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혼란하던 화면이나마 내내 중계하던 뉴스는 순식간에 송출 중단되었다. 지호와 같은 화면을 보고 있던 일부가 더러는 숨을 멈추고 더러는 자기 눈을 의심했으며 더러는 핸드폰을 떨어뜨리거나 토악질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현장에 있었으면 차라리 감별이 쉬웠을까. 화면 너머로 보이던 모습만으로는 식별이 어려웠다. 에너지를 흘려 내 감지하는 것과 눈으로 필터를 씌우듯 세상을 보기만 하는 것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으니.
지호 역시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참지 못했다. 그는 욱, 하고 헛구역질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상해. 이상하다. 지호는 분명 성공했었다. 균열은 분명 커지다 말았고, 그 작은 사이즈의 균열은 동네 하나조차 삼키지 못하고 조그마한 균열에 되는 것에 그쳤다. 도망치느라 부상자는 좀 있었으나 사상자는 없었다. 경이로운 기록이었는데.
그런데 저 각성자는 실패했다.
덜덜 떠는 지호의 등에 누군가 손을 얹었다.
“저기 학생, 괜찮아요? 물 좀 줄까?”
지호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지호 근처에 있던 두 노부부가 그를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등산복 차림에 손에 들린 물병, 나머지 손의 지팡이까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거리에 흘러나오던 온갖 뉴스가 더더욱 다급한 음성으로 바뀐다. 급작스레 균열 경보가 4단계로 격상되며 사람들은 비명과 함께 흩어졌다. 어떤 카메라는 리포터도 버리고 일단 대피소를 향해 뛰었는데, 그 와중에 다른 사람들 도망치는 모습은 촬영하고 있었다.
“힘들면 뉴스 그만 봐. 어휴, 아까 그거 봤나 보다.”
“이거 얼음물이니까 좀 마셔 봐요. 자.”
지호는 떨리는 손으로 물병을 받았다. 냉기가 서늘하게 식은 손 온도를 더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신은 좀 든다.
방금 다 같이 목격한 건 급성 균열의 출현이었고, 그 균열의 확장을 막으려던 각성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방법으로 죽었다.
지호는 어떻게 살아 있으며, 그는 왜 죽었는가?
좀 전에 봤던 뉴스가 어느 채널이었는지 상기하며 지호는 노부부에게 물병을 돌려주었다. 목구멍으로 자꾸 들어가려는 말을 끄집어내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감사, 감, 감사합니다.”
“얼굴이 다 하얗네. 혹시 어지럽거나 울렁거리고 그러면 자리에 앉아서 좀 쉬어요. 멋모르고 막 걷다가 넘어지면 크게 다친다.”
하늘은 파랗고 세상은 평화롭다. 오로지 화면 속만 지옥이었다. 괴물들이 그림자에서, 허공에서, 어딘지 모를 곳에서 불쑥 솟아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채 숨지 못한 사람들이 발견된다. 이후는 끔찍한 장면들뿐.
운 좋게 대피소가 근처에 있거나 건물 내부로 피한 카메라들은 숨죽이고 밖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황급히 스튜디오로 화면을 전환한다. 방금 같은 끔찍한 모양새를 생방송으로 송출할 수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요즘 왜 이렇게 사방에서 급성 균열이 생기지? 원래 그렇게 자주 생기는 게 아니었잖아.”
“그거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게? 균열학 박사나 따지.”
“어휴, 대피소 없는데 다니면 안 된다니까. 저 사람들 다 어떻게 해. 엄청 많이 있었는데…….”
누군가 안쓰러워하며 혀를 찼다. 괴물에게 발각되어 도망치던 일부가 다른 사람들 숨은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가 더 큰 재난을 불러일으켰다. 괴물들이 만찬을 즐긴다. 비명과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짐작 가능했기에 지호는 질끈 눈을 감았다.
많이 아픈가 봐, 하고 걱정하는 노부부의 목소리까지 신경 쓸 수는 없었다. 좀 전 그 화면을 다시 봐야 한다. 지호보다 더 세밀하게 안력을 쓰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곧 부평 각성자 연합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의 이형 에너지는 눈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라면 뭔가 차이점을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이구, 천천히 일어나.”
지호가 몸을 벌떡 일으키자 곁에 서 있던 할아버지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러났다. 화면만 보며 걷는 사람들에게 부딪히지 않게 지호 부근에 서 있어 주신 모양이다. 그는 꾸벅 몸을 숙여 감사를 표하며 지도를 켜 방향을 가늠했다.
부평 방면은 북북동쯤. 조금 가다 방향이 틀리면 또 전환하면 된다. 갑자기 다급한 상황이 잡혀 사람들이 다시 어어어, 하며 화면에 눈을 빼앗기는 그 틈을 타, 지호는 하늘로 휙 날아올랐다.
노부부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간신히 살아남는 장면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때 곁에 서 있던 지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가는 걸 못 봤나? 둘은 어깨를 으쓱인 뒤 다시 뉴스에 집중했다.
균열 내부가 촬영된 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많은 인원이 동시다발적으로 균열에 휘말렸고, 또 그 장면을 촬영했으며, 거기에 강제로 관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은 이례적이었다. 지호는 수원 균열의 규모와 관련해 온갖 이야기를 떠드는 뉴스를 틀어 놓은 채 최대한의 속도로 날았다. 얼굴 가죽이 찢어질 것 같았다.
시린 공기를 참지 못하고 눈물이 난다. 눈가를 타고 빠르게 날아가는 뜨거움이 가슴을 짓눌렀다.
지호가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
아무리 말로 한들 눈으로 보는 것만큼 와닿지 않고, 피부로 느끼는 것만큼 와닿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당연히 조심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정말 본능적으로 막게 된다. 균열이 퍼져 나가는 걸 목격하는 순간에 머릿속에 저걸 막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었다.
그 각성자도 그랬겠지. 공포에 질렸던 마지막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부평 연합 입구는 언제나 닫혀 있지는 않다. 각성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을 뿐. 지호는 그를 막지 못하는 문을 힘차게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서명은 장인님, 도와주세요!”
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냥 보기만 해도 일반인과 각성자가 뒤섞여 있다. 물건을 파는 사람, 보는 사람, 만드는 사람과 투자하려는 사람이 뒤섞여 있는 곳이니 당연하다.
지호의 얼굴을 알아본 몇 사람이 핸드폰을 꺼냈다. 지호는 사진 찍으려는 걸 곧바로 제지했다. 힘 조절할 시간도 자비도 없어 우그러진 핸드폰은 고철이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같은 실수는 없었다. 지호는 사과 없이 사람들을 훑었다. 명은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계세요?”
“어, 검단 가셨는데요. 잠시만요. 선경 이모!”
검단 센터엔 가 본 적이 없어 위치를 몰랐다. 헌터들 편으로 물어봐야 하나? 하지만 지금 당장은 다들 정신이 없을 거다. 근방에 있는 헌터들은 현장으로 출동했겠지. 지호 역시 마음만은 가고 싶다.
작업장 한쪽에 켜진 TV에선 여전히 균열 내부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튜디오 모두가 입을 다문 채 촬영 팀의 생존을 비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방송. 그러나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생을 향한 처절한 마지막 몸짓을 외면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고철이 된 핸드폰을 주운 사람들이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지호에게 뭐라고 하진 못했다. 뉴스에 나오는 심각한 상황에 지호의 화난 얼굴이 덩달아 연관 있는 것처럼 보여, 사진 찍으려고 한쪽이 잘못인가 보다 하고 입을 다물게 되는 분위기가 형성된 까닭이었다.
한쪽에서 길을 막은 채 뉴스와 지호를 번갈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뭐에 찔린 것처럼 후다닥 비켜섰다. 없는 자리마저 만들어 내는 극적인 변화였다.
사람들이 비키기 전부터 머리만 불쑥 솟아올라 지호를 내려다본 여자는 남들이 그러하듯 뉴스와 지호를 한 번씩 번갈아 확인하곤 턱짓했다.
“명은이가 아니라 연합에 볼일이 있는 거겠지?”
정확히는 각성자들의 능력에 볼일이 있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다들 어려워하는 얼굴들이라 지호 역시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큰 키에 피골이 상접하도록 마른 얼굴, 다소 날카롭다 해도 모자라지 않을 차가운 인상이 더욱 그를 위축시켰다.
도제들이 일하는 작업장을 지나 내부 출입 통로 중 한쪽으로 지호를 데려온 여자는 맨 끝 방에 도착해서야 자리를 권했다. 삭막한 곳이었다. 명은의 작업실과 마찬가지로 여자의 작업실일 터였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뛰어왔다는 건 지금 균열 터진 거랑 관련 있는 사항일 거란 뜻인데.”
“아, 아까 혹시 갑자기 생방 끊어 버린 mtv 보고 계셨는지 모르겠는데요. 그 장면을 분석해 주실 분이 계실까요? 이형 에너지를 볼 수 있는 분으로요.”
“왜?”
“균열을 막을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게, 제가 얼마 전에 균열 터지는 곳에 있었는데 그게 퍼지는 걸 막았어요. 근데 오늘 뉴스에 나온 어떤 분이 저랑 똑같이 했는데 막기는커녕, 그, 죽었거든요.”
“시간 순서대로 차근차근 말해 봐. 뭔데?”
어설프게 횡설수설 떠들던 지호는 여자의 지시에 따라 차근차근히 이야기를 풀었다. 바로 어제 오전에 급성 균열이 근처에서 터지는 걸 알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거기 뛰어들어서 어쩌다 보니 균열이 커지는 걸 막았다는 것도.
“그런 게 가능했나? 혹시 주변 CCTV나 촬영본 확보한 건?”
“모르겠어요. 어제 있던 일이기도 하고, 균열이 아예 안 열린 것도 아니고 근처 차량 블랙박스라도 조사해 보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아무튼, 그래서 저랑 똑같은 과정을 거쳐 같은 행동을 했는데 돌아가신 분의 화면을 분석할 분을 찾고 싶어요. 뭐가 달랐는지 모르겠지만요.”
“그래. 그걸 찾으려면 댁이 촬영된 화면이랑 비교해야 할 것 아냐. 누군지 모르겠지만.”
지호는 아차 했다.
“미, 미안합니다. 이지호라고 해요. 임보현 헌터님네 군식구예요. 서명은 장인님하고 아는 사이인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고 무작정 쳐들어왔어요. 무례했네요. 죄송합니다…….”
“아, 그 꼬맹이.”
여자는 전혀 놀랍지 않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가득 채운 건 선반들이었다. 그리고 거기 놓인 것들은 다른 물건과 충분한 공간을 두고 떨어져 전시된 것처럼 놓여 있는 정체 모를 것들뿐이었고.
“나는 유선경이고, 여기 사람들은 나를 거쳐야 연합에서 제작 일을 할 수 있어.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 가르쳐 개발 인력으로 길러 내는 걸 주요 임무로 삼고 있고, 헌터라는 직업이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며 대우받게 되기 전에는 그 비슷한 일도 했었지. 하지만 내 능력은 전투용은 아니었어. 금방 그만뒀고.”
“음, 언니한테 들은 적은 없지만…….”
“걔가 사정상 설명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묻지도 않은 남 이야기를 떠들 타입은 아니야. 자기 이야기도 잘 안 할 텐데. 아직 못 일어났다지. 애석하게도.”
지호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경은 지호가 앉은 자리 부근의 수납장 문을 열었다. 납작한 직사각형의 금속. 얼핏 보면 샤프심 통과 비슷하기도 했다.
“이건 필터야. 마정석과 이형 에너지를 다루면서도 그걸 볼 능력 없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물품이지. 헌터 교육을 받는다고 들었는데, 쓸 일은 없어도 본 적은 많을 거야. 이걸 얇게 가공해서 렌즈에 채우는 거거든. 투명도 개선에 애를 먹었어. 투과해서 봐야 쓸모가 있는데 어두운 데선 아직도 쓰기 어렵지. 신체 계열들은 어두운 데서도 어떻게든 쓰긴 하는 것 같던데, 보통은 불가능해. 원래 선글라스가 실외용이긴 하지만, 이건 정말 철저하게 그렇지.”
시제품은 보통 이런 식이라며 선경이 집어 든 건 선글라스였다. 지호는 하마터면 예의 없이 그걸 손가락질할 뻔했다. 몇 번을 봤었다. 감지계 능력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대단히 유용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이게 필요한 거였다면 굳이 여길 올 필욘 없었겠지. 좀 더 세밀하고 섬세한 뭔가가 필요한 거라든가?”
“저는 감지계 능력도 있어요. 제가 볼 때 그 상황이 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어요. 그러니까 이형 에너지의 다른 흐름을 분석해 보고 싶은데, 화면에는 찍혔을 테니까 혹시 특출난 사람이 있을까요? 다들 비슷한 성격의 능력을 타고나도 사용할 수 있는 정도나 분야는 많이들 다르잖아요.”
“시도는 해 보마. 중요한 것 같으니까. 근데 본인이 찍힌 화면이 꼭 필요하겠어. 센터에 요청해 보는 게 어때? 아무리 비상이어도 이 정도 정보면 관심들 안 보일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렇죠. 맞아요. 제 느낌하고 비교할 수는 없는 거죠. 생각이 짧았어요.”
“괜찮아. 애들은 실수하면서 크는 거지.”
지호는 양해를 구한 뒤 복도로 나오자마자 연구 팀 쪽으로 연락했다. 이런 정보가 있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올 사람들이니까. 성 팀장은 도플갱어와 관련된 자료 분석으로 하루가 모자란다고 야근 삼매경이었으나 지호 메시지를 받기 무섭게 전화부터 걸어 왔다.