 아닐 텐데…….”

“그건 균열이 열려 있을 동안만이잖아요. 균열이 닫히고, 그 내부에 남은 사람들에게도 문명의 이기가 똑같이 적용될까요? 균열이 사라지면 거기 있던 건물이나 물건들이 사라지진 않잖아요. 심지어 악성 균열에서도 물건들은 멀쩡해요. 없어지는 건 살아 있는 것들뿐. 어항 속 물고기나 길고양이 같은 것들까지 깨끗하게 없어지잖아요. 이쪽과 연결이 단절된 저쪽 세계는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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